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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끼통 웹 소식지(5호)
[바끼통 소식]박기범님이 이라크로 다시 떠났습니다.
박기범님이 지난 토요일(6월 16일) 아랍에미레이트를 경유해서 요르단으로 성혜란님(이라크 다큐제작)과 함께 들어 갔습니다. 요른단에서 한국에서 마련하지 못한 물품을 마련해서 이라크로 들어갑니다. 이번에 2기 바끼통에서 마련한 성금과 어린이 도서연구회에서 마련한 성금이 반전평화팀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사과꽃과 날자, 프랭스가 배웅했고요. 또 김중미 선생님, 선생님 부군, 단비 솔비랑 기차길 옆 선생님 부부 와주셔서 잘 다녀오라고 인사해주셨습니다.
위 사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화 받으면서 출국증 쓰면서 아주 정신이 없었어요.
[박기범 통신]잘 다녀 오겠습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박기범
아이 참. 틈을 내어서라도 인사하는 말 올리고 가려고
마음 모아가며 글을 썼는데
꼭 컴퓨터 다운도 이럴 때 일어난단 말이에요.
다시 쓰는 건 못하겠어요.
한국에 와 지내며 맨날 찌푸린 얼굴, 눈썹 모으고 있어
미안하다고 그랬어요.
미운 얼굴, 미운 말, 그런 건 다
그 누가 미워서라기 보다는 내가 벅차서,
내 스스로 선택한 일을 감당치 못해 그런 거라고.
고마운, 사랑하는 마음
난지도, 공기족 그거 모르는 거 아니지?
-한국에서 권정생 할아버지와 찰칵 ^ ^
잘 다녀올게요.
모두 함께 하는 일, 저만 힘든 양 그리 해서 미안해요.
그래서 참 많이 받은 사랑, 걱정, 위로, 그 고마운 마음들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사실 그렇게 받은 마음들이야 제가 받을 것이 아니라
저 먼 데 있는 나라 아이들, 사람들에게 온전히 전해야 한다는 거 알아요.
그리 할게요.
잘은 못하지만 잘 하려고 애쓰고 올게요.
그리고 팔월에 돌아올 때는 예쁜 얼굴로 돌아올게요.
몸 마음 튼튼, 안녕.
[바끼통 보고]2기 바끼통 모금
2기 박기범 이라크 통신 계좌
농협 755018-51-092845 박기범(박기범 이라크 통신)으로 들어온
후원금과 지역 강연에서 후원해주신 후원금입니다.
이 성금은 지원연대 3차 입국 때 (박기범 님과 성혜란 님 출국할 때)
모두 보냈습니다.
총 금액 : 오백삼십팔만이천 팔백육십 원 (5,382,860)
후원해주신 분들(2003.5.13-2003.6.12)
김숙자, 장현영, 최도연, 김민영, 강은정, 광명평생학습관, 자산관리공사, 진주교대총학생회, 박기범 아버지 친구 모임, 산마루1기, 광명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여수YMCA, 채식사랑, 류오공, 콩세알, 모퉁이 어린이 도서관, 봉정훈 어린이, 참교육 학부모회, 아이들 성금(이
이름으로 들어왔습니다), 평화 성금(이 이름으로 들어왔어요.), 대전의 어느 반에서 모아주었다는 성금
순천, 대전, 진주, 광주, 여수 동화읽는 어른 모임
(이름이 빠진 분은 연락주세요. 고쳐넣겠습니다.)
귀한 마음 모아보내주신 성금 소중하게 쓰겠습니다.
앞으로 박기범 님과 '평화와 나눔을 위한 연대'팀의 활동
지켜봐주시기 바랄게요.
* 돈 관리는 사과꽃님이 수고해 주시고 있습니다. ^ ^
[박기범님을 보내며]기범이 삼촌 잘 다녀오세요.-기차길 아이들
-재양
오늘 함께하는 놀이시간에 삼촌 내일 가는 얘기했더니 몇명이 편지쓰고 싶다고 해서 얼른 써놓고 갔어요. 하은이랑 연서는 이거 올리는데
옆에서 말로 해서 받아 적었어요. 기범이 삼촌. 잘 다녀오세요. 갔다오면 또 오세요. 꼭이요.
(작은학교 식구들 )
박기범 삼촌, 안녕하세요. 저 진우예요.
삼촌 이라크 잘 갔다가 오세요.
그리고 제몫까지 아이들과 잘 놀아주세요.
그럼 안녕히계세요.
(4학년 진우)
삼촌, 평화를 구해주세요.
(3학년 원용이)
삼촌 평화를 빌께요.
(4학년 한솔이)
삼촌, 평화를 빌고요 잘 다녀오세요.
(5학년 연정이)
삼촌 이라크아이들 데리고 오세요.
(2학년 체경)
기범이 삼촌, 저 연수예요. 이라크가서 잘 있어야 돼요.
그리고 7월말인가? 그때 여기 꼭 오세요. 그리고 방학때 또 공부방 오세요. 삼촌 이라크에서 다치지 마세요. 이라크 아이들 많이 사랑해 주세요.
(2학년 연수)
안녕하세요. 전 슬기예요. 삼촌 거기서 더워도 아이들이랑 많이 놀아주고 오세요. 그리고 오면 또 공부방에 같이 와서 같이 놀아요.
(4학년 슬기)
안녕하세요, 전 작은학교의 평화지킴이 큰진주에요. 기억나세요?
저번에 공부방에와서 같이 놀았는데 그땐 정말 기뻤어요. 삼촌 제가
드린 장미 아직도 있어요? 있다면 이라크아이들에게 주세요. 없다면
어쩔수 없구요. 잘 다녀오세요.
(6학년 진주)
삼촌 이라크 잘 갔다오세요. 잘 애들 놀아주세요.
(6살 하은이)
전쟁반대 삼촌 응, 거기가서 덩따꿍따(풍물을 말함) 하지마세요.
시끄러워요. 가서 일해요. 삼춘 다치지 마요- . 평화사랑 잘하게 해 주세요.
(4살 엽기 연서)
[박기범님을 보내며]겁쟁이
겁쟁이
-박기범님에게
깜둥바가지
네 몸은 방패
온 몸으로 전쟁을 막고 있는
어린 아이의 눈동자
이라크 국경을 혼자 넘어
어린이가 소풍 가듯,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가볍게 날아가는 나비
네 몸은 세상을 아우르는
나비의 날개
7층에서 하룻밤
솔직히 겁도 났으리
틈 난 유리창을 테이프로 붙이며
너의 마음은 바그다드를 떠나고 싶은,
날개를 접은 나비
왜 왔느냐는 하이달
가슴 맞대고 얼굴 비빈 사이로
티그리스의 끝없는 강물이 흐른다
노라, 낸씨, 꾸아꾸아, 오마르, 마르완, 두니아
천국의 아이들과
다시 한 번 밟아야 할 메소포타미아
밤
황금불 속 바그다드
너는 어디에
그 큰 눈 끔벅끔벅
침대 밑
지구의 핵을 찾아 떠나는
미궁 속 방공호
누구나 피신하고픈
미셔너리 오브 채리티
아이들과 함께라면
미동조차 않는 나
겁쟁이.
[자유게시판]아버지 생각
이 글은 엉겅퀴님이 자유게시판에 올리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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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생각
김 영 미
내 인생에 기억할 만한 봄이 지나고 있다. 꽃 한 송이 제대로 본 일도
없이 말이다.
친구가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와 여행 후유증을 묻곤 했다.
인도 여행이 길었던 만큼 이 땅에 적응하기 힘들지 않느냐고.
하지만 난 집에 돌아와 여행의 여운에 젖어 있을 짬이 없었다.
도리어 주말마다 반전 집회에 나가느라 몸과 마음이 바빴다.
그 일이 단순히 주말에 한 번 시간을 내는 일만은 아니었다.
먼먼 이라크에서 일어난 전쟁은 계속 내게 많은 물음을 던져 왔고 새로운 행동을 요구했다.
전쟁은 틀림없는 현실이었고, 나는 전쟁의 처음과 끝을 너무나 생생하게, 차례대로 마치 영화를 보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엄청난 혼돈이었다. 그래도 5월이 다시 왔고 박기범도 돌아왔다.
그리고 전쟁의 기억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출판문화위원회 월요 모둠에서는 봄 내내 전쟁 이야기를 읽고 있다.
처음에는 전쟁 그림책을 읽었고 지금은 《태양의 아이》, 《희망의
섬 78번지》 그리고 다음 주에는 《전쟁이 끝나면 다시 만나》를 읽기로 했다.
태평양 전쟁, 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며 페허가 된 폴란드 유대인 거주
지역 게토, 러시아가 침략한 아프가니스탄, 베네수엘라의 쿠데타……,
책 속에 나오는 아픈 이야기들은 모두 지은이가 유년 시절 경험한 전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가 읽고 있는 이 전쟁 동화들은 무엇보다 ‘전쟁을 잊지 말자.’고 말한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겪은 전쟁, 아버지 어머니가 겪은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그 전쟁을 잊는다는 것은 전쟁을 잘못 경험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지금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어떤 형태로든 남아 있는 전쟁을 잊는다는 것과 전쟁을 잊지 않는다는 것!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난 어버이날에는 엄마랑 둘이서 여행을 다녀왔다.
강원도 철원까지 갔는데, 여행은 아니고 드라이브라고 하는 게 맞겠다.
억수로 비가 많이 온 다음 날 맑아진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에 그냥
차를 타고 아무 생각 없이 떠났다.
포천을 지나 만세교, 운천, 관인, 동송을 지나자 아버지 생각이 났고,
엄마는 갑자기 말이 많아졌고 난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만세교, 운천, 관인, 전곡……. 우리 식구에게 낯익은 지명이다.
아버지가 군대 생활을 하시던 곳. 우리는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한탄강을 지나 관인으로 들어가는 길은 옛날 부대 자리 그대로였는데, 전날 비가 많이 와서인지 한탄강은 온통 흙탕물로 넘실거렸다.
작년에 아버지가 폐암으로 항암 치료를 받으러 다니실 때 택시 타기가 힘들어 큰맘 먹고 차를 샀다.
병원도 병원이지만,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가시고 싶은 곳에 다 모시고 다니려고 말이다.
아버지가 제일 가시고 싶은 곳이 바로 옛날 군대 생활하던 곳이라 여겼다.
부랴부랴 연수도 받고 차도 사고 그랬다. 그게 작년 5월이었고.
마지막 항암 치료가 끝나고 차에 앉을 기운만 차리셔도 모시고 고향에도 가고, 군대가 있던 전곡, 운천, 금촌, 파주, 문산, 다 다니려 했는데…….
딱 한 번 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그리고는 돌아가셨다.
아버지 없이 엄마랑 나랑 그 자리를 보고 왔다. 젊은 날의 우리 아버지도 만났다.
돌아가시기 두 달 전에 항암 치료 부작용으로 열이 내리지 않아 응급실에서 한 달이나 계신 아버지.
아버지 간병에, 갑자기 당신 다리마저 쓸 수 없게 되어 간병 9년 만에
처음으로 내게 짜증을 부린 엄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아버지 이야기하는 것으로, 나는 아버지
이야기하지 않는 것으로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다.
내친김에 돌아오는 현충일에는 엄마랑 아버지 계신 대전 국립묘지로
해서 아버지 고향까지 다녀올 마음을 먹는다.
이렇게라도 아버지를 기억하고 싶고, 아직도 자유롭게 아버지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내 마음을 풀어 내고 싶은 것이다.
그래도 한 군데가 남았다.
아버지는 9년 동안 해마다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는 일을 반복하시면서 돌아가실 때는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사실은 9년 전 갑자기 쓰러지신 까닭도, 끝내 돌아가신 까닭도 다 고엽제 때문이었다.
여섯 살, 세 살, 두 살의 어린 딸들을 서른도 안 된 엄마에게 맡겨 두고
왜 아버지는 월남에 가셨을까?
다 돌아가신 다음에 드는 생각이다.
토요일마다 반전 집회에 나가면서 내가 왜 이 모임에 나가는지 혼자
물어 보았다.
지난 10년 어린이도서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난 어린이문학연구 분과에서 우리 창작 동화를 공부했다.
10년 우리 나라 동화를 읽으면서 길이 보이지 않거나 회의가 들 때 우리 모임 사람들은 권정생 동화를 읽었다.
그 동안 권정생 등화를 모아 읽은 횟수만도 네다섯 번쯤이고, 더 나아가 우리는 권정생 분과를 만들자고까지 하였다.
일 년 열두 달 권정생 동화를 읽는 분과.
그 때 그 동화를 함께 읽은 사람들은 열심히 반전 집회에 나갔고 그
밑바닥엔 이제까지 읽은 권정생의 동화가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선생님의 동화를 읽으면서 육이오 전쟁을 경험했다.
같은 민족끼리 치른 전쟁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겼고, 우리가 아직도 그것에서 얼마나 자유롭지 못한지 이야기했다.
반전 집회에 나가면서 우리는 그런 행동이 전쟁을 잊지 않기 위한 또
다른 모습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난 우리 군인을 이라크 전쟁터로 보내지 말라고 ‘파병 반대’를 열심히 외치며
우리 아버지가 월남에서 비처럼 맞은 고엽제 때문에 돌아가신 것을
잊지 않게 되었다.
(우리 회보 <동화읽는어른> 2003년 6월호에 실린 글 옮겨왔습니다.
김영미 님은 어린이도서연구회 상담실장이며
출판문화위원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아직 짝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어딘가 있을텐데 분명...)
날짜:2003/06/16 13:55
[이라크 소식]일지-6월 10일 화요일
최혁 팀장은 집(?)에 오니 그동안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지
몸이 좋지 않았다. 오늘 하루는 집에서 쉬기로 하고 하운, 동화, 상래,
지영이 어제에 이어 ‘현지 적응훈련’를 계속하기로 했다. 10시에
아부 알리 아저씨와 알리가 차를 몰고 왔다. 우리는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과 놀이터를 만들기 위해 알마시뗄 헬스 센터로 가서 터를 실측하기로 했다.
상래가 가져온 줄자는 가로 세로 2.5센티미터의 아주 작은 휴대품이다. 길이가 1미터밖에 되지 않아서 집과 마당을 재려면 몇번씩 볼펜으로 표시를 해야 했다. 동화와 하운이 쭈그리고 앉아 열심히 둘레를 재었다. 그 모습이 안됐던지 알리가 소년에게 부탁해 센터에 있는 좀 긴
자를 가져오게 했다. ‘모르타다’라는 열두어살쯤 돼 보이는 소년이
4.5미터짜리 줄자를 가져와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모르타다는 지영에게 빨간색과 파란색 볼펜 두 자루를 선물로 주었다. 펜은 ??, 파란색은 아즐란, 빨간색은 ???이라고 부르는 것이라 가르쳐 주면서.
그러는 사이 헬스 센터에 들어와 있는 미군 두 명이 우리가 뭘 하는지
보려고 왔다. 한참을 쳐다보다 갔다. 나중에 물어보니 미군은 사흘 전부터 헬스센터에 들어와 있었다. 가난한 이라크 민중들에 대한 미국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그 사실은 알누르 시각장애인학교에 가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알누르 시각장애인학교는 다르 알하난이라는 장애아동시설과 함께 유은하씨가 ‘시설의 복구와 정상화’를 위해 힘써 일하던 곳이다. 유은하씨와 함께 일하던 살람은 매니저에게 우리를 인사시켜 주고는 하운에게 알누르에 접근해온 미군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하나는 장애인들에게 구호품을 지급하는 일을 살람더러 도와달라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구호품 상자를 보러 갔다. 상자 안에는 쌀, 설탕, 차, 기름, 몇 개의 깡통들이 있었다. 가운데서 이 물건들 몇 가지를 슬쩍 하는 사람들
때문에 장애인들이 제대로 전해받을 수 없는 문제가 생겨서 믿음직한
살람이 이 일을 해 주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살람도 자세한 이야기를
더 들어봐야 한다고 해서 정확한 사정은 다음에 살펴보기로 했다.
다른 하나는 빈 사무실 하나를 미군이 빌려 쓰겠다고 한 일이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지역책임자와 미군이 만나는 장소로
그 사무실을 쓰겠다는 뜻인 것 같았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기 위해
기다리는 줄이 2-3킬로미터에서 몇십 미터로 줄어든 것, 노동청(ministry of work)에서 학교, 헬스센터, 고아원, 장애인시설 따위를
관리하고 필요 물품을 나눠주겠다며 창구단일화를 요구한 것(알마시뗄에 미군이 들어온 것과 알누르에 미군이 접촉해온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이 며칠 사이에 갑자기 일어난 변화들이다. 우리는 이런
변화를 좀더 폭넓게 살펴야겠다고 생각한다.
오후엔 ‘국경없는 통신회사’에 들렀다. 프랑스 엔지오인데 주로 분쟁지역에서 활동하는 엔지오들을 위해 전화, 인터넷 같은 통신환경을
제공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모양이다. 두시부터 일곱시까지 일하다 얼마 전부터 열한시부터 여섯시까지 문여는 시간을 늘렸다. 우리는 한국에 소식을 보내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거의 문닫을 때쯤 가서
이미 시간이 지나 있었고 마음이 급하니 될 일도 안됐다. 아무튼 ‘국경없는 통신’은 소리나지 않게 정말 필요한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내일 다시 가서 밀린 소식들을 보내야지.
국경없는 통신에서 나와 정토회 이상환씨가 머무는 수하드 아줌마의
사무실에 가서 약품을 싣고 알마시뗄에 갔다. 그런데 일하는 사람들은 이미 퇴근하고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라데’ 거리에서 ‘차이’(차)를 마시고 ‘나르길라’(물담배)를 피웠다. 차이는 홍차와 비슷한데 설탕을 아예 들이붓다시피 해서 마신다. 조그만 유리컵에 접시를 받치고 넘치도록 따라준다. 숟가락을 컵에 꽂아 두었지만 젓지 않고 그냥 마셔도 무지 달다. 나르길라는 달콤한 향이 나는
담배다. 연기가 나니까 담배라고 하는데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도
나르길라는 좋아한다. 여기 사람들은 여러가지 냄새를 느끼는 모양이지만 무엇이 사과향인지 꽃냄새인지 우리는 잘 모르겠다. 우리 옆에는 이라키 청년들이 왁자하게 모여 앉았다. 우리를 보고 “쏘라, 쏘라”하며 사진찍는 흉내를 낸다. 우리는 디지털로 몇 장을 찍어 보여 주었다. 재미있어한다.
가라데는 아주 활기찬 거리였다. 이 청년들을 보고서는 두달 전에 전쟁을 겪은 나라 사람들이라 느끼기 어려웠다. 바그다드에 온 지 사흘째, 우리가 본 것은 아주 작은 것들에 지나지 않겠지만 낯선 우리가
느끼기에도 이 곳 사람들은 빠르게 삶의 자리를 되찾아가고, 다져가고 있다.
[민중지원 동영상] 10일간의 이라크 의료봉사기
딸깍하세요 [KBS]Thanks For Korea-10일간의 이라크 의료봉사기, 현장르포 제3지대, 2003.6.10
-반전동영상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반전평화팀의 활동기록은 아니지만 이라크를 돕고 있는 마음 따뜻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배경음악-호랑장군
●이라크 재건과 구호활동을 위한 '박기범 이라크 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