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68산우회 회원 및 동기 여러분,
이번 주 초, 28일과 29일 일요일 월요일에 월악산 국립공원 내 덕주야영장에서 비박을 결행했습니다.
결과부터 보고 드리면 추억에 남을 좋은 산행, 아니 비박이었습니다.
장소는 재작년 월악산 영봉 등반 때 잤던 덕주 야영장.
이번에도 사람 거의 없어서 우리기리 오붓한 분위기를 만끽했습니다.
참가자는 임상우, 이종범, 이경영군 및 이경영군 사모님 등 이렇게 4명이었습니다.
이경영군 사모님은 야영장 분위기를 한껏 띄우고, 평소 맛보기 힘든 고품질 바베큐를 서브해 주시고 한 12시 경 집에 가셨구요.
이번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는 북바위산 등반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비가 새벽부터 내리는 통에 마음을 비우고 등반을 포기했지요.
이젠 철이 들어서 무모한 짓을 안하게 되는군요.
혹시 지난 밤의 과음때문이 아니냐고 색안경 쓰고 보시는 분들께 절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분위기에 취해서 어찌 과음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그날도 시시각각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워 하며서도 결국 1시 15분까지 있었습니다.
우선 사진 몇 장 보시지요.
그날 저와 임상우군은 일요일 바쁜 일정을 급히 마치고 급히 성수동에서 출발한 시각이 오후 3시,
먼저 숲이 좋은 닷돈재 야영장에 도착하니 폐쇄되어 있더군요.
다행히 덕주 야영장은 열려있었습니다.
천천히 짐을 풀고 숙박지점을 물색하다가 좋은 위치를 찾았습니다.
저야 그냥 무심코 지나쳤는데 역시 역사학자인 임상우군은 틀리더군요.
야영장 한 가운데에 떡하니 놓여 있는 약 3-40톤 가량의 넓적한 바위를 보고 고인돌이라는 겁니다.
저는 에이 설마 하다가 자세히 살펴 보니 그 추측이 맞는 것 같습디다.
우선 윗면이 거의 정확한 수평이며 평평하게 다듬어진 흔적이 약간 남아 있습니다.
받침돌은 오랜 세월에 흙에 묻혀서 보이지 않지만 자연적으로 산에서 굴러 내려서 이렇게 자리잡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우리는 그 고인돌을 식탁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이경영군은 그 날 오래 전에 예약된 부부동반 골프일정이 있어서 열심히 오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우리 둘은 우선 찌게를 끓이고 소주 한 잔 아껴 주고 받으면서 기다리고 있었지요.
< 임상우군의 기분 좋은 첫 잔 >
이번 비박에 신병기 두 종류가 선을 보였습니다.
하나는 위 사진에 보는 임상우군의 배낭, 배낭에 의자가 붙어 있는 것입니다,
아무데서나 배낭 내려놓고 붙어 있는 의자를 펴면 편안하게 앉을 수가 있습니다.
그 배낭은 커 보이지 않지만 헐렁행서 무척 많이 들어갑니다.
마치 1910년대 1차 세계대전 병사들의 전투용 군용배낭 같은 인상입니다.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되었지만 '가다'(프레임 정도로 해석?)가 있어 보기보다 많이 안들어가는 요즘 배낭과는 전혀 다른 컨셉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경영군이 가져온 캠프파이어 용 깔판입니다.
불연성 재질- 제 생각에 글라스파이버로 생각됩니다만,- 로 짠 천이라서 불똥이 튀어도 주위에 불이 옮겨 붙지 않습니다,
< 분위기 더하는 이종범의 소주 한 잔 >
위 사진에서 보듯이 넓적한 고인돌이 디너테이블로서는 딱입니다.
야영장 한 가운데 놓여 있고 주변에 작은 바위들이 몇 개 있더군요.
밑을 파보면 고대 한국인 원형의 인골이나 여러 가지 유물들이 나오겠지요.
8시 경 이경영군 내외가 도착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이경영군이 모 S그릅에서 선물 받았다는 최고급 쇠고기, 기막힌 마블링과 부드러운 육질입니다.
< 이경영군의 신병기, 불판 밑에 불똥튀기 방지용 깔판 >
이군 사모님이 인터넷에서 열심히 찾아냈다는데 캠프파이어 하면서 조바심 낼 필요가 없어졌다고 좋아하십니다.
참 섬세합니다.
< 좌로부터 이경영, 이종범, 임상우군 >
< 자리 바꿔서, 왼쪽이 이경영군 사모님 >
위의 캠프파이어용 장작은 유종욱군이 후원한 것입니다.
지난 번 굴업도 비박 시, 유군이 약 12 킬로 정도의 장작을 곱게 다듬어서 낑낑대며 지고 갔는데, 밤새도록 태우고 남은 3.5 킬로의 장작을 이번에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감사!
12시 경까지 캠프파이어를 하다가 옆 계곡물가인 송계 8경 자연대(自然臺)로 옮겼습니다,
달도 숨은 깜깜한 밤이었습니다.
평평한 물가 바위에 앉고, 누워서 청아한 계곡 물소리와 함께 이경영군이 가져온 21년 정통 싱글 몰트 스카치 글렌피딕 한 컵을 기울이니 이게 인생의 즐거움이 아니겠나 싶더이다.
그 날 연무가 끼어서 별을 볼 수 없어서 아쉽기는 했지요.
알딸딸한 채 계곡물가 바위 위에 누워서 바라 보는 밤하늘이 길쭉하게 보입니다.
계곡 양 옆의 능선 스카이라인 상의 나무 한 그루 한 그루 윤곽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12시 전에 자기로 한 계획은 이미 물건너갔고, 아쉬운 시간이지만 끝내고 자리에 든 시각이 1시 15분.
운전해서 집에 가야 하는 이군 사모님을 뺀 우리 셋이서 소주 5병 그리고 양주 700 cc인가 1000cc 짜리 인가를 다 해치웠으니 꽤나 마신 거지요.편안한 마음으로 각자 자리에 누웠습니다.
숲속에서 올려다 보이는 밤하늘의 구름 배경과 소나무 가지가 서로 어울려 그로테스크한 구도를 자아냅니다.
무의식과 의식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수면의 와중에도 청정한 공기가 얼굴에 와 닿습니다.
차갑고도 신선한 숲 속의 공기가 가슴 속과 의식 속을 비웠다 채웠다 하니 당근 심신 건강에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참 잘왔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밤새 크리스탈 처럼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쾌적하게 자다가 얼굴에 떨어지는 빗방울에 깨어 보니 오전 6시,
신겨우 4시간 남짓 잤을 뿐인데도 신기하게 머리 속은 낭랑하게 맑습니다.
숙취? 이건 어느 나라 말인가 전혀 생소한 말이었지요.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들 같았다고 합니다.
아마 제가 평소에 강조하는 비박 시의 '오픈 대기 시스템'에 노출된 우리의 심폐기능이 의학적으로도 풀기 어려운 신기한 작용에 의해 숙취 노폐물을 싹 정화한 탓일 겁니다.
비비색을 덮었습니다.
비비색 위로 떨어지는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정겹습니다.
비는 그칠 생각이 없이 빗방울이 점점 굵어집니다.
이대로 누어 있으니 좋긴 한데 일어나서 비맞아 가며 짐 정리할 생각이 끔찍합니다.
비가 꽤 세게 내리니 공기 통하라고 약간 열어둔 구멍으로 흙탕물이 튀어 들어오기도 합니다.
8시 반 경이 되었고 비가 잦아들었습니다.
다들 누워 있다가 소리 질러가면서 야영장 개수대로 짐을 옮기자는 말이 나왔습니다.
개수대에서 아침 해서 먹고 테이블을 작업대 삼아 집에서도 못했던 비박장비류 잘 닦고 정리했지요.
시간에 쫓겨 급할 일 없으니 느긋합니다.
여유 있게 짐 정리한 후 사우나나 하고 맛있는 식당에서 점심 먹고 일찍 서울로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 야영장 개수대에서의 비박 장비 정리, 이런 작업 집에서도 하기 힘듭니다. >
그 날 두 시경 출발해서 서울에 오니 다섯 시 조금 못 되었더군요.
화려하지는 않지만 기억에 남는 비박이었습니다,
이런 좋은 추억거리를 더 많은 68산우회 동지들과 같이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오랜 만에 자세히 산행후기 작성해 보았습니다.
이번 비박은 아주 '모범적'으로 실행되어서 공개하는 데 부담이 없군요. ^^
이종범 올림
첫댓글 아주 오랜만에 종범(나하고 이름이 같아 좀 머쓱하기는 하다..)이의 시원한 글 잘 읽었다!
글 좀 자주 올려라!
그러고 보니 나도 퍼스트 네임을 Jong으로 쓰고 미들 네임을 B 이니셜만 쓰는데. . . 나도 앞으로 자주 올릴테니 자네도 자주 오려 주게나.
이번에는 같이 가지 못해서 아쉽네. 다음번에 이원장 서울 컴백기념으로 한번 가보세.
경영이 수신호 모습이 다양하네. ㅎ
그러고 보니 경영이 수신호가 특이하네, 무슨 깊은 뜻이 들어 있는 암호 같은데? 근데 그 밑은 경영이 쌰모님 사진이네. 역시 수신호가 의미가 있어. 예를 들어 그날 밤, 아니 다음날 밤 부부끼리 모종의 대사를 암시한다든지 . . . 등 등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