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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후 한남자가 올라오더니 나를 보는지 달려있는 거울을 보는지 하다가 꺄우뚱거리다가 내려갔다.
잠시후 돌아와 그는 나에게 이름앞에 넘버가......하며 계속 서있어, 자리를 비켜달라는 것 같아 자리를 넘겨주고 뒷자리로 갔다.
잠시후 한번더 이런일이 도 생겼다. 치사한 기분도 들지만 이상해서 한국인처럼 명랑한 분
위기의 즐거운 두여자에게 물어보니 자리가 정해져 있다는것, 그리고 내번호를 알아주러
가겠다는 친절을 베풀려해서 사양하고 제일 뒷자리로갔다.
내이름은 제일 끝으로, 번호가 없었으니까.
그들은 묻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이름앞에 있는 좌석번호로 가서 앉는다는 것이
상식화 되어 있었다.
버스는 53인쯤의 좌석으로 뒤쪽에는 작은 문이 달려있다.
나이좀 지긋한 아줌마가 나의 반대편 끝에 창밖을
보고 앉더니 돌아 올때까지 창밖만을 보고 말한마디 안했다.
그 아줌마와 나 사이에는 여러사람들이 앉고, 또 가고는 하곤 했다.
「후지산 클리닝 투어」란 후지산을 청소하는 환경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이 다양하지만 내가 참여한곳은 마이니찌신문사가 비영리단체 "후지산클럽"과 손을 잡고 하는곳이다.
마이니찌신문에서 광고만을 띄워주는가 했더니 직접적으로 인원을 모집,그곳까지 가
서 한버스에 한사람씩의 후지산클럽의 인솔자가 버스에 동행, 끝가지 잠시도 쉬지앟고 설명하며 진행한다.
후지산클럽 인솔자는 후지산클럽의 팜플렛을 버스안에서
나눠 주었다. 그들의 활동사항 소개와 개인과 단체의 가입시 회비가 명시되어 있고,
회원가입을 권유하며 클럽회원이 되는 경우의 특전이 써있다.
후지산클럽의 간부진은 대학교수, 마이니찌신문의 간부등고급인력으로 구성돼 있었다.
아침 8시 조금 넘어 출발하고 내차의 마이니찌신문여행의
가이드는 요코야마군 그리고 2호차다.
그는 타면서부터 설명을 시작했다. 요즈음의 우리식처럼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소개와 인사를 하는 반면에 처음 참가하는 사람들만 한치의
빈틈없이 정확하게 확인하고, 아마도 청소등반에 관한 이야기만 하면서 갔다. 후지산길을
한참을 따라가며 간간히 나타나며 피어있는 뜻밖의 여러 무더기의 무궁화군에 나는 생각에 잠겼고, 앞의세청년들은 번갈아 나의 옆자리에
앉아 좌석을 편하게 갔고, 조금 애기를 하거나 계속 책을보거나 신문을 보며 갔다.
잠시 쉬는 곳에서 요코야마는 내게 미네랄워터가 나오는 곳이라고 일러주었다.
그곳은 약수물이 나오고 있었고, 한아줌마가 많은 큰펫트병을 가지고와 물을 받고 있었다.
줄서서 기다리던 남자는 급기야 경직된 얼굴로 참지못해 버스가 기다리고 있어 먼저 먹겠다
고 하고나서야 비켜주었다.
나도 작은 펫트병에 물을 담았는데 가득 채우려고하니까 이번에
는 그아줌마가 열을 받으려고해서 8부정도만 채웠다. 그옆에는 조그만 후지산 검은 화석위
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가 서너그루 있는곳, 또 상점들에는 각종 먹거리 야채와 굉장히 긴
석류들을 팔고 있었다.
상점안은 버스안 분위기와는 달리 살아 북적이고 있다.
요코야마군은 오늘 동원된 버스가 다섯대이고 자기가 담당한 버스가 2호차이고,
koho아이디의 진짜 본인이라며 소개해주었다 그는 중키에 마르고 세련된 외모의 청년이었다.
요코야마는 한국어를 못하지만 한국의 많은곳을 다녀간 사람이었다.
버스가 다섯대나 동원된것에 그도, 나도 감탄했다. 원래 예정은 2대였다.
차안에서는 각자가 사온 여러 가지의 음료수를 계속 마시며 갔다.
정말로 이제는 일본에서는 경제력이 없으면 물 한모금도 마시기 어려워진 것 같아 공짜가 많은 한국이 약간은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일본관광을 마치고 한국에 온 독일소녀가 물한병을 들고 내게 달려와 호텔에서 아침에 나올 때에 물2병식을 꼭 주고있다며 너무도 기뻐한 그기분이 아주 현실감있게 이해할수있었다.
[외국인자원봉사자 "엔젤"편 참조]
한참을 달리고 들풀 가득한 작은 운동장만한 곳이나타나고, 앞에는 산이 보였다.
모두들 내려서 산길쪽으로 모두들 올라갔다.
그리고「후지산클럽 모리의 학교」라 쓰인 간판과 건물이 나타났고,
그곳에는 후지산클럽의 스텝들과 탤런트 타카기미호도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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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기미호도 단상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에!" 마이크폰테스트만해도 모두들 웃으며 그녀를 맞이했다.
이것에서 일본인의 대단한 스타사랑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보통키에 가는 몸매의 미인이었다.
그녀의 대중을 웃게하는 모습에 요코야마에게 그녀가 코믹 캐릭터인가 물었다.
그러나 그런 스타일은 아니고 TV드라마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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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요코야마군이 도시락을 나르기 시작했다.
도시락은 크고 밥도 따뜻하게 잘되었고, 반찬도 맛이있고,
특히 내가 좋아하는 대하가 한 마리 튀김으로 나왔다.
내가 밥을 빨리 먹는지 한참후에야 일본사람들은 식사를 맞추었다.
식사후는 각자 먹은 도시락을 도시락을 배달온 승합차로 보이는 곳에
갖다 놓거나, 내가 갈때는 요코야마군이 버스 입구에서 빈도시락을 받아놓고 있었다.
매사가 매번 오는 사람들처럼 소리없이 척척 일이 진행되었다.
다시 버스가 출발, 후지산의 정해진 지점으로 출발하자 내옆에는 또다른 고상한 분위기의
미모의 중년여성과 남편, 그리고 앞에는 의자 옆의 보조의자를 펴고 중년의 후지산클럽 인
솔자가 앉고, 그리고 앞에서 젊은 여성 후지산인솔자가 설명을 하며 떠났다.
한참후 비닐봉투를 나눠주는데 두개씩 나눠 주었다.
하나는 잡쓰레기, 다른 것은 재활용품으로 나누는 것이다.
모두들 똑같은 노란테 두른 목장갑을들고 있어 한국처럼 나눠준 것이
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모두 준비해온것이었고,
한국것과 같은 검은색의 철제 집게도 준비해온 사람도 있었다.
나는 목장갑이 없어 후지산 남자인솔자에게 나에게도 장갑을 달라고하
자 그는 당황하며 어데선가 푸른 목장갑을 가져왔고,
청소가 끝날때에는 장갑을 반환받기위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71번(?) 지점으로 기억되는 지점에 우리는 내려서 줄줄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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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사람들은 벌써 많은 쓰레기를 주웠다.
길은 아스팔트로 포장된 너른 곳이지만 산속은 보기만 해도 음산했다.
커다란 구멍이 많은 검은 바위위에 굵고 탐스럽도록 연한 녹두색의 이끼들로 푸욱 덮여,
나무몸통 못지않게 굵게 엉켜져 하늘이 보이지 않도록 뻗어있는 커다란 나무 뿌리들은 장관이었다.
커다란 구멍은 화산활동시에 생겨난것이었다고 요코야마군은 설명한다.
나는 허리쯤 오는 옅은 갈색의 나무 둥그리가 있어짚고 내려가려했는데 이것은 마치
파운드케잌처럼 뭉그러져 버려 화산바위구멍에 들어가볼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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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곳을 도로변에 가까운곳만 더듬으며 올라갔지만 더 이상은 길이 너무
험해 사람이 들어갈수 없어 쓰레기도 없다고 판단 도로 주변만을 검색했다.
뒤에서 가는 사람들은 쓰레기를 발견하면 마치 보물이라도 찾은 듯이 먼저 수거하려했고,
나도 늦게나마 케묵은 우유유리병을 지나가고 난자리에서 찾아 보물찾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나의 쓰레기를 찾아내고 나니 그동안 내가 숲속에서 뒤뚱거리고 다녀 행여 먼곳에서 온 손님이 다치지나않을까 우려하고 내뒤를 밟던 요코야마군은 다른 쓰레기를 찾으러 가버렸다. 사람들은 온갖잡풀을 깊은 속까지 세세하게 막대기로 저어가며 섬세히 살폈다.
찾는동안 여자인솔자는 계속 설명을 하는 것을 게을리하지않고 1시간가량을 살핀후 17번
(?)푯대가 세워진 부분에 작은 쉼터가 될만한곳이 있고,
그곳에 쓰레기를 모아 좀더 확실하게 분리수거를 했다.
사람들은 쉬지도 않고 그곳주변에서 다시 뒤지기 시작,
흙속에 오래 파묻혀진 쓰레기까지 찾아냈다.
전기담요가 나오자 모두들 환성을 질렀다.
테레비가 나오고, 오래된듯한 브라운관안에서 병처럼 물이 쏟아져나오고,
요코야마군은 찌그러진 철제기둥의 교통표지판을 끌고 나타났고,
뒤이어 젊은 청년들이 찌그러진 자동차의 긴 범퍼를 두개를 질질 끌며 가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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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기미호(高木美保)의 강연회「自然에 生命을 救?私」.
그녀는 거의 한시간 못하게 기다린후에 강연장에 나왔다.
그녀가 바쁘다고 미리 언급을 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조용히 기다려주는것이
그녀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준다.
그녀는 자신을 탤런트이며 에세이스트라고 강조를하며 자신을 소개했고,
꽤 오랜시간을 강연을 하였다.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에게는 당당하게 잘못을 지적해도 된다는것과
환경에 관한 약간의 설명을 해주라는 것 같았다.
타고난 미모와 지성으로하는 온몸의 열변을 보여주고,
어린소녀가 쓴 책을 몇장 읽어주기도
하고, 이제는 "수퍼 재팬이즘(SUPER JAPANISM)"
프라이드로 나아가라고 강력히 주장하는 듯 했다.
강연이 끝나고 나오는 입구에는 후지산클럽 회원들이
모금통을 들고 가까이 다가왔고 누군가가 돈을 넣는것을 보면서 나왔다.
이프로그램의 참가비용만 6,500¥. 한국돈으로 환산하면 적은 값은 아니지만
일본안에서 후지산을 가기위한 교통비에 비하면 약간 저렴한편이다.
가는동안에는 요코야마 혼자서 계속 말을하며 갔고, 비가
내리고 있다는 말을 하자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일본인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나지막하게
들려 왔다.
다시 신쥬쿠에 도착, 예정시간보다 2시간 정도 늦지않았나 싶다.
역시 교통체증. 신쥬쿠의 시내는 온통 반듯한 빌딩, 공원부분만이 나무를볼수 있었다.
어둠이 내려가는 오후의 빌딩은 아주 단아하게 발라져 손끝이 야무진 것이 눈에 보이고 1층
은 거의 모두가 전면 유리창으로 되어있었다.
퇴근시간이라 왁자지껄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삼삼오오 퇴근하는모습도 보이고,
놀러나오는 청소년들의 모습도 보였다.
요코야마는 버스의 입구앞에 서서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나에게는 "조심하세요!,조심하세요!" 계속 그말만 했다.
이제는 호텔까지 가는길은 눈감고도 갈수 있지만,
저녁식사도 하기위해 식당을 찾기로 했다.
신쥬쿠역에서부터 호텔까지는 지하보도로 계속 갈수있다.
그래서 지하보도를 여기저기 둘러보며 식당을 보니 모두가 서서 먹고있는 식당이다.
가장 만만한 식당으로 카레집을 골랐다.
그리 사지도 않고 비싸지도 않은 카레숍C&C.
많은 사람들이 먹고 빨리빨리들 돌아가고 있다.
지하보도를 지나가는 많은 여성들이 얼굴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자세히 보니 유행하는 비슷한 헤어스타일에 눈만을 새까맣게 아이라인하고
속눈썹을 새까맣게 강조해서,
똑같은 스타일과 화장법으로 똑갛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단체성이 강한 습성탓이라고 생각해 본다.
식사후 호텔로 가는 길외에 더 지하층으로 내려가보았다.
그곳은 상가가 형성되어있어 핸드폰,등 그밖의 전자제품을 많이 팔고 있다.
내녹음기의 마이크폰이 너무 가늘어 한국에서 찾지 못해 혹시나 이곳에 있을까 보았으나 이곳도 역시 없었다.
비가 너무 많이 오기 시작해서 상가 앞에는 투명비닐우산(500¥)을 팔고 있다.
상가 아래층의 카페에는 많은 사람들이 만나 엄청난 대화를 쉴새없이 나누고 있다.
후지산버스 안에서는 별로 보지못한 전혀 다른 모습들이다.
조금더 나아가서 손잡이가 가늘어 곧 부러질 것 같은 카키색 우산(2,000¥)을 하나샀다.
그작은 우산으로 비를 피하고 호텔에 도착하니 마음이 편안해 졌다.
다음날 새벽에 또 나리따공항을 가기위해 새벽5시부터 나갔다.
비가오고 난후라 도로는 깨끗하고 한적하다.
그러나 내가 묵은 호텔옆의 작은 꼬치 술집은 밤새워 영업중이라 아직도 초저녁 같다.
한무리의 미국인들이 일본인의 안내를 받으며 술집을 들어가고,
비오고 난후의 수채화 같은 상큼함 속에서 가로등 위,
빌딩의 디딜곳이 있는 곳으로 여기저기 까마귀들이 수도 없이 날아다니며 놀고 있다.
노숙자들도 상당히 많이 보인다.
종이박스로 집을 지어 웃옷을 벗어 제끼고,
구두는 얌전히 박스 밖으로 내어놓고 목만 내놓고 앉아 있는 나이지긋한 아저씨.
종이박스를 여러개 놓고 옷장, 무슨장 등등 처럼 놓고 있는 사람들.
한국보다 아이엠에프가 일찍와서 이제는 노숙자도 없어지지지 않았을까 했는데
오히려 업그레이드 되어있는 상황이다.
경찰들이 오고있어 노숙자들을 어떻게하나 보았더니
경찰들은 점잖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숙자들에게 "오하이오 고자이마스!",
그러자 그들은 점잖게 바로 일어나 반듯이 앉았다.
지하철 티켓 판매기에 가서 확인해둔 토쿄나리타 JR라인을 찾아 토쿄나리타공항을 1,450
¥을 주고 샀다.
그러나 입구에서 토쿄나리타 JR라인은 그역에 있는 사무실에서 사야한다는 것이다.
오전7시에 여는데 한참을 기다리니 직원이 나와서 문을 열었다.
나는 자동판매기에서 산 티켓을 내밀며 나리타공항티켓을 말하자 1,660¥을 더내라고 한다. 왜 티켓이 있는데
차감액만을 받지 않는가하고 먼저 산 티켓을 보여
주었지만 그녀는 말없이 1,150¥을 내라고 했다.
이것은 입석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동전까지 정확히 1,660¥을 주며 좌석티켓을 원했다.
그런데 그녀는 1,500¥만을 받고 160¥을 돌려주었다. 안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없어 역으로 가다보니 티켓은 입석이다.
다시 돌아가 급한김에 영어로 까지 말을하고 숫자를 정확히 일어로 말하니까 약간은 당황한 빛이 잠간 지나갔지만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여직원은 동그란 눈을 말동말동 뜨고 갸우뚱거리기만한다.
옆의 남자직원에게 영어로 따지자 남직원은 티켓을 보며 아무 걱정말라고 "이티켓은
오픈티켓입니다.!" 혼자 화통하게 웃었다.
사실 급하게 말하다보니 틀린말이 한단어가 있기는 했다.
따져도 소용없고 이러다 JR마져 놓치고 비행기도 놓치면 하루 더 놀아야 할일도 그다지 반갑지 않아 기차를 타러 가기로 했다.
JR라인으로 가는 통로도 공사중인지 포장이 벗겨져있었다.
공항가는 기차터미널 앞에는 나이든 여자와 젋은 여자가 대화를 많이하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한국여인같이 보이는 여자가 "깃뿌, 깃뿌"하며 표를 묻고 있다.
나보다 더 한술 뜨는 한국여자를 발견, 나는 쫓아가 표없이 그냥 타려고 하는 그녀에게
무조건 표를 사오라고 하며 보냈다.
표를 미리 사지 않으면 태워주지 않는다고 내게 호텔의 직원이 말했기 때문이다.
기차안은 자리가 몇 개가 비어있었다. 가장 끝쪽의 한개짜리 좌석에 편히 앉아 30분쯤 달렸
다.
내가 탄 차량의 문이 열리며 조그마한 아저씨가 나타나 나에게 표를 보여달라고 한다.
입석표를 갖고있어 좌석표 값으로 500¥을 더내라는 것이다.
나는 돈을 1,500¥이나 더냈지만(약간? 흥분해서 영어, 일어 막 섞어가며) 입석표를
줬기 때문에 나는 절대로 낼수가 없고 서서 가겠다고 했다. 다음에 그는 옆에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온 부부에게(여자는 나의 옆쪽의 한개짜리 좌석에 앉아 있었고 남자는
서있었다.) 가서 좌석 티켓을 사라고 했다.
그러자 그 부인도 이러저런 설명을 하며 좌석티켓을 못사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자 그 티켓검침원은 남편에게 가족이 여행을 하므로 나의 자리를
앉아서 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말에 그 남편은 너무도 감격해 크게
인사하고 내자리에 앉아서 갔다.
물론 나는 속으로 정말 남의 집에 올것이 아니구나, 열받는 것은 사필규정이다.
내가 남자였다면
그렇게 좋아하지만은 않고 여자에게 양보를 하거나
미안해하며 나에게 양해를 구하며 앉았을 것이라 생각하며 갔다.
한시간 걸린다던 기차는 그안의 서서가는 손님에게 물어보니 1시간30분이 걸린다며 웃으며 알려준다.
함께 서가는 입장에서의 배려의 웃음이리라.
짐칸도 있어 기차의 코너는 공간이 꽤 넓어 튼튼한 트렁크에 앉아가거나 바닥에 앉거나 했다.
나는 등반준비를 하고 갔기 때문에 등산용 스치로폼 방석을 깔고 안기도하고 서서 가기도 했
다.
그리고 30분을 갔다. 정확히 30분마다 그 표검침원은 나타나는 것이었다.
서있는 나를 안보는 척 보며 가는 그는 나를 정면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안됐어하는 표정을 감추지는 못했다.
이번에 그는 앉아서가는 부부의 남편에게로 가서 손바닥 두개만한 커다란 계산기를 쪼그만
아저씨가 팍팍팍 두드리며 좌석표값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한 그 검침원의 행동은 부인은 난처하고 놀래서 지갑을 신속히 뒤져 두말없이
좌석표값을 내게 만들었다.
그 과정까지의 표검침원의 얼굴모습, 동작, 생김새, 재치는 올데갈데
없는 이홍렬코메디프로를 현장으로 보는 것 같아 나는 웃지도 어쩌지도 못하는 JR생생체험을 했다.
한마디로 좌석표를 사지 않으려면 서서가라는 말밖에.
표를 파는 측에서 그렇게 하기까지
고가의 엔화로 생활하는 일본인들도 얼마나 경제를 하며,
또한 경제발전을 위한 노력의 생활을 하였을것이라는 보이지 않는 단면이라고 생각한다.
나리타공항에 도착해서 JR티켓 2장을 내밀자 그곳의 검침원은 갸우뚱하며 받는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사람에 밀려서 여객터미널로 갔다.
첵크데스크는 지붕위에 "JAPAN AIR LINE "이라고 써있다.
입구에서부터 길게 서있는 줄에 나는 멀리 갈것없이 계속 서있었다.
나의 앞뒤는 모두 필리핀사람들로 앞의 서너살짜리 사내아이는
여행가방을 가지고 놀고있어 그것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는 여행용트렁크를
끌겠다고 하니까 그아이의 엄마는 작은 가방을 내주었다.
그러자 그아이는 화를 내며 저보다 큰트렁크를 끌겠다고 때를 써서 기어코 자기보다 커다란 가방을 끌고다녀 아이의 귀여움은모두에게 웃음보따리를 안겨 주었다.
한참을 그러고 기다리다 그곳은 필리핀에어라인이고,
나중에서야 데스크마다 재팬에어라인을 온통붙여 놓은 것을 알았다.
허겁지겁, 빨리빨리 움직여서 입구의 가장 끝쪽에서야 자리한 JAL을 찾아내었다.
그곳은 사람도 없어 수속은 빨랐다. 그러나 갑작스런
소나기에 산 가느다란 카키색 우산은 포장을 해오라는 것이었다.
포장할 시간이 없으므로 망가져도 좋으니까 그냥 부쳐달라고 하고 출국장으로 갔다.
밥먹을 시간도 없이 2박3일을 움직이다보니 선물도 하나도 못샀다.
사실은 작고 예쁘장한 선물을 많이 구입할 계획이었지만.
그러나 매장의 물건은 고엔가 덕분에 보통의 과자상자 하나도 계산해보면 거의 10만원
정도다.
일본의 과자는 거의가 아주 달거나 약간의 소금맛이 곁들인 과자들로 맛이 거의 비슷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일본에 비하면 아주 물가가 싼편이기 때문에 과자상자 하나 값이면 10명
정도가 조촐한 파티를 할수 있는 정도이다.
그래서 사탕봉지 몇 개만 사들고 왔다. 그 사탕도 너무 조촐하다고 생각했는데,
열어보니 맛보다는 그림이 아주 예뻐 나름대로 색다를수 있었다.
비행기를 타기위해 가는 길목에서 딱, 하나의 "JAL DUTY FREE SHOP"만 눈에 띈것인지, 하나뿐인지는 모르지만, 그곳에서 급하게 양주 한병만을구입했다.
그곳의 여직원은 나의 하이서울 모자를 봐서인지 한국사람이냐고 물으며 굉장히
반가워하며 계산도 직접해다주고, 친절을 베플려고 애썼다.
비행기타러가는 에어라인(셔틀)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내가 양주를 떨어트려 외국인들이 몹시 놀라고 깨지지도 않았다.
그때를 상기 시켜 서울의 길거리에서 시멘트 모서리에 떨구어 봤지만 역시 깨지지 않았다.
검색대에서는 일본도 역시 신발도 벗기도하고 줄도 늘어섰지만,
나에게는 그들의 옆줄로 신발도 벗지 않고, 내가 급하게 산 사탕봉지를 들고 있어
그것이 무엇이냐며 그것만을 오히려 신경을 쓰고 쉽게 통과했다.
역시 I.I.M.의 좋은 인상은 국제적이 아닌가 싶다.
돌아오는 JAL의 도시락 역시 올때의 도시락과 똑같은 메뉴고,
올때는 오후라 도시락이 따뜻했고, 갈때는 이른 아침이라 도시락은 냉장이었다.
조그만병의 JAL마크가 붙은 포도주는
적과 백의 두가지. 올때는 적포도주, 갈때는 백포도주를 마셨는데 백포도주가 덜 쓴 것 같다. 여스튜어데스들도 점심후에는 얼굴이 상기되어 있는것으로 보아 포도주들을 마신것 같았다.
오래간만에 비행기를 타니, 내가 그동안 살이 많이 찌기도했지만, 이 이코노미석이 너무 좁아 불만이 많았다.
나의 생각을 알고 있는 듯이,
돌아가는 비행기의 좌석은 제일 앞좌석으로 다리를 뻗을수 있을 정도.
그리고 나갈때는 이등석을 통해서 나갔다.
비행기의 출입구는 모두 좌석급수 별로 따로 들어갔었다.
이등칸은 다리를 뻗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기분에는 달리기도 할수 있을 정도였다.
예전에도 비행기를 여러번 텄지만 이등석으로 나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짐을 찾기위해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일본신쥬쿠역에서 티켓을 사가지고 오라고 떠밀어 보낸 아줌마가 옆에 서있었다.
그녀도 나와 같은 비행기편으로 온 것이다.
한편으로 무척 반갑기도 하며, 또 한편은 JR익스프레스는 한시간후에
왔을텐데 생각해보니 약간 미안했다.
짐은 그녀의 것이 먼저 나왔고, 지방으로 내려가야하는 그녀는 먼저 떠났다.
가방을 한참후에야 찾고, 조금후에 JAL직원으로 보이는 한국남자들이 내 우산을 들고 있었다.
비행기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내렸지만 내짐이 늦은탓인지 공항은 붐비지 않아 곧바로 서교
호텔행 리무진으로 40분후 나의 동네에 도착, 2004년후지산청소여행의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