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원면(濟原面) 길곡리(吉谷里)
제원면의 북쪽 중앙에 위치해서 동쪽으로는 신안리와, 서쪽으로는 동곡리와 접하며, 남쪽으로는 대산리와, 그리고 북쪽으로는 군북면 산안리와 경계를 나누는 지역에 길곡리는 자리한다.
군북면과 접한 지역에는 살 높이 667m의 국사봉이 준엄하게 서있으며, 남쪽으로도 대산리와 접하는 지역에 산높이 502m의 천앙봉이 땅을 괴고 있는 듯 우뚝 서서 온통 산봉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으나 그래도 그 사이사이로 물이 흐르는 냇물이 있고 사람의 인적이 들리는 길이 있는 것을 볼 때에 사람의 목숨도 자연만큼 끈질긴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지역이다.
첩첩산중에 사람이 산다는 것을 엄두도 못냈을 옛날을 생각해 볼 때에 현대에는 어디든 먹을 것을 채울 수 있다면 사람의 발길은 언제나 들어서기 마련이라는 한 경제학자의 말이 지당하게끔 생각하게 하는 산골이 길곡리다.
인류의 정착은 고려시대 전후로 본다. 백제 때는 진내군의 지역이었으며 신라 때는 진례군에 속했으며, 고려때에도 그리 속해 전해오다가 제25대 충렬왕 31년(1305)에 승격한 금주에 속했으며 조선시대 초기 태종 13년(1413)부터는 금산군에 속했었다.
산간벽지인 길곡리의 취락과정은 문헌의 빈약으로 확인할 길이 없으나 부락의 형성은 조선시대 광해군조 이후가 아닌가 한다. 사화 및 정변의 잦은 발생에 따라 한 씨족의 피난과 함께 이 지역이 개간되고 부락이 형성되었다는 구전과 길곡이란 지명은 상당한 고통이 따랐던 역사를 말해주는 것 같은 인상이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금산군 동일면의 지역으로서 긴 골짜기가 되므로 질곡, 길곡, 또는 질곡, 길곡이라고 부르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티후리와 신촌리 일부를 병합하여 길곡리라 하고 전라북도 금산군 제원면에 편입 금산군 제원면 길곡리가 되었다. 리의 면적은 7.33㎢이며 1964년 10월 2일에 설립된 길안초등학교가 있다.
자연부락(自然部落)
<길곡, 새터, 재뒤>
길곡
새터 서북쪽에 잇는 마을을 길곡 또는 질곡, 질골, 길골이라고 부른다. 마을 뒤에는 돌배나무밭이 있는 골짜기인 길나무밭이 있는 골짜기인 길나무밭이라고 부르는 골짜기가 있으며, 북쪽에는 또한 횟목골이라고 부르는 골짝기가 있는 마을이다. 마을 뒤로 국사봉이 있다. 마을 앞으로는 길곡리의 유일한 도로가 신안사까지 이어져 있으며 북쪽에서 흘러오는 냇물이 마을 부근을 적시고 남쪽으로 흘러간다. 마을 앞으로 펼쳐지는 분지의 들을 안고있는 마을이다. 긴 골짜기에 마을이 있으므로 길곡, 질곡, 길골, 질골이라고 부르는 마을이다. 경주최씨(慶州崔氏)가 많이 세거한다.
새터
길곡 동남쪽에 있는 마을을 새터라고 부른다. 마을 서쪽에는 탕건처럼 생긴 탕건바위가 있다. 마을이 새로 생겼으므로 새터라고 부른다.
재뒤
길곡 남쪽으로 골짝기에 있는 마을을 재뒤라고 부른다. 남쪽 동곡리로 넘어가는 재뒤재가 있는 마을이다. 천앙봉 북쪽으로 재뒤재 아래에 마을이 있으므로 재뒤 또는 티후(峙後)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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