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문화류씨 - 뿌리 깊은 버드나무
 
 
 
카페 게시글
류-차 문제 연안차씨와 정도전
류병수 추천 0 조회 925 12.09.04 21:10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4.05.28 13:55

    첫댓글 저는 이 글 중심 인물의 후손 중 한사람입니다. 저희 선조님과 연안차씨에 관한 님의 논고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16세기 말엽 차천로에 의해 조작 파생된 것이 조선후기로 오면서 단양의 전설로까지 와전된 사실을 볼때, 곡필의 해악이 어떤것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 제ㅣ항 정도전의 혼인관계표에서 봉화정씨란에 鄭云敬의 妻父를 禹延으로 표시하셨습니다. 이는 봉화정씨족보 기록이 아니라 태조실록 정도전졸기 기록으로써 위 표에서는 혼동하여 바꾸어 놓았습니다. 따라서 봉화정씨 족보기록과 같이 봉화정씨 항목에는 榮川禹氏 禹淵으로, 조설왕조실록 항에는 禹延으로 사실대로 정정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13.02.27 17:51

    그리고 조설왕조실록 란의 내용은 님의 주관이 개입된 듯합니다. 태조실록은 [현보의 족인 김전이 자기의 종 수이의 처를 간통하여 취하고 그 딸을 禹延에게 출가시켰다. 우연의 딸은 공생 정운경에게 시집가서 아들을 낳으니 정도전이다.] 라고 분명히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禹延의 본관을 단양이라고 명시하지 않았고, 우탁 또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사실대로 인용하여 주시고, 그 아래 내용은 인용이 아니오라 님의 부연설명으로써 적절한 표기가 아니라고 사료됩니다. 실록 역시 허구이지만 사실관계에 오해 소지가 있으므로 삭제하시거나, 원문을 사실대로 인용하여 주시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꾸뻑

  • 14.06.04 07:43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면 위표 연안차씨족보란에 [우연의 서녀=정운경(*정도전의 외가]라는 표기는 연안차씨족보 상에 없는 기록이고, [정도전 사상의 연구]에서 한영우가 고려말 당시의 혼인 풍속을 반영 우연을 동일인으로 간주 그의 처 중 차공윤의 딸을 본처로, 수이의 딸을 첩으로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에 불과하고 사실관계가 검증되지 않은 각색일 따름입니다. 연안차씨 족보에 차공윤의 사위 木川人 禹淵이 첩을 가졌다는 기록이 없고, 단양우씨 족보에 禹延은 존재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인용은 있는 사실대로 해야 할 것이며, 중요한 것은 정운경 행장(1369)에 나타난 정운경의 처 [榮川禹氏 禹淵之女]기록을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 13.10.09 03:49

    따라서 태조실록은 정도전을 의도적으로 천출로 묘사하였고, 글 솜씨가 뛰어난 차천로가 이를 토대로 가문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차원부설원기]로 위작하여 정도전, 하륜, 조영규, 함부림을 그들의 사얼로 조작하였고, 이후 [차원부설원기]는 점차 식자층으로 확산 유포되었습니다. 18세기 영조, 정조 대에 이르러 [차문절공유사]로 시호를 받은 것처럼 위장하였고, 이때 정도전을 혐오하던 송시열과 일부 가문의 후예들이 가세 야담으로 윤색하여 단양의 전설로 변질시켰다고 판단됩니다. 차천로 한사람의 사악한 진실 왜곡이 이와 같은 해악으로 번짐을 볼때 경악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 논고를 위해 애쓰신 님의 노고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 13.03.02 18:33

    1. 댓글을 이제서야 보고 지적한 내용은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2. 수정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번째 댓글부분은 본인의 착오이므로 이를 수정하였고 나머지 부분은 다시 검토하여 수정 반영할 예정이고 그리고 연안차씨 족보상의 기록에는 차공윤의 딸이 단양우씨 우연(禹淵)과 혼인했다는 기록이 있고 또한 단양우씨 우연은 첩이 하나 있었는데 여기서 태어난 딸이 정운경과 혼인했다는 기록은 존재합니다. 저는 가끔씩 수백년동안 연안차씨 족보상의 고려시대,조선시대 초기의 가계도 및 혼인관계에 대하여 한번도 검증되지 않은채 진실이 아닌 것이 다른 가문에 족보에도 똑같이 기록되고 인용되었는지 안타까운 뿐입니다.

  • 14.05.28 14:04

    차천로는 봉화정씨 척족
    * 자료 봉화정씨족보 권2 , 515쪽에 정원준의 사위 錦川正. 그의 사위 차천로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금천정(錦川正)이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조선왕실 종친에게 부여하는 호칭입니다. 다시말하면 적통 왕자에게는 대군, 종실 왕자에게는 군이라 호칭하는데, 군의 자식에게 어미의 출처에 따른 지명 뒤에 副正 혹은 正 붙이는 봉호입니다. 따라서 錦川正은 성종대왕 숙의홍씨의 아들 제9 왕자 景明君 자손들로 그 둘째 아들 安南君 李壽鍊의 장자 李俌의 봉호입니다. 그리고 그 왼쪽에 아들과 사위를 기록하였는데, 昌平守, 昌林守, 昌漢守 역시 종실들의 봉호인 것입니다.

  • 14.05.28 14:07

    즉, 昌平副守 李世禮, 昌林副守 李世智, 昌漢副守 李世溫, 사위 차천로인데, 종실들은 이름을 피하여 봉호만 기록하였기때문 입니다. 따라서 차천로는 봉화정씨 11세 鄭元浩의 사위 錦川正 李俌의 딸을 취하였으므로, 봉화정씨 11세 鄭元浩의 외손녀 사위인 것입니다.
    * 또한 조선왕조실 족보 선원록 제39권은 적첩취처에 대하여 아주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위계질서를 정확히 기록하는데 목적을 둔것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錦川正 李俌가 부인을 여럿 거느렸고, 정원준의 딸은 이보의 첩이라는 사실입니다.

  • 14.06.04 07:46

    여기서 鄭元浩의 딸은 3남1녀를 낳았는데, 1남은 昌平副守 李世禮, 2남은 昌林副守 李世智, 3남은 昌漢副守 李世溫, 그리고 딸은 車天輅에게 출가하였습니다.
    차천로는 한 때 출중한 문장가로 소문이 있었지만, 광패한 성격으로 빛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주지하는 바와같이 출세를 목적으로 본처를 버리고 왕가의 종실녀인 이보의 첩녀 李應福취하고, 본처를 버려 부부윤리를 저버린 패륜아로 지탄 받은 사실이 선조실록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칼 하게도 우리 문증은 그의 처 외가임에도 불구하고 삼봉선조와 문중에 먹칠을 하고, 지금도 처외가 앞산에 묻혀 처 증조부와 마주보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