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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世界各異
刹種不思議라 世界無邊際하니
種種妙嚴好가 皆由大仙力이로다
세계종이 부사의라
세계도 끝이 없으니
갖가지 묘한 장엄
모든 큰 신선의 힘 때문일세
*
세계각이(世界各異) : 세계가 각각 다름을 밝히다
*
찰종부사의(刹種不思議)라 : 세계종이 불가사의라
세계무변제(世界無邊際)하니: 세계가 가히 없으니
종종묘엄호(種種妙嚴好)가 : 가지가지로 아름답게 장엄한 것이
개유대선력(皆由大仙力)이로다 : 다 대선력을 말미암은 것이다. 대선(大仙)은 큰 신선이라는 뜻으로, 부처님을 그렇게 말한다. 부처님 하니까 또 좀 거리가 떨어지는데 이것을 우리 마음의 힘[心力] 지혜의 힘[慧力]이라고 해석하면 좀 가까이 오게 된다. 대선력이 결국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의 힘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1) 譬喩
一切刹種中에 世界不思議라
或成或有壞며 或有已壞滅이로다
譬如林中葉이 有生亦有落인달하야
如是刹種中에 世界有成壞로다
譬如依樹林하야 種種果差別인달하야
如是依刹種하야 種種衆生住로다
譬如種子別에 生果各殊異인달하야
業力差別故로 衆生刹不同이로다
譬如心王寶가 隨心見衆色인달하야
衆生心淨故로 得見淸淨刹이로다
譬如大龍王이 興雲徧虛空인달하야
如是佛願力으로 出生諸國土로다
如幻師呪術로 能現種種事인달하야
衆生業力故로 國土不思議로다
譬如衆繢像이 畵師之所作인달하야
如是一切刹이 心畵師所成이로다
衆生身各異가 隨心分別起니
如是刹種種이 莫不皆由業이로다
譬如見導師의 種種色差別인달하야
隨衆生心行하야 見諸刹亦然이로다
一切諸刹際에 周布蓮華網하니
種種相不同이나 莊嚴悉淸淨이로다
온갖 세계종 가운데
세계가 부사의함이라
혹은 이루어지며 혹은 무너지며
혹은 이미 무너지고 없도다
마치 숲 속의 나뭇잎이
돋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함과 같네
이러한 세계종 가운데
세계가 이뤄지고 무너짐이 있도다
마치 수림(樹林)을 의지해서
갖가지 열매가 있듯이
이와 같이 세계종을 의지해서
갖가지 중생들이 머물도다
마치 종자가 다르므로
열리는 열매도 각각 다르듯이
업력(業力)이 차별한 까닭에
중생들의 세계도 같지 않네
마치 심왕(心王)의 보배가
마음을 따라 여러 가지 빛을 보듯
중생의 마음이 깨끗한 까닭에
청정한 세계를 볼 수 있도다
마치 큰 용왕이
구름을 일으켜 허공에 두루하듯
이러한 부처님의 원력으로
모든 국토를 출생 하도다
마치 환술(幻術)하는 이가 주술로써
능히 갖가지 일을 나타내듯이
중생들의 업력 때문에
국토도 부사의 하도다
마치 여러 가지 그림을
화가가 그려내듯이
이와 같이 온갖 세계를
마음의 화가가 그려내었네
중생들의 몸이 각각 다른 것은
마음의 분별을 따라서 일어난 것
이처럼 세계가 갖가지인 것도
모두 다 업력 때문일세
마치 도사의
갖가지 색이 차별함을 보듯이
중생의 마음과 행을 따라서
모든 세계의 봄도 또한 그러해
모든 세계의 변제(邊際)에
연꽃그물을 두루 펼쳤으니
갖가지 모양이 같지 않으나
장엄은 모두 청정하네
*
비유(譬喩)로써 나타내다
*
일체찰종중(一切刹種中)에 : 일체 세계종중에. 세계가 아니라 세계종이라고 한 것은 아무리 한 세계만을 이야기해도 그 세계에는 무한한 경계가 펼쳐져 있어서 종(種)이 되기 때문이다. 화장세계 그림에도 하나하나가 전부 세계종으로 되어 있었다.
우리가 사는 지구도 하나의 세계종이라고 할 수 있고, 태양계 역시 세계종이라고 해도 가능하며, 은하계를 세계종이라고 해도 역시 가능하다. 우리 육신 하나만해도 그 세계에 무한한 경계가 펼쳐져 있다. 그런데
세계부사의(世界不思議)라: 그 세계는 불가사의 해서
혹성혹유괴(或成或有壞)며 : 혹은 생기기도 하고 혹은 무너지기도 한다. 우리 육신에도 내 몸속에 60조나 세포가 지금 끊임없이 생기는 것도 있고, 중간에 잠깐 머무는 것도 있으며, 지금 무너지는 것도 있고, 없어져 버리는 것도 있다.
우리나라도 그렇다. 좀 더 확대해서 전세계 인구가 70억이라고 해도 지금 태어나는 사람, 지금 이 순간에 죽는 사람이 한사람이 아니다. 또 1초 후에 태어나는 사람, 2초 후에 태어나는 사람, 1분 후에 태어나는 사람, 10분 후에 태어나는 사람, 1초 후에 죽는 사람, 1분 후에 죽는 사람, 10분 후에 죽는 사람, 하루 뒤에 죽는 사람 등이 무수히 다르다. 그 역사가 전부 그렇게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혹은 성립하기도 하고 혹은 무너지기도 한다. 사람으로 봐도 그렇고, 세계로 봐도 그렇고, 무엇으로 봐도 역시 같은 원리다.
혹유이괴멸(或有已壞滅)이로다 : 혹 어떤 데는 이미 소멸해 없어지더라.
*
비여림중엽(譬如林中葉)이: 그것을 비유하면 숲 속에 있는 나뭇잎이
유생역유락(有生亦有落)인달하야: 생기는 것도 있고, 또한 그 순간에 떨어지는 것도 있다.
인도 같은 남방의 더운 지방 나뭇잎들은 우리나라처럼 가을이 되어서 한꺼번에 단풍들고 낙엽지는 것이 아니다. 잎은 끊임없이 생기고 끊임없이 떨어진다. 생기는 것도 있고 또한 그 순간에 떨어지는 것도 있다. 사람도 그렇고 세계도 그렇다. 이런 원리를 여기에 명확하게 잘 표현해 놓았다.
여시찰종중(如是刹種中)에 : 이와 같은 찰종 가운데
세계유성괴(世界有成壞)로다: 세계가 성립되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함이로다. 성괴에 대한 이야기다.
*
비여의수림(譬如依樹林)하야:또 비유하자면 나무 숲을 의지해서
종종과차별(種種果差別)인달하야: 가지가지 과일이 차별하듯이. 인도 같은 더운 지방에는 온갖 나무가 있고 나무마다 온갖 과일이 있는데 그 과일이 각각 차별하다.
여시의찰종(如是依刹種)하야 : 이와 같이 찰종을 의지해서
종종중생주(種種衆生住)로다: 가지가지 중생이 거기에 머물고 있더라. 인종만해도 황인종이 있고 더운 지방에는 검은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또 다른 데는 흰 얼굴을 가진 사람 들이 있다. 가지가지 중생이 세계종을 의지해서 머문다. 이런 한 구절만이라도 가만히 사유해 보면 이 세상 이치와 너무나 잘 맞는다.
*
비여종자별(譬如種子別)에 : 또 비유하자면 예를 들어서 곡식 종자가 여러 가지로 다르다. 또한
생과각수이(生果各殊異)인달하야: 종자 따라서 과일을 내는 것이 각각 다르듯이
업력차별고(業力差別故)로 :업력이 차별한 까닭에
중생찰부동(衆生刹不同)이로다: 중생의 세계가 또한 같지 않더라.
예를 들어서 똑같이 부산에 살아도 느끼는 것은 각자 다르다. 업력 따라서 다른 것이다. 중생찰부동(衆生刹不同)이다. 자기 느끼는 것이 그대로 세계이다. 어떻게 보면 세계는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다. 예를 들어서 지구라고 하면 지구는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고 게다가 대한민국 하면 대한민국도 어느 정도는 고정되어 있다. 그러나 같은 대한민국의 서울과 부산이 기온차이가 상당하다. 또 여름이 되면 어디는 태풍이 와서 야단인데 다른 곳은 가물어서 비가 안 오는 곳도 있다. 설사 같은 지역에서 같이 태풍을 맞고 같이 비를 맞더라도 역시 개개인의 느낌에 따라서 그 태풍도 다른 맛이고 비가 와도 다른 맛이고 가물어도 다른 맛이다. 업력이 차별한 까닭에 중생세계가 각각 다르다. 틀림없이 한 집에 살아도 다를 것이다. 느끼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
비여심왕보(譬如心王寶)가: 비유하자면 심왕보가. 심왕보는 우리 마음이라는 뜻이다. 보배 보(寶)자를 붙여서 우리의 마음을 마음의 보배, 심왕보로 표현한다.
수심견중색(隨心見衆色)인달하야 : 마음을 따라서 온갖 색깔 온갖 사물을 보듯이
중생심정고(衆生心淨故)로 : 중생의 마음 청정한 까닭에
득견청정찰(得見淸淨刹)이로다: 청정한 세계를 얻어 보게 된다. 이 구절을 한마디로‘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요약할 수 있다. 마음을 따라서 온갖 사물을 보는데 그 마음이 청정하면 세상도 청정하다. 어떤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그날 따라서 왠지 세상이 다 좋게 보인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좋게 보이고 날이 개이면 개인 대로 좋게 보인다. 같은 날씨도 마음에 따라서 다 달리 보인다. 이것이 일체유심조이다. 화엄경 안에서 여러가지로 사상을 이야기 하는데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는 유심사상(唯心思想)은 상당히 중요한 사상 중의 하나다. 그 중에서 이런 구절들은 화엄경의 유심 사상에 해당한다.
*
비여대용왕(譬如大龍王)이 : 비유하자면 큰 용왕이
흥운변허공(興雲遍虛空)인달하야: 구름을 일으켜서 허공에 가득 채우듯이
여시불원력(如是佛願力)으로 : 이와 같은 부처님의 원력으로
출생제국토(出生諸國土)로다: 온갖 국토를 출생하는 도다.
마음이 생기면 가지가지 세계가 생긴다.
여기 용왕이라는 표현이 나왔는데 옛날 사람들의 사고로는 구름을 일으키고 비가 오는 것을 용왕의 장난, 용의 조화라고 보았다. 특별히 용이 있어서 자기 마음대로 이렇게 저렇게 조화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기후의 어떤 변화를 뭉뚱그려서 용의 조화라고 본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경전에는 많다.
지금 이것을 액면대로 보고 ‘용이 전설의 동물이지 어딨냐, 다 틀린 소리다’라고 이해하면 안 된다.
현재 우리들은 일기예보를 통해서 여러 날씨를 듣지만 그것이 왜 생겼는지는 모른다. 어제까지 일은 이야기 해도 그저께 일은 이야기를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은 그 전체를 뭉뚱그려서 용의 조화로 보자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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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환사주술(如幻師呪術)로 :또 비유가 있다. 마술가가 주문을 외워서
능현종종사(能現種種事)인달하야: 가지가지 일을 능히 나타내듯이
중생업력고(衆生業力故)로 : 중생의 업력 때문에. 여기서 중생은 뭇생명들이다.
국토부사의(國土不思議)로다: 국토가 사유할수록 불가사의하다.
우리의 사고는 중생이라고 하면 얼른 부처와 대립되는 존재로 떠올리기가 쉽다. 그런데 여기는 그런 부처와 상대되는 의미의 중생이 아니라 정확하게 말하자면 뭇생명들이라는 뜻이다.
앞에서도 계속 나왔지만. 뭇생명들은 그 나름의 업력이 다 있으므로 그 업력 때문에 국토가 사유할수록 불가사의하다. 마치 마술가가 손수건 속에서 비둘기를 만들어 낸다든지 조그만 손에서 무한히 오색실을 만들고 보자기도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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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중회상(譬如衆繢像)이: 또 비유가 있다. 여러 가지 그림 모습이. 그림 회(繢)자이다.
화사지소작(畵師之所作)인달하야 : 화가의 지은 바이듯이.
전시회에 가보면 여러 가지 그림을 그려놓았는데 그 많은 그림은 다 화가가 만든 것이다.
여시일체찰(如是一切刹)이 : 이와 같이 일체 세계가
심화사소성(心畵師所成)이로다: 마음그림쟁이의 소생이다. 마음화가가 이룬 바다. 심화사는 마음화가다. 우리가 다 심화사다. 오늘 비유는 스님들 포교일선에서 강의를 하든지 법회를 하든지 아주 훌륭하게 활용할만한 내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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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신각이(衆生身各異)가 : 뭇생명들의 몸이 각각 다른 것이. 우리 사람만 두고 보더라도 각각 다르다.
수심분별기(隨心分別起)니: 마음을 따라서 분별해서 일어나는 것이니
여시찰종종(如是刹種種)이 : 이와 같은 세계 가지가지가
막불개유업(莫不皆由業)이로다 : 다 업을 말미암아서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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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견도사(譬如見導師)의 : 비유하자면은 도사는.
인도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도사(導師)는 부처님을 뜻한다.
종종색차별(種種色差別)인달하야: 가지가지 색차별을 보는 것과 같이
수중생심행(隨衆生心行)하야 : 중생의 마음 움직임을 따라서
견제찰역연(見諸刹亦然)이로다 : 모든 세계를 보는 것도 또한 그러하더라.
청량스님이 여기에 주를 달기를 ‘범천왕은 이 사바세계를 보는데 제 6범천을 보는 것과 같다’고 했다. 범천에 살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바로 이 세상이 그대로 범천의 궁전과 같다. 그런데 ‘사리불이 보는 바는 전부 언덕이고 구렁텅이고 물이 있고 온갖 자갈이 있고 여러 가지 깊고 얕은 차별된 땅을 본다’고도 하였다. 사리불의 안목이 거기까지다 보니 그렇게 본 것이고 나계범왕인 범천왕은 자기들이 사는 범천궁전과 똑같이 본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 청량스님이 청량소에 썼다.
*
일체제찰제(一切諸刹際)에 : 일체 모든 세계 즈음에
주포연화망(周布蓮華網)하니: 연화망을 두루두루 펼쳤으니
종종상부동(種種相不同)이나 : 가지가지 모양이 같지 아니하나
장엄실청정(莊嚴悉淸淨)이로다 : 장엄이 매우 다 청정하더라.
(2) 染淨差別
彼諸蓮華網에 刹網所安住라
種種莊嚴事에 種種衆生居로다
或有刹土中엔 險惡不平垣하니
由衆生煩惱하야 於彼如是見이로다
雜染及淸淨인 無量諸刹種이
隨衆生心起며 菩薩力所持로다
或有刹土中엔 雜染及淸淨하니
斯由業力起며 菩薩之所化로다
有刹放光明하야 離垢寶所成이라
種種妙嚴飾하니 諸佛令淸淨이로다
저 모든 연꽃그물에
세계가 그물같이 안주하고
갖가지로 장엄한 일에
갖가지 중생들이 살도다
혹 어떤 세계에는
험악하여 평탄하지 못하니
중생들의 번뇌 때문에
그 곳에서 이와 같이 보네
잡되고 물들고 청정한
한량없는 모든 세계종이
중생들의 마음을 따라 일어나며
보살들의 힘으로 유지 하도다
혹 어떤 세계에는
잡되고 물들며 또 청정하니
이는 업력 때문이기도 하며
보살이 교화한 것이기도 하네
어떤 세계는 광명을 놓아서
때 없는 보배로 이루었으며
갖가지로 묘하게 장엄했으니
모든 부처님이 청정케 하였네
*
염정차별(染淨差別): 염(染)과 정(淨)이 다름을 밝히다
물든 것과 청정한 것이 차별하다.
*
피제연화망(彼諸蓮華網)에 : 저 온갖 연화그물에
찰망소안주(刹網所安住)라: 세계 그물이 거기에 안주했더라. 연꽃도 한 두 개가 아니다.
종종장엄사(種種莊嚴事)에 : 가지 가지 장엄된 일에
종종중생거(種種衆生居)로다: 가지가지 중생들이 또한 거기에 살더라. 이런 구절도 그 표현이 아주 아름답다.
연꽃이 그물망처럼 펼쳐져 있고, 온갖 세계는 그 연꽃 위에 안주해 있고, 가지가지로 장엄이 되어 있는데, 가지가지 중생들이 또한 거기에 살더라.
*
금강경 오가해 중에 함허스님의 이런 게송이 있다.
구류동거일법계 (九類同居一法界)
자라장리살진주(紫羅帳裏撒眞珠)
아홉 가지 종류의 생명들이 한 법계에 같이 사는 일이
마치 아름다운 비단 위에 진주를 뿌려놓은 것과 같다.
구류중생은 태생, 난생, 습생, 화생, 유색, 무색, 유상, 무상, 비유상비무상의 아홉 종류의 중생들이다. 생명 있는 것들은 다 여기에 해당된다. 이 아홉 종류의 중생들이 한 법계에 이렇게 머물고 있는데 그 모습이 소도 되고 말도 되고 사람도 되고 온갖 축생도 되지만 깨달으신 분의 안목으로 보니 그들이 모두 아름다운 비단에 진주를 뿌려놓은 것과 같이 영롱하고 아름답게 빛나더라는 것이다. 소나 말이나 뱀이나 꾸물거리는 벌레나 구더기나 온갖 독충이나 전갈도 다 그 속에 들어있지만, 그 모든 뭇생명들이 아름다운 자색 비단 위에 진주를 확 뿌려놓은 것과 같이 아름답게 빛나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참 중요한 이야기다. 그 중에서 사람만 떼어놓고 보아도 사람중에는 나쁜 사람도 있고, 사기치는 사람, 거짓말만 하는 사람, 도둑질만 하는 사람 등등 별별 사람이 다 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성경말씀을 잘못 이해하는 사도를 따라서 그랬겠지만, 목사가 자기 자식 세 명을 죽였는데 그런 것마저도 포함하여서 하는 이야기다. 그런 것은 배제하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그렇게까지 우리의 안목을 넓힐 수가 있다.
한편 만약에 그 안목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세상의 좋지 않은 일, 비상식적인 일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런 안목을 가졌다고 해서 함부로 행동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상상할 수도 없다.
어쨌든 사람은 좋은 일도 할 수가 있고 나쁜 일도 할 수가 있는데 요컨대 좋은 일을 해야만 부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불교에서 소위 부처라고 하는 것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
그런데 일반 불교에서는 아주 선량한 행동, 원력, 자비, 지혜, 선량한 사람만을 부처가 하는 일이고 부처의 능력이라고 가르친다. 부족한 말이다. 근래에 불교 이론도 상당히 발전을 해서 ‘본래 부처라는데 우리는 부처로 살자. 부처로 사는 것만 남았다’는 표현들을 한다. 그런데 그 말도 상당히 부족하다. 부처로 사는 길은 따로 없는 것이다. 어떠한 일도 다 부처로 사는 일이다. ‘본래 부처니까 부처로 사는 길만 남았다’고 한다면 그 말에는 ‘모든 삶이 부처가 아니다’라는 뜻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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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禪旨)에서 선의 소견으로 본다면 어떤 조건이라야 부처라고 한다는 조건이 없다. 아홉종류의 중생이 한 세계에 살고 있는데 자색 비단 위에 진주를 뿌려 놓은 것과 같이 모두가 아름답고 빛나고 가치 있다. 사실은 그것만이 답이다. 그 외 에 무슨 자비를 갖추어야 되고 지혜를 갖추어야 되고 온갖 중생들을 위해서 헌신만을 해야 부처라고 한다면 그런 사람은 없다. 그러니 답이 없다. 그저 이론만 있을 뿐이다. 본래로 부처이다. 지난 달에 나눠드린 『당신은 부처님』 책을 다 읽으셨는지 모르겠다. 거기에도 그런 이야기들을 했다. 우리가 성불을 아주 대단한 과제로 삼고 있는데 부처라고 하는 것에 대한 바른 안목과 바른 지견이 중요하다.
무엇을 부처라고 할 것인가. 아주 궁극적인 차원에서의 부처와 평범한 사람들의 안목에서 말하는 부처가 다르다. 가지가지 장엄된 일에 가지가지 중생들이 사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여러 각도로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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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유찰토중(或有刹土中)엔 : 혹 어떤 찰토중에는
험악불평탄(險惡不平垣)하니: 민족사에서 간행한 교재에는 험악불동탄(險惡不同垣)이라고 했는데 평탄이라고 해야 한다. 동(同)자를 평(平)자로 고치기 바란다. 험악해서 평탄하지 않더라.
유중생번뇌(由衆生煩惱)하야 : 중생의 번뇌를 말미암아서
어피여시견(於彼如是見)이로다 : 그 세계에서 바로 이와 같이 보더라. 그러니까 내 안목을 어떻게 갖는가.
그것이 참 중요하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정견(正見)이라는 말을 잘 쓴다. 내 안목을 어떻게 가져가느냐, 거기에 답이 있지, 내 밖의 세상을 바로 잡는다든지 세상을 고친다든지 세상을 어떻게 꾸민다든지 하는 것은 결국은 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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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염급청정(雜染及淸淨)인 : 온갖 것이 뒤섞이고 물들고 한 세상 그리고 청정한 세상. 잡염한 세상도 있고 청정한 세상도 있을 수 있다.
무량제찰종(無量諸刹種)이 : 한량없는 온갖 찰종이
수중생심기(隨衆生心起)며 :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이루는 것이며
보살력소지(菩薩力所持)로다: 보살력으로써 지탱하는 바더라.잡염은 중생심을 따라서 일어났다고 볼 수가 있고 청정은 보살력으로 지탱하는 바라고 볼 수 있다.
*
혹유찰토중(或有刹土中)엔 : 혹 어떤 찰토중에는
잡염급청정(雜染及淸淨)하니: 잡염도 있고 청정도 있으니
사유업력기(斯由業力起)며 : 잡염은 업력을 말미암아서 일어난 것이니. 역시 위의 구절과 같다.
보살지소화(菩薩之所化)로다 : 청정은 보살의 교화하는 바더라. 우리도 보살이 되면 바로 이 자리에서 청정이 된다. 또 아무리 부처님이라 하더라도 중생의 업력이 일어나면 이 세상이 바로 잡염이 된다.
화엄경을 이해하는 열쇠는 ‘부처님께서 시성정각하시니 그 땅은 견고해서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졌더라’라고 하는 첫구절에 있다. 늘 말씀드린 바다.
또 자주 역설적으로 부처님이 성도하신 부다가야에 가서 아무리 살펴봐야 다이아몬드도 없고 척박한 땅이더라는 말씀도 드리곤 했다. 부처님은 그 땅이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졌다고 하셨는데 아무리 살펴봐야 돌과 자갈과 모래 이런 것만 있고 심지어 어떤 골목으로 가면 거지가 워낙 많으니까 거지들이 퍼질러 놓은 온갖 오물들도 꽉 차 있다. 이런 모습이 부처님이 성도하신 부다가야의 모습이다. 물론 시성정각이라는 조건은 있지만, 그런데 부처님은 그 땅은 모두가 다이아몬드로 되어있다고 하셨다. ‘비로소 정각을 이루고 나니까 그 땅은 견고해서 다이아몬드로 이루어 졌더라’ 이것이 화엄경 첫구절이다. 이 첫구절이 화엄경을 푸는 열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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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찰방광명(有刹放光明)하야 : 어떤 세계에서는 광명을 놓아서
이구보소성(離垢寶所成)이라: 때를 떠난, 때가 없는 보배로써 이루어진 바라.
종종묘엄식(種種妙嚴飾)하니 : 가지가지로 아름답게 장엄했으니
제불령청정(諸佛令淸淨)이로다: 모든 부처님이 하여금 청정하게 하였더라. 부처님이 보니까 보배로 이루어졌더라는 말인데 ‘금강소성이다’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3) 成壞差別
一一刹種中에 劫燒不思議라
所現雖敗惡이나 其處常堅固로다
由衆生業力하야 出生多刹土하니
依止於風輪과 及以水輪住로다
世界法如是하야 種種見不同이나
而實無有生이며 亦復無滅壞로다
一一心念中에 出生無量刹호대
以佛威神力으로 悉見淨無垢로다
낱낱 세계종 가운데
겁화(劫火)가 타서 부사의 하네
나타난 것은 비록 몹쓸 것들이나
그곳은 항상 견고하도다
중생들의 업력 때문에
많은 세계를 출생하니
풍륜(風輪)을 의지하기도 하고
수륜(水輪)을 의지해서 머물기도 하네
세계의 법이 이와 같아서
갖가지 같지 않음을 보나
실은 남도 없으며
또한 다시 소멸함도 없네
낱낱 생각 속에서
한량없는 세계를 출생하되
부처님의 위신력으로써
청정하여 때 없음을 다 보도다
*
성괴차별(成壞差別) : 이뤄지고 무너짐이 다름을 밝히다
*
일일찰종중(一一刹種中)에 : 낱낱 세계 가운데
겁소부사의(劫燒不思議)라: 겁이 타는 것이 불가사의하다.
겁화통연(劫火洞燃) 이라는 말이 있는데 겁화가 일어나 활활 타오른다는 말이다. 이 세계를 지구라고 한다면 이 지구가 수명이 다하고 사라질 때는 겁의 불이 일어나서 사라진다. 지금 온 우주에 끊임없이 사라지는 별이 있는데 그 역시 사라지는 순간에는 전부 불이 일어나서 사라진다.
우리 스님들도 이 몸이 마지막 소멸할 때는 화장해서 소멸하는데 이 원리에 맞다.
소현수패악(所現雖敗惡)이나 : 나타난 바가 비록 아주 좋지 아니한 모습들이긴 하지만
기처상견고(其處常堅固)로다 : 그 곳은 항상 견고하더라.
*
유중생업력(由衆生業力)하야 : 중생업력을 말미암아서
출생다찰토(出生多刹土)하니: 온갖 세계를 다 만들어낸다.
의지어풍륜(依止於風輪)과 : 풍륜과
급이수륜주(及以水輪住)로다: 그리고 수륜을 의지해서 머물더라.
*
세계법여시(世界法如是)하야 : 세계의 법이 이와 같아서
종종견부동(種種見不同)이나: 가지가지로 부동함을 보나
이실무유생(而實無有生)이며 : 실은 생한 것도 없고
역부무멸괴(亦復無滅壞)로다: 또한 다시 멸괴함도 없더라.
결국 불생불멸이다. 세상은 부동하지만 우리 자성에는 생도 없고 멸도 없다. 사실에 있어서, 우리 본성에 있어서는 생멸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무상게 같은 데는 ‘겁화통연(劫火洞燃)에 대천(大千)이 구괴(俱壞)한다’고 하였지만 이 영령한 한 물건은 그 겁화에 타지 않는다. 육조스님도 ‘대천세계가 무너질 때 이 한 물건은 타지 않는다’는 표현을 했다. 다른 불은 작은 불이니까 그렇다손 치더라도 겁화통연에 대천이 구괴한다는 말은 바다 밑까지 탄다는 뜻이다. 온 지구가 다 타버리니까 바다니 뭐니 없다. 그렇더라도 이 한 물건만은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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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심념중(一一心念中)에 : 낱낱 한 생각 가운데서
출생무량찰(出生無量刹)호대: 한량없는 세계를 출생하지만
이불멸신력(以佛威神力)으로 :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실견정무구(悉見淨無垢)로다: 다 봐서 청정하야 때가 없더라.
불신력으로는 때가 있는 세계, 청정하지 않은 세계가 없다. 다 청정한 세계를 보는 것은 오로지 불신력이다. 그야말로 우리 마음의 원리에 의해서 그것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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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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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一心念中에 出生無量刹호대 以佛威神力으로 悉見淨無垢로다 : 낱낱 한 생각 가운데서 한량없는 세계를 출생하지만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다 봐서 청정하여 때가 없더라...헤명화 님! 수고하셨습니다.. _()()()_
隨心見衆色인달하야 衆生心淨故로 得見淸淨刹이로다...마음을 따라서 온갖 색깔 온갖 사물을 보듯이
중생의 마음이 청정한 까닭에 청정한 세계를 얻어 보게 된다.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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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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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력으로는 때가 있는 세계, 청정하지 않은 세계가 없다. 모두 청정한 세계를 보는 것은 오로지 불신력이다. 그야말로 우리 마음의 원리에 의해서 그것이 가능하다. 고맙습니다_()()()_
수고하셨습니다. _()()()_
일목요연한 정리에 늘 감동입니다. 고맙습니다..._()()()_
慧明華님 수고 많이하셨네요.덕분에편히공부할수 있네요 |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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