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 문자도
심 영 희
여러 가지 민화 그림 중에도
문자도는 내 마음에 감동을 준다. ‘효제충신예의염치’라는
여덟 글자로 표현했다는 윤리문자도는 글자와 그림이 조화를 이룬 작품 자체도 마음에 들지만 글자 한자 한자 뜻을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친근감이 간다.
첫째 덕목인(孝)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일을 실천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삼십여 년 전까지는
의무로도 부모와 함께 살며 효를 행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요즈음은 거의가 따로 생활하고 있다.
그래도 인정이라는 것이
있어 부모와 자식이라는 연결고리를 이어가고 있는데 현대에는 부모의 극진한 정성과 사랑으로 자란 자식들도 그 은혜를 모르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요즘 세상은 효도는커녕
부모를 폭행하는 패륜아를 심심찮게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볼 수 있다. 정 많기로 잘 알려진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왜 이리도 정서가 메말라 가는지 가슴 아프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고 잘 해드리고 싶어도 이미 그 자리는 비어있어 마음이 허전하기만 하다.
한겨울에 노모가 잉어와
죽순을 먹고 싶다 하여 어렵게 구하여 봉양하니 어머니께서 나으셨다는 것을 부상시키는 잉어와 죽순을 그리고, 부채와
거문고도 많이 그려 효의 의미를 부각시켰다고 한다.
형제(悌)간의 우애는 보는 이의 마음도 기쁘게 한다. 유난히 많은 남매가 자랐던 유년시절 작은언니와 가끔 다투기는 했지만 늘 이웃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친하고 재미있던
남매였는데 모두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오랜 세월 자기 영역을 지키다 보니 의견충돌이 생기고 서로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실에서 더욱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내 아들딸이 서로 사이가
좋은 것은 다행이다. 대기업의 형제의 난은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조이게 한다. 부잣집에 태어나 어려움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기만 주장하던 습관이 있어서 그런가 형을 몰아내야 내가 살고, 동생을 밀쳐내야 내 몫을 지키게 되는 그룹의 후계자들도 혈육의 정은 있을 것인데 그 놈의 재산이 뭐길래 한
뱃속에서 나온 형과 아우도 서로 비수를 꽂고 꽂혀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충(忠)은 출세와 화합을 의미한다. 출세하기
싫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아 억울하면 출세 해라’ ‘출세를
했다’ 하는 노래가사처럼 출세에 눈이 멀어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는가 하면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하여
화합으로 이끌어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사회의 어느 단체이건 가정이건
화합이 잘 되면 온기가 흐르고 불화가 있으면 만나기조차 꺼려지는 것이니 서로 이해하고 양보해야 되는데 그 모든 것이 여의치 못한 게 사람일 것이다.
신(信)은 언약과 믿음이라 무엇이든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하겠으나 그렇지
못할 때가 많은 것 같다. 특히 시간약속을 어기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시간약속은 약속 중에 기본이다.
습관이 되어 어디를 가든
조금 늦게 가는 사람들, 일찍 갈 수 있는 여건인데도 늘 지각이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면 아예 약속을 하지 말거나 미리 약속을 못 지키겠다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젊은 시절 얘기다. 시간관념이 없는 학부형과 길가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길에서 반시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 먼저 온 세 명이 식당에
들어가 막국수를 시켜 한 그릇을 다 먹고 나도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아 식당 옥상에 올라가 숨어서 망을 보고 있는데 그때 식당 안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도착한 모양이다. 한 시간도 넘게 지각한
것이다.
휴대폰도 없고 자가용도
없던 시절 그래도 택시는 잘 타고 다녔는데 이렇게 약속시간을 어겼다는 것은 기본 매너 실종과 늦으면 어때하는 습관 때문인 것이다.
예(禮)의 기본인 삼덕에는 정직, 강근, 유근이 있다고 한다. 정직은 사람의 기본도리다. 남을 속이는 사기꾼 기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대접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의형제를 맺은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義’자에는 복숭아꽃을 많이 그린다고 한다. 의형제를 맺지 않았더라도 인간이 의리를 지키는 것은 기본이다.
염(廉)은 봉황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하찮은 잡곡은 먹지 않는다 하여
청렴과 절제의 상징이라고 한다. 요즈음 고위 공무원이나 지방공무원들은 주는 대로 받아먹는다. 그렇게 받아먹고 배탈이 나서 낭패를 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정부에서
아무리 청렴결백 하라고 부르짖어도 주고받는 사람이 있으니 그 고리를 끊기는 어려운 것인가 보다.
즉 뇌물로 인해 사람이
망가지는 것이다. 뇌물을 받고 자격이 없는 업체에 일을 맡기는 관청이나 뇌물을 바치기 위해 값싼 자재를
사용해 부실공사가 줄줄이 발각되는 관례는 언제쯤 자취를 감출지 모르겠다.
치(恥)는 절개를 지키며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을 의미하며 그림은 주로
수양산에 달이 뜨고 매화가 핀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우리들은 염치없는 사람이란 말을 많이 쓴다. 체면과 염치가 없는 사람이란 말을 듣지 않으려면 처신을 잘해야 할 것이다.
그림과 글씨가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매력에 빠져 여러 형태의 문자도를 그리며 마음이 즐거웠다. 지난해에는 孝悌문자도를
그려 민화반 첫 전시회도 했고 올해는 또 다른 형태의 孝悌문자도를 그려서 강릉단오서화대전 도록에 추천작가 작품으로 싣기도 했다.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이 여덟 항목의 규율을 잘 지켰는지 반성도 해보면서 오늘도 문자도를 어떤 형식으로 그릴까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