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군 파평산 기슭에는 아득한 태고적(太古的)부터 큰 연못이 있어 이를 용연이라
고 부르고 있었는데, 전설에 따르면 이 연못속에는 용인(龍人)이 살고 있어 연못이 불결(不
潔)해지면 뢰성(雷聲)이 진동하고 풍우(風雨)가 몰아 친다고 전한다.
지금으로부터 1119年前 즉 신라진성왕 七年(西紀 八九三)癸丑 음력 八月 十五日 용연
위에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끼고 요란한 청둥과 번개가 치면서 큰 연못위에 한 玉
函이 떠 오르는 것을 한 노파가 발견하여 옥함을 열어보니, 그 속에는 五色의 우모(羽毛)에
쌓여있는 어린 사내 아기가 들어있었다.
이 어른이 바로 우리 파평윤씨(坡平尹氏) 백만종인의 시조(始祖)인 신달(莘達)이시다.
시조(始祖)께서는 신라의 천년사직(千年社稷)이 붕괴(崩壞)되는 후삼국의 혼란기를
거쳐 재통일이되는 역사적인 일대 변혁기에 고려태조를 도와 고려개국에 큰 공(功)을
세운 위인(偉人)이시다.
태사공(太師公)께서는 항상 왕건에게 <인의(仁義)와 도덕(道德)으로 백성을 다스려
천하를 이롭게 해야 합니다.>라고 충간(忠諫)을 하였다.
왕건 태조가 대업을 완수하는데는 윤태사공의 공(功)이 컷다고 말씀하시고, 태사공에
게 벽상삼한익찬공신이등(壁上三韓翊贊功臣二等)에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를 제
수(除授)하셨다.
태사공의 현손(玄孫) 문숙공(文肅公) 휘(諱) 관(瓘)은 문과장원하셔 출장입상(出將入
相)의 도원사(都元師)로 고구려의 옛 강토인 북녘의 실지(失地)를 회복하여 민족 전성
시대를 구현하셨다. 六傳 諱는 보(珤)요 영평부원군(鈴平府阮君)에 봉(封)해 졌으며
시(諡)는 문현(文顯)이다.
公의 계자(季子) 諱는 안비(安庇)요 호(號)는 빈재(斌齋)이며 회헌(晦軒) 안유(安裕)
를 사사(師事) 관(官)은 태위(太尉)이며 저희의 중시조(中始祖)이다.
삼전(三傳) 諱는 비(備)요 관(官)은 이부시랑(吏部侍郞) 한성판윤(漢城判尹)이고 시
랑공파(侍郞公派) 파조(派祖)이시다.
시생(是生) 첨사공 종창(宗昌)께서는 북청(北靑)에서 대구 화원읍 구라리에 입향(入
鄕)하셨다. 오전(五傳) 諱는 범(範)이요 무과(武科)로 임진왜란에는 국가존망의 위급
함을 탄(嘆) 창의(倡義)하여 경남 창녕 화왕산(火旺山) 전투에서 순국 병조정랑(兵曹
正郞)에 추증(追贈)되었다.
시생(是生) 장자(長子) 諱 福(복). 차자(次子) 諱 迪(적)의 두 형제가 대구 달성군 옥
포면 신당리에 이주(移住)하여 세거지를 형성하여 지금까지 약400여년 집성촌을 이
루고 있다.
일우재(逸友齋)는 선조를 추모하기 위한 제사(祭舍)이다. 이것은 파평윤씨 태위공파
시랑공파(侍郞公派) 입향조(入鄕祖)이신 가선대부(嘉善大夫) 諱 福의 호(號) 금락일
수(琴洛逸叟)의 일(逸)자(字)와 그 아우 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을 하셨던 諱 迪
의 호(號) 이우헌(二友軒)의 우(友)자(字)에서 각각 한자를 따서 명명(命名)한 것이다.
이 재사(齋舍)는 바로 이 두 형제분을 기리기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坡平尹氏 신당
문중(新塘門中)의 표상(表象)이라 할 것이다.
비슬산(琵瑟山) 정기를 받아 펼쳐진 신당리(新塘里). 금락강수(琴洛江水) 휘어감아
서기(瑞氣)어린 길상지(吉祥地)애 후손들이 물심단결하여 西紀一九一七(丁巳)年에 선
조를 추원보본(追遠報本)하기 위하여 일우재(逸友齋)를 창건(創建)하였다.
이후 西紀一九二四(甲子)年에 그 후원(後苑)에 조상을 사모하는 근본의 정을 이기지
못해 추원단(追遠壇)을 세우고 十五世 시랑공(侍郞公) 諱 비(備) 제하(諸下) 七位의 諱
를 기록하여 새겼으며, 西紀一九六一(辛丑)年에는 일우재(逸友齋) 후원(候苑)에 새로이
시랑공(侍郞公) 이하(以下) 七位의 비(碑) 세우고 상석제단(床石祭壇)을 갖추어
매년 한식일(寒食日)에 봉향(奉享)한다.
일우재가 세구연심(歲久年深)으로 붕괴되어 보수를 하였으나 재사(齋舍)를 세운지가
백여년이 가까와 보수가 불가능한바 음덕을 잊지 못하여 종회에서 부의한 결과 중건키
로 합의되어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공사를 시공키로 하고 도목수로 경주시 충효동의
孫泰根氏(문화재등록第一一五七號)로 정(定)하고, 목재는 강원도에서 구입하여 중건을
착공하여 二○○四年 陰 九月十七日 工事費 貳億원을 투입하여 완공을 보게 되었다.
중건과 함께 추원보본지정(追遠報本之情)이 간절(懇切)하여 봉심무로(奉審無路)한 十
二世 고려태위(高麗太尉) 문하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 諱 안비(安庇)와 十三世
고려보리공신 영평군(高麗輔理功臣 鈴平君) 諱 침(沈)과 十四世 고려좌산기상시(高麗
左散騎常侍) 諱 인달(仁達) 등(等) 삼위의 비(碑)와 상석제단(床石祭壇)을 추가로
마련하고 추원단비(追遠壇碑)를 새로이 세워 중시조 諱 안비(安庇) 포함 십위(十位)
를 매년 한식날에 춘향제(春享祭)를 올리고 있읍니다.
주소: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 신당리 1126번지.
* 사과말씀 48번, 70번 을 보니 태위공 후손이신 弘山어른 (윤승영) 종현님께서
일우재 소개글과 사진 까지 상세하게 올려놓으셨네요.홈페이지도
운영하시고요.(소생도 회원 가입)--카페가 훌륭 ,대단합니다.
윤승영 종현님께서는 태위공 세계도 까지 신당문중 전 종인들의
계보도를 작성,게시하셨네요.종사에 남다른 관심과 애착을 갖고
계시는 승영 종현님, 님과 같은 분이 계셔야 종사가 이어집니다.
봉강재에도 많은 관심과 협력하심을 알고있습니다.
본인도 문중에 애착을 가지고 홈페이지,인터넷족보 작성하여
젊은 후손들이 종사에 관심을 가지면 알 수 있도록 하기위해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여 올려놓았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뜻있는 종인들이 일을 벌려놓아야,후손들이
대를이어 숭조경종, 종친돈목,충효전가, 파평윤문 3대 종훈
정신을 계속 이어가리라 생각하는 바 입니다.
건강이 허락하는한, 돈과 시간을 바쳐,종사에 힘쓰겠습니다.
雲亭 尹達根/36세.소정공파 .(1940년 경진생.경남 합천출생).대종회 부회장.
봉강재 평의원.
경남종친회 상임부회장.창원시 종친회장.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