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는 가지를 다투다가 떨어지고
나는 벌레는 정원에 가득히 노닐고 있네
막걸리야
너를 누가 만들었느냐
한잔으로
천가지 근심을 잊버리네
(천 상 병)
그 빛이 하얀 쌀뜬물과 같이 흐려서 탁주요
농부의 술이라 농주요
배꽃 필 때 누룩을 만들어 술을 빚으니 이화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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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바람이 솔솔부는 가을이 되니 퇴근 무렵이면
누구나 한 잔의 유혹에 절로 빠져든다.
좋은 술도 많고 맛있는 안주도 지천이지만 달빛이 유난히 하얀 가을 밤에는
왠지 탁배기에 담긴 막걸리와 전이 당긴다.
서울하늘아래서 전라도 고흥의 명물 풍양유자향주와 유자막걸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 생겨 고향을 그리는 이들에게 큰 위안이 되는 곳이 금천구 독산동에 문을 열었다.
자동차매매사업을 하는 주인장 조건익사장의 고향마을 이름을 따온
소곡탁배기집 (010-8944-6325)이다.
서울 금천구 독산1동 144-46
(구로 디지털역 1번출구에서 하차 후 마을버스 03번 타고 독산동 먹자골목 하차)
풍양면 소곡은 예로부터 산에 취나물이 많이 나오므로
취실 또는 나물 소(蔬)자를 따서 소곡이라 부르고 그전에는
안쪽에 금당사라는 절이 있었기 때문에 검댕이라고도 불렀던 곳이다.
나물이 많은 고장과 막걸리의 조우가
환상의 앙상블의 이루지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드는 탁배기집이다.
나물 蔬를 쓰지않고 작을 소(小)를 쓴 주인장의 마음은
필시 크고 빠른것이 판치는 현대에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마음을 견지하는 뜻이 아닐런지...
일본이나 중국에도 청주나 소주는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막걸리는 없다.
막걸리라는 말조차도 순수 우리말이기에 막걸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임에 확실하다.
농부들이 배를 채워주고 갈증을 풀어줬던 가장 소박하면서 친근한 술 막걸리.
소곡탁배기
유자막걸리,향주
입간판만 봐도 벌써부터 남도의 넉넉한 인심과 향기가 전해져오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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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민중 3,4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막걸리에 관한 추억 한 둘쯤은 가지고 있을것이다.
아버지의 막걸리심부름을 하며 논길을 오고가다 한모금 두모금 주전자 주뎅이에
키스를 하다 그만 볼이 발그스레해지고 다리가 갈지자를 그리고 있는...
내가 어렸을때 우리집에서는 직접 막걸리와 동동주를 만들어서 마셨는데
한때 쌀이 귀한시절에는 밀주라고 해서 술을 금지하는 정부의 눈을 피해
몰래담가 먹기도 했던게 생각난다.
막걸리를 제조하는 방법이 내 기억이 맞다면 이랬다.
먼저 누룩을 덩어리가 없이 잘 부수어 마루 위에 널어 놓는게 막걸리 제조의 시작이다.
고두밥을 짓기위해 깨끗이 씻은 가마솥 위에 아침일찍 먼샘에서 길어온 깨끗한 우물물을
붓고 시루를 그위에 얹는다
솥과 시루 사이를 밀가루 반죽으로 발라 틈이 없게 했다
그 후에 물에 담가둔 쌀을 시루에 켜켜히 넣고
아궁이에 불이 세고 오래가는 장작을 넣었다
불장난을 좋아했던 나는 궁둥이를 쳐든 체 아궁이에 머리를 집어넣다시피 하여 불을 붙혔다.
고두밥이 지어지면 넓은데다 펴서 식힌 후 미리 준비한 누룩과 잘 섞는다
내가 솥과 시루 사이의 접착제 역활을 마친 밀떡을 입에넣고 우물거리는 동안
할머니는 깨끗하게 씻어 말린 항아리에 누룩과 잘 버무려진 밥을 차곡차곡 집어 넣으셨다.
그 위에 깨끗한 물을 부은 뒤 면포로 항아리 주둥이를 덮고 뚜껑을 닫고
그 항아리를 안방 아랫목으로 모셔놓았다.
몇일 뒤 항아리속에서 발효가 잘되어 보글보글 거품이 올라오면 항아리에서 나온 걸쭉한
밑술이 함지 위 나무판에 걸쳐지고 체에 따라진다.
할머니는 체를 흔들어 술을 거르고
또 항아리에서 독한 원주를 체에 따라서 거르고 걸러 막거른다에서 유래한 막걸리가 완성된다.
나의 어머님은 술손님들을 위한 안주로 오꼬시(쌀강정)를
색색깔로 만들어 준비해두셨다.
지금도 한가위가 다가오면 지나간 이런 추억들이
나의 가슴을 애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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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에 김치 하나만 있어도 시원하게 한 사발 훅 들이킬 수 있지만
전라도에서는 시골 여느 가계에서도 거기에 더해 몇 종류의 젓갈과 고추와 푸성귀를 내놓아
막걸리보다 안주값이 더 비싼줄 알았다는 어느 외지인의 여행담이
전라도 인심을 느끼게 해주곤 했다.
탁사발에 가득히 담긴 막걸리는 새끼손가락으로 휘휘 저어
목구멍 깊숙히 밀어넣어야 제맛이라 했다
(술을 못하는 내가 술에관한 야그를 하려니...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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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풍양면주조장에서 직접 공수해온 막걸리의 발효상태가 아주 극상이다.
한 잔을 들이키니 유자향이 입안에 은은히 퍼져온다.
풍양면은 우리나라 최고의 유자생산지다.
요즘 웰빙이라는 화두를 앞세우고 더덕막걸리,인삼막걸리 등을 출시하여
많은 변신을 꾀하고 있지만
다수의 제품에는 더덕이 들어가거나 인삼이 들어가지않고
화학적으로 만들어낸 더덕향,인삼향이 첨가된 제품이다.
이렇게 소비자를 우롱하는 시대에
원생산지의 상품인 유자를 넣어 만들어낸 유자향주와 유자막걸리는
진정한 웰빙의 대표 음식이다.
이런 아이디어로 소곡탁배기집을 개설한
조건익사장의 안목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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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란 자고로 삼위일체가 되었을때 가장 맛있는게 아닐까 싶다.
세가지 요소란
술맛, 분위기,안주다.
이 세가지가 잘어우러져야 진정한 술맛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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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면에 붙은 고흥유자 포스터가 남도의 햇살만큼이나 밝게 돋보인다.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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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를 보니 찌게종류와 전종류가 주류를 이룬다.
먼저 모듬전을 시켜보니 큰 접시에 가득히 전 한접시를 내놓는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에 빠지다
깻잎전을 입에넣어보니
깻잎향과 함께 잘다져진 돼지고기가 잘어우러져
유명한 한정식집에서 맛보는 고기완자같은 느낌을 전해준다.
사실 전이란 우리전통음식에서 삐질 수 없는 음식이지만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지져낼때 너무 기름을 많이 흡수하게 만들면
조금만 먹어도 금새 질려버리는데
소곡탁배기집의 전은 기름을 적당히 함유하고 있어 고소함이 살아있다.
맛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정갈한 음식이 보는 개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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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주나물과 소고기의 환상적인 궁합이
술을 못하는 나를 술의 유혹에 빠지게 만든다.
본시 숙주란 가장빨리 변하기 쉬운 음식재료라 숙주나물이라 불리는데
유래는 고려시대 왕에게 충성을 맹새했던 신숙주가 새로운 왕이 군림하자
마음이 변해 절개를 지키지못하고 새로운 군왕에게 충성을 맹세한데서
금새 변하는 마음을 빗대서 숙주나물이라 부른다.
이런 숙주나물은 요리를 할때 주의해야할것이 많다.
숙주의 아삭한 식감을 살리면서 나물의 비린내도 잘잡아내야 하는데
그 비법이 그리 수월한게 아니다.
베트남쌀국수에도 필수로 들어가는게 숙주나물인데
돼지고기를 푹고은 국물로 숙주의 비린맛을 감쇄시키지만
이렇게 국물없이 만드는 숙주나물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요리솜씨를 재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비쥬얼도 좋고 식감도 좋고 아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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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게는 현대인의 입맛에 맞춰 조금은 간간하게 만들었나 보다.
하지만 막걸리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장년층이 위주이니
태양초나 고추를 넣어 약간 얼큰하게 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밖에도 고흥에서 당일 올라온 제철재료를 이용한 음식도 선보이고 있다.
이중에서도 특히 살짝얼려 두툼하게 썰어낸 고소한 맛이 일품인 병어회와
막걸리식초를 이용한 간재미회도 자연스럽게 유자향주를 부르는 절친 안주가 있다.
전라도맛의 진수를 선보이는 소곡탁배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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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맛은 눈에서 30점 입에서 70점이란 말이있다.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인 모듬전을 내놓을때 프라스틱 그릇에 담지말고
기름로 빠지고 보기도 좋게 작은 소반이나 소쿠리에 전을 내놓는건 어떨런지...
그리하면 금상첨화일텐데...
고향을 사랑하는 조건익사장의 무한한 발전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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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유자향주에 취한날 - 천하주유 -
첫댓글 조만간, 고흥에 갈일이 있으니, 풍양면 유자향주 꼭 기억해 놓겠습니다.시원하게 해서 마시면 정말 좋겠습니다.입맛을 다시면서, 쩝쩝쩝~~~기다려라! 유자 향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