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감동 아바이마을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감동에 있는 피란민들의 정착한 마을을 이르는 말이다. 당감동은 6·25전쟁으로 부산으로 들어온 피난민 정착촌 중 하나였다. 휴전이 되자 거제도로 피난 온 함경도 피난민들이 당감동으로 이주해 오면서 지금의 ‘구 시장 골목’에 정착하게 되었다.
당감동 지명유래
당감동(堂甘洞)은 조선 시대 이곳에 위치해 있던 동평면의 당리(堂里)와 감물리(甘物里) 두 마을의 지명을 합쳐 만든것에서 유래되었다. 감물리는 지금의 당감천을 옛날에는 감물천·감물내라고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
당감동 피난민 정착촌 그리고 당감동 아바이마을
6·25전쟁 때에 당감동 대부분이 논밭이었고 100여 세대가 채 안 되는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주변에는 군 통신 기지창, 가야역과 철도 조차장 그리고 말 사육장 등이 있었다. 당감동 피난민 마을은 지금의 당감 1동 가야역 관리의 말 마구간을 중심으로 하여 형성되었다. 초기 이주한 사람들 가운데 기관사 가족들이 말 마구간을 개조한 수용소에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수용 범위를 촤과하는 많은 피난민이 들어오자 수용소 주변에 움집을 짓고 정착하였다. 피난민이 모여들자 수용소 주변으로는 시장이 형성되었는데, 오늘날 당감 시장과 구분해 옛 시장이라는 의미로 불리는 ‘구 시장’ 골목이 조성되었다. 휴전이 되자 거제도로 피난 내려온 함경도 피난민들이 이주해와서 당감시장 뒤편으로 아바이 마을이 형성되었다.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함흥냉면’을 판매하는 함경도식 냉면 식당은 과거의 아바이마을이 지내온 삶의 흔적을 드러낸다.
아바이 마을 당감동의 변화
전쟁이 끝나자 외지에서 유랑민들이 대거 이주해 들어오면서 김지태산과 당감동 위쪽으로 거주지가 확대되었다. 당감동에는 피난민들이 만든 소규모 공장들과 각종 군사시설이 있었다. 점차 태화고무(1959년), 동양고무(1963년), 진양화학(1963년)이 신설 또는 이주해 오면서 이 마을은 활기를 띠게 된다. 대규모 고무공장으로 마을 인구가 급증하였고 마을 주민들의 경제 사정이 나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고무신 공장이 폐업 또는 이전하면서 마을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당감동 아바이마을
당감동 아바이마을
당감동 아바이마을
지방문화원 자료
https://www.nculture.org/man/main.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