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 대한 시 모음 ]
[ 순 서 ]
□아버지의 등 / 하청호
□엄마 걱정 / 기형도
□눈 오는 밤에 / 이영권
□어머니 / 이정하
□어머니의 장롱 / 신달자
□어머니의 그륵 / 정일근
□아버지 / 나태주
□부모 / 김소월
□[동시]신의 한 수 / 정연철
□홍시(울엄마) / 나훈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심순덕
□아버지의 등을 밀며 / 손택수
□아버지의 등 / 이정하
□밥 / 이무원
□매달려 있는 것 / 신새별
□김치 한 통 / 윤봉하
□어 머 니 / 다서 신형식
□어머니 / 이제향
※ 아버지의 등 / 하청호
아버지의 등에서는
늘 땀 냄새가 났다
내가 아플 때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지만
아버지는 울지 않고
등에서는 땀 냄새만 났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아버지는 속으로 운다는 것을
그 속울음이
아버지 등의 땀인 것을
땀 냄새가 속울음인 것을
※ 엄마 걱정 /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눈 오는 밤에 / 이영권
어머니는
잠든 내 곁에 앉아
하얀 솜이불로
얼어붙은 나의 몸을 덮어주신다.
고요하고 가볍지만
하염없이
세월의 무게로 내려
어머니의 사랑이
밤새
소복소복 쌓이고 있다.
※ 어머니 / 이정하
어머니에 대한 시 하나 애절하게 쓰고 싶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간절하고도 슬픈 시 하나를
그러나 불러보기만 해도 목메이는 어머니 이름
어머니, 하고 써놓고는 더 이상 쓸 수 없는....
※ 어머니의 장롱 / 신달자
꽃밭이다
노랑 파랑 빨강
어머니의 희망이 방글방글 웃고 있다
찬란한 이부자리
향기 자욱한 꽃베개
멋스런 호랑나비 한 마리
우람하게 날고 있다
그 꿈을 지키시려고
누더기만 덮고
꽃밭 잠 속을
드나들었나
※ 어머니의 그륵 / 정일근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 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듯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릇의 물과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 아버지 / 나태주
햇빛이 너무 좋아요, 아버지
어제까지 보지 못한 꽃들이 피었구요, 아버지
오늘 아침엔 우리 집 향나무 울타리에
이름 모를 새들이 한참 동안 울다가 갔어요
환한 대낮에는 견딜 만하다가도
아침저녁으로는 못 견디겠는 마음이에요
아침 밥상 앞에 보이지 않는 아버지를 문득 찾고요
어두워지는 대문간에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 들어요
지금은 눈물도 그쳤구요, 아버지
그냥 보고 싶기만 할 뿐이에요.
※ 부모 / 김소월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리라
※[동시]신의 한 수 / 정연철
어린이날에 엄마 아빠는
피곤하다고
피자 한 판 사 주고 대충 때웠다
어버이날에 나도
엄마 아빠 사랑해요,
오래오래 사세요, 라고 카드에 적고
대충 때웠다
엄마 아빠 나이쯤 되면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게 있다는 걸 알 텐데
왜 자꾸 깜빡하나 모르겠다
누가 만들었는지
어린이날 다음이 어버이날인 건
신의 한 수다
※ 홍시(울엄마) / 나훈아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 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눈이 오면 눈 맞을 세라 비가 오면 비 젖을 세라 험한 세상 넘어질 세라 사랑땜에 울먹일 세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도 않겠다던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회초리 치고 돌아앉아 우시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바람 불면 감기들 세라 안 먹어서 약해질 세라 힘든 세상 뒤쳐질 세라 사랑땜에 아파할 세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 도는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찡하는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울 엄마가 보고파진다
※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해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 아버지의 등을 밀며 /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 번은 입 속에 준비해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어쩔 줄 모르고 물 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 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 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 아버지의 등 / 이정하
일곱 살 되던 해 겨울,
눈보라치는 들판을 건너가기 위해
아버지는 처음 내게 등을 내주셨다
심한 고열로 밤을 꼬박 새웠던 나는
아버지 넓은 등판에 뺨을 댄 채 잠이 들었고
읍내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내 병은 말끔히 나아 있었다
객지에 계신 아버지가 집에 오는 것은
일 년에 어쩌다 한두 번
그때마다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동네 목욕탕에 가고 싶어 하셨고
나는 그때마다 부리나케 도망쳐
혼자 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곤 했다
막노동 탓에 표시나게 굽어 있는 등을
세월이 한참 흘러
아버지와 함께 간 동네 목욕탕
그때도 나는
늙고 말라빠진 아버지의 몸을 외면했다
야야, 쓸데없는 돈 말라꼬 써
등만 밀어주면 되는데
세신사에 이끌려가며 힘없이 남긴
아버지의 말씀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세월이 더 흐르고 흘러
아들과 함께 간 동네 목욕탕
자식새끼의 등을 때수건으로 벌겋게 밀며
나는 소리 없이 눈물 흘렸다
샤워기 세차게 틀어놓고 목 놓아 울었다
어릴 적 그 따스했던 아버지의 등
이제는 밀어드릴 수도 없는 아버지의
그 굽은 등이 간절히 생각나서
※ 밥 / 이무원
어머니 누워 계신 봉분(封墳)
고봉밥 같다
꽁보리밥
풋나물죽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데
늘 남아도는 밥이 있었다
더 먹어라
많이 먹어라
나는 배 안 고프다
남아돌던
어머니의 밥
저승에 가셔도 배곯으셨나
옆구리가 약간 기울었다
※ 매달려 있는 것 / 신새별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게 뭐지?
나뭇잎.
나뭇잎에 매달려 있는 게 뭐지?
물방울.
엄마한테 매달려 있는 게 뭐지?
나.
※ 김치 한 통 / 윤봉하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김치 한 통을 들고 왔다
반쯤 뜬 눈으로 일어난 아침
냉장고를 열고 마주하니
붉은 김치통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냄새에서
엄마가 들린다
※ 어 머 니 / 다서신형식
신나게 버무려 볼 일이다
힘겹고 아니꼽지 않은 것 어디 있으랴
이놈의 세상 박박 문질러 볼 일이다
매운 사랑 한번 해 보겠다고,
이 가을 햇살이 식기 전에
열렬하게 사랑 한 번 엮어 보자고 지껄여대던
빨간 고추 따다가 잘게 갈아 버무려 볼 일이다
벌레 먹은 잎이면 어떠랴.
머리 아프고 내팽개쳐 버리고 싶은 일들
배추 밑동 자르듯 잘라버리고
시뻘겋게 한 판 버무려 볼 일이다
그러다가 쭈욱 찢어
자네도 한 입, 나도 한 입 먹어볼 일이다.
이빨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어도 좋겠다.
어차피 이 세상 야단법석 떨면서 사는 것
울 엄마, 올해도
빨간 다라이 하나 가득 못 다 했던 말들 집어넣고
얼기 전에 현명하게 숨죽여 버린 배추들을
자식처럼 속속들이 어루만지고 계신다
※ 어머니 / 이제향
어머니의 손이 간 건
뭐든지 다 굽었다.
콩 심은 논두렁도
돌부리 파내던 호미도
깨진 바가지 손잡이도
바늘귀 헤매던 무명실도
축 처진 누렁이 꼬리도
대문 앞 대추나무도
이제 함께 따라가야 하는
저 상여소리도
어머니를 닮은 것은은
뭐든지 다 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