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역풍님의 좋은견해와 짜임새있는 글을읽고 이렇게 오랜만에 글을쓰게끔 동기부여를 해주신점에대해 감사함을 전하며 자신의 안위만을 위함이된 촉나라의 초주의 명예를 조금이라도 되살려 보고져 몇자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토론하기에 앞서 서로 조금이라도 알고져 저는 삼천에서 촉한의장령(원검)의 아디로 활동하고 있음을 소개합니다.
1.
황건적 난의 기본목적은 예농과 빈농이 없어지는것이었습니다. 대지주들의 횡포를 중앙에서 제어하지 못하는 형국이었습니다. 이는 삼국지의 각군웅들의 전쟁이기 이전에 안보이는 이들과의 전쟁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전쟁의 성패도 이들의 포섭과 항복이 형태의 일부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유비와 아울러 조조와 손권도 나라를 살리려는 명분또한 도사린것입니다.
백명이 넘는 자녀를 두었던 줄기아래 수많은 줄기와 수천 수만의 가지아래 한의 종친인 유비만이 모두 진리이자 옳은것만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조조와 손권은 후세에도 역적으로만 치부되었을겁니다. 단지 유비는 이들보다 보다 분명한 명분이 있었던겁니다. 따라서 이들도 명분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반세기 넘도록 전쟁을치룬 백성들이 진정으로 끝까지 원한 것은 토지제도,정치개혁이었습니다.
물론 논리정연하게 적으신 내용또한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오랜전투와 열약한 환경속에서 계속적인 패전과 깊이 파고든 정치적부패라는 시대상황이 한의 전통성을 끝까지 이어간 유비와 검각에서 끝까지 맞서싸운 강유,요화,장익,동궐의 절개가 참으로 안타깝지만 초주의 진언은 이미 넘어간 어려운 촉상황을 상세히 말해줍니다.
아울러 초주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며 상황을 짚어보겠습니다.
물론 이시각은 저와 정사의 시각입니다.
2.
초주는 자가 윤남이고 파서군 서충국 사람으로 상서를 배웠고 아울러 각종경전 및 도위(신비한 예언서)에도 정통했다고 하며, 주와 군에서 그를 초빙하려했지만 그러한 욕심이 없어서 모두 응하지 않았으며 주에서는 결국 그의 집을 직접 찾아가 사우종사라는 직책을 임명하기까지 합니다.
경전을 통독할대는 흔연히 미소지으며 잠자는 일과 먹는일까지 잊었을 정도였습니다.
또한 육경을 정심하여 연구했으며 편지쓰는데 탁월했으며 천문에 매우 밝았다고 나와있습니다. 또한 풍모는 소박하였으며 식견을 안에 감추고 있었고 명빈한 두뇌의 소유자였다는 찬사를 정사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성품,풍모,두뇌,안목,천문...어느하나 부족한부분없는 아주 훌륭한 평입니다. 정사에서 이만한 찬사만 보낸인물도 많지 않습니다.
이는 삼국지의 저자 진수의 스승이기도 한 부분 때문일까요...
말씀하신 부부중 중점을두시는 부분은 정사에 “정치규율에 차이가 없으면 큰나라가 작은나라를 먹을수도 있는데 이는 자연적이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삼국이 이뤄지기까진 결국 약한세력은 멸망한 자연적 습리를 말한것입니다. 당연한 원리입니다. 이것으로 불충과 자신의 안위를 이을수는 없는것이며 백성을 잣대로 핑계를 대었다고도 연결할수 없다고 봅니다.
3.
상황설명.
경요 6년(263) 겨울 위의 대장군 등애가 막힘없는 기세로 진군을 합니다. 이때 촉나라에선 도착하지 못할것으로보고 성을 수비하기위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위의 정예병을 이끈 대장군 등애는 결국 거침없이 성도까지 다다릅니다. 성도는 삼국지 게임에서도 접해 보았지만 촉의 중심지이자 후방의 남만지역을 두면 촉의 마지막 요충지이기도 합니다.
음평까지 다다랐을때 백성들이 동료하며 산과들로 달아났으며 이를 막을수 없었다고 되어있습니다. 검각일대에 대부분의 병력이 위의 대군에 맞서 싸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선은 신하들과 상의했지만 어느누구도 계책을 내지 못했습니다.
단지 A 남중으로 도주하자는 계책과
B 오나라로 도주하자는 계책이었습니다.
어디를 봐도 도주하는것외엔 방도가 없었습니다.
이설명은 아무 방비도 안되고 준비도 안된 적은병력으로 대항해서 이겨낼수도있다는 원칙을 일부 무마시키기위한 설명을 드린것입니다. 혹 그렇게 극한상황이 아닌데 항복한 것 아니냐는 반문이 일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등애의 속공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4.
이제 초주의 진언외에 두가지 방법을 따라보겠습니다.
이중 오나라로 도주하지 못하는 이유중엔 초주의 진심어린 충성심이 엿보입니다.
A 남중으로 도주하자!
초주는 이를 불안한 계책이라 하였습니다.
이유는...
첫재로 남만은 만족이 거주하는 땅으로 평상시 조정을위해 세금의 바친일도 없고 오히려 여러번 모반을 하였으며 승상 제갈량이 남정후 세금을 납부하기도 했으나 이로부터 원수가되어 국가를 해롭게 하는 사람으로 생각되며 조정이 곤경에처해 급박한 상황으로 의지하면 반드시 또 모반이 있을것인것이란 점입니다.
둘째로 위의 군대가 내려오는 목적이 분명 촉만을 취하려함이 아닌 이곳까지도 추격할것일꺼란 것입니다.
세째로 설령 남방에 도착하드라도 밖으로는 적군을 막아야하고 안으로는 의복,수레등의 물자를 공급해야하는데 경비는 확대될것이고 이를 다른곳에서 얻을수 없다면 자연스레 만족들의 물자를 소모시키게 되면 모반은 더 빠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네째로 옛날 왕랑이 한단을 근거로 제호를 참칭하고 당시 신도에 있던 세조가 왕랑의 위협을 두려워해 관중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비융이 명공께서 서쪽으로 간다면 한단성의 백성들은 부모를 버리고 성주를 배반하며 천리 저쪽으로 보낸 것을 수긍하지 못할것이며 도망과 배반은 필연적이라고 간언하여 세조는 비융의 간언을 듣게 됩니다.
이렇게 자세하고 정확한 내용을 근거로 삼습니다. 모반을 일삼았으며 오히려 원수가된듯한 남만에 촉의 운명을 맞기자는 것 또한 분명히 옳지 못한 책략으로 봅니다. 거기에다 위의 전쟁 진행방향과 동일함으로 좋은 계책이 될 수없음을 자세히 보여줍니다.
B 오에게로 도주하자!
결국 오에게 항복하는것입니다. 제가 보드라도 초주가 이 진언을 했다면 자신을 위한 진언이었을거라고 볼수도 있습니다.
정사에선 “위나라는 오나라를 병탄할수 있어도 오나라는 위나라를 병탄할수 없음은 분명함으로 똑같은 신하가 된다면 한번의 치욕만을 남길 위에 항복하는게 옳은 일이라고 합니다. 오에 항복하게 되면 곧 오는 위에 항복하게 되니 두 번의 치욕은 절대 남길수 없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오에게로 항복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
또한 정사엔 “유선은 결국 초주의 건의를 따랐다. 유선이 근심이 없고, 한나라의 백성들의 의지할곳을 얻은 것은 모두 초주의 계책을 따랐기 때문이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는 분명 3자의 입장이기도 합니다. 이대목에서도 느껴지지만 초주의 계책을 부정적으로만 보기 어렵습니다.
5.
이후의 초주~
초주는 촉나라를 보존한 공로가 있어서 양성정후로 봉해집니다. 위에선 많은 이득이기 이전에 같은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여러 인재들과 백성들을 살리고 보다 더 피해없이 합처질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초주는 일찍이부터 파서에서 인재를 등급대로 추천하는 관직에 인물을 평가하는 능력이 탁월하여 이러한 일을 했었는데 위에서도 부여받게 됩니다. 위에 항복한 얼마후 265년 큰질병을 앓게되고 269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때 직위가 산기상시가 됩니다.
정사엔 266년 기도위에 임명하려했으나 초주는 공로가 없는데 봉토를 받았으므로 작위와 봉토를 돌려주려고까지 합니다. 이렇게 작위와 봉토를 돌려주려는 인물이 몇이나 되었을까요...
후에 저술하거나 편찬한 것으로 [법훈],[오경로],[고사고]등이 있으며 초주의 세아들도 학업을 좋아했으며 충성과 질박함을 행동의 기준으로 삼았다고 되어 있으며 석현의 현령, 동궁세마로 승진시키려 불렀지만 취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벼슬을 뿌리친 아버지와 그대로 닮은 꼴을 정사에서 그대로 각인시켜 주는듯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인물을 간혹 어떤이는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라고 일삼는 무뇌한도 보이기도 하지만 어찌 이러한 인물에 대해 자세히 알고 할수 있는 말이겠습니까...
초주의 계책은 촉에서 나온 3계책중 하나였으며 이를 불충의와 개인의 욕망에만 연계지을수 없는것입니다. 어떤 것이 진정으로 옳은 계책이란 말인가...진정으로...또한 무엇을 위함인지요.
초주가 자신을 위함이 앞섰는지 나라와 백성을 위함을 앞섰는지 후대에와서 인물평하기 쉽지 않은것이며 또한 오랜 세월간 전쟁을 지켜본 인물중 한명으로서 나라와 백성을 위함은 분명 있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또한 처음에 주와 군에서 직책을 주려는것을 사양하는 대목이나 병으로 앓아서 작위와 봉토를 되려 국가에 돌려주려는 모습에 촉멸망시 개인의 안위에 직결시키기엔 너무나 맞지 않게 보여지며 안쓰럽게까지 보여집니다.
저또한 초주는 개인의 안위와 가족도 생각했다고 단언합니다. 하지만 그에겐 분명 충심과 백성을 향한 마음도 귓들여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란 기본 됨됨이가 있는것입니다. 초주의 행동모양새만 본다면 오해할수 있습니다. 친구간에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하물며 먼 옛날 선인들이 극한 상황에서 행한 일들을 우리가 어떻게 헤아릴수 있겠습니까...허나 초주의 성품과 소박함, 나라를위해 구국론을 세운 충심은 결코 없었던 내용이 아닙니다.
첫댓글 삼겜클에서 했던 무위영 훈련을 다시 재개해야 하나봅니다.
사람이란 기본 됨됨이가 있는것입니다. 초주의 행동모양새만 본다면 오해할수 있습니다. 친구간에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하물며 먼 옛날 선인들이 극한 상황에서 행한 일들을 우리가 어떻게 헤아릴수 있겠습니까...허나 초주의 성품과 소박함, 나라를위해 구국론을 세운 충심은 결코 없었던 내용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