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이 한국에서 가장 큰 그림인가."
교육청 입구는 의외로 꼭꼭 숨어있었지만, 멀리서도 보이는 그림이 이정표가 되어 주었습니다.
여러분, 저것이 한국에서 가장 큰 그림입니다. 꽤나 멀리서 바라보는데도 시야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네요. 여기는 수원의 경기도교육청입니다.
국내 최대 전폭을 자랑하는 이 그림은 건물 바로 앞에서 올려다 보면 더욱 가관입니다. 그럼 이 그림에 숨겨진 비밀을 하나씩 벗겨보죠. 먼저 교육청이 공식적으로 밝힌 수치적 자료입니다.
가로길이 35미터, 세로길이가 20미터입니다. 참고로 그림을 걸어놓은 '캔버스'는 교육청 본청의 정보기록원으로 높이 31.15미터, 길이 67.625미터의 건물 외벽 한 쪽을 통째로 전세냈습니다.
분명 이 그림, 그냥 통째로 그려낸 것은 아니고 사진기의 픽셀 마냥 부분부분 작업 후 붙였을 텐데요. 자세히 들여다보니 역시나, 이어붙인 흔적이 있습니다. 그럼 대체 몇 명이서 이 그림을 며칠에 걸쳐 만든 걸까요.
이 그림에 투입된 인원은 자그마치 4,260명입니다.
도내 초·중·고 학생 4,000명, 학부모 160명, 교사 100명이 손길을 모은 역작이죠.
이쯤 하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지는군요. 누가 이 대형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그 의도는 무엇이며, 그리고 이만한 작품을 만들어가는 동안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사용될 것인지 말입니다.
네, 그래서 직접 만나봤습니다.
경기도교육청 본청 학생학부모지원과의 심상해 장학사입니다. 바로 이 사람이 바로 한국에서 가장 큰 그림과 4,000명이 넘는 제작인원을 모은 이번 프로젝트의 기획자지요.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보도자료나 선행 기사에선 다뤄지지 않은 깊숙한 곳의 비밀들을 하나하나 들어봤습니다.
"이 그림의 메시지가 무엇인가요."
"통일을 염원하는 그림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 그리고 남산타워라든가 백두산 천지 등 한반도의 남북한을 대표하는 곳이 나와 있죠. 마침 작품을 제작하던 때가 6월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정확하게 제작인원과 소요기간을 정리해주신다면?"
"5일 동안 학생 4,000명, 학부모님 160명, 교사 100명이 25개 지역에서 나뉘어 작업했습니다. 학생들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하게 모였고, 학부모님은 접수지원을 받아 모셨습니다. 교사들은 작업뿐 아니라 학생들을 통솔하는 역할까지 수행해 주었습니다."
"전체 규모는 잘 알겠고, 픽셀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부분의 여러 장을 연결해 전체가 이뤄진 건데 그걸 이루는 단위의 크기가 궁금하네요. 그리고 분할 작업을 어떻게 했는지도요."
"가로 5미터 세로 1미터짜리가 기본 단위구요. 그걸 140장 엮어서 만든 겁니다. 그리고 한 팀당 그것을 다섯 장씩 붙여서 가로 세로 5미터의 정사각형을 만들었죠. 그렇게 도내 25개 지역 교육청에서 나눠서 했으니까, 각 지역마다 최소 정사각형 하나씩은 보내준 셈이죠. 그걸 수원실내체육관에서 교사들이 이어붙여 최종판을 만들었습니다."
"작업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보관이요. 유화가 아니라 아크릴 물감이다 보니 더운 날씨에 짝짝 달라붙는 상황이 벌어지더라고요."
"혹시 작업할 인원 선별할 때 미술 쪽을 잘하는 학생이나 학부모님, 교사들을 찾으셨나요?"
"전혀 아닙니다. (웃음) 말 그대로 일반인, 보통사람들이었어요. 다만 세밀한 부분, 예를 들어 타워 같은 부분은 안양예고 학생들이라든가 미술 특화생들이 전담해줬죠. 전체적으로는 일반 학교 학생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 외엔 그림 아웃라인(밑그림)을 미술교사들이 담당한 정도?"
"사실 작업을 원활하게 하려면 업체에 맡기는 편이 편하셨을 텐데."
"그럼 의미가 없어요."
"의미라고 하면, 이번 안을 기획한 의도인가요."
"그렇습니다. 제가 이번 그림의 기획안을 낸 건 다름 아닌 교육공동체의 참여 의미에 있습니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 이 셋이 한 데 모여 작품을 만들어간다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죠."
140장의 작은 그림이 모여 만들어진 그림. 그러니 1장당 25명이 작업한 셈입니다. 5월 말에 기안을 내 6월에 작업이 시작됐고, 각 지역에서 만들어진 부분 그림은 수원실내체육관에서 맞춤작업을 거쳐 6월말 완성됐습니다. 심 장학사 말에 따르면 체육관의 거의 모든 부분을 다 뒤덮었다고 하니 얼마나 큰 그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심상해 장학사는 자신의 안건이 결재되는 과정에선 어려움이나 반대가 없었느냐는 질문에 "그런 거 없이 곧장 받아들여져 일사천리로 진행된 케이스"라고 말합니다. 허나 정작 작업이 진행될 때는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래서 현장을 담당하게 된 건 손일선 사무관이었다고요.
손 사무관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학생들이 그림 위에서 뛰노는 순간을 꼽았습니다. 실내체육관에서 자신들이 만들어낸 작품 위에서 정말 즐거워했다고 회고합니다. 반면 가장 어려웠던 것은 아이들 간식을 조달하던 순간이었다고요.
작품의 '원작자'도 알아봐야겠죠? 서예식 선생님(청명고 교감)을 비롯 5인이 작품의 원안을 맡았다고 합니다.
원하던 만큼의 퀄리티가 나왔냐는 질문에 기획자와 현장담당자는 "아쉬운 바는 있지만 이만하면 만족할 만큼 수준"이라고 흡족해 합니다. 무엇보다 심 장학사는 본래 원했던 궁극의 목적인 교육공동체 세 구성원의 협력이 이뤄졌다는 것에 만족합니다. 교실을 나와 도의 많은 친구들, 부모님들, 선생님들이 하나가 되는 순간은 아이들에게도 뜻깊은 추억과 공부로 남길 바랍니다.
그림은 오는 광복절까지 걸려 있습니다. 그림을 보고 싶으시다면 그 때까지 도 교육청으로 찾아오시면 되겠습니다.
16일엔 철거되어 다시 체육관에 보존된다는데요. 이후엔 어떻게 될까요. 우선 잡혀있는 일정은 해외 순회전시입니다. 10개월 후 런던으로 날아간다는군요. '내년이면 설마?' 하시는 분들, 맞습니다. 내년엔 올림픽이 있죠. 런던올림픽을 기념해 7월 주경기장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큰 그림을 전시하는 행사가 있을 예정인데 여기에 당당히 한국대표로 출품된다는군요.
그에 앞서 일본에서도 이 그림은 존재감을 알리게 됩니다. 9월 16일 일본 히로시마 평화공원에서 이것의 가로 세로 5미터의 축소판이 공개된다는군요. 어스아이덴티티 프로젝트라는 비영리 환경단체가 주관하는 격년제 행사인 '세계에서 가장 큰 그림 그리기'에 작품이 나갑니다. 이는 120개국이 참여하는 행사로 각국에서 모인 큰 그림들을 한 데 엮어 누구도 상상 못한 전혀 다른 커다란 그림을 만들게 됩니다.
그럼 그 외에 우리나라에서는 별도로 소개될 계획은 없는 걸까요. 아직은 없다는군요. 하지만 여차하면 언제든 나갈 수 있도록 보존하기로 했습니다.
심상해 장학사에겐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이번엔 세계에서 가장 큰 그림을 기획했다고요. 그는 "이미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결재가 내려졌다"며 "내년쯤 세계에서 가장 큰 그림을 만들어보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림 선포식 때도 참석한 바 있는 김 교육감의 마음이 움직였나 보네요. 내년엔 기네스북 등재 같은 소식도 기다려 볼 수 있는 건가요?
글·사진·영상 권근택기자
사진자료 경기도교육청
첫댓글 가장 큰 그림에 그런 귀한 사연이 숨겨져 있군요. 런던 전시회 성공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