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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의 태양 (Utomlyonnye solntsem, 1994)
드라마 / Russian Federation, 프랑스
감독 : 니키타 미할코프
출연 : 올렉 멘쉬코프(드미트리), 니키타 미할코프(세르게이), 마라 바샤로프,
잉게보그 다프카이나체, 나데즈다 미할코프
작품해설
태양이 작렬하던 어느 날. 러시아의 자연을 잡아낸 영상이 아름답고, 음악이 애절하고 섬세하며, 배우들의 연기가 깊이 있다. 러시아 혁명과 현실에 대한 경계와 반성의 시선이 엿보인다. 그러나 혁명에 대한 성찰, 자체가 목적이었다기보다는 극적인 소재의 하나로 차용되었다는 인상이 강하다.
줄거리
음악가, 작가, 배우 등 특권 계층 예술가들의 별장이 모여있는 마을에 드미트리라는 청년이 10년만에 마로샤의 집을 방문한다. 한 때 애인이었고 오랜 만에 만난 이 둘은 과거의 감정이 되살아나지만 표현하지는 못한다. 마로샤는 이미 혁명의 영웅인 세르게이와 결혼하여 나디아라는 어린 딸까지 낳았기 때문이다.
마로샤는 드리트리의 예기치 않은 방문으로 동요하기 시작하고 세르게이는 드미트리가 옛 사랑의 한을 풀기 위해 찾아왔다고 추측한다. 그러나 10년간 행적이 묘연했던 드미트리의 정체는 전혀 다른 것이었고 그들이 상상하던 것과 전혀 다른 목적으로 이 곳에 찾아왔음이 밝혀지는데..
수상내역
[아카데미 시상식] 1995년 외국어영화상 수상
[깐느 영화제] 1994년 니키타 미할코프 심사위원 대상 수상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Zamri Umri Voskresni / Don't Move, Die And Rise Again!, 1990)
소련(구) / 1998.09.05 / 드라마 / 105분
감독 : Vitali Kanevsky
출연 : 디나라 드루카로바, 파블 나자로브, Yelena Popova, Valeri Ivchenko
1947년 극동의 탄광도시 스촨. 이곳에서 열두살 먹은 소년 발레르카는 옛 소련 지식인의 유배지이자 일본군 죄수와 포로들이 사는 강제노동막사에서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엄마 니나 먹고 살려고 매춘을 하지만 아직 아이인 발레르카는 그 와중에도 썰매를 사기 위해 돈을 모은다. 그러나 시장에서 차를 팔아 모은 돈으로 힘들게 산 썰매를 누군가가 훔쳐간다. 다음날 발레르카는 여자친구 갈리아의 도움으로 겐카의 집에 들어가 썰매를 훔쳐온다. 며칠 후 발레르카는 집쪽 방향으로 가는 화물열차에 올라탔다가 철도에서 일하는 겐카의 아버지에게 들켜 실컷 두들겨맞는다. 설상가상으로 발레르카는 학교 화장실에 이스트를 뿌린 일이 들통나 퇴학당한다. 복수심으로 철도의 선로를 바꾸는 장난을 하던 발레르카는 예기치 않게 열차 전복사고를 일으키고 경찰을 피해 할머니댁으로 도망친다. 그곳에서 발레르카는 사기꾼 갱단에 합세해 일본 보석상을 턴다. 발레르카 걱정에 물어물어 찾아온 갈리아를 만난 발레르카는 행복한 귀향길에 오르는데 배신을 두려워한 갱단이 두 아이를 쫓는다.
*해설
감독 데뷔 당시 53살의 신인 감독이었던 비탈리 카네브스키가 연출한 전설적인 영화. 소문으로 들어온 미지의 영화가 신화적일 때, 직접 접하면 기분이 참 묘해지는데,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는 보는 이에 따라서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즉 극적인 재미를 찾는다거나 반전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작해야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일본군들의 슬픈 노래가 인상적이고, 유형지의 풍경이 을씨년스럽다는 것 정도. 그런 스탈린 치하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한 문제소년이 성장하면서 순수한 소녀를 만나 사랑인지도 모르고 사랑한다는 단순한 스토리니까 말이다. 결코 유년 시절은 아름답지 않고 우울하며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런 스토리와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도 깃들어 있는 순수한 지속의 재현과 놀랍도록 풋풋한 사랑의 이미지를 잊지 못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지독한 리얼리즘의 시선은 당대의 회색빛 분위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배우들도 마치 실제인 양 실감나는 연기로 어필하고 있다. 특히 문제아 발레르카 역의 파벨 나자로프는 실제로도 거리의 불량 소년이었고, 이 영화 찍고난 후에도 감옥을 들락거린 이력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감독 비탈리 카네브스키는 구소련에서 박대받다가 이 영화가 '제 43회 칸느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수상하자 일약 재평가 받으며 새로운 영화에 속속 착수했다.
전함 포템킨 (Bronenosets Potemkin / The Battleship Potemkin, 1925)
소련(구) / 드라마,전쟁 / 75분
감독 : 세르게이 M. 에이젠슈타인
출연 : I. 보브로브, 비트리스 비톨디, N. 폴타브세바, 줄리아 아인스타인
1905년, 제정 러시아 시대. 전함 포템킨의 수병들은 장교들의 학대와 열약한 근무 조건에 불만을 가지게 된다. 썩은 고기를 식량으로 사용한 사실은 그들의 반란의 기폭제로 작용한다. 수병을 없애버리라는 장교의 명령에 포병들은 거역하고 수병과 포병은 힘을 합쳐 동지가 된다. 전함을 완전히 장악한 이들은 승리감에 젖어 흑해 오뎃사 항구로 향하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시민들은 수병들을 환영하러 부두로 나온다. 한편 짜르의 명령을 받은 정예 코자크 군대가 출동하여 그들에 반항하는 시민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가한다. 전함 포템킨에 탄 수병들을 환영하려 했던 시민들은 갑작스런 군대에 의해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간다. 수 많은 희생자가 나지만, 분노한 시민들은 수병들과 합세하여 봉기, 짜르의 군대와 싸우며 혁명의 대열에 선다.
* 해설
전세계 영화평론가들에 의해서 항상 가장 위대한 영화로 손꼽혀 오는 고전 최고의 명작이다. 이 영화가 무성 영화이고 흑백 영화이면서도 아직도 그러한 세계 최고의 위치를 누릴 수 있는 까닭은 '몽타쥬'라고 불리우는 편집 기법과 화면 자체의 그래픽이 지니고 있는 놀라운 힘 때문이다. 여기에다 거의 다큐멘타리에 가까운 뛰어난 촬영 기법과 픽션이 훌륭하게 어우러져 역사를 재현하고 있다는 것.
오데사 계단에서의 민중학살 장면이나 포템킨호에서 함포사격하는 장면과 돌로 조각한 사자상의 교차편집은 영화사상 가장 빛나는 '몽타주 기법'으로 간주된다. 특히 브라이언 드팔마 감독의 <언터처블>의 열차역 사내에서 유모차가 굴러내려가는 장면을 기억하는 영화팬들은 그 장면이 바로 이 영화의 오데사 계단 장면을 차용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배경은 1905년 제정 러시아 시대이고, 당시 제정 러시아 함대의 기함이던 전함 포템킨호의 수병들의 반란과 그 수병들에게 공감하여 시위를 일으킨 민중들을 짜르 군대가 학살한 유명한 '오뎃사 학살 사건'이 주요 내용이다. 이런 내용 이외에 요즘의 영화에서는 보편화되어버린 '몽타쥬'라는 편집 기법을 바로 이 에이젠스타인 감독에 의해 첫 선을 보였고 완성되었다는 점에서 영화사에 획을 긋는 작품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에이젠스타인은 바로 이러한 점과 그의 영화에 대한 끝없는 탐구열로 인해 영화학도라면 반드시 거치고 연구해야할 중요 감독으로 지명된다. 에이젠스타인은 한때는 소련 최고의 영예인 문화 영웅 훈장까지도 받았지만 스탈린 치하에서는 그의 영화 이론 때문에 많은 박해를 받기도 한 감독이다. 한동안 국내에서도 그의 이론 및 작품이 금지되기도 했다. 또 이 영화는 영국에서도 1952년에 가서 정치적 금지가 풀림에 따라 상영되었다.
에이젠슈쩨인, 푸도푸킨, 도브첸코 등의 극영화와 메르토프의 실험적 다큐멘타리가 속속 발표되면서 1920년대의 소련 영화는 그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 시기에는 대중들이 영화라는 새로운 예술에 열광하며 이들 젊은 작가들에게 지지를 보내는 한편, 부르조아 예술에 대항하는 사회주의적 예술양식으로써 영화의 본보기를 찾으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1905년 일어났던 제1차 혁명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영화는, 불과 27세였던 에이젠 슈쩨인이, 당시 소련연방 중앙 집행위원회의 '1905년 혁명기념위원회' 아가쟈노바 슈트코의 시나리오(1905년) 연출을 맡게 됨으로써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해 7월에 <1905년>을 포템킨호의 봉기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전환, 각색하여 만든 것이 바로 <전함 포템킨>이다. 이 영화는 한 사건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드라마이며 연극 구조처럼 보이는 5막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영화의 절정은 오뎃사 계단의 시민 학살 장면이다. 계단 위에서 반란군에 환호하는 시민들, 그러나 돌연 짜르의 진압군이 나타나고, 시민들은 혼비백산하여 흐트러진다. 일렬로 다가오는 진압군과 도망가는 시민들을 에이젠슈쩨인은 그 유명한 몽타쥬 기법으로 대비시켰다. 에이젠 슈쩨인은 영화의 리얼리티를 위해 직업 배우의 연기가 아닌 진짜 수병들과 오뎃사 시민들을 영화에 출연시켜 또다른 생동감을 준다.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 (Moscow Does Not Believe In Tears, 1980)
소련(구) / 1988.12.31 / 코메디,드라마,로맨스(멜로) / 140분
감독 : 블라디미르 멘쇼프
출연 : 알렉세이 바탈로브, 이리나 무라브요바, 베라 알렌토바
세 명의 시골 아가씨가 청춘의 꿈을 걸고 모스크바에 상경하여 도시생활에 익숙해지려는 그녀들의 하루하루는 자본주의의 여성과 다를 것이 없다. 여주인공 카테리나는 전문학교의 자격시험에 실패, 내년엔 합격하려고 노력하는 모범적 여공이다. 대학교수인 큰 아버지가 바캉스간 사이 큰 집을 지키게 된 그녀는 단짝인 류드미라와 안토니라 두사람과 함께 상류사회의 아가씨들을 행사하며 파티를 연다. 이 날 카테리나는 TV 카메라 맨 루돌프를 만나 사랑에 빠져 육체 교섭을 갖고, 대학 교수의 딸로 알고 결혼을 약속한 남자는 어느 날 우수한 여공을 취재하러 공장을 찾다가 그 우수한 여공은 다름 아닌 카테리나임을 알고는 실망하고 그의 어머니가 나타나 자기 아들은 엘리트 딸과 결혼해야한다고 큰 소리친다. 카테리나는 이때 임신하고 있었지만 그 남자와는 깨끗이 헤어진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나 미혼모는 공장장으로 승진한다. 그녀는 처자있는 남자와 정당히 바람도 피우나 옛날 자기를 버린 여자의 출세을 알고 다시 접근하여는 치사한 남자의 속셈을 알고 그녀는 단호히 고개를 돌린다. 그녀는 다시 기차칸에서 사귄 중년 숙년 기계공 고샤를 만나 그의 기묘한 매력에 사로잡혀 사랑에 빠지는데, 루돌프가 나타나 그녀의 높은 신분을 알게 된 고샤는 그만 그녀의 곁을 떠난다. 하지만 옛 친구의 남편에게 이끌려 돌아온 고샤와 카테리나는 감격적인 화해를 이룬다
*해설
68년의 <전쟁과 평화>, 75년 <데루스 우자라>에 이은 또 하나의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소련 작품으로 80년 소련 본국에서 5개월간 69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이제까지의 소련 영화의 최고의 흥행작이다. 노동자의 단결이나 파시즘 타도, 고산체제 확립 따위가 아닌 멜로 드라마로서, 각기 다른 성격의 세 여인의 20년에 걸친 사랑, 우정, 슬픔 등을 소련 사회 배경의 변화와 함께 그린 페이소스 짙은 양질의 인생극이다.
인터 걸 (Interdevochka / Intergirl, 1989)
소련(구),스웨덴 / 1990.05.18 / 드라마,로맨스(멜로) / 150분
감독 : Pyotr Todorovsky
출연 : 옐레나 야코블레바, 토마스 로스티올라, 아나스타샤 네몰리야예바
타냐(엘레나 야코블라바)는 낮에는 간호원으로 일하는 여성이다. 하지만 밤이면 레닌그라드 국영 관광 호텔의 로비에서 만난 외국인들을 상대로 매춘 행위를 하는 소위 '인터 걸'이다. 아름다운 외모의 그녀는 대학까지 나온 인텔리 여성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현실은 그런 여성까지도 바닥까지 밀어넣는다. "사회주의 러시아에는 매춘이 없다"고 당국은 선언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어느날 매매춘 과정에서 만난 스웨덴 남자 에드워드(토마스 라우스티올라)로부터 청혼을 받는다.
*해설
개혁과 개방으로 부풀어 있는 소련인들에게 '인생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영화. 낮에는 간호원, 밤에는 외국인들에게 몸을 파는 소위 인터걸. 간호원이던 한 인터걸이 스웨덴 남자의 청혼을 받고 출국해 결혼 생활을 하지만 이방인의 소외감, 조국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장대 같은 빗줄기를 가르며 소련으로 되돌아온다.
세간에 알려졌던 것처럼 질펀한 소련판 매춘 영화가 아니다. 여주인공의 무표정한 얼굴과 흔들리는 침대만으로 보여주는 딱 한번의 정사 장면은 생존을 위한 고된 노동임을 보여 주며, 건조한 러시아의 현실을 대변한다. 러시아 민속 음악의 선율이 매우 인상적이다.
안드레이 루블레프 (Andrei Rublev, 1969)
소련(구) / 185분
감독 :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출연 : Anatoli Solonitsyn, Ivan Lapikov, 니콜라이 그린코
20세기 최고의 영화감독이자 영상 시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초기 걸작. 침략 전쟁, 기아, 질병에 고통받는 러시아 민중의 삶을 배경으로 '예술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는 이 영화는 타르코프스키의 작품 중 가장 '역사'에 가깝게 다가서고 있다. 여러 개의 에피소드들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프레스코'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마치 거대한 프레스코 벽화를 보는 듯한 웅장한 느낌을 준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폭주 기관차>의 감독 콘찰로프스키와 사석에서 대화하던 중에 신비의 베일에 싸여있던 15세기의 성상 화가 루블레프에 매력을 느껴 영화화할 것을 결심했다고 전한다. 칸느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
* 해설
20세기 영화의 현자이자 거장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작품. 흔히 이 감독의 영화가 느리고 지루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데, 이 초기작의 역동적이며 절규하듯 강렬한 영상을 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가 당대에 존재하는 자신의 그림이 무엇에 쓰여야 하겠는가를 묻고, 러시아 민중의 가난과 절망을 목격하며 예술의 가치를 찾아가는 진지한 탐색은 감동적이다. 또한 흑백이지만, 카메라의 움직임은 장대한 러시아 땅과 툰드라, 대자연 그리고 이교도들의 발랄한 삶과 농민들의 유희를 정확하게 잡아낸다. 중세 아이콘을 다루는 솜씨는 비범하기 짝이 없으며, 힘이 넘친다. 과연 이런 영상언어가 <노스탤지어>, <희생>의 감독이 구사한 게 맞나 눈을 의심할 정도다. 그림에 관심이 있고, 그림을 통해 이 시대에 무엇을 할 것인가, 란 질문을 던지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라. 또한 영화가 할 수 있는 가능성과 힘을 확인하고 싶다면, 또 이 영화를 보라.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