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스터(바다가재)
바로크 풍의 화려한 식기 세트와 은은한 촛불, 그리고 한 잔의 레드 와인. 랍스터(바다가재)요리에 어울리는 풍경이다.
랍스터는 연인을 위한 요리다.
우아한 분위기와 사랑의 감정이 곁들여야 제 맛이 나는 음식이다.
그래서 일부 문화권에서는 랍스터를 ‘사랑의 묘약’으로 여긴다.
남성의 파워를 키워주고 여성의 성적 매력을 높여주는 ‘기적의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초기 현대 유럽의 식품(Food in Early Modern Europe)’이라는 책에서는 랍스터가 연인들의 성적 흥분을 유발하는 ‘사랑의 미약(aphrodisiac)’이었다고 기록해 놓았다.
랍스터의 식품 성분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혹은 랍스터 요리를 먹는 고급 레스토랑의 우아한 분위기 때문에 사랑의 감정이 절로 싹텄을 수도 있겠다. 랍스터가 고급 요리로 사랑 받기 시작한 때는 대략 19세기 무렵이라고 한다. 물론 이전에도 유럽에서는 랍스터를 즐겨 먹었다. 1세기 무렵 로마에서 발간된 요리책에는 랍스터 조리법과 어울리는 와인을 소개한 기록이 있다.
15세기 이후에는 이탈리아, 영국 등등 유럽 곳곳에서 랍스터 요리법에 관한 문헌이 발견된다. 그렇지만 고급 요리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부터였고 유럽과 달리 미국에서는 완전히 천덕꾸러기 식품으로 박대를 받았다. 미국의 초기 개척 시대, 즉 영국의 식민지 시절이었던 무렵, 매서츠세츠의 한 농장에서 하인들이 파업을 했다.
이유는 식사 때문이었다.
파업을 끝내며 농장 주인과 하인 대표가 최종 계약을 체결했다.
“랍스터를 일주일에 3번 이상 식탁에 올리지 않는다”
싸구려 해산물인 랍스터를 거의 매일 먹어야 했기 때문에 하인들이 파업을 일으켰던 것이다.
랍스터가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주로 가난한 집 어린 아이들과 하인들, 그리고 죄수들의 식탁에 랍스터가 올랐다. 미국에서는 지금 메인(Maine)주가 랍스터의 산지로 유명하지만 당시에는 매서츄세츠에서 랍스터가 많이 잡혔던 것 같다.
영국의 식민지 시절, 미국의 동부 지방에서는 랍스터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고 한다. 해변가에 나가면 거저주워 올릴 수 있는 해산물이었다. 너무 흔하다 보니까 원주민이었던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랍스터를 밭에 비료로 사용했고 집게발은 잘라 내 낚시 바늘로 쓰기도 했다. 존 마리아니라는 사람이 쓴 미국의 식품과 음료 백과사전(Encyclopedia of American Food and Drink)라는 책에는 매서츠세츠 주지사가 유럽에서 갓 건너 온 이민자들에게 랍스터 때문에 사과를 하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1622년 플라이머스 플랜테이션의 농장주였던 윌리엄 브래드포드 주지사는 농장에서 일하는 정착민들에게 “여러분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식사는 따뜻한 빵 대신에 물 한잔과 랍스터 밖에 없다”며 유감의 뜻을 표시한다. 이처럼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랍스터가 19세기 들어 교통이 발달하면서 미국 전 지역으로 퍼져 나가면서 고급 요리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랍스터가 지천으로 널려 있던 메인 주에서는 1840년 랍스터 산업이 발달하면서 ‘바다가재의 고장’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지금은 전 세계에서 즐겨 먹는 고급요리가 됐다. 중국어로 랍스터, 즉 바다가재는 용새우(龍蝦)라고 표기한다. 정말 가재가 용이 됐다.
첫댓글 하찮은 가재가 정말 최고의 식재료가 되었는데 그것을 더뷰에서 프로모션으로 여러분께 선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