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명지대를 합격한 6기 손화정입니다.
(모든 학생이 이렇게 시작을 해서 저도 이렇게 시작해 봅니다.)
합격 하고 삼주가 지난 거 같아요. 이런 글은 딱히 솜씨가 없어서 잘 못 쓸 것 같다는 생각에 미루고, 어떻게 써야할까라는 생각에 더 미루고 하다 벌써 시간이 오래 지났습니다.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첫머리부터 대여섯 번 썼다 지웠다 반복하고 여기까지 썼습니다. 제 글이 두서가 없어도 이해해주세요.
문장을 처음 들어갔을 때가 생각나요. 1학년 겨울방학이었습니다. 학교 앞에서 나눠준 책자에 적힌 <서울권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말을 보고선 무작정 학원을 찾아갔습니다. 처음 학원을 찾아갔을 때는 허위광고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5-6등급이 서울권 갈 수 있다는 소리는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5-6등급이 딱 저였습니다. 대책없는 학생이었지요. 막연하게 내가 대학은 잘 갈 것이다 생각뿐인 내신도 좋지 않고 욕심은 많은 학생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학생의 노력은 생각하지도 않고 서울권 대학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건 2학년 5월이었습니다. 2학년 담임선생님께서는 학원의 책자를 믿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또 그런 학생이 있다고 해도 너가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나는 학원 안 가는 월요일에는 야자를 한다는 조건으로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게으른 학생이었기에 처음 다닐 때는 일주일에 세 번을 갔습니다. 세 번을 가서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시간 때우기 식으로 앉아 있다가 열시가 되면 자연스럽게 집에 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행동하고 다녔을까 하는 후회가 듭니다. 그렇게 해서 발전된 모습 없이 몇 달을 보냈습니다.
문지원 선생님께서 선배의 작품과 제 작품을 비교하며 차근차근 설명해 주실 때도 그땐, 솔직히 백퍼센트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더 좋은 비유와 더 좋은 표현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대전대에서 예선 통과를 2학년에서 저만 했습니다. 저도 의아했고 선생님들도 의아하셨고 동기학생들도 의아해했습니다. 저는 장려라도 받을 수 있다는 건방진 생각으로 본선에 참가했습니다. 당연한 결과로 상을 받지 못했지만 이때부터 상을 받아야겠다는 욕심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시를 쓰는 수행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쪽으로 소질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약간의 자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글을 쓰고 제가 정말 자만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띄어쓰기부터 시작해서 맞춤법까지 한 문장에 세개 이상은 지적받은 것 같습니다. 원장선생님께서는 삼개월 동안 띄어쓰기와 맞춤법만 고쳐도 많은 발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까지 띄어쓰기와 맞춤법을 많이 틀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가 명지대에 합격했습니다. 이번 년도에 대기번호가 있다고 해서 상향지원을 했습니다. 제 수상실적을 믿었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상의 이름이 등수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름으로 있기 때문에 수시 원서를 넣기 전에 등수를 따져봤더니 받은 상 중에 반은 일등이었습니다. 학원에서 쓴 시를 응용해서 쓴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문장 학원은 날마다 시 한 편씩을 완성해야 할 정도로 투철하게 지도하는 곳이었습니다. 문장학원 선생님들은 생각 하나에서부터 표현, 주제 어느 것 하나 손색이 있으면 바로 지적을 하며 가르쳐주셨습니다. 제가 쓴 시 어떤 것이든 대학 백일장이나 시제에 걸리지 않는 게 없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문장 선생님들 덕분에 상을 받을 수 있었고 그 수상실적으로 명지대에 당당히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명지대에 합격했다고 교무실에서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자 평소 저와 친분도 없던 선생님이 모두 축하하고 고생한다며 저를 칭찬해주셨습니다. 내신 성적으로 가자면 인 서울 대학이므로 삼등급은 돼야 갈 수 있는 대학이었으니까요. 지금 제 성적으로는 광주대, 광주여대, 호남대 등에 원서를 넣었어야 했는데 서울권 대학에 원서를 넣어서 당당히 합격하였습니다. 전국에 있는 백일장을 다니면서 학교에 못 나간다고 말하러 갈 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당당히 교무실을 들어갑니다. 저희 반에서 반장도 인 서울을 못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함께 학원에 다닌 하림이는 동국대에 실기로 붙었습니다. 하림이를 보며 수상실적이 아니라 실기로도 당당히 인 서울 대학에 합격할 수 있다는 것을 자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시를 잘 써서 상을 받았다고는 지금까지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못난 글을 봐주신 최금진 선생님과 문지원 선생님, 노양식 선생님이 함께 계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학원을 다니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문장학원을 다니기 전까지 한 학원을 3개월 이상 다닌 적이 없었습니다. 금방 실증을 느끼는 학생이었습니다. 학원에 처음 다닐 때도 어머니와 3개월까지 다녀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만둬라는 말을 하고 학원에 다녔습니다. 선생님들과 마찰도 있었고 마지막에 집안사정으로 인사도 없이 그만 둔 점이 아직도 마음에 걸립니다.
저는 성적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솔직히 아직도 명지대에 합격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합격자 조회를 할 때 다섯 번 이상 들어가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고 2때부터 3학년 까지 다른 학원이 아니라 문장학원을 다니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표현도 서툴고 내색을 많이 안 해서 그렇지 선생님들께 감사하는 마음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최금진 원장님과 문지원 부원장님, 노양식 선생님, 박세미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