샨시아 지방은 곡창지대로 유명한 지방이었다. 북쪽으로는 커다란 산맥이 있고 남쪽으로는 아름다운 프라이나강이 흐르고 있었다. 들에는 밀이 익어가고 있었다. 밀밭에는 추수를 하고 있는 농부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너무나도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또한, 클레온에게 있어서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슬픈 곳이기도 한곳이다. 하지만 클레온은 이 슬픔을 모두 잊어버리기로 했다. 오직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레이야에 대한 생각을 했다.
"멈추시오!"
샨시아 지방으로 들어가는 관문에 서있던 병사가 말을 타고 오던 클레온을 세웠다. 그리고 클레온에게 다가서는 입을 열었다.
"신분을 밝히십시오."
"네스타의 기사, 클레온 미드란이요."
클레온은 망토에 가려진 갑옷의 문장을 드러냈다. 병사는 고개를 숙이고 통과 신호를 보냈다. 클레온은 평야를 지나 인근의 도시로 향했다. 멀리서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포데른 시였다. 포데른 시는 샨시아 지방의 영주인 드베르그 샨시아 후작의 밑에 있는 쿠퍼 자작의 관할 구역이었다. 클레온은 자신의 수중에 남은 돈을 확인해 보았다. 수중의 돈은 50골드가 전부였다. 금화 50개라고는 하지만 그 정도면 10년은 놀고 먹고 살수 있을 정도의 큰돈이었다. 1골드면 평민이 석 달은 넉넉히 먹고 살수 있을 정도의 큰돈이니 말이다.
"가게라도 하나 차려야겠군."
클레온은 말에서 내려 말을 끌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허름해 보이는 주점 안으로 들어갔다. 주점과 여관을 겸하는 곳이었으나 겉모습과 같이 안은 파리만 날렸다.
"어서 오십시오."
주인은 갓만에 손님을 맞이하는지 뛰쳐나오듯이 클레온의 앞으로 왔다.
"당신이 이 가게의 주인입니까?"
"그렇습니다만..."
"이 가게를 제게 파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뭐, 돈만 넉넉히 주신다면야."
"얼마면 되겠습니까?"
주인의 표정은 금세 탐욕스럽게 변했다. 아마도 클레온이 세상모르는 철부지로 보였던 모양이다.
"10골드 어떻습니까?"
10골드란 말에 클레온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5골드."
"하하... 5골드라니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2층 짜리 건물인데다가... 이곳은 원래 땅값이 좀 비쌉니다."
주인의 말에 클레온은 콧방귀를 뀌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이곳에 얼마나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이오. 적어도 다른 사람에 뒤지지는 않을 정도로 이곳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소."
클레온의 태도에 주인은 당황했는지 비굴한 웃음을 보이며 계약서를 꺼내 들어왔다.
'뭐, 5골드라도 상단에 합류하면 한 밑천 잡을 수 있을 거야.'
"이곳에 사인하시면 됩니다."
"좋소."
클레온은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촛농을 떨어뜨려 자신의 인장을 찍었다. 주인은 클레온의 이름 밑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고는 클레온에게서 대금을 받고 짐을 챙겨 주점을 떠났다. 그가 떠나자 클레온은 레이야를 적당한 테이블 위에 살며시 올려놓고는 갑옷을 벗었다. 이제 그는 기사가 아니라 주점의 주인이 된 것이다. 이런 불편한 갑옷을 입고 다닐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거 말이 아니군. 내부수리부터 물건까지 새로 해야겠는걸."
클레온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분주히 마을을 돌아다녔다. 저녁때야 들어온 클레온은 울상을 짓고 있는 레이야를 달래며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멀쩡한 방 하나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레이야는 클레온의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난 클레온은 여관 앞으로 찾아온 사람들을 보았다. 전날 부탁해 놓은 목수들이었다. 목수들은 주점 안의 물건들을 빼내고 건물 수리에 들어갔다. 먼지와 함께 나무 조각들이 어수선하게 널려져 있었다. 클레온은 자신과 레이야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클레온은 배를 채우기 위해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안은 험상 굳은 용병들로 시끄러웠다. 클레온은 빈자리에 앉고는 적당히 음식을 주문했다. 클레온은 미리 주문한 따뜻한 우유를 레이야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접시에 스프처럼 담긴 따듯한 우유를 식혀가며 한 숟가락 식 레이야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래 많이 먹고 건강하게 자라라.'
클레온의 입가에는 어느새 미소가 생겼다. 자신의 식사도 대충 끝낸 클레온은 도시를 둘러볼 생각으로 거리를 걸어다녔다. 어차피 공사가 끝나려면 아직은 멀었기 때문이다. 클레온이 향한 곳은 도시 서부에 있는 작은 호수가 있는 공원이었다. 클레온은 그곳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모냈다.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고 노을이 보일 즘에 클레온은 자신이 사들인 여관 겸 주점으로 향했다. 어느새 작업이 모두 끝났는지 목수들은 가게의 앞에서 술 한잔을 하고 있었다.
"끝났나 보군요."
"말도 마슈. 워낙 상태가 안좋아서... 어쨌든 이제 새가게나 마찬가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이것은 대금입니다. 그리고 가서 술이나 한잔들 더하십시오."
클레온은 목수들에게 원래 말했던 돈과 거기에 약간의 돈을 더 붙여주었다. 목수들의 얼굴은 밝아지고 클레온에게 돈을 받아들고는 기분 좋게 그곳을 떠났다. 클레온은 여관 안으로 들어가 봤다. 목수들에게 미리 부탁해 놓은 것처럼 여관의 이름은 레이야로 정했다. 안에는 깨끗한 식탁들과 카운터 그리고 2층에는 침대부터 탁자까지 새것으로 바뀌어있었다. 새하얀 커튼을 달고 바닥까지 재질 좋은 나무로 싹 바꾸었다. 클레온은 흡족한 표정으로 카운터 안쪽에 마련된 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1층은 절반은 주점 겸 식당이고 2층은 여관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1층의 반은 클레온과 레이야가 살 곳이었다. 깨끗한 침대 하나와 아기용 침대 그리고 옷장과 여러 가지 가구들이 있었다. 한쪽에는 클레온이 쓰던 갑옷과 검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클레온은 레이야를 아기용 침대에 눕히고 자신도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클레온은 이제 장사를 시작할 생각을 했다. 먼저 들어와야 할 것은 술과 음식에 쓰일 재료들이었다. 여관 뒤에 있는 창고에 어느 정도의 물품이 있었으나 그것들은 너무 오래되어 쓸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또 종업원이 필요했다. 요리야 클레온이 여행을 하는 동안 배워둔 솜씨가 있기에 자신이 직접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클레온은 광장으로 나가 종업원을 구한다는 글을 적어 게시판에 붙여두었다. 점심때가 지날 즘인가 몇몇의 소녀들이 여관앞에 와있었다.
"저기... 종업원이 필요하다고 해서..."
"들어오세요."
클레온의 말에 소녀들은 클레온을 따라 여관 안으로 들어섰다. 소녀들은 총 5명이었다. 클레온은 소녀들을 훑어보면서 입을 열었다.
"저희 여관에서 필요한 사람은 한 명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섯 분이나 찾아오시니... 좀 난감하군요."
클레온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소녀들의 얼굴에는 붉은 홍조가 띄었다. 클레온은 왜 그런가 했지만 거울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클레온의 여관이 있는 동네는 그리 잘사는 동네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클레온 정도의 미남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거의 평범한 수준의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다. 그러던 와중에 광고문을 붙이는 클레온을 본 여성들은 첫눈에 반했다고나 해야할까. 그대로 여관주위를 맴돌다가 이곳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때 갑자기 들려온 아기 울음소리에 클레온은 카운터 안쪽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클레온이 나올 때 클레온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은 귀여운 아기였다. 그것을 본 소녀들 중 셋은 그대로 여관 밖을 나갔다. 그 중에 남은 두 명은 아기가 있어도 상관없다는 혼자만의 생각을 하면서 클레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어... 두 분이 남으셨네요. 이거 어떡한다지..."
"전 요리를 잘해요!"
두 명의 소녀중 하나인 갈색머리의 소녀가 그렇게 외치자 옆에서 보고 있던 빨강머리의 소녀는 갈색머리소녀를 째려보면서 입을 열었다.
"제가, 청소에는 일가견이 있죠."
"어쩔 수 없겠군요. 두 분다 채용하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두명의 소녀는 아직도 서로를 노려보며 클레온에게서 할 일을 배정 받았다. 갈색머리소녀인 엘리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을 맡았고, 빨강머리소녀인 베니스는 청소와 서빙 쪽을 맡았다. 클레온은 두 소녀에게 일을 맡기고 술과 음식물들을 사기 위해 시장으로 향했다. 처음 올 때 타고 왔던 클레온의 말은 영락없이 짐 말의 신세가 되었다. 같은 길을 왕복하며 말은 수십 통의 술과 음식물을 날랐다. 상하기 쉬운 고기류는 땅을 파서 만든 지하 창고에 술과 같이 넣어두었다. 그리고 건포와 채소 류는 지상의 창고에 방치해 두었다. 그렇다고 하지만 이것들을 오래두고 쓸 수는 없었다. 매일 매일 시상에 가서 신선한 재료를 사들여야만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급 양주와 와인을 사서 여관으로 향했다.
"오셨어요?"
베니스는 청소를 하다가 술병들을 들고 들어오는 클레온을 반겼다. 클레온이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개업 첫 손님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베니스는 빗자루를 치우고 첫 손님을 안내했다.
"하루 묵고 가려고 하는데 얼마지요?"
"식사를 포함해서 3실버입니다."
"그런가요."
그는 품에서 은화 3개를 클레온에게 주면서 숙박명부에 사인을 했다. 클레온은 엘리에게 빨리 식사를 준비하고 했다. 엘리는 열심히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보고만 있기 답답했는지 클레온은 엘리를 도와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