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담론, 왜 인권이 이슈이어야 하는가? -고기복

[글샘]

오늘날 다문화 담론의 빠른 확산과는 달리, 다문화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이주민들을 오히려 소외시키고 구분 짓는 담론이 양산되고 확산되는 것이 현실이다. 다문화에 대한 주장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다문화사회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이주민 자신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고, 정부가 이주민 정책을 다문화주의에 입각한다고 선언했지만,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인권적 단속과 추방이 계속되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주변화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다문화 정책의 문제점들이 나타나는 구조적인 문제는, 다문화 담론이 이주민들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외국인력 정책에 있어서 숱한 정책적 실패를 해 왔던 정부가 주도하고, 그 정책이 일부 정부의 지원을 받는 이주민 지원 단체들에 의해 지지되면서, 정작 이주민들의 목소리는 제도적으로 배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주도의 다문화 지원정책의 범람에 대해 이주민 지원 단체들의 각성이 필요한 부분도 없지 않다. 그것은 우선 이주민들이 다문화 담론에 대해 이야기를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고려도 없이, 관의 프로그램을 위탁받아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주민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주노동자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강제추방과 단속’이라는 현실 속에서 힘겨운 생존권적인 투쟁을 하고 있는 마당에, 다문화 담론을 강제하고 ‘동화’니 ‘통합’이니, ‘귀환’이니 하는 논의를 하는 것은 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단체의 인권감수성마저 의심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행정자치부가 발간한 ‘지방자치단체 거주 외국인 지역사회 정착지원 업무편람(07.2, 행자부)에 의하면, 지원 대상 외국인의 범주에서 <불법체류 외국인은 원칙적으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명문 규정을 둠으로써, 각 지방자치단체들의 조례 제정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인권침해의 논란을 빚고 있다.

결국 미등록자인 불법체류자에 대한 지원은 민간단체의 몫으로 남겨 두어, 정작 국내에 오랫동안 정착하여 살아왔던 이들의 생존권과 함께 문화권까지 논의에서마저 박탈하고 있는 것이 우리사회의 다문화담론 현실이다.

그럼으로 다문화를 논함에 있어서 ‘인권’이 주요 이슈가 되지 않고는, 다문화라는 용어는 ‘문화’를 빙자한 또 다른 폭력으로 이주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결국 우리사회의 이주민 지원을 포함한 다문화 담론은 인권 감수성을 담보하지 않는 한 인권을 빙자한 인권침해를 낳는 기형적 논의가 될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문화 담론에 있어서 왜 인권이 이슈이어야 하는지 분명해진다. 특별히 다문화 담론에 있어서 교육을 예로 들면, 다문화교육은 일반적으로 우리사회에서는 소수자의 적응 교육, 소수자의 (국민으로서의 새로운) 정체성 함양 교육 등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오랫동안 ‘순혈주의’에 집착하며 단일민족 이데올로기 교육을 받아 왔던 우리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편견을 타파하기 위한 ‘다수자 대상의 소수자 이해 증진 교육’이다.

주류 집단의 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도모할 수 있는 인식차원의 교육, 빈곤과 아동의 문제가 어떻게 인권의 문제와 연결되는지 등에 대한 교육,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특성을 존중한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세계관의 변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교육을 통하여, 언론 등을 통해 보이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에 대한 고정관념 즉, 늘 임금도 못 받고 쫓겨나고 피해당하는 이주노동자, 한국어도 못하고 학습부진으로 소외된 불쌍한 국제결혼가정 자녀들, 인신매매와 다를 바 없는 국제결혼 이주여성이라는 식으로 부분적인 사실을 전체적인 사실로 호도하거나 잘못 이해하는 일반화의 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다문화담론이든, 다문화교육이든 진행 과정에 주의할 부분은 프로그램이 고정화되어, 반드시 이러해야 한다는 식의 주입식 교육과 태도는 ‘문화’라는 것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들이기도 하고, 배척하기도 하며, 상당히 가변적이라는 것을 염두에 둘 때, 마땅히 지양해야 할 부분이다.

사실상 이주민에 대한 문제는 제도상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의식상의 문제이자, 순혈주의에 기초하여 이주민에 대한 편견을 교육을 받아왔던 우리 국민의 의식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가 바람직한 다문화 담론을 할 수 있으려면, 향후 우리사회가 다문화환경에 대한 종합인 고려와 다양한 민족, 인종, 문화가 서로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논의의 장을 열어놔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문화 정책이 어떠한 형태로 나타날지 모르지만, 최근 들어 대통령 인수위원회 측에서 ‘기초 법질서’를 강조하며, 노동권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모습을 통해 전망해 볼 수 있는 것은 이주노동자, 특별히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상황은 점점 더 열악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강제추방과 단속 기조는 계속 유지되고, 그 와중에 숱한 인권침해들은 무시되는 상황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그와는 별도로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특별히 결혼이주여성과 그 자녀들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탈북이주민에 대해서는 비공개적으로 진행하던 지원책들을 공론화하되, 외국 인력의 수급 문제를 통일시대에 대한 전망과 함께 상당 부분 민족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여지가 더욱 높다.

하지만 위와 같은 전망 중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침해를 야기할 수 있는 전망이 빗나가기를 희망하며, 오히려 우리 사회가 다양한 문화적 접점들을 인정하되, 그 접점을 인정하는 시발점은 나의 문화적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수단으로서의 다문화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한 인권을 인정하고, 배려하고, 보호하는 것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