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
임병식 rbs1144@hanmail.net
클레오파트라는 전설적인 여왕이다. 그녀를 떠올리면 율리우스 시저가 함께 연상된다. 나이가 무려 29세가 차이가 남에도 그녀는 로마의 집정관 시서와 사랑에 빠졌다.그러다가 39세의 나이에 생를 마감했다. ' 만약에 그녀의 코가 1센티미터만 낮았더라도 세계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라는 말이 항상 따라다니는 여걸이다.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클레오파트라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상물을 빌려왔다.갑자기 그녀를 그린 영화 한편을 보고 싶었다. 그녀는 죽어갈 때 음독을 하거나 칼로 찔려 자결하지 않고 독사의 아가리에 손을 집어넣어 죽어간 것으로도 유명하다. 갑자기, 그녀의 삶이 돌아봐져서인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안고 있던 고뇌의 깊이를 알고 싶었다.
기계에 비디오에 테이프를 끼우니 그녀의 진면목이 유감없이 나타났다. 영상물은 첫 도입부터 흥미를 끈다. 첫 도입부의 화면에서 그녀는 카펫에 둘둘 말린 상태로 나타나는데 한눈에 보아도 애인 시저를 대번에 눈을 멀게 할 정도로 아릿따운 모습이다.
내가 그녀에 관한 영화를 찾은 건 이유가 있었다. 바로 며칠 전 어느 신문에 그녀가 기원전에 이미 발모제(發毛劑)를 개발하여 사용했다는 기사를 접한 것이다. 놀라웠다. 쥐의 추출물과 구운 말의 이빨, 그리고 곰의 지방과 수사슴의 골수를 꿀에 혼합하여 그것을 만들었는데 그녀는 그것을 평소 즐겨 사용했다는 것이다.
전하는 기사에 의하면 '그게 가능할까' 싶어서 그 방법대로 제조하여 발라 보니 정말 사실대로 대머리에 머리털이 돋았다고 한다. 여간 신비하지 않았다. 그걸 전한 신문은 이름 없는 하찮은 매체도 아니었다. 유명한 런던의 선데이 타임즈가 전하고 있었다.
새삼 클레오파트라를 떠올려 본다. 그녀는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다. 빼어난 미모에다 주변국의 말을 무려 7개 국어나 자유자재로 구사했다고 한다. 얼마나 영특하고 너른 식견을 가지고 있었으면 그랬을까
나는 평소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지만 그녀의 카리스마에 끌려서 예전에 영상물을 두 번이나 거푸 본 적이 있다. 그 것을 보면 영화 속에서 여왕은 당대의 걸출한 전쟁영웅들과 함께 등장한다. 울리어스 시저를 비롯하여 안토니우스, 옥타비누스 등 .
영화는 클레오파트라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 고비 고비가 감동적이다. 여왕이 활동하던 시기는 로마제국이 유럽을 평정하고 나서 지중해 연안뿐 아니라 소아시아 폰투스 지방까지 세력을 뻗히고 있던 때다.
따라서 변방국가로 전락한 이집트는 막강한 로마의 영향권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영화의 초기장면은 클레오파트라가 총독으로 부임한 율리어스 시저를 등에 업고 남동생 톨레미에게 빼았겼던 왕위 쟁탈전을 벌리는 장명이 묘사된다. 그녀는 왕좌에 오르자 시저와 깊은 연인관계에 빠져든다. 그런 후에는 다시 실력자 안토니우스와 관계를 맺는다. 그런 만큼 영화는 두 영웅과 사랑과 갈등으로 이어진다.
첫 번째로 등장한 연인은 로마제국의 불세출의 장군 카이사르. 그는 용병술과 통치술이 뛰어난 인물이다. 그가 남긴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말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된다,
그는 전장에 나가면 꼭 전투장면을 빠짐없이 기록했다고 한다. 한데, 그는 주의력이 뛰어나 진중에서 열 명의 필경사를 앉혀놓고 돌아가며 한 구절씩 구술하여 적게 했다는데, 나중에 읽어보면 문맥이 하나도 중복되지 않았고 한다. 얼마나 비범한 능력인지 알게 해준다.
하나, 그는 황제 까지 오를 수 있는 운명은 아니었는지, 원로회의에서 총애하는 부하 부르터스에게 비수를 맞고 절명하고 만다. 이때 죽어가며 남긴 말이 저 유명한 "부르터스, 너 마저도..."라는 비탄의 말이다.
일찍이 루비콘 강을 건너며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라며 기개를 보이던 그도 자객을 경계하지 않는 바람에 허무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사랑하는 시저가 죽어가자 클레오파트라는 제빨리 다른 장수의 품에 안긴다.
그는 바로 젊은 장군 안토니우스. 그녀는 안토니우스를 진정으로 사랑하며 또 한 번의 재기를 노리나, 실패하고 최후를 맞게 된다. 안토니오에게는 이미 결혼까지 한 부인이 있었던 것이다. 그 부인은 집권자 옥타비누스의 여동생. 미모가 빼어난 여인이었으나 클레오파트라의 집요한 구애작전에 말려든 남편을 내어주었다. 하나 안토니오는 천하를 양분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자결을 하고 만다.
"루피오! 나는 늘 자네의 긴 팔이 부러웠지." 시종무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검으로 자신의 복부을 찔러 죽어갔다. 한편, 클레오파트도 안토니가 자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독사가 든 단지에 손을 넣어 자결을 택한다.
"죽음이란 마지막 포옹과 다를 게 없어, 내게 키스를..." 이 말이 마지막 남긴 말이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가 39세, 안토니우스는 52세였다.
영화는 끝부분에서 신사도가 발휘되는 내용으로 처리되고 있다. 이들의 군대를 패퇴시킨 옥타비누스가 두 사람을 성대하게 장례를 치러 주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때는 이미 사람이 죽고 만 것을 ...
흔히, 역사엔 가정법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의 정국이 매우 격변기였음을 생각하면 욕심을 조금 내려놓고 훗날을 기약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그렇게 살지 않았다. 높은 콧대만큼이나 도도하게 살다가 극적으로 죽어갔다. 그때가 까마득한 기원전이다.
그녀의 무덤은 어디에 있을까. 가끔은 궁금해지기도 하는데, 하지만 사후에 그 어디서도 그녀의 무덤이 발견됐다는 소식은 없다. 옥타비누스의 말을 믿지 않더라도 한 시대를 풍미한 여걸을 아무렇게나 장사지내지는 않았을 텐데, 어디서 그녀의 무덤이 발견된다면 엄청난 세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많은 영화로도 일대기가 제작된 인물이니 톱뉴스가 될 것이다. 하나 나는 그런 기대가 아니더라도 그녀를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같은 하늘아래서 함께 살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이 세상을 거쳐 갔다는 사실하나로도 한없이 흥분이 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1990)
첫댓글 "죽음이란 마지막 포옹과 다를게 없어,내게 키스를..."
한번 왔다 한번 가는 인생, 욕 먹지 않고 사는 것이 ....
전에 썼던 작품이지만 한 곳에 모아 두려고 올려놓고 있습니다.
1998년 창작수필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영화를 보셨다길래 언제적 얘기인가 했더니 30년 전 글이었네요. 저는 클레오파트라란 이름을 접한 것 1983년 이주일씨가 광고했던 감자칩 농심 클레오파트라 라는 과자 이름이었지요. 이 이후에 자연스럽게 세계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크로오파트라 영화를 보고 싶어서 비디오가게에서 태입을 빌려와 몇번을 보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