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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9일(목) / CGV 강변 / 로렌스 애니웨이 (자비에 돌란 감독)
젊은 천재감독 자비에 돌란의 3번째 연출작 <로렌스 애니웨이>
한 여자를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여성이 되고 싶은 욕구를 포기할 수 없는 한 남자
주변의 따가운 시선들을 이겨내고 과연 이 둘의 강렬한 사랑을 꽃 피울 수 있을까요?
심영섭 평론가
먼저 질문을 하나 드려볼까요? 세상과 바꿔도 안 아까울 만큼 지극히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어요. 근데 자아를 찾기 위해선 그 여자와 헤어져야할지도 몰라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비에 돌란 감독이 던지는 질문은 그런 것이죠. 그러나 결론은 게이도 레즈비언도 아닌, 남성도 여성도 아닌, 남성도 여성도 다 되는 어찌되었건 로렌스, 감독은 정상과 비정상, 남성과 여성의 경계가 때론 너무나 무의미하다, 사실 특이하다는 것 역시 주류적인 시선이죠. 특이한 게 있으면 안 특이한 게 있어야 되죠. 로렌스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특별하다고 느끼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어쨌든 로렌스”라는 말 안에는 사실은 그 사람의 무엇이든지 사랑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있는 거죠.
자비에 돌란 감독은 4살부터 연기를 시작한 아역배우 출신입니다. 그리고 커밍아웃을 한 게이 감독이죠. 배우로 폭넓은 활동을 하다가 19세 때 엄마랑 갈등을 하는 게이 청년의 이야기를 그린 <나는 엄마를 죽였다>로 입봉 했습니다. 두 번째 작품은 <하트 비트>라는 영화인데 양성적인 사내아이를 두고 동성애적인 자비에 돌란과 한 여자가 경쟁하는 그런 얘깁니다. 3번째 작품이 오늘 보신 <로렌스 애니웨이> 그리고 4번째 작품이 <탐 엣 더 팜>이라는 스릴러물인데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었습니다.
배우들의 면면들을 살펴보면, 로렌스 아리아 역에는 프랑스 배우 멜 비 푸포가 맡았습니다. 원래 루이스 가렐이 하려고 했었지만 취소가 돼서 멜 비 푸포가 하게 됐다고 하고요. 프레디 역에는 쉬잔느 클레먼트라고 <나는 엄마를 죽였다>에서 자비에 돌란을 감싸줬던 선생님 역할을 했던 배우인데 다시 협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로렌스 엄마 역이 나탈리 베이인데 프랑스에서 굉장히 유명한 배우죠. 그 다음에 <하트 비트>에서 같이 나왔던 모니아 초크리가 프레드의 언니, 스테파니 역할으로 분했습니다.
<로렌스 애니웨이>는 구스 반 산트가 제작했는데요. 구스 반 산트 감독 게이 감독입니다. 자비에 돌란의 인터뷰에 따르면 구스 반 산트가 자신의 유년기의 큰 영향을 미친 감독이라고 하는데, 제가 볼 땐 왕가위라든가 웨스 앤더슨 같은 감독에게도 골고루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하트 비트>를 보면 굉장히 왕가위 같고요. <로렌스 애니웨이>의 촬영을 보면 웨스 앤더슨 같은 느낌이 있고요. 자비에 돌란은 흔히 천재감독이라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요. 이 영화는 멜로인데 온갖 음악을 뒤범벅한 것 같은 느낌이에요. 비세이지의 Fade to Grey 로 시작해서 킴 칸스의 Bette Davis Eyes 라는 노래도 나오고, 베토벤, 브람스, 비발디의 음악도 나옵니다. 그러니까 90년대 음악들과 클래식 음악들이 골고루 섞여있는 그런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관객 A
로렌스의 입에서 나비가 나오는 건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 걸까요?
심영섭 평론가
이 영화에서는 옷과 나비가 중요하죠. 극 중에서 로렌스가 프레드한테 옷을 부어버리거나 프레드가 자기 아이에게 옷을 부어버리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결국에는 블랙섬에 가니까 하늘에서 옷이 내려오죠. 사실 옷은 껍데기에 불과해요. 근데 프레드와 로렌스의 대사 중에 프레드가 로렌스에게 오늘밤에 뭐 입을꺼야? 라고 물으니까 아무것도 안 입을거야 라고 대답하거나, 로렌스와 프레드가 재회하는 장면에서 프레드가 로렌스에게 외투 말고도 나머지 옷도 다 벗으라고 하는 장면이 있죠. 그러니까 로렌스가 옷을 벗으면 되는 거예요. 지금 로렌스가 여장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랬을 때 나비는 변하지 않는 로렌스의 영혼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겠죠.
관객 B
영화에서 빨간색이 계속 나오고 강조되잖아요. 나중에는 핑크색 벽돌도 나오고, 자비에 돌란의 전작들에서도 색감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심영섭 평론가
자비에 돌란 영화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색입니다. 자비에 돌란에게 왜 영화를 찍었냐고 물어봤을 때 그가 했던 말은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를 그토록 풍성한 색과 이미지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신기하다는 거예요. 이 영화에서 보면 빨간색은 처음에는 프레드의 색깔이죠. 프레드가 분홍색을 입고 있고 로렌스는 파란색을 입고 있어요. 그러다가 점점 둘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마지막에 가면 로렌스가 분홍색을 입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의 분홍색은 우리 안에 있는 어떤 여성성을 상징하는 건 틀림없어요. 프레드가 결혼을 하고 나서 보면 흰 눈이 내리고 흰 벽돌집, 한마디로 흰색 일색이죠. 그러니까 핏기 없는 무채색이에요. 다시 말해서 굉장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삶인데 핏기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거기에 로렌스가 상징적으로 장미로 너의 흰 벽돌집을 뒤덮을 수가 없다고 시를 써주잖아요. 그런 여성성을 띄는 색깔이거든요. 그래서 여기서 색은 살아있음을 느끼고, 특히 빨간색이라는 건 어떤 열정 외에도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관객 C
영화를 보니까 근접해서 촬영을 하는 그런 기법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는건지 궁금합니다.
심영섭 평론가
영화에서 롱쇼트로 찍은 첫 장면이 어디인지 아세요? 로렌스의 생일 때 가족들과 어울려 있을 때 멀리서 카메라가 등장하고 로렌스의 옆모습을 보여줘요. 그 후에 프레드가 생일케이크를 가져오면 줌아웃으로 가족들을 더 멀리서 봅니다. 이 영화에서는 두 사람이 있을 땐 클로즈업을 써요. 반면에 여러 사람이 있을 때는 반드시 롱쇼트를 씁니다. 즉 로렌스와 프레드가 주변과 유리되고 소외되어 있는 느낌을 보여주는 것이죠. 특히 두 사람의 감정이 더 격렬해질 때는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씁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의 클로즈업은 감정의 강도하고 연관이 있어서 굉장히 격렬한 감정을 느끼는 그런 시점에선 사물이나 배우들에게 카메라가 더 가까이가고요. 주인공들이 여러 사람 속에서 공식적인 활동을 하고 의례적인 일을 할 때는 점점 카메라가 뒤로 물러가는 것을 알 수가 있죠.
관객 D
저는 프레드에 대해서 이해가 안 갔던 부분이 있는데, 아이를 유산을 시키고 나면 시간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얘기를 하는데, 그 시간이 자기가 적응하는데 걸리는 시간인지 그를 변화시키는 시간을 말하는 건지, 그리고 그렇게 유산을 시키지 않고 사실대로 얘기했으면 오히려 로렌스의 부성애나 이런 걸 이용해서 남자로 살아가게 둘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궁금해요.
심영섭 평론가
쉬잔느 클레멘트가 프레드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를 했어요. 프레드는 수면 아래로 끊임없이 잠식되어가는 여자다, 반면에 로렌스는 끊임없이 물 밑에서 올라오는 남자에요. 그동안 로렌스는 수면 하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숨기고 죽을 듯이 있었죠. 그러다 스스로 결국 물 위에 올라가서 커밍아웃 해 버린 거거든요. 프레드가 나중에 땅으로 발 좀 붙이라고 하니까 로렌스가 난 땅에 발 못 붙인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라고 얘기하죠. 그러니까 수면 밑에서부터 시작해서 점점 세상에 대해서 자신을 알려가고 올라가는 남자고요. 거꾸로 프레드는 점점 자기의 마음을 숨기고 가부장제 하에서 어떤 여성적 역할을 하는 점점 내려가는 역할이에요. 전 이 영화의 가장 큰 주제 중에 하나는 우리가 아무리 사랑을 해도 각자의 욕망이 있는 인간들이고, 그러니까 로렌스가 여장남자라는 거를 인식하는 거, 깨닫는 거 하고 로렌스를 사랑하는 거와 받아들이는 거는 큰 차이가 있다고 봐요. 이건 진짜로 힘든 일인 거죠. 결국 프레드의 잘못은 아이 아버지가 너였고 뗄까 말까를 물어보지 않은 것인 것 같아요. 근데 그걸 하지 못하는 거, 근데 그거는 로렌스가 여장남자든 누구든 간에 필요한 거라는 거죠.
관객 E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이 생각났던 영화들이 <헤드윅>이나 <숏버스> 같은 영화들이었는데, 그런 것도 정상과 비정상의 규범에 대해서 논하고 있고, 화려하거나 되게 컬러풀하잖아요. 근데 <로렌스 애니웨이>는 조금 다르게 오히려 로렌스와 프레드의 삶을 평행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마디로 사회에서의 비정상과 정상을 넘나들면서 그들의 삶의 곡선을 보여주잖아요. 이런 형식의 퀴어영화적인 특성에 대한 평론가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심영섭 평론가
사실 <숏버스>나 <헤드윅>은 캠피무비에 속한다고 볼 수 있어요. 캠피무비는 굉장히 키치적이고 색도 음악도 많이 과장되거든요. 언급하신 영화들은 그런 토대에서 성적인 정체성의 문제 이런 것들을 다루고 있는 영화거든요. 근데 똑같은 퀴어영화지만 구스 반 산트의 <아이다호>같은 영화는 전혀 캠피적이지 않죠. 어찌보면 <로렌스 애니웨이>는 그 사이에 있는 것 같아요. 조금 초현실주의적인 느낌도 있고 약간 키치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숏버스>나 <헤드웍>처럼 튀는 주제, 진한 화장, 선정성 이런 것들이 들어가 있진 않아요. 사실 퀴어영화는 이런 걸 통해서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라고 분명히 얘기하는 것이죠. 그거는 퀴어를 관통하는, 어떤 형식을 떠나서 주류에 관한 어떤 발언이라고 볼 수가 있어요.
관객 F
로렌스가 블랙섬으로 커플을 만나러 가자고 하잖아요. 혹시 블랙섬이란 장소의 의미 같은 게 있을까요?.
심영섭 평론가
<해피투게더>에서 보면 양조위와 장국영이 계속 이과수에 가고 싶다고 해요. 둘이 이과수가 그려진 전등도 구입하고 하는데 결국 이과수에 못가죠. 블랙섬도 그런 곳이에요. 원래는 가닿을 수 없는 곳인데, 두 주인공이 결국 가게 되죠. 그곳은 오히려 남녀의 차이가 있어도 사랑이 맺어지는 그런 공간이거든요. 근데 로렌스와 프레드는 오히려 그 공간에서 불화를 하고 반목을 하죠. 제가 볼 땐 그 모든 판타지가 오히려 유빙이나 거대한 얼음처럼 깨져나가는 공간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는 굉장히 양가적이고 모순적인 공간, 그러니까 두 사람이 너무나 원했던 판타지의 장소지만 거기에 가서도 자신들의 근원적인 욕망의 차이 때문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프레드는 도저히 자기 가정을 포기 할 수 없다고 주장을 하고 로렌스는 자기의 세계로 오길 바라고, 그러다가 자기 애를 뗐다는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게 되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로렌스가 먼저 떠나는 그런 공간이라고 할 수가 있고요. 그리고 블랙섬의 검다는 거는 핏기어린 무채색의 형식적이고 관습적인 그런 프레드가 갖고 있는 공간과도 대비가 되는 장소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심영섭 평론가
오히려 그런 얘기 해 볼까요?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눌 때 공간이 다 차안 이었던 거 아세요? 그리고 항상 중요한 장면에서는 세차를 하죠. 저는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이미지 중에 하나가 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사람의 어떤 관계성이 흐르는 물이라는 이미지로 계속 나타나거든요. 세차장에서 물이 밖으로 흐르고, 관계가 경색이 되면 다 얼어버려서 눈으로 변해요. 그렇게 계속 눈이 오다가 마지막에 헤어질 때는 그것도 다 말라버려서 하늘에서 마른 낙엽만 떨어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의 미장센을 짤 때 바깥 공간을 어떻게 짜고 있고, 처음에 등장한 무빙이미지들이 사실은 창문, 커튼, 바람 이런 거잖아요? 이런 것들이 어떻게 끝까지 내리는 눈처럼 사람들을 막고 있는지, 그런 식의 미장센을 주의깊게 보시면 아주 재미있고 일관되게 등장하고 있다는 거를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에 로렌스는 내 꼴이 어떨지 안다고 하면서 큰 거울로 자기를 비춰보지도 못 하죠. 그러던 사람이 결국 여장을 하게 되고, 게다가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여장하고 만날 때야 그 심정이 정말 오죽할까 생각을 해 보시면 10년간의 사랑이 얼마나 지독했을지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씀드리고 싶어요. 건강을 지킬 것과 위험을 피할 것과 과거를 잊고 희망을 가질 것, 처음에 프레드가 그러잖아요. 웨이트리스에게 당신, 남편을 위해서 가발 사본적 있어? 그러면서 소리를 지르잖아요. 근데 그 전에 정말로 로렌스를 이해하려고 하면서 로렌스 등에다가 마치 문신처럼 쓰잖아요. 저는 여러분에게 그 말을 돌려드리고 싶어요. 건강을 지키시고 위험을 피하고 과거를 잊고 희망을 가지세요. 어찌 돼었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