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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르뚜갈의 을숙도?
기록을 대강 마친 후 통비닐 속에서 잠을 청했으나,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 몸이다.
아잠부자 ~ 알베르까의 '까미노'만은 30.8km로 되어 있으나(내가 참고하고 있는 冊子) 부러 이탈하거나 절로
이탈해진 구간들을 합하면 35km가 넘는다.
50km 안팎의 거리를 연달아 걷던 때(2011년)에 비하면 많이 줄었으나 지금은 77살이던 당시 보다 4년이나
더 늙은 81살이다.
이 나이에 이 쯤의 거리를 연일 걸은 심야에도 말똥말똥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으니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가.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Santiago de Compostela) ~ 리스보아(Lisboa/뽀르뚜갈의 수도 Lisbon)의 까미노
뽀르뚜게스(Camino Portugues)는 순 역, 모두 620km 안팎이다.
(국내의 산과 길 뿐 아니라 까미노들에 관계된, 나돌고 있는 책자들이나 붙박이 안내판들의 거리와 높이 등의
표기가 유감스럽게도 모두 제각각인데 통일이 과연 지난한 일인가)
알베르까 지 히바떼주(Alverca de Ribatejo)는 종점(逆 방향)이자 시점(順 방향)인 리스본을 단 하루치 30여
km를 남겨놓은 지점이다.
끝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통비닐과 침낭, 텐트 등 잠자리를 남겨놓고 중요 물품이 들어있는 백팩
만 메고 밖으로 나왔다.
들어왔던 정문 출입구의 반대쪽 항공 박물관(Museu do Ar/Air Museum) 앞이며 한 번 나와서 주변을 살펴
보았던 길인데도 인적이 끊긴 심야의 알베르까 역 주변의 고요가 불안을 넘어 공포를 느낄 정도였다.
도로 들어가 침낭 속에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일 만큼이었다 할까.
이 불안을 떨쳐버리기 위한 몸짓은 자리에 선채로 360도를 회전해 보는 것이었는데, 이 때 내 눈에 유난하게
포착된 것은 여러 개의 웨이 마크(way marks) 중 까미노와 파띠마를 가리키는 것들이었다.
같은 순간에, 목에 걸려 있는 컴퍼스(Compass)를 집어드는 짓이 당연하며, 나는 이미 컴퍼스의 지시(북쪽)
반대쪽 길을 걷고 있지 않은가.
철로와 밀착하여 평행으로, 리스본으로 가는 까미노 뽀르뚜게스의 남서진 길 1.4km 길을.
고가교(viaduct) 밑 까지의 아에로뽀르뚜 길(Estr. do Aeroporto) 650m에 이어서 말뚝으로 보행로를 구분
한 비포장 무명 길(unnamed road) 750m.
허허한 따구스 강변의 심야, 걸리적거리는 아무 것도 없어서 편한 길이라 그랬는가.
침낭 곁으로 와야 하기 때문에 환한 가로등의 안내를 받을 수 있는 데(1.4km지점)까지만 갔다가 돌아오는 것
이 당초의 요량이었지만 왕복 2.8km되는 반환 지점에서 1.4km는 너무 짧은 거리라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지자체(V F X)가 방부 목재와 PP(wood, polypropylene) 등으로 따구스 강변과 강안 일대에 조성한
17.5km(왕복)라는 보행 및 자전거 산책길의 유혹이 대단했다.
따구스 강 하구의 환경 개선을 촉진하고, 특히 육상 및 수중 서식지와 이 하구 생태계의 토착 동 식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흙길이 포함된 이 루트가.
이 밤중에는 어림없는 일이지만, 따구스 강 하구를 탐험할 수 있다는 길.
강변의 자연과 도시 경관 재생을 경험하고, 수천년 동안 이어져 온 강과 사람들의 관계를 재조명 수 있다는 이
따구스 강 하구를 나는 '뽀르뚜갈의 을숙도'라 부르고 싶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철새 도래지인 낙동강 하류(을숙도)처럼 이름난 물새들의 월동지라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터무니없는 비견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790km) 압록강도 1.000km가 넘는 따구스 강에는 크게 못미치는데 521km 두만강에
이어 3번째로, 510.36km에 불과한 낙동강을 따구스강에 견주는 것은 크게 걸례되는 짓 아닌가.
이 구간을 관찰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11월 중순 ~ 3월 말이라니까 무더운 7월이 적기는 아니다.
더구나 아무리 완비되었다 해도 인위적 조명 시설은 심야의 시각적 핸디캡(handlcap)을 극복할 수 없다.
그러나 다행히도, 내가 걸은 2015년 7월 3일(金)은 만월(보름)을 겨우 사흘 지난 을력 5월 18일 밤이었다.
둥근 달빛이 대낮처럼 밝고 환하게 밝혀주게 하는 이베리아 반도의 맑은 공기와 삶을 듯 찌는 더위를 몰아내
는 시원한 따구스 강바람이 이 늙은이를 지칠 줄 모르게 했을 것이다.
까미노, 야훼가 지키시는 길이다
달빛만 교교할 뿐 아무도 없는 극서(Portugal)의 강변(Tagus)을 홀로 걷고 있는 극동(한국)의 늙은이.
보기에 따라서는 살짝 갔다고 할 수도 있을 만큼 천하태평이었다.
먹거리와 잠자리가 부실하고 길(Camino)을 잃거나, 심지어 링반데룽(ringwanderung)에 걸려도 아무 걱정
이 없고 어떤 두려움도 없는 늙은이가 이 밤에도, 새(new) 새벽이 오고 있는 것도 게의치 않고 있지 않은가.
"이 산 저 산 쳐다본다. /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가?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 / 야훼에게서 나의 구원이 오는구나.
네 발이 헛디딜까 야훼, 너를 지키시며 / 졸지 않으시리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 / 졸지 않고 잠들지도 아니하신다.
야훼는 너의 그늘, 너를 지키시는 이, / 야훼께서 네 오른편에 서 계신다.
낮의 해가 너를 해치지 않고 / 밤의 달이 너를 해치지 못하리라.
야훼께서 너를 모든 재앙에서 지켜 주시고 / 네 목숨을 지키시리라.
떠날 때에도 돌아 올 때에도 너를 항상 지켜 주시리라. / 이제로부터 영원히."
아무 거칠 것이 없게 하는 시편(구약성서) 121편이다.
흥얼거리며 걷다가 잠시 후에는 편편한 PP 데크(polypropylene deck)에 앉았다.
백팩 안의 오카리나를 꺼내어 찬송가(대한기독교서회 刊 73장) 부르기를 반복했다.
"내 눈을 들어 두루 살피니 ~ ~ ~
날 돕는 구원 어디서 오나 ~ ~ ~
하늘과 땅을 지은 야훼 날 도와주심 확실하도다."
스코틀랜드의 찬송가 작곡가인 C. H. 퍼데이(Charles Henry Purday / 1799 ~ 1885)가 시편 121편 가사에
곡을 붙인 찬송가다.
단순한 멜로디가 전부인 오카리나 소리지만, 아마도 산책로로 정비되었으나 한밤중이기 때문에 고요할 뿐인
따구스 강변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1.4km는 많이 부족한 듯 하여 반환점을 조금씩 늘려간 걸음이 강안의 조류 관찰덱(Ob-
servatório de Aves do Parque Linear do Estuário do Tejo) 까지 갔으며 3.4km 지점이었다.
이미 지자체V F X의 프레게지아 알베르까를 벗어났으며 다른(마지막?) 프레게지아인 뽀보아 지 산따 이리아
에 포르치 다 까자(Póvoa de Santa Iria e Forte da Casa)에 상당히 들어와 있지 않은가.
한데, 이 새(新) 산책로에도 뽀보아 역(驛) 지근까지 까미노와 파띠마 웨이 마크가 부착되어 있다.
까미노의 이전인가 복수(複數)를 의미하는가.
이같은 길(이전 또는 복수)이 무수한 일본 시코쿠의 헨로(四國遍路) 1.200km를 닮아가려 하는가.
오리지널이 있고 대체로도 있고 심지어 관광로까지 있다면 까미노는 무슨 뜻이 되는가.
보통명사로 내려앉고 중량감만 떨어뜨릴 뿐인데 왜 ?
(스페인어 camino는 본시 보통명사인데 순례길을 지칭함으로서 고유명사화 되었지만)
뽀르뚜 길(Camino Portugues)도 일부(Pontevedra ~ Porto)는 노르떼 길(Camino Norte de Santiago)
처럼 해안길(대서양)과 내륙길로 나뉘어 있다.
따구스 강안(변)의 전 구간이 강안(Tagus) 뜨릴류(trilho / 산책로)로 바뀌어 가는 듯 한데, 역 코스로 마지막
구간인 알베르까 ~ 리스본도 미구에 전체가 그리 될(까미노 강안길로 바뀔) 운명인가.
내가 최초로 까미노에 들어선 2011년,
프랑스길의 시점(Saint Jean Pied de Port)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오브라도이로 광장(Praza do Obrado
iro/Santiago de Compostela)에 당도했을 때까지 내게 까미노는 성서애 버금갈 만큼 축자적이었다.
소위, 오리히날(Original) 외의 여하한 알떼르나띠보(Alternativo/대체도로)도 거부했던 나였다.
그러나, 목표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의 7개 메인 까미노와 몇개의 지방 루트들을 걷는 동안에 이전(移轉)과
대체, 우회, 심지어 관광용 코스까지 개발되어 있는 까미노에 나는 극심한 공허를 넘어 절망적이기 까지 했다.
야훼가 지키시는 길, 야훼와 함께 걷는 길인데.
과욕이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제2차세계대전)을 일으킨 해(1941년 12월 7일)의 여름.
내 부모는 사망 직전의 7살 아들(나)을 살리는 길은 개복(開腹)수술뿐이라는 의사에게 나를 맡겼다.
가족 모두가 좌고우면할 겨를이 없었고, 그래서(수술로) 살아나기는 했으나 나는 성년이 될 때까지 대부분의
세월을 한(恨) 많은 앉은뱅이(坐客,躄者)로 살아야 했다.
한 세기도 되지 않는 갭(gap/세월)이지만 당시의 의술은 현대 의학에 비해 워낙 원시적이었기 떼문에 죽음을
면하게 된 것 만을 천행으로 여겨야 했으니까.
이 한의 기간은 일본의 식민 압제와 해방에 따른 격동, 비참이 극에 달한 6. 25 민족 동란 등의 시기와 겹침으
로서 문자 대로 천신만고(千辛萬苦)의 세월이었으나 용케도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미개한 의술이 해결사였을 리 없다.
자식은 삼신(三神)이 점지해 준다고 믿는 시기였기에 천우신조(天佑神助)라고 믿었다.
아무튼, 두 다리만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모든 산이 내 한풀이 마당이 되었다.
불시의 재발(再發)로 치명적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치열하게 오르내렸다.
대간에서 정맥(백두대간과 아홉정맥)으로, 산에서 산으로 이어가는 동안에 절로 붙은 '山나그네' 라는 닉네임
(nick name)에 '늙은'이라는 형용사가 전치되었다.
기력의 쇠퇴로 험산 준령이 우리의 옛(李朝時代) 십대로(十大路)와 까미노를 비롯한 모든 길로 대치된 후에도
걷기는 줄기차게 계속되었다.
81살인 당시(2015년 7월 4일)까지 걸은 거리는 어림잡아 15만km를 넘었를 것이다.
지구의 3바퀴 + 4분의 3바퀴 되는 거리다.
고령사회에 진입하기 전, 나는 1969년(35歲)에 현 누옥(陋屋/서울 강북구 우이동 573 - 9)으로 들어왔다.
최초로 장만한 내 집이며 58년째(2026년현재) 살고 있는 유일한 내 재산(不動産)이다.
(처음에는 성북구였으며 도봉구로 분구, 다시 분구해 강북구가 되었는데, 한 오래된 외국인 친구는 "change
your residence?"/이사했느냐고 2번이나 물어오는 happening도 있는 집이다)
"80에 관(棺) 나간다"
내 소유가 된 집의 대문을 열고 들어서며 한 첫 마디 말인데 58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다.
'칠십고래희'(七十古來稀)라던 시기에 70대를 지나 80살까지 살기를 바랐으며, "관 나간다"는 말은 이 집에서
생을 마감하겠다는 뜻이었다.
살아서는 이사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임을 다짐 둔 말이었는데, 이 집에서 반세기 + 8년을 살고 있다.
또한, 공포심을 갖게 할 만큼 발전한 현대의학과 삶의 질 개선이라는 호재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함으로서 80
대를 넘어 90대를 맞았다.
그러나, 92살인 나는 지금(2026년) 휠체어(wheelchair)에 의지함으로서만 걷기가 가능한 장애인이 되었다.
청각 장애와 복시(複視) 현상이 가세해 생활은 겨우 생존 직전으로 급락 현상이다.
이 와중에도, 비록 기구(wheelchair)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1만보 ~ 2만보의 보행으로 그 버릇(걷기)의 맥을
이어가고 있기는 하나 진행 중인 모든 일(기록)에 종지부를 찍을 시점이 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추억을 먹고 산다는 늙은이인 내게 까미노는 무궁무진하며 맛이 그만인 지상(至上)의 먹거리다.
유럽, 특히 알레만(Aleman/독일인)들은 자기네에게는 평생의 먹거리인데 단 2번에 다 먹어치웠다고 경악과
탄복을 쏟아내고 있지만 기록으로 남기는 일마저도 미완으로 마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으니까.
이어가는 중인 까미노 추억(續 까미노이야기)의 범위를 더 넖히고 한데 뭉뚱그려 더욱 심도 있게 반추하느라
진도가 더뎠는데 간추린 까미노 이야기로 환원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한다 해도 도중 하차가 불가피하며, 과욕이었슴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데도, 추억의 반추 운운하는 것은 가소로운 짓 아닌가.
구구팔팔 복상사?
바야흐로 100세 시대라지만 이같은 초고령 시대의 도래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구 구 팔 팔 이 삼 사(9988234)
"아흔아홉살까지 팔팔하게 살고 이삼일 앓다가 죽는다"는 뜻이며 초고령시대의 도래와 함께 등장한 대중가요
가사의 일부다.
구십구는 생활이고 이삼은 생존이다.
구구팔팔은 초고령자라도 능동적(적극적) 생활을 할 때만이 선(善)임을 의미한다.
99년이라는 길고 긴 세월에 비해 단지 이삼일에 불과한데도 셍존은 의미 없을 뿐 아니라 총체적으로 부담이
되며 악(惡)이라는 뜻인지 "구구팔팔 복상사"로 업그레이드 되었단다.
복상사(腹上死)는 성교중 여자의 배 위에서 급사한다는 것이 축자적 의미다.
초고령 시대라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성생활이 과연 가능한 연령대인가.
비록 희망사항이라 해도 황당한 바람 아닌가.
나는 생활과 생존의 경계선상에 있는 늙은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기구의 도움 없이는 생활이 날로 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늙은이의 단골집인 병의원의 문이 각각으로 좁아지고 있다.
보호자의 동행을 요구하며, 불연하면 문을 열어주지 않을 기세다.
의사는 수술의 불가를 이유로 각종 검사의 무용론을 펴고 있다.
초고령자의 사망 위험 부담 때문에 수술을 할 수 없으므로 검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
늙은이는 명(命)대로 살다가 죽으라는 뜻인가.
고령자 복지는 커녕 세계 제일이라는 국민개보험(國民皆保険)제도의 의미가 퇴색 일로에 있다.
어느새, 10년이 지난 그 때, 그 달밤의 따구스 강변.
방부목 산책로를 따른 걸음이 뽀보아 역 앞에 당도했다.
역간(驛間/Alverca~Povoa)의 거리는 4km지만 까미노는 조금 더 된다.
잠 자리를 펴놓은 곳(Alverca 역)으로 돌아가면 아마도 여명(黎明)이 시작될 것이다.
사려 깊지 못했음을 후회하고 자책하며 돌아섰다.
통비닐과 침낭뿐 아니라 백팩의 무게를 줄인다는 이유로 텐트까지 내려놓은 것을.
이런 것들과 함께 있다면 돌아갈 일 없이 진행(리스보아 길)을 계속해도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알베르까 역(逆)으로 회귀했다.
내가 깔아놓은 그대로 있는 2층의 내 잠자리.
백팩이었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을 텐데.
(7개의 까미노 메인 루트 걷기를 모두 마친 후 바르셀로나로 이동, 지중해변을 따라 반반-걷기와 차량이용-의
여행 중 스페인의 남동쪽 연안에 있는 Almeria에서 백팩을 도둑맞았다.
백팩 안에 까미노 노르떼와 뽀르뚜게스, 세비야 길 일부 등의 사진 USB가 들어있기 때문에 찾으려고 100€와
교환하자는 전단을 곳곳에 부착하고 이틀간 곳곳을 헤매다가 마구 버려진 백팩을 무수히 목격했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