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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척정신 ' 의 한림공원
한림공원은 경이로운 곳이다 . 갈 때마다 한림공원은 얼굴이 바뀌어 있고 , 갈 때마다 한림공원의 어디선가는 공사 중이다 . 아마도 한림공원의 꿈은 아직도 갈 길이 멀었고 그 꿈을 향해 아직도 항해중이라는 웅변일 것이다 . 그래서 한림공원에서 느끼는 것은 경이감이다 .
한림공원은 제주도의 대표적 관광명소 중의 하나이다 . 제주도 서북부 지역에 한림공원이 없었다면 제주도 여행객들이 이 근방으로 올 일이 없을 뻔 했을지도 모른다 . 그러나 한림공원은 제주를 찾았다면 한 번쯤은 꼭 들리는 곳이다 .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 , 나카소네 전일본수상 , 전두환 , 노태우 , 김영삼 , 김대중 , 노무현 , 김수환 추기경 , 일일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한림공원을 찾았던 수많은 쟁쟁한 명사들의 이름에서 한림공원의 위상을 느낄 수 있다 .
한림공원에서는 경이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 10 만여 평이라는 부지 면적은 사설공원의 면적이라고 하기엔 입이 벌어지는 수준이다 . 넓기도 하지만 10 만여 평의 부지 위에 한림공원은 참으로 여러 가지 볼거리 구경거리를 만들어 넣었다 . 그리고 이 10 만여 평의 부지가 애초에는 황량한 모래밭이었다는 생각을 하면 절로 경외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
한림공원의 역사는 1971 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협재리의 모래밭을 팔려고 내놨지만 여러 차례의 경매에도 불구하고 매입하는 사람이 없었던 협재 해수욕장의 인근의 쓸모없는 모래밭을 한림공원의 송봉규 회장이 사들이면서 한림공원은 잉태되었다 . 이 황량한 땅에 송봉규 회장은 여기에 나무를 심을 계획을 세웠다 . 가시덤불과 바위 등을 제거하고 흙을 실어다 복토하고 농사도 짓기도 했다 . 주위에서 비웃고 만류가 극심했지만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고 , 누구도 실패한다고 했던 일을 굴하지 않고 개척의 삽을 뜨기 시작했다 .
한림공원 안에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워싱턴야자는 이 때 심어진 것이다 . 워싱턴야자는 지금 한림공원의 트래이드 마크가 되어 있다 . 1980 년대에는 쌍용굴을 발굴하여 협재굴과 연결하여 일반에 공개하였다 . 한림공원은 ' 있는 것 ' 을 보여주기만 하는 제주관광에서 ' 만든 것 ' 을 보여주는 개발관광의 효시가 되기도 하였다 . 그래서 한림공원은 개척정신의 산물이다 . 한림공원 내에 있는 ‘ 개척정신 ’ 이 새겨진 비석은 한림공원의 자부심을 오롯이 보여주는 명패 같은 것이었다 .
한림공원의 관람코스는 9 개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 야자수와 선인장으로 조성되어 남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야자수길 . 사시사철의 야생화와 제주 특산식물을 만날 수 있는 산야초 공원 . 제주도 용암동굴의 특징을 볼 수 있는 협재굴 , 쌍용굴 , 황금굴 . 분재와 돌을 소재로 구성된 제주 석 , 분재원 . 제주도 전통초가를 복원해 놓은 재암민속마을 . 갖가지 조류를 볼 수 있는 사파리 조류원 . 국내외의 다양한 수석들을 진열해 놓은 재암수석관 . 시원한 대형폭포와 연꽃 등을 감상할 수 있는 연못정원 . 2 천여 종의 희한한 식물들과 열대 파충류 등이 있는 아열대식물원 등이다 .
관람시간은 천천히 음미하면서 구경을 하다보면 2 시간을 훌쩍 넘긴다 . 그러나 코스 중간 중간에 화장실 , 편의점 등이 잘 구비되어 있고 , 볼거리가 많아 2 시간이 모자랄 정도이다 . 한림공원에서는 꽃 축제도 많이 열린다 . 튤립축제 , 벚꽃축제 , 유채꽃축제 등으로 , 방문했던 기간에는 한림공원 내에 갖가지 색깔의 튤립이 진열되어 자주 발길을 멈추게 했다 .
황량한 모래밭이 수려한 공원으로 바뀌는 것처럼 , 1970 년대는 초가집의 나라에서 대리석의 나라로 도약을 하던 때였다 , ‘ 햐면 된다 ’ 라는 각오로 아버지들은 나라를 바꾸었다 . 한림공원에서 느끼는 경외감은 우리 아버지들에 대한 경외감이었다 .
한림공원 / 도시근린공원
-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2487번지
- 전화
- 064-796-0001
- 설명
- 10만여평의 대지에 하늘로 우뚝 뻗은 야자수군락과 울창한 송림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