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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 추천 0 조회 32 14.07.30 13:5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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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선교사들의 신학계보

무지개 | 조회 27 |추천 1 | 2012.11.19. 19:09

 

 

제3장. 선교사들의 신학계보


간하배(Harvie M. cann)목사는 “The Annual Report(1922년) of the Korean Mission presbyterian church, U?S?A”를 인용하면서 40명의 초기 한국에온 선교사들을 출신학교별로 분류하였다.

16명이 Princeton 출신자이며, Mccormick이 11명, San Anselmo와 union은 4명, New york 3명과 10개 성경학원들 중 moody성경학원이 New York에서 선교사를 한국교회에 보냈다.(Studies in The Theology of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Harvie M.Cann, p95)

A.J Brown목사(one of the general secretaries of the board of foreign mission of the presbyterian church, U?S?A)는 1911년 전의 선교사들에 대하du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나라를 개방한 이후 처음 25년간의 전형적 선교사들은 청교도들이었다. 그들은 안식일을 지켰으니 우리 New England 선조들이 한 세기 전에 행한 것과 같이 행하였다. 춤이나 담배 또한 카드놀이 같은 것은 그리스도의 진정한 추동자가 빠져서는 안될 죄라고 간주하였다. 신학과 성경을 비판할 때에 이 사람들은 강력히 보수적이었으며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생생한 진리의 전천년설 견해를 가졌다. 고등 비평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은 위험한 이단으로 생각되었다. 그들 대부분은 미국의 복음적 교회사 영국의 보수주의들이였고, 자유주의자들은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배웠으며 함께 일하였으나 현대적 견해를 가진 소수라도 한국에서 특히 장로교회 선교회에서 험준한 여정을 가졌다.

Samuel A.Moffet은 그의 동역 선교사들에게 매우 강한 공감을 표명하며 1909년 신학적 방향을언급 하기를「이 선교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철저히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의 구원인 복음 소식인 열정에 복음주의적 심령에 의하여 현저히 나타났었다.」고 말했다.

간하배선교사는 초대 한국교회의 이런 보수주의적인 성질은 복음주의적 그 이상이었다. 신학적으로 볼 때 이 성질은 놀라울 정도로 개혁신앙이나 칼빈주의의 특성에 관한 날카로운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으며 「표준성경 연구」에 쓴 마펫박사의 서언은 Westminster 신앙고백을 강력하게 지지한 초대 선교사들의 열심은 일반적으로 보수주의적인 그리고 더욱 특별하게 장로교적인 신학을 가르치는데 있었다.

동시에 현저하게 신학적인 칼빈주의를 꾸준히 설명하고 강권하려는 초대 선교사들의 열심은 항상 실현을 본것은 아니었다.

1905년에 있었던 장로교 감리교 선교사들의 연합회의에서 「때가 한국의 국가적 교회의 수립이 무르익는 때요 한국에 있어서의 그리스도 교회」라고 불리워야 한다는 것이 바로 비공식적 선교사회의 의의하고 하는 동의가 있었는데 이것이 만장일치로 통과를 보았다.

이와같이 초대 선교사들이 선교와 한국 복음화를 위하여 협조한 것이다라고 서술한 바 있다.

한국 보수주의에 대표자인 박형룡박사는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에서 웨스트민스터 표준에 구현된 영미 장로교회의 청교도 개혁주의 신학이 한국에 전래되고 성장한 과정이다고 말하였다.

또한 「한국에서의 청교도 개혁주의 신학 항목에서 마포 삼열박사는 한국에서의 전도사업의 유일의 주도적 특성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요 믿는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권능으로서의 성경 교훈에게 준 최고도의 지위 아마 거의 비류없는 지위」라고 공석에서 자주 말하였다. 박형룡박사는 계속하여 초대 선교사들의 신학사상을

1) 성경의 신성한 권위를 믿는 신념과

2) 하나님의 주권에의 확신

3) 안식일의 성수와 경건생활에 치중

4) 성실한 실천

5) 전천년 재림설을 지적하였다

 

총신대 교회사 홍치모교수는 1893년에서 1910년 까지 한국에서 활약했던 선교사들은 프린스톤 신학교와 Mccormic 신학교 출신들이었음을 인용하며 두신학교는 미국북장로교의 직영신학교로서 charles Hpdye박사의 아들 A.A.Hodye와 B.B Warfield박사는 제자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에 나온 초기 선교사들은 칼빈주의적 복음신앙을 소유한 진실한 선교사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뿌린 씨앗이 성장하여 오늘날 한국장로교회는 칼빈주의적 복음신앙을 소유한 교회 로 토착화되었다. 하물며 자유주의 성향인 연세대학교 민경배 교수도 기독교의 한국도입은 그 관련이 여러모로 단절된 순수한 형태의 복음 주의적인 부흥회 타입의 경건적 교회였다.

한국 개신교의 초기 신앙형태는 경건주의와 복음주의이다. 이것이 한국교회사의 저류에 도도히 흐르는 모습을 볼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복음주의 적인 경건주의의 신앙은 한국인 본래의 정신적 유형에 상통하는 데가 많았다라고 하였다. 그는 한국 장로교회 선교사들의 철저한 보수 신학을 찬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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