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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比스님과 함께 하는 유마경 공부(2020.11.11.PM7시)
유마경 부사의품
불가사의 해탈 / 대가섭의 찬탄 / 마왕
재미있는 유마경 공부시간이다. 유마경은 지금 제6 부사의품(不思議品) 불가사의하다는 내용을 이야기한다.
어제도 부사의품에 부사의해탈이 있었는데 여기도 보면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자꾸 전개된다. 사실은 모든 존재가 이미 그와 같이 불가사의한 내용을 함유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수용하지 못해서 이상하게 여겨지기도 하고 또 불가사의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일단 읽어보고 말씀드리겠다.
우사리불(又舍利弗)이여 혹유중생(或有衆生)이 낙구주세이가도자(樂久住世而可度者)면 보살(菩薩)이 즉연칠일(卽演七日)하야 이위일겁(以爲一劫)하야 영피중생(令彼衆生)으로 위지일겁(謂之一劫)이라하며 혹유중생(或有衆生)은 불락구주이가도자(不樂久住而可度者)면 보살(菩薩)이 즉촉일겁(卽促一劫)하야 이위칠일(以爲七日)하야 영피중생(令彼衆生)으로 위지칠일(謂之七日)이니라
“또 사리불이여, 혹 어떤 중생이 세상에 오래 머물기를 바라고 제도될 사람에게는 보살이 7일을 늘리어 1겁을 만들어 그 중생으로 하여금 1겁으로 여기게 합니다. 혹 어떤 중생이 세상에 오래 머물기를 바라지 않고 제도될 사람에게는 보살이 곧 1겁을 줄여서 7일이 되게 하여 그 중생으로 하여금 7일로 여기게 합니다.”
시간적으로 얼마든지 그것이 설명은 된다.
그러한 현상도 우리가 화엄경에서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 이런 것을 무수히 외우고 읽고 들어온 이야기다.
여기는 1겁과 7일, 7일과 1겁을 마음대로 보살은 중생의 입장에 맞추어서 제도될 일이라면, 시간을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우사리불(又舍利弗)이여 주불가사의해탈보살(住不可思議解脫菩薩)은 이일체불토엄식지사(以一切佛土嚴飾之事)로 집재일국(集在一國)하야 시어중생(示於衆生)하며 우보살(又菩薩)이 이일체불토중생(以一切佛土衆生)으로 치지우장(置之右掌)하고 비도시방(飛到十方)하야 변시일체(遍示一切)하되 이부동본처(而不動本處)니라
“또 사리불이여, 불가사의해탈에 머문 보살은 일체불토에 장엄한 것을 한 나라에 모아두어 중생에게 보입니다. 또 보살이 일체불토의 중생을 오른쪽 손바닥에 올려두고 온 시방을 날아다니며 일체 사람들에게 두루 보여도 본래의 장소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일체 불토에 장엄한 것을 한 나라에 모아두고 중생들에게 보인다. 예를 들어서 전세계에 있는 모든 장엄들을 부산에다 모여놓고 중생들에게 보인다. 그래도 어디에 없어지거나 어디에는 더 넘쳐나거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이 다 불가사의한 일인데, 그것은 우리 마음의 이치에 비춰보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어제도 설명했듯이 공간도 마찬가지고 시간도 마찬가지다.
무량원겁(無量遠劫)이 즉일념(卽一念)이고, 일념즉시(一念卽是) 무량겁(無量劫)이고, 일미진중(一微塵中)에 함시방(含十方)이고, 일체진중(一切塵中)에 역여시(亦如是)라, 그런 이치가 그대로 여기에서 표현되고 있다.
이 대목에 제가 설명을 해놓았다.
아무리 기상천외하고 불가사의한 일이라 하더라도 경전의 말씀은 마술과는 다르다. 마술은 눈속임으로 한순간 사람들의 눈을 속여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경전의 말씀은 모든 존재가 이미 그와 같이 불가사의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의 안목으로 설명한 것이다. 사람에게서 가장 차별이 심한 문제가 안목이다. 한 가지 사실과 사물을 두고도 그 견해는 천차만별이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인생을 보고 세상을 보는 것에는 먼지 하나와 지구 하나의 차이가 나기도 한다. 깨달은 사람에게 왜 위와 같은 불가사의한 경계가 없겠는가.
먼지 하나와 지구 하나의 차이가 나기도 한다.
우사리불(又舍利弗)이여 시방중생(十方衆生)의 공양제불지구(供養諸佛之具)를 보살(菩薩)이 어일모공(於一毛孔)에 개영득견(皆令得見)케하며
“또 사리불이여, 시방 중생들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는 물건들을 보살이 한 모공에서 다 볼 수 있게 합니다.”
한 모공 안에 시방부처님께 공양하는 모든 물건을 다 볼 수 있게 한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다. 한 먼지 속에 시방세계가 들어있다는 이치다.
우시방국토(又十方國土)에 소유일월성수(所有日月星宿)를 어일모공(於一毛孔)에 보사견지(普使見之)니라
“또 시방국토에 있는 모든 해와 달과 별들을 한 모공에서 다 볼 수 있게 합니다.”
같은 이치를 말하고 있다.
우사리불(又舍利弗)이여 시방세계소유제풍(十方世界所有諸風)을 보살(菩薩)이 실능흡착구중(悉能吸着口中)하되 이신불손(而身不損)하고 외제수목(外諸樹木)도 역불최절(亦不摧折)하며 우시방세계겁진소시(又十方世界劫盡燒時)에 이일체화(以一切火)로 내어복중(內於腹中)하여 화사여고(火事如故)하되 이불위해(而不爲害)하며 우어하방(又於下方)으로 과항하사등제불세계(過恒河沙等諸佛世界)하야 취일불토(取一佛土)하야 거착상방(擧着上方)을 과항하사무수세계(過恒河沙無數世界)하되 여지침봉(如持針鋒)하야 거일조엽이무소요(擧一棗葉而無所嬈)니라
“또 사리불이여, 시방세계에 있는 모든 바람을 보살이 입속으로 다 빨아들여도 몸은 손상되지 않고 밖에 있는 온갖 나무들도 또한 꺾어지지 아니합니다. 또 시방세계가 겁이 다하여 불이 탈 때에 그 모든 불을 배속에 집어넣어도 불은 그대로며 몸을 해치지도 아니합니다. 또 하방으로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은 세계를 지나서 한 나라를 취하여 상방으로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은 세계를 지나가더라도 마치 바늘을 가지고 대추나무 잎을 하나 들어 올리는 것과 같이 전혀 번거롭지 아니합니다.”
이것은 범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다.
‘또 하방으로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은 세계를 지나서 한 나라를 취하여 상방으로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은 세계를 지나가더라도 마치 바늘을 가지고 대추나무 잎을 하나 들어 올리는 것과 같이 전혀 번거롭지 아니합니다’
불가사의 해탈경계에 머문 보살의 표현이다.
우사리불(又舍利弗)이여 주불가사의해탈보살(住不可思議解脫菩薩)은 능이신통(能以神通)으로 현작불신(現作佛身)하며 혹현벽지불신(或現辟支佛身)하며 혹현성문신(或現聲聞身)하며 혹현제석신(或現帝釋身)하며 혹현범왕신(或現梵王身)하며 혹현세주신(或現世主身)하며 혹현전륜성왕신(或現轉輪聖王身)하며
“또 사리불이여, 불가사의 해탈에 머문 보살은 능히 신통으로 부처의 몸을 나타내며, 혹은 벽지불의 몸을 나타내며, 혹은 성문의 몸을 나타내며, 혹은 제석의 몸을 나타내며, 혹은 범왕의 몸을 나타내며, 혹은 세상 주인의 몸을 나타내며, 혹은 전륜성왕의 몸을 나타냅니다.”
그렇다. 제대로 된 사람은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언제나 상대의 처지에서 눈높이를 같이한다. 불가사의 해탈에 머문 보살에게 자기란 없다. 부처가 필요하면 부처도 되고 연각이 필요하면 연각이 되고, 성문이 필요하면 성문이 된다. 어찌 그와 같은 성인의 모습뿐이겠는가. 필요에 따라 지옥도 되고 아귀도 되고 아수라도 되고 축생도 된다. 그것이 보살다운 보살이다.
라고 제가 사족을 달았다.
우시방세계(又十方世界)에 소유중성(所有衆聲)의 상중하음(上中下音)을 개능변지(皆能變之)하야 연작불성(令作佛聲)하야 연출무상(演出無常)․ 고(苦)․ 공(空)․ 무아지음(無我之音)과 급시방제불소설종종지법(及十方諸佛所說種種之法)하야 개어기중(皆於其中)에 보령득문(普令得聞)이니라 사리불(舍利弗)이여 아금약설보살(我今略說菩薩)의 불가사의해탈지력(不可思議解脫之力)이어니와 약광설자(若廣說者)인댄 궁겁부진(窮劫不盡)이니라
“또 시방세계에 있는 모든 소리의 상․ 중․ 하의 음성을 다 능히 분별하여 부처님의 소리를 만들어 무상과 고와 공과 무아의 소리와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설하시는 갖가지 법을 연출하여 다 그 가운데에서 널리 듣게 합니다. 사리불이여, 내가 지금 보살의 불가사의 해탈의 힘을 간략하게 설하였습니다. 만약 자세히 설한다면 겁이 다할 때까지 설해도 끝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만 가지고도 정말 입이 벌어져서 도저히 다물 수 없는 정도의 내용이다.
제대로 깨달으신 보살들의 입장이라면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우리가 깨달은 사람의 불가사의한 경계를 이렇게 한 번 귓전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인연, 한 번 듣고 ‘그게 도대체 무슨 소식인가? 경전에서 무슨 거짓말로 할 리는 없고 분명히 깨달은 보살의 경계에서는 그런 경계가 있다. 불가사의한 경계가 있다’ 이렇게만 믿고 지나가도 그것은 상당한, 좋은 인연이 된다. 우리는 그렇게 여기면 되겠다.
4. 대가섭의 찬탄
이시(是時)에 대가섭(大迦葉)이 문설보살불가사의해탈법문(聞說菩薩不可思議解脫法門)하고 탄미증유(歎未曾有)하야 위사리불(謂舍利弗)호대
이때에 대가섭이 보살의 불가사의 해탈법문 설하는 것을 듣고는 미증유라고 찬탄하고 나서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대가섭이 나왔다. 대가섭은 선종에서 삽삼조사(卅三祖師 :선종에서 석가모니불의 정통 법맥을 이은 33인의 조사)라고 계산을 하던지, 역대 부처님의 법을 이은 사람중에 부처님의 제1제자 이렇게 되어 있다. 그것은 선종(禪宗)에서 계산하는 법이다.
아무튼 대가섭을 등장시킨다.
보살의 불가사의한 해탈법문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고 대가섭은 ‘미증유다. 세상에 듣도 보도 못한 해탈의 경계다’라고 찬탄하고 사리불에게 말한다.
비여유인(譬如有人)이 어맹자전(於盲者前)에 현중색상(現衆色像)커든 비피소견(非彼所見)인닷하야 일체성문(一切聲聞)이 문시불가사의해탈법문(聞是不可思議解脫法門)하고 불능해료(不能解了)도 위약차야(爲若此也)라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맹인 앞에서 여러 가지 색상을 나타내 보이나 그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이 일체 성문들도 이 불가사의 해탈법문을 듣고 능히 알 수 없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한다.
대가섭이 말하자면 사리불과 같은 입장이다. 성문으로서, 선종에서 제일로 치는 대가섭, 전통적으로 제일제자라고 치는 사리불, 이 두 분이 보살의 차원을 두고 이렇게 이야기 한다. ‘참 미증유하다. 정말 처음 듣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맹인앞에서 여러 가지 색상을 나타내 보이지만 그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자기들은 맹인이라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맹인 앞에 여러 가지 색상과 사물을 나타내 보이지만 그것은 전혀 못보는 것과 같이 일체 성문들도 이 불가사의 해탈법문을 듣고 ‘능히 알 수 없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저희들은 모르는 경지입니다’ 이런 이야기다.
지금 성문으로서는 최고의 경지에 있는 사리불, 대가섭의 입장에서도 보살의 경지, 보살이 터득한 불가사의한 경계는 도저히 이해 못 하는 경지다.
지자(智者)가 문시(聞是)하고 기수불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其誰不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리요 아등(我等)은 하위영단기근(何爲永斷其根)하고 어차대승(於此大乘)에 이여패종(已如敗種)고 일체성문(一切聲聞)이 문시불가사의해탈법문(聞是不可思議解脫法門)하면 개응호읍(皆應號泣)하야 성진삼천대천세계(聲震三千大千世界)요 일체보살(一切菩薩)은 응대흔경(應大欣慶)하야 정수차법(頂受此法)하리니 약유보살(若有菩薩)이 신해불가사의해탈법문자(信解不可思議解脫法門者)는 일체마중(一切魔衆)이 무여지하(無如之何)리라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 법문을 듣고 그 누군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지 못하겠는가마는 우리는 어찌하여 그 뿌리를 영원히 끊어버리고 대승에 대하여는 이미 썩은 종자와 같습니까? 일체 성문이 이 불가사의 해탈법문을 들으면 모두 목 놓아 큰 소리로 울어서 그 소리가 삼천대천세계를 진동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체 보살은 응당 크게 기뻐하며 이 법을 머리에 받아 가질 것입니다. 만약 어떤 보살이 불가사의 해탈법문을 믿고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일체 마군의 무리가 어떻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
이것이 대승보살의 경지와 소승 성문들의 경지를 명확하게 정리하는 대목이다. 한 번 더 읽겠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 법문을 듣고 그 누군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지 못하겠는가마는 우리는
우리 성문들은
어찌하여 그 뿌리를 영원히 끊어버리고 대승에 대하여는 이미 썩은 종자와 같습니까?
전혀 이해 못하는 경지라는 것이다.
일체 성문이 이 불가사의 해탈법문을 들으면 모두 목 놓아 큰 소리로 울어서 그 소리가 삼천대천세계를 진동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체 보살은 응당 크게 기뻐하여 이 법을 머리에 받아 가질 것입니다.
보살과 성문의 차이를 이렇게 분명하게 선을 긋고 이야기 한다.
만약 어떤 보살이 불가사의 해탈법문을 믿고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일체 마군의 무리가 어떻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마군들도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이 아주 명확하게 소승 성문들과 대승보살의 경지를 분리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대가섭(大迦葉)이 설차어시(說此語時)에 삼만이천천자(三萬二千天子)가 개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하니라
대가섭이 이 말을 할 때에 3만 2천 천자가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였다.
발심을 했다는 이야기다. 여기 끝에 ‘일체마군의 무리가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말을 인연으로 해서 마왕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5. 마왕
이시(爾時)에 유마힐(維摩詰)이 어대가섭(語大迦葉)하되 인자(仁者)여 시방무량아승지세계중(十方無量阿僧祗世界中)에 작마왕자(作魔王者)는 다시주불가사의해탈보살(多是住不可思議解脫菩薩)이 이방편력고(以方便力故)로 교화중생(敎化衆生)코저 현작마왕(現作魔王)이니라
그때에 유마힐이 대가섭에게 말하였다.
“인자여, 시방에 한량없는 아승지세계 중에 마왕이 된 사람은 대개 불가사의 해탈에 머문 보살입니다. 방편의 힘으로 중생을 교화하려고 마왕이 된 것입니다.”
방편의 힘으로 중생을 교화하려고 마왕이 된 것이다. 마왕이라고 하는 것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가섭(又迦葉)이여 시방무량보살(十方無量菩薩)이 혹유인(或有人)에 종걸수(從乞手)․ 족(足)․이(耳)․ 비(鼻)와 두(頭)․ 목(目)․ 수뇌(髓腦)와 혈(血)․ 육(肉)․ 피(皮)․ 골(骨)과 취락(聚落)․ 성읍(城邑)과 처자(妻子)․ 노비(奴婢)와 상(象)․ 마(馬)․ 거(車)․ 승(乘)과 금(金)․ 은(銀)․ 유리(瑠璃)와 자거(硨磲)․ 마노(碼𥓲)․ 산호(珊瑚)․ 호박(琥珀)과 진주(眞珠)․ 가패(珂貝)와 의복(衣服)․ 음식(飮食)이어던 여차걸자(如此乞者)는 다시주불가사의해탈보살(多是住不可思議解脫菩薩)이 이방편력(以方便力)으로 이왕시지(而往試之)하야 영기견고(令其堅固)니라
“또 가섭이여, 시방의 한량없는 보살들은 혹 어떤 사람이 손이나 발이나 귀나 코나 머리나 눈이나 골수나 피나 살이나 피부나 뼈나 마을이나 성읍이나 처자나 노비나 코끼리나 말이나 수레나 금이나 은이나 유리나 자거나 마노나 산호나 호박이나 진주나 가패나 의복이나 음식 등을 구걸하면 이처럼 구걸하는 사람은 대개 불가사의 해탈에 머문 보살입니다. 방편의 힘으로서 가서 시험하여 그를 견고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의미심장한 내용이다. 이것을 제가 조금 부연해서 적은 글이 있는데 살펴보겠다.
세상에는 거칠고 험한 사람들이 많다. 흉악하고 나쁜 사람들이 많다. 신문지상이나 텔레비전의 뉴스를 보면 세상은 온통 악으로 넘쳐나는 것 같다. 지위가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지식이 있고 없음을 막론하고, 재산이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정치인이나 사업가나 종교인이나 교육자나 농민이나 일용직이나 청소부나 모두가 부정과 부패와 비리와 사기와 거짓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는 것 같다. 세상이 어차피 이와 같다면 이와 같은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 것인가? 불교는 이와 같은 모습들을 마왕이라 한다. 그들은 마왕이 되어 중생들을 성숙시키고 견고하게 하려고 시험하느라고 그와 같은 악을 세상에 보인다고 이해하고 해석한다. 그렇게 해석하지 아니하면 견디어 낼 수가 없다. 도저히 참을 길이 없다. 사람들을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려고 방편으로 더욱 견고하고 더욱 성숙하게 하는 보살행이다. 사람을 핍박하는 것은 차원 높은 역행으로 보이는 보살행이다.
험한 세상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해야 되겠는가?
‘아 저사람은 나를 깨닫게 하고 나를 성숙시키게 하고 나를 사람 되게 하려고 저런 모습을 나에게 보인다’ 선한 사람은 우리가 본받아서 교훈으로 삼고, 악한 사람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으로 소화하고 이해하라고 하는 말을 흔히 하지 않는가?
세상에 악한 사람이 많고, 선한 사람도 많다. 선한 사람을 우리가 본받아서 그것을 실천하면 되는 것이고, 악한 사람은 ‘저렇게 해서는 안된다’ 라는 깨달음으로 전환시켜서 소화하고 이해해야 된다는 뜻이 되겠다.
그래도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세상의 그런 문제들이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수용하고, 어떻게 소화해야 될 것인가’ 고민이 크다. 답답하기도 하다. 무슨 해결책은 없다. 도저히 어떻게 내가 털끝 하나도 바로잡아둘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우리가 이해하고 해석해야 될 것인가? ‘그들은 나를 경책하고 가르치기 위해서, 나를 더 나아가서 깨닫게 하기 위해서 저렇게 우정 역행으로 보살행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고 이렇게 수용하는 방법밖에 다른 것은 없다. 다른 것은 해결책이 없다. 그렇게 이해하고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또 한편 마음은 늘 섭섭하고 속이 상하고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는 사람, 도저히 더이상 보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중생인 이상 그런 마음이 늘 난다. 그 마음이 나는 것은 어찌 하겠는가?
그런 마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를 깨우치기 위해서 역행보살로서 저렇게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이해하고 소화하고 해석하는 것으로 밖에 달리 다른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여기도 보살과 마왕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마왕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보살의 역행보살로서의 역할이다 라는 표현이다.
소이자하(所以者何)오 주불가사의해탈보살(住不可思議解脫菩薩)은 유위덕력(有威德力)일세 고행핍박(故行逼迫)하야 시제중생(示諸衆生)의 여시난사(如是難事)라 범부(凡夫)는 하열(下劣)하야 무유공세(無有力勢)하야 불능여시핍박보살(不能如是逼迫菩薩)이니 비여용상축답(譬如龍象蹴踏)은 비려소감(非驢所堪)이라 시명주불가사의해탈보살(是名住不可思議解脫菩薩)의 지혜방편지문(智慧方便之門)이니라
“무슨 이유인가 하면 불가사의 해탈에 머문 보살은 위덕의 힘이 있기 때문에 짐짓 핍박을 행해서 여러 중생에게 이처럼 어려운 일을 보입니다. 범부는 하열하여 힘이 없으므로 능히 이처럼 보살을 핍박하지 못합니다. 비유하자면 용이나 코끼리처럼 차고 짓밟는 것을 당나귀는 견디어 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의 이름이 불가사의 해탈에 머문 보살의 지혜와 방편의 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부사의품의 결론인데 한 번 다시 읽겠다.
무슨 이유인가 하면 불가사의 해탈에 머문 보살은 위덕의 힘이 있기 때문에 짐짓 핍박을 행해서 여러 중생에게 이처럼 어려운 일을 보입니다.
중생들에게 이처럼 어려운 일을 보인다. 보살이 그런 일을 중생을 깨우치기 위해서 보이는 것이다. ‘우정 보이는 것이다’ 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범부는 하열하여 힘이 없으므로 능히 이처럼 보살을 핍박하지 못합니다.
범부는 그런 짓을 못한다. 보살이라야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다.
비유하자면 용이나 코끼리처럼 차고 짓밟는 것을 당나귀는 견디어 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의 이름이 불가사의 해탈에 머문 보살의 지혜와 방편의 문이라고 합니다.
속시원하게 백퍼센트 이해는 못하겠지만 저 나름대로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해석하고 수용하고 그렇게 소화하는 길 밖에 달리 다른 길은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다.
오늘 유마경 공부, 부사의 해탈경계, 부사의품 공부는 이것으로써 마친다. 다음 시간에는 관중생품을 공부하겠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
또 오신 분들 한 번 살펴보겠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유마경 공부에 동참해서 자리를 빛내주셨다. 감사하다.
*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부처님의 태양은 더욱 더 밝아지고
진리의 수레바퀴는 쉬지 않고 굴러가서
미망에 허덕이는 중생들
하루빨리 지혜의 눈이 활짝 열려지기를
발원합니다.
성불하십시오.
첫댓글 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감사합니다.
열린 견해..._()()()_
*不可思義한 일이 마음의 이치에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魔王마저도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하나의 方便이다. 사람을 핍박하는 逆行菩薩이다.
*維摩經의 깊은 뜻을 한 번 더 음미해 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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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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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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