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 그대가 문밖에 나서자 내가 섭섭하였는데 하늘을 쳐다보니, 검은 구름이 모여들고 빗방울이 후득후득 떨어지기에 곧 동자童子를 시켜 뒤를 쫓게 하였으나 동자가 철교鐵橋까지 갔다가 보지 못하고 돌아오므로 나는 오랫동안 탄식하였소. 나는 오할한 선비라 세상 물정에 너무도 소홀하여 백에 하나도 능한 것이 없고, 어린아이처럼 어리석고 소녀와 같이 조용할 뿐이라, 우연히 그대를 만나 평소부터 친숙한 구면을 보듯 할 줄은 뜻밖이었소. (중략)
내 일찍이 잠箴을 짓기를, ‘;말은 금 쪽 같이 아끼고 자취는 옥玉처럼 갈무리하라. 그 빛남을 흉중에 간직하여 오래되면 밖으로 나타나 빛난다. ’하고 또 일찍이 이르기를 ‘지조가 없이 속세에 어울리면 그 자취가 비루해지고 궁벽한 것을 캐고 괴이한 일을 행하면 그 뜻이 오만하게 된다. 비루해지면 남에게 아첨하게 되고, 오만하면 자신을 해치게 된다.’고 하였고, 엣 사람이 이르기를 ‘특별히 남과 달리할 필요는 없으나 또한 구차히 남에게 부합할 필요도 없다.“ 하였으니, 내가 이를 장쾌히 읽으며 여러 친지들에게 써서 주었소,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오.
아, 사특한 기운이 날로 성해지고 부당해져 회복할 줄 모르는 것을 차마 입으로 형언할 수 없소. 순진하고 명철하여 선민先民과 짝할 사람은 오직 그대와 같은 사람이라야 될 수 있으니, 그대는 이에 힘쓰시오. 나의 나이는 실로 그대보다 많으나 ‘덕망도 나보다 높고 재주도 나보다 낫다’는 그대의 말을 내가 어떻게 감당하겠소. 해가 길어졌으니 언제 한번 한가한 날을 틈타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는 듯이 찾아주지 않겠소.“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이덕무가 <북학의>를 지은 초정 박제가에게 보낸 편지이다.
아정 이덕무의 글을 읽으면 복잡한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교외에 나가 맑은 바람을 맞는 듯하다. .
반갑게 만났던 사람이 돌아가자마자 비가 내린다. 뒤따라 사람을 보냈는데 그 사람은 이미 보이지 않는다. 그에게 한가한 날을 틈타 가벼운 옷차림으로 찾아주기를 청 한다
나이의 높고 낮음이나 이성 또는 동성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 신뢰로 사랑으로 맺어진 사람들의 관계라고 한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이렇게 도타운 사람들의 관계를 볼 수 없는 세상이라서 그런지 아침에 이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 속에 맑고 청량한 기운이 막 스며드는 듯하다.
첫댓글 오를 수 없는 경지를 다만 얼핏 구경하는 것도 한없이 커다란 즐거움이 됩니다. 살짝 훔쳐보고 흉내라도 내 볼 양 입니다.
유명한 예술가들도 처음엔 습작으로 시작하죠.....ㅎㅎ 그런 맘을 냄 또한 이미 그 길을 가고 있음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