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의 문학사적 업적
사실주의 문학의 지평 타개
“초창기 한국문단을 빛낸 사실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공로자”김우종, 《한국현대소설사》로, “ 기법 면에서 리얼리즘의 지평을 타개”조남현, 〈근대산문〉 《한국문학》 했다
지식인 작가다운 정체성 확립
일장기말소의거를 일으켜 고문과 투옥을 당한 독립운동가였고. “식민통치를 받는 피압박 민족의 지식인으로서 민족적 양심을 끝까지 지켜나간 몇 안 되는 문인 중의 한 사람”현길언, 《문학과 사랑과 이데올로기》이었다. 그는 “작품에 비견될 만한 선물을 후세에 전해주었으니 바로 자신의 ‘삶’이다”양진오,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
독립운동시기 민족과제 소설화
암시와 비유로 독립과 가난 문제를 효과적으로 형상화해낸 〈적도〉 〈운수 좋은 날〉 등을 발표함으로써 “민족의식을 고취”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한 “기교의 천재”김동인, 《한국근대소설고》였다.
풍자소설의 새 흐름 개척
〈B사감과 러브레터〉 〈피아노〉 〈 정조와 약가〉 등 초기 현대문학에서 보기 드문 풍자 기법을 구사해 한국문학의 새 갈래를 열었다.
단편소설의 형식 타파
단편의 통념적 형식을 타파하고 짧은 분량 안에 민족의 어두운 그늘을 재치와 진중함으로 고발한 “ 매우 값있는”김우종, 《한국현대소설사》 〈고향〉을 남겼다.
역사소설의 면모 변용
“진정한 역사의 주인공은 민중이라는 사실”송백헌, 《한국근대역사소설연구》을 증언한 “설화의 문학적 변용”조남현, 〈근대산문〉 《한국문학》 〈무영탑〉은 전설을 소재로 훌륭한 역사소설을 창작해낸 귀중한 선례이다.
현진건에 대한 평가
“한국 단편소설의 아버지”
- 김윤식 ‧ 김현, 《한국문학사》
“한국 근대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
- 조연현, 《한국현대문학사》
“한국의 모파상”
- 장덕순, 《한국문학사》
“기교의 천재”
- 김동인, 《한국근대소설고》
"일장기 말소 의거의 직접 책임자"
국가보훈처 공훈록(독립유공자 인정 문서)
현진건 소설의 3단계
인천근대문학관은 “현진건은 〈빈처〉(1921), 〈운수 좋은 날〉(1924), 〈 고향〉(1926) 등을 통해 식민지 현실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지식인과 노동자, 농민의 궁핍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라고 소개한다. 인천근대문학관의 표현은 현진건의 초기소설이 ‘지식인 소설’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게 해준다.
흔히 〈빈처〉(1921)와 〈술 권하는 사회〉(1921)로 대표되는 현진건의 초기작들은 ‘자전적 소설’로 분류되어 왔다. 자전적 소설은 이야기의 충심축이 작자 본인의 삶과 그대로 연결되고, 대체로 성장 과정을 담은 장편을 가리키는 문학용어이다. 하지만 현진건은 본가 ‧ 처가 ‧ (양자로 입후한) 당숙 양보운의 집 모두가 상류층이었고, 본인도 신문기자로서 21세부터 이름을 날렸으므로 〈빈처〉 〈술 권하는 사회〉 등의 무직 ‧ 술주정뱅이 ‧ 난봉꾼 주인공들과 조금도 닮지 않았다.
현진건은 양진오 저서 《조선혼의 발견과 민족의 상상》이 규정한 바와 같이 ‘사회파’ 작가이다. ‘사회파’ 소설가라는 말은 당대가 독립운동시기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민족문학 작가였다는 뜻이다.
현진건은 1920∼3년 자신이 소속된 지식인 집단의 일그러진 군상을 묘사해 정치적 억압 상태의 우리나라 현실을 그려낸다. 1924∼5년에는 〈운수 좋은 날〉(1924), 〈불〉(1925) 등의 가난한 대중을 내세워 궁핍한 식민지 실상을 폭로한다. 1926년 이후는 〈고향〉(1926), 〈신문지와 철창〉(1933), 〈적도〉(1933∼4), 〈무영탑〉(1938∼9) 등을 통해 독립을 되찾아야 할 ‘조선의 얼굴’을 보여준다.
현진건 소설은 지식인소설 〉민중소설 〉민족소설의 3단계로 나눌 만하다. 민중소설에서 민족소설로 나아가는 시점은 1925년 창작되어 1926년 발표된 〈고향〉, 1926년 발간된 창작집 《조선의 얼골》, 〈적도〉의 전신으로 1925년과 1927년에 각각 창작된 〈새빨간 웃음〉과 〈해뜨는 지평선〉이다. 현진건 소설을 더 이상 자전적 소설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
주요 이력
1895.
아버지 현경운, 대구 거주 시작
✧ 1900. 9. 2.
대구에서 출생
✧ 1904. 1. 11.
8촌형 현상건, 고종 특사(중립국 수립 목적)로 유럽 순방 후 귀국
✧ 1904. 3. 31.
숙부 현영운(배정자의 전 남편), 특명전권공사로 일본 부임
✧ 190?∼190?
(북재?)서당에 다님
✧ 1908. 9. 15.
현경운, 노동야학 교장 취임
✧ 1910. 4. (10세)
셋째형 현정건, 중국 망명
✧ 1910. 6. 13. (10세)
어머니 이정효 타계 (더욱 외로워진 현진건)
현진건 주요 연보
✧ 1915. (15세)
사립보성고등보통학교 입학
✧ 1916. (16세)∼1919.(19세)
일본 및 중국 유학
✧ 1919. 6. 19. (19세)
5촌당숙 현보운의 양자로 결정되면서 귀국
✧ 1920. 11. (20세)
첫 소설 〈희생화〉발표
✧ 1920. 12. (20세)
조선일보 기자 입사
✧ 1921. (21세)
〈빈처〉 〈술 권하는 사회〉 발표
✧ 1924. (24세)
〈운수 좋은 날〉 발표
✧ 1925. (25세)
〈B사감과 러브레터〉 발표
✧ 1926. (26세)
〈고향〉 발표 (원제 ‘그의 얼굴’)
✧ 1926. 3. 20. (26세)
소설집 《조선의 얼골》발간 (조선총독부 ‘판매 금지 도서’)
✧ 1929. (29세)
〈신문지와 철창〉 발표
✧ 1932. 12. 30.
셋째형 현정건(40세) 순국
✧ 1933. 2. 8.
셋째형수 윤덕경(38세) 자살
✧ 1933.(33세)∼1934.(34세)
장편소설 〈적도〉 발표
✧ 1936. (36세)
일장기 말소 의거
✧ 1939∼40. (39∼40세)
장편소설 〈무영탑〉 발표
✧ 1943. 4. 25. (43세)
타계 (이날 이상화도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