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_연중15주간 목요일_그리스도의 멍에
‘멍에’라는 말은 15세기에 처음 ‘머에’ 혹은 ‘멓에’로 처음 나타납니다. ‘ㅇ(옛 이응)’이 소멸하면서 16세기 이후 지금의 ‘멍에’로 형태가 변했습니다. 소나 말을 부리기 위해 목의 등쪽으로 걸치는 구부정한 나무 막대를 가리키는 말이 ‘멍에’입니다. 이 ‘멍에’에다 쟁기나 수레, 달구지, 연자방아 따위를 연결해 말이나 소가 끌수 있도록 했습니다. 때문에 이 ‘멍에’를 채운 소나 말은 자유를 속박당하여 자기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멍에’가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구속이나 억압’이라는 비유적 의미를 갖게 된 것입니다. 관용구로 ‘멍에를 메다’라고 표현할 때, ‘(사람이) 어떤 일이나 인식에 얽매이다’라고 사용합니다. 명사로는 사람의 마음이나 행동에 있어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구속이나 억압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자신의 멍에를 우리더러 메라고 하시는 예수님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멍에는 무엇일까요?
소나 말의 등에 걸어 쓰임을 갖게 되는 멍에라는 뜻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신의 멍에는 하느님의 뜻을 이 세상에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세속적인 눈으로 볼 때에 이 멍에의 무게는 지치고 힘들며, 결국에는 온갖 고통으로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 주인들의 이 짐은 종들의 힘을 점점 더 빠지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시선에서 이 멍에는 가벼우며, 이 짐을 드는 종들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무게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도와줍니다. 이 멍에를 통해 연결되어 있는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은총을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은총이 우리를 지고 갑니다. 우리가 은총을 돕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도우라고 은총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무언가에 얽매이다’고 말하는 것이 자유를 억압하는 부정적인 것이라면, 그리스도의 시선에서 이 멍에는 ‘마음이 쓰이고, 몸이 따르게’ 만듭니다.
복음서에 여러 곳에서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그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가엾은 마음’이 떠오릅니다. 수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따라와서 가르침을 듣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드셨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굶주림에 목말라하는 것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단지 육신의 허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일에 지치고 힘들어 하는 군중에게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에 희망을 발견하고, 영적으로 느끼는 허기를 발견하신 것입니다.
1독서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에서는 이러한 영적 허기를 발견하고, 굶주려하는 올바른 사람,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서 있는 의인의 모습을 들려줍니다.
“의인의 길은 올바릅니다. 당신께서 닦아 주신 의인의 행로는 올곧습니다. 당신의 판결에 따라 걷는 길에서도, 주님,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겁니다.”
우리도 주님이 주시는 멍에를 기쁘게 짊어질 수 있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