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문학』 제7집(2014)에 실었습니다*
남성 패션
심양섭
올해로 십 년째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느낀 것이 한 가지 있다. 남학생들이 ‘예쁘다’는 것이다. 남학생들이 점점 ‘예뻐지면’ 여학생들이 유혹을 더 느껴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나의 말이 퍽 생뚱맞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남학생들이 ‘예쁘다’는 것은 남성의 여성화를 말하는 게 아니다. 과거와 달리 남학생들도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면서 여성 못지 않은 ‘아름다움’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여학생보다 남학생이 더 귀엽고 깜찍하다. 헤어스타일에서부터 화장, 패션,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남학생들의 외모도 한결 화려해졌다. 모든 남학생들이 ‘꽃미남’은 아닐지라도 ‘꽃미남’은 오늘날 남학생들이 추구하는 하나의 모델임에 틀림없다. ‘터프가이(tough guy)’ 혹은 ‘마초맨(macho man)’이 마치 남성을 상징하는 것처럼 여겨졌던 때도 있었으니 격세지감(隔世之感)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요즘 한국사회에서는 ‘예뻐지려는’ 남자들과 그런 심리를 이용하여 돈을 벌려고 하는 미용업계, 화장품업계, 의류업계의 계산이 맞물리면서 남자들의 외모 가꾸기 경향에 가속도가 붙었다.
나는 이런 경향을 부정적으로 생각지 않는다. 일찍이 <헤어스타일 혁명>이나 <화장하는 남자>라는 수필에서도 슬쩍 운을 떼었지만 오늘날과 같은 여성시대에는 남자들도 모름지기 미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남성우월주의 시각에서 남자는 꾸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이다. 물론 문신(文身, tattoo)이나 보디 피어싱(body piercing)은 찬성하지 않는다.
원래 나 자신은 ‘남성 멋내기 문화’와 무관한 환경에서 자라났고 또 살았다. 그러다 보니 헤어스타일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얼굴은 어떻게 가꾸는 게 좋은지, 그리고 옷을 잘 입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였다. 그것을 나에게 가르쳐준 사람도 없다. 심지어는 내 아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저 ‘편하고 깨끗한 것’이 내가 외모와 관련하여 추구하는 가치의 전부였다.
이 수필의 주제인 <남성 패션>에 관해서도 나는 완전초보이다. 남녀 공히 외모를 돋보이게 함에 있어서는 ‘코디(coordination)’가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조차 몰랐다. ‘코디’를 사전에 찾아보니 “의상, 화장, 액세서리, 구두 따위를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갖추어 꾸미는 일”이라고 한다.
예전 같으면 ‘코디’를 염두에 두는 일은 나에게 극히 피곤한 일일 뿐이다. ‘코디’의 중요성을 공감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코디’에 신경쓸 시간적, 정신적, 물질적 여유도 없었다. 지금은 생각이 사뭇 다르다. 할 수만 있다면 배워서라도 ‘코디’에 신경쓰고 싶다. 이래저래 학교에서나 교회에서나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할 기회도 적지 않을뿐더러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기왕이면 ‘매력’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러다 보니 남성 패션을 소개하는 신문기사나 신간서적 보도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게 되었다. 몇 번 스크랩만 하다가 마침내 남성패션 안내책자를 한 권(『왜 옷을 잘 입는 남자가 일도 잘할까』) 구입했다. 일본의 여성 스타일리스트가 비즈니스맨을 대상으로 쓴 책이다. 주로 정장 혹은 세미 정장 스타일을 다루었는데 나는 이 책을 읽고 일종의 ‘개안(開眼)’ 효과를 맛보았다. 이 한 권만으로는 학습량이 절대 부족할 테니 나의 패션공부는 이제 시작인 셈이다.
우선 신발장에서 구두솔과 구두약 틈에 쳐박혀 있던 옷솔을 찾아 꺼냈다. 정장에 묻은 먼지를 쓸어내리는 데는 찐득찐득한 보풀제거기보다 옷솔이 좋다고 그 책에서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백화점에 가서 넥타이를 안 맬 경우에 어울리는 셔츠를 세 개나 사고 그것에 받쳐 입을 바지도 세 개 샀다. 겨울방학 기간에 두 차례 해외여행 할 기회가 있어 면세점에서 혁대도 세 개를 장만했다. 아직 구두는 새로 장만하지 않았지만 정장에 어울린다는 ‘끈달린 가죽구두(옥스퍼드 구두)’도 기회가 되면 갖출 생각이다.
방학 중에 마련한 이런 옷가지와 혁대를 착용하고 신학기 강의실에 들어서니 나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새로워진 느낌이 든다. 단지 셔츠에 바지, 벨트가 바뀌었을 뿐인데 그것들이 어울려 ‘조용한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조금 더 배우고 조금 더 갖추면 한결 달라진 인상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문제는 남성 패션에 당연히 돈이 든다는 것이다. 고급제품도 아닌 중급제품 몇 가지를 한꺼번에 구입하였을 뿐인데 거기에도 상당한 금액이 소요되었다. 그 여파로 다른 씀씀이를 줄여야 하는 ‘고통’을 겪었다. 경제력이 변변찮은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직장인들이 빠듯한 살림에 외모 가꾸기를 위한 재원을 짜내느라 겪을 아픔이 공감되었다.
나는 여전히 일부 모임에 가면 ‘젊다’는 소리를 듣지만 그것은 그 모임에 고령층이 많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보아 나는 이제 확실히 중년에 접어들었다. 자칫 보는 이로 하여금 ‘느끼함’을 느끼게 할 나이가 된 것이다. ‘느끼한 중년’을 하루아침에 ‘꽃중년’으로 바꾸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남성패션에 쏟는 작은 투자가 인상을 어느 정도는 바꿔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가슴 언저리가 허전해 보이는 노타이 차림을 포켓 행커치프로 보완하는 것이다.
옷이 날개라는 말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다름없이 금언(金言)이다. ‘꽃중년’ 혹은 ‘로맨스 그레이(romance gray)’를 향한 남자의 자기 가꾸기는 결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단언컨대 ‘21세기 중년 남성의 멋내기’는 무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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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옛말에 '벗은 거지는 못 얻어 먹어도 입은 거지는 얻어 먹는다' 하였습니다. 중년이야 어때요, 노년에는 정말 가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드니까 하기 싫어서 구질 해져요. 정신 차리고 가꾸어야 할 듯 합니다. 찐득이 보다 옷솔이 낫다는 것 처음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경자 샘, 감사해요^^저도 귀찮아서 가까운 곳은 세수도 안 하고 아무렇게나 입고 돌아다니곤 하는데 앞으로는 안 그래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