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
김 국 자
우리 동네에 메밀꽃이 피었다. 정말 오랜만에 메밀꽃을 본다. 이 곳은 무허가판자촌이 다닥다닥 붙어있던 곳이다. 판자촌에서 버리는 오물로 인하여 악취가 풍기고 파리와 모기떼가 들끓었었다. 개천을 사이에 끼고 양쪽으로 들쑥날쑥 들어찬 건물지붕 위에는 비바람을 막기 위해 얹어놓은 형형색색의 천막 지와 폐타이어 등 잡동사니들로 지저분했었다.
더구나 장마철만 돌아오면 하천이 범람하는 위험지역이었다. 지난여름 대대적인 홍수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여 그곳 주민들 모두 임대아파트로 이주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수목으로 단장한 공원이 조성되었다.
주민들의 쉼터로 팔각정이 세워지고 여러 가지 운동기구도 구비되었다. 생태연못을 만들어 혹옥잠, 검정말, 갈대, 수련, 부들 등 수생식물을 심고, 모기유충인 장구벌레를 잡아먹는 잉어와 방아깨비도 넣었다. 빈 공간에는 자연학습장을 조성하여 야생화와 토종식물을 심었다. 메밀밭 역시 그러한 연유로 조성되었다.
재작년 봄, 도봉구새마을협의회와 부녀회원 일동이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창동역 앞에 있는 공터를 정리했다. 주민들이 몰래버린 생활쓰레기로 지저분했었는데, 쓰레기투기를 막기 위해 말끔히 정리하고 밭을 만들었다. 그 자리에 무엇을 심을까? 의견을 모을 때 의견이 분분했었다. 메마른 토양에서도 잘 자라고 꽃도 보고 음식을 만들어먹을 수 있는 메밀을 추천했더니 회원들 모두 내 의견에 찬성했다.
씨앗을 뿌리던 날, 가랑비가 내렸다. 촉촉이 내린 비 덕분에 며칠 후 새싹이 돋기 시작했다. 푸릇푸릇 돋아나는 메밀 싹을 보며 흐뭇했었다. 회원들끼리 팀을 이루어 풀을 뽑고 솎아주며 거름을 주었다. 연둣빛 싹이 초록으로 변하고 줄기가 자줏빛으로 변하여 대궁이 굵어지고 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했다. ‘이제 곧 꽃이 피겠구나!’ 기대에 부풀어있던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그 앞을 지나게 되었다.
메밀밭을 바라보다가 이상한 장면이 눈에 띄었다. ‘잘못 본 건 아닐까?’ 부지런히 뛰어가 보았더니 예기치 않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건장한 인부들이 트럭에 있는 건축자재를 메밀밭으로 마구 던지고 있었다. “아저씨!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격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할 뿐입니다” 느물느물한 대답에 “무엇을 만들 건데요?” 거칠게 물었다. “아파트모델하우스를 지을 겁니다.” 인부의 말을 들으며 어이가 없었다.
나 혼자 한 일은 아니지만, 정성껏 가꾸어놓은 메밀밭이 하루아침에 망가질 줄은 상상도 못한 일이다. 황무지나 다름없이 지저분했던 곳을 옥토로 만든 일이 헛수고라 생각하니 속이 상했다. 작업하던 날, 구청직원도 동참했던 생각을 하니 더욱 화가 치밀었다.
우리 고향에도 메밀농사를 많이 지었다. 어린 순은 삶아서 무쳐먹고 꽃이 핀 다음 열매가 여물면 낫으로 베어 도리깨로 타작하고껍질은 베갯속으로이용했다. 맷돌에 갈아 묵을 쑤고, 국수를 뽑고, 부꾸미를 해먹었다. 봄이면 쑥을 뜯어다가메밀가루를 묻혀 버무리도 쪄 먹었다.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은 감기로 열이 높을 때, 어머니가 끓여주신 메밀차를 마시고 열이 내린 일이다. 그땐 쌀이 귀해서 메밀음식을 많이 먹었는데, 지금은 건강식품으로 각광 받는 시대가 되었다.
메밀농사로 유명한 강원도 봉평에는지금 메밀꽃축제가 한창이라고 한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상상하며 우리 동네에 피어있는 메밀밭을 거닐어본다. 새마을회원들과 가꾸었던 메밀밭이 공사장으로 바뀌었을 때, 속상했던 기분을 잊고 싶어 메밀밭을 거닌다. ‘온통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는 표현처럼 온통 하얗게 피어있는 메밀꽃을 바라보며 기분전환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