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현상’은 기존 정치가 국민들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음에 여기서 실망한 국민들이 새정치를 지향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그러나 이는 엄격히 말하면 자연인 안철수를 지지한 것 보다 기존정치를 타파하고 새로운 정치를 해야 한다는 집단지성의 움직임이었다. 이 집단지성의 움직임을 안철수가 착각했으며 그를 감싸고 있던 이너서클의 멤버들도 착각했었다. 안철수가 집단지성의 움직임을 견인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안철수가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처럼 거대 지지그룹을 견인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이 있는 것으로 착각했음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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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일 박영선 당대표 직무대행과 중진의원들이 여의도 국회에서 비대위 구성 관련 비상회의를 하고 있다 © 새정치민주연합 |
그러나 안철수는 김대중도 김영삼도 노무현도 아니었다. 따라서 이 착각은 말 그대로 착각으로 끝났으며 안철수라는 신기루가 사라진 순간 우리 사회의 집단지성이 새정치를 갈망한 것이 아니라 안철수라는 기린아를 갈망했다가 잃어버린 것으로 오인되게 만들었다. 안철수가 실패한 원인이며 안철수 현상을 오인한 사람들이 실패한 원인이다.
나는 처음부터 줄곧 안철수는 현재의 야당을 새로운 야당으로 바꾸는 매개체로만 봤다. 그래서 그가 그 현상을 일으킨 집단지성과 함께 현상의 극대회로만 작용하기를 바랐다. 즉 안철수 개인의 성공이 아니라 집단지성의 성공을 바란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안철수 개인도 성공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안철수도 그 현상을 오인했던 사람들도 다 실패했다.
그러면 이제 안철수 현상은 신기루였으므로 그동안 수많은 사람이 열광했던 새정치의 꿈은 이뤄질 수 없는 것인가? 아니다. 새정치를 열망하는 집단지성은 지금도 맹렬하다. 다만 이 집단지성이 정치 자영업자들에게 옥죄어있을 뿐이다. 때문에 새정치는 집단지성을 옥죄고 있는 정치 자영업자들이 정치 자영업을 영위할 수 없도록 하면 바로 이뤄질 수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은 공직선거법의 개정이다.
지금 정치권은 제왕적 대통령과 지역할거 정치의 타파를 위한 급선무로 헌법 개정을 말한다. 1987년 6월 항쟁의 산물인 현재의 헌법적 틀, 즉 87체제는 그 시효가 다했으므로 헌법 개정을 통해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여당이든 야당이든 시민사회 운동권이든 언론이든 정치학자를 비롯한 오피니언 리더들이든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다.
다만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이며 언제 달 것인가에서만 설왕설래다. 이는 현 대통령 임기 중인가. 임기 후인가, 다음 대통령이라면 그에게 헌법이 정한 5년 임기를 다 맡길 것인가. 중도에 그만두게 할 것인가 중도에 그만두면 개정된 헌법에 의해 임기를 중단한 대통령이 또 후보로 출마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등에서 각자의 이익이 상충되고 있다. 따라서 헌법 개정에 대한 여론은 분분하지만 실제 개정으로 이뤄지려면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그냥 갈 것인가? 아니다 현상은 타파해야 하고 그 타파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방법이 공직선거법 개정이다. 가장 중요한 항목인 공직선거법 제49조를 개정해야 한다. 이 49조에는 정당 공천자에게 필요한 서류로 “추천정당의 당인(黨印) 및 그 대표자의 직인이 날인된 추천서”를 명시하고 있다. 이를 우리는 공천장이라고 부른다.
당 대표의 날인이 필요한 공천장은 곧 중앙당 공천을 명시함이다. 기초단체의 기초의원까지 현행법에 의해 이 공천장이 필요하다. 안철수가 새정치를 주장하면서 기초단체의 공천만이라도 없이 하겠다고 주장했다가 결국은 정치 자영업자들에게 밀려 후퇴했다. 방법이 틀렸기 때문이다. 방법이 틀렸으므로 지역구 의원이나 지역구 지역책임자라는 작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 내놓기 싫어서 반항했고 그 반항에 밀렸다. 지역구라는 자산을 가진 작은 권력자도 자기의 자산들을 내놓기 싫어하는데 전국의 모든 공직후보자 추천권을 가질 수 있는 정당 대표라는 권력자는 어떻겠는가? 지금의 공직선거법이라면 당내 이전투구는 잡을 수 없다.
이 권력 때문에 정당은 계파가 있고 보스가 있으며, 보스의 성공이 계파의 성공이고 그래야 자신에게 떨어질 콩고물이 많다는 진리 아닌 진리를 지금 현역 정치인들이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을 개정해야 한다. 이 부분을 개정하지 않으면 정치개혁은 언제나 공염불이다. 정치 자영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명시한 문제의 49조 2항 전문은 이렇다.
② 정당추천후보자의 등록은 대통령선거와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 및 비례대표지방의회의원선거에 있어서는 그 추천정당이, 지역구국회의원선거와 지역구지방의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선거에 있어서는 정당추천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가 신청하되, 추천정당의 당인(黨印) 및 그 대표자의 직인이 날인된 추천서와 본인승낙서(대통령선거와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 및 비례대표지방의회의원선거에 한한다)를 등록신청서에 첨부하여야 한다. 이 경우 비례대표국회의원후보자와 비례대표지방의회의원후보자의 등록은 추천정당이 그 순위를 정한 후보자명부를 함께 첨부하여야 한다. <개정 2011.7.28.>
이 항목 중 “추천정당의 당인(黨印) 및 그 대표자의 직인이 날인된 추천서”를 “추천정당의 당인(黨印) 및 추천정당 지역후보추천위원회의 대표자 직인이 날인된 추천서”로 개정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2항의 보완조문으로 “지역후보추천위원회는 각 지역당에 두며 지역당 대표자는 전체 지역당 당원들의 투표로 정한다”는 항목, “지역후보추천위원회는 공직후보자 추천을 위해 필요한 기구로서 상시 운영되며 공직후보자가 되려고 하는 자는 선거 기간에 상관없이 지역후보 추천위원회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뒤 상시 활동할 수 있다”와 “지역당원들은 지역후보추천위원회에 등록된 예비후보에 한하여 후보추천 투표권을 행사한다”등을 삽입하는 것이다.
내년인 2015년 3월11일에 전국의 농협·축협·수협·산림조합장 선거가 동시에 시행된다. 지금까지 각 지역의 농협, 수협, 산림조합장을 뽑는 날이 제각각이었지만 이번부터는 같은 날 동시에 치러지게 된다. 이는 각 조합마다 제각각인 선거일 때문에 중앙선관위가 통제할 수 없었던 관계로 그동안 엄청난 선거비리가 자행되었다는 자성에서 이뤄진 결실이다. 이런 자성과 함께 선관위의 감시, 감독 하에 조합장 선거를 치러 지역의 선거문화를 바꾸겠다는 개혁의 일환이다.
조합장 선거는 정당 공천이 없다. 조합장 선거는 1인 1표가 아니라 조합원 1표다. 각 가정이 부부 또는 아들 며느리가 함께 살아도 조합원이 1인이면 가정당 1표다. 이 조합원 전체의 직접투표에 위해 조합장을 선출한다. 이 자생적인 민주적 방식은 조합장의 연임을 매우 어렵게 한다. 조합의 경영 실적과 조합장의 조합원 친밀도가 당선의 제1조건이다. 현역 조합장의 조합경영 실패나 권력자로의 군림은 낙선의 제1조건이다. 조합장이 권력자로서 군림할 수 없으며 경영자나 심부름꾼 노릇에만 충실해야 한다. 돈 선거가 그동안의 병폐였으나 지금 이런 돈 선거는 특정한 몇몇 조합에만 남아있을 뿐, 조합장 당선의 조건에서 상당한 조합이 돈은 부차적인 문제로 밀려났다. 다시 말하지만 당선 1순위가 조합경영실적이고 조합원 친밀도다.
지역당 대표자 선출에도 이런 방식을 대입하면 된다. 지역의 당원들에게 군림하는 권력자로의 대표자, 돈으로 당원을 매수하려는 금권에 의지하는 대표자, 이런 대표자는 지역당 전당원 투표로 대표자를 뽑는 관행이 정착되면 자연스럽게 타파될 것이다. 조합장 투표와 마찬가지로 지역당 대표자 선출 당원 투표도 선관위가 관장한다면 문제의 소지를 줄이는데 획기적 방식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당선된 지역당 대표자가 지역당 공직후보추천위원회의 장으로 모든 공직후보 추천서에 날인하게 하도록 법을 개정하자는 말이다. 이 법에 따라 지역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의 대표 직인이 날인된 추천서가 중앙당 대표의 직인이 날인된 추천서를 대체하게 하자는 것이다.
지역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의 대표는 다만 도장만 찍는 권한만 가졌으므로 그가 권력자가 될 일은 없다. 지역당 대표자는 군수일 수도 있고 국회의원일 수도 있고 심지어 기초단체 의원일 수도 있으며, 아무런 공직도 없는 일반 당원일 수도 있게 하며, 정당추천 공직후보자 추천서에 날인만 할 수 있는 권한만 있다면 모든 폐단은 없어진다. 모든 공직후보자는 전당원 투표로만 선출할 수 있게 하는 선거법으로의 개정이 필요한 이유다.
이 개혁이 이뤄진다면 정당의 계파정치, 보스정치는 청산되며 지역을 할거하는 정치 자영업자도 퇴출시킬 수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자신을 대리인으로 뽑은 유권자만 바라보는 정치를 할 것이다. 국회의원이 권력자가 아니라 심부름꾼이란 것을 스스로 인식할 것이다. 더욱이는 민주주의 선진국과 같은 지방의원으로 출발, 대통령에도 당선될 수 있을 것이다.
지미 카터는 1962년 조지아 주 상원 의원 선거에서 낙선하나 그 선거가 부정선거 였음을 입증하게 되어 당선되고, 1966년 조지아 주 지사 선거에 낙선하지만 다시 4년 후 1970년 조지아 주 지사에 당선되었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 조지아 주 상원의원을 두 번 연임과 1971년부터 1975년까지 조지아 지사로 근무한 경력이 정치경력의 전부였다.
빌 클린턴은 아칸소 대학교 로스쿨 교수이던 1974년 28세 때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도전하였으나 낙선하였다. 그러나 1976년 아칸소 주의 법무장관을 하면서 아칸소 주 유권자들에게 알려졌고, 1978년에는 아칸소 주 주지사로 당선된다.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32세로 당시 미국 최연소 주지사였다. 그러나 1980년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에게 패하여 낙선했다가 1982년 다시 주지사 선거에 도전하여 당선되었으며, 이후 1986년과 1990년 재선되어 1992년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 아칸소 주의 주지사만 연임했다.
버락 오바마는 1997년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어 2004년까지 주 상원의원만 3번 연임했다.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이던 2000년 연방 하원 선거에서 낙선했고, 2004년에 연방 상원 선거에 출마, 당선되었다. 2004년 3월 오바마는 상원의원 예비후보로 민주당 경선을 치렀는데 전국 최다득표를 했다. 이 때문에 그해 7월 치러진 대통령 후보선출 민주당 전당대회의 기조연설자로 발탁되었다. 그런데 그 기조연설이 황금 시간대에 TV로 방영되면서 전국적 관심을 받았고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 연방 상원 의원 선거에서 압도적 표차로 당선되었다. 이 여세를 몰아 2007년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며 전당대회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이기도 후보가 되었고 끝내 대통령에 당선, 지금 재선 대통령이 되어 있다.
지면 관계상 예를 최근 민주당 후보로서 대통령에 당선되어 대통령을 지낸 3사람만 조명했으나 미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등 민주주의 선진국의 최고권력자는 대부분 지역정치권에서 성장한다. 이들이 지역정치권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은 지역의 정치 자영업자가 정치 자영업을 영위할 수 없음이다. 지역의 정치 자영업자가 없으니 당연히 중앙당 권력자라는 것도 없다. 모든 권력은 당원들과 국민들에게 있다. 그러니 계파정치도 없고 계파끼리 당권을 놓고 치열하게 다투는 치졸한 저급정치도 없다. 이것이 다 선거법 때문이다.
개헌? 필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필요한 것이 공직선거법 개정이다. 법으로 정치 자영업을 할 수 없도록 막는 것 이상 정치개혁은 없다. 새정치연합이 비대위를 구성하고 비대위원으로 계파의 보스를 선임하므로 터져 나오는 불만들, 오늘 급기야 비대위 출범 하루 만에 문희상과 박지원, 더 엄격히는 친노와 박지원이 ‘모바일 투표’를 놓고 부딪친 사건, 이 싸움의 근본 원인이 바로 정치 자영업자들의 자산싸움이다. 그리고 현행 공직선거법은 이 싸움을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만든다. 그래서다. 정치개혁, 새정치는 공직선거법 개정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