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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못 찍기 Ⅰ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잘 찍었다”고 말하는가
사진을 일부러 못 찍는 작업을 하려면 먼저 ‘못 찍은 사진’이 아니라 ‘잘 찍은 사진’이라는 판단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밝혀야 한다. 사진의 잘됨과 못됨은 카메라 내부에 들어 있는 객관적 기준이 아니다. 특정한 시대의 기술, 회화적 관습, 사진교육, 공모전, 동호회, 미술관, 언론과 시장이 함께 만들어온 평가 체계이다.
핵심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잘 찍었다’는 말에는 서로 다른 세 가지 판단이 뒤섞여 있다.
① 기술적으로 정확하게 찍었다.
② 보기 좋고 인상적으로 찍었다.
③ 예술적으로 의미 있는 작업을 만들었다.
이 세 가지는 일치하지 않는다. 기술적으로 완벽하지만 상투적인 사진이 있을 수 있고, 초점과 노출이 불완전하지만 예술적으로 중요한 사진도 있을 수 있다.
[1] 오늘날 통용되는 ‘잘 찍은 사진’의 평가 기준
1. 기술적 정확성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기준은 카메라를 능숙하게 다루었는가이다.
(1) 초점이 정확한가
(2) 흔들리지 않았는가
(3) 노출이 적절한가
(4)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정보가 보존되었는가
(5) 색온도와 피부색이 자연스러운가
(6) 노이즈·색수차·왜곡이 잘 억제되었는가
(7) 인화와 후보정이 깨끗한가
이 기준은 사진이 실패하기 쉬운 기술이었던 초기 역사에서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사진 한 장을 선명하게 남기는 것 자체가 상당한 숙련을 요구했다. 따라서 ‘정확히 재현되었다’는 사실이 곧 사진가의 능력을 증명했다.
오늘날에도 사진 공모전과 동호회 심사에서는 선명도, 노출, 색상, 인화 상태 등이 ‘기술적 완성도’라는 이름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제작의 정확성을 판단하는 기준이지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자동으로 보증하는 기준은 아니다. 실제 공모전 지침도 기술적 완성도 외에 구성, 영향력, 창의성, 이야기 등을 별도의 항목으로 평가한다(The Society of Photographers, 심사 기준).
2. 정돈된 구도
흔히 좋은 사진은 화면이 안정되고 질서 있게 정리된 사진이라고 배운다.
(1) 주제가 분명해야 한다.
(2) 시선이 중심 대상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해야 한다.
(3) 불필요한 요소가 없어야 한다.
(4) 수평과 수직이 맞아야 한다.
(5) 화면의 무게가 한쪽으로 지나치게 쏠리지 않아야 한다.
(6) 삼분할, 대각선, 반복, 대칭, 소실점 등의 구조가 효과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7) 인물의 머리 위로 기둥이나 나뭇가지가 솟지 않아야 한다.
(8) 화면 가장자리에서 대상이 어색하게 잘리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기준은 사진만의 고유한 법칙이 아니다. 르네상스 원근법, 고전회화의 균형과 비례, 풍경화와 초상화의 배치법, 그래픽 디자인의 시각적 위계가 사진교육에 들어온 것이다.
특히 삼분할법은 자연의 보편법칙이라기보다 18세기 말 회화론에서 체계화되고 이후 사진 입문서가 간편한 공식으로 보급한 구성법이다. 따라서 삼분할에 맞았기 때문에 좋은 사진인 것이 아니라, 삼분할이 특정한 대상을 안정적이고 쉽게 읽히게 만들 때 효과적인 것이다.
3. 통제된 빛
잘 찍은 사진은 빛을 잘 사용한 사진이라는 평가도 널리 통용된다.
① 주제가 배경으로부터 분리되는 빛
② 입체감과 질감을 드러내는 빛
③ 지나치게 강한 명암을 피한 빛
④ 일출·일몰의 극적인 빛
⑤ 인물의 표정과 피부를 아름답게 만드는 빛
여기에는 빛이 대상을 명료하고 아름답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숨어 있다. 그래서 평범한 한낮의 빛, 형광등, 정면 플래시, 혼합광, 밋밋하고 무표정한 빛은 오랫동안 낮은 수준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동시대 사진에서는 이러한 ‘좋은 빛’ 자체가 상투적인 감정 효과를 생산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석양은 풍경을 드러내기보다 이미 학습된 감동을 자동으로 호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결정적 순간과 좋은 타이밍
거리사진과 보도사진에서는 정확한 순간을 포착했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① 인물의 동작이 정점에 도달한 순간
② 여러 요소가 절묘하게 겹치는 순간
③ 사건의 의미가 한 장에 압축되는 순간
④ 형태와 내용이 동시에 완성되는 순간
앙리 카르티에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의 사진은 기하학적 구성과 순간적 사건이 결합하는 모델로 널리 받아들여졌다. 다만 브레송의 사진을 단순히 ‘셔터를 빨리 누른 사진’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화면의 형태적 질서와 사건의 시간이 하나로 만나는 것이었다(Magnum Photos, 「Henri Cartier-Bresson: Principles of a Practice」).
이 기준이 사진교육에 보급되면서 우연한 몸짓, 점프, 시선의 교차, 새가 날아가는 순간 등이 반복적으로 생산되었다. 그 결과 ‘결정적 순간’은 하나의 발견 방식이면서 동시에 잘 찍은 사진을 흉내 내는 공식이 되었다.
5. 즉각적인 시각적 영향력
공모전과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사진을 보는 첫 순간의 강렬함이 중요해졌다.
① 선명하고 강한 색
② 극적인 명암
③ 낯선 시점
④ 희귀한 장소와 사건
⑤ 감정을 직접 자극하는 인물
⑥ 한눈에 이해되는 이야기
⑦ 화면에서 즉시 분리되는 중심 대상
이 기준은 수많은 사진 가운데 한 장을 빠르게 선택해야 하는 심사와 플랫폼 환경에서 강화된다. 사진은 오래 머물며 읽히기보다 즉시 감탄을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복잡하고 모호하며 천천히 의미가 드러나는 사진은 ‘힘이 없다’거나 ‘무엇을 찍었는지 모르겠다’는 평가를 받기 쉽다.
6. 작가의 개성과 독창성
사진예술에서는 단순한 기술을 넘어 사진가만의 시선이 있는가를 묻는다.
① 익숙한 대상을 새롭게 보았는가
② 다른 사진가와 구별되는 형식이 있는가
③ 형식이 주제와 연결되는가
④ 사진가의 문제의식이 일관되는가
⑤ 기존 사진의 반복을 넘어서는가
하지만 여기에도 역설이 있다. 심사자는 새로움을 요구하면서도 자신이 알아볼 수 있는 범위의 새로움을 선호한다. 너무 익숙하면 상투적이라고 하고, 너무 낯설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독창성’ 역시 완전히 자유로운 판단이 아니라 제도와 취향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작동한다.
7. 이야기와 감정
좋은 사진은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말도 자주 사용된다.
① 사진 한 장으로 상황이 추측되어야 한다.
② 인물의 감정이 전달되어야 한다.
③ 사건의 전후를 상상하게 해야 한다.
④ 관객이 감동·연민·놀라움·슬픔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사진이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진은 설명을 거부하거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보여주거나, 의미가 만들어지지 않는 순간을 제시할 수도 있다. 이야기가 없다는 평가는 사진에 이야기가 실제로 없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익숙한 서사적 단서를 찾지 못했다는 뜻일 수 있다.
[2] ‘잘 찍은 사진’이라는 기준의 역사적 형성
1. 사진 발명 초기: 성공한 사진은 보이는 사진이었다
1839년 사진술이 공적으로 발표된 이후 초기 사진의 중요한 목표는 대상을 안정적으로 기록하는 것이었다. 긴 노출시간, 불안정한 감광재료, 복잡한 현상 과정 때문에 선명한 영상을 얻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이 시기의 우수성은 주로 다음과 연결되었다.
① 세부가 얼마나 정밀하게 재현되는가
② 노출에 실패하지 않았는가
③ 인물이 움직이지 않고 또렷하게 남았는가
④ 건축물과 풍경의 정보를 충실하게 보여주는가
⑤ 사진이 오래 보존되는가
윌리엄 헨리 폭스 탤벗(William Henry Fox Talbot)의 초기 연구 역시 광학과 화학을 안정시키고 식물·건축·문서 등 다양한 대상을 기록하는 데 집중되었다(메트로폴리탄미술관, 「William Henry Fox Talbot and the Invention of Photography」).
이때의 ‘잘 찍음’은 미적 감탄 이전에 기술적 성공을 의미했다.
2. 19세기 후반: 회화처럼 보여야 예술사진이었다
사진이 기계적 복제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자 사진가들은 사진도 회화처럼 작가의 감정과 손길을 담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픽토리얼리즘(Pictorialism)이 발전했다.
픽토리얼리즘 사진은 다음을 중시했다.
① 부드러운 초점
② 안개와 역광
③ 회화적인 인물 배치
④ 고무인화·검프린트 등 수작업
⑤ 낭만적이고 상징적인 주제
⑥ 사진가의 손길이 드러나는 인화
사진을 있는 그대로 선명하게 찍는 것보다 분위기를 만들고 현실을 이상화하는 것이 예술적이라고 여겼다. 줄리아 마거릿 캐머런(Julia Margaret Cameron)은 초점이 완벽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종교화와 르네상스 회화의 정신적 효과를 사진으로 구현하고자 했다(메트로폴리탄미술관, 「Julia Margaret Cameron」).
1902년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가 결성한 포토세세션(Photo-Secession)도 사진을 순수예술로 인정받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예술사진은 아마추어의 스냅사진이나 상업사진과 구별되는 세련된 감각과 인화 기술을 요구했다(메트로폴리탄미술관, 「International Pictorialism」).
3. 1888년 이후: 아마추어 스냅사진의 등장
코닥 카메라의 보급은 사진을 전문가의 기술에서 대중의 일상행위로 바꾸었다. 복잡한 현상 지식이 없어도 가족, 여행, 사건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진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① 기울어진 수평선
② 잘린 신체
③ 화면 중앙에 선 인물
④ 흔들림과 초점 실패
⑤ 우연히 끼어든 사물
⑥ 촬영자의 그림자와 손가락
⑦ 무질서한 배경
당시 예술사진가들은 이러한 스냅사진을 미적 감각과 기술이 부족한 사진으로 보았다. 즉 전문적인 예술사진은 ‘아마추어처럼 보이지 않는 사진’이어야 했다. 코닥의 대중화와 포토세세션의 예술사진 운동이 거의 같은 시기에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메트로폴리탄미술관, 「Kodak and the Rise of Amateur Photography」).
4. 1910∼1940년대: 선명함이 현대적 미덕이 되다
픽토리얼리즘에 대한 반작용으로 스트레이트 사진(Straight Photography), 신즉물주의(New Objectivity), 신시각(New Vision), 그룹 f/64 등이 등장했다.
이들은 사진을 회화처럼 꾸미기보다 카메라가 가진 선명한 묘사력과 기계적 시각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① 날카로운 초점
② 풍부한 계조
③ 사물 표면의 정밀한 묘사
④ 형태와 구조의 강조
⑤ 과감한 앵글과 클로즈업
⑥ 산업사회와 현대도시의 기하학
⑦ 정교한 인화
그룹 f/64는 카메라 앞 대상의 세부를 치밀하게 기록하고 형태 자체의 감각적 경험을 강조했다(메트로폴리탄미술관, 「Group f/64」). 신시각 사진은 위·아래에서 내려다보는 시점, 확대, 포토그램, 몽타주 등을 통해 인간의 평범한 눈을 넘어서는 카메라의 시각을 탐구했다(메트로폴리탄미술관, 「New Vision Photography」).
이 시기부터 선명함과 정밀함은 단순한 기술적 성공을 넘어 ‘사진답다’는 모더니즘적 가치가 되었다.
5. 1930∼1950년대: 기록성·휴머니즘·결정적 순간
다큐멘터리와 보도사진이 성장하면서 좋은 사진은 사회적 현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사건의 핵심을 압축해야 한다는 기준을 갖게 되었다.
① 사실을 믿을 수 있게 보여주는가
② 사회적 상황을 이해시키는가
③ 인간의 감정을 전달하는가
④ 사건의 핵심 순간을 포착했는가
⑤ 한 장만으로도 의미가 완결되는가
초기 다큐멘터리 사진은 노동, 빈곤, 아동노동, 전쟁 등 사회문제를 드러내고 개혁을 촉구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메트로폴리탄미술관, 「Early Documentary Photography」).
이 과정에서 ‘잘 찍은 사진’은 정확한 정보, 인간적 공감, 강력한 순간, 완결된 구성의 결합으로 이해되었다.
6. 1950∼1970년대: 실패처럼 보이는 형식이 사진의 언어가 되다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 리 프리들랜더(Lee Friedlander), 개리 위노그랜드(Garry Winogrand) 등의 사진에서는 전통적인 완성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① 거친 입자
② 흔들림
③ 기울어진 화면
④ 잘린 인물
⑤ 복잡한 반사와 그림자
⑥ 중심이 불분명한 구성
⑦ 우연한 침입물
⑧ 일상적이고 하찮은 대상
이러한 사진은 기술을 몰라서 생긴 실패가 아니었다. 혼란스럽고 불연속적인 현대도시의 경험을 매끄럽고 안정된 구도로 표현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1967년 MoMA의 《New Documents》에서 존 자코우스키(John Szarkowski)는 아버스·프리들랜더·위노그랜드의 사진이 사회를 개혁하려는 전통적 다큐멘터리에서 벗어나 세계를 개인적으로 이해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고 설명했다(MoMA, 《New Documents》 원자료).
일본의 《프로보크(Provoke)》 계열 역시 아레·부레·보케, 즉 거칠고 흔들리고 흐릿한 사진을 통해 기존의 명료한 보도언어와 경직된 사진 형식을 공격했다(Tate, 「Provoke Era」).
이 시기에 ‘실수’는 결함에서 표현언어로 이동했다.
7. 1970년대 이후: 아름다운 한 장보다 태도와 체계
1975년 《뉴 토포그래픽스(New Topographics)》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자연풍경 대신 산업시설, 주택단지, 주차장, 교외지역처럼 평범하고 훼손된 풍경을 무표정하게 보여주었다. 이 전시는 전통적인 풍경사진에서 급격히 이탈한 사진사의 전환점으로 평가된다(SFMOMA, 《New Topographics》).
사진의 중요한 기준도 변화했다.
① 대상이 아름다운가보다 왜 이 대상을 선택했는가
② 한 장이 강렬한가보다 사진들이 어떤 체계를 이루는가
③ 감정을 직접 전달하는가보다 어떤 거리와 태도를 취하는가
④ 구도가 완벽한가보다 반복과 배열이 어떤 의미를 만드는가
⑤ 사진가가 잘 찍었는가보다 사진 제도와 재현방식을 어떻게 질문하는가
개념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기존 사진, 가족사진, 영화 스틸, 신문사진, 과학자료를 차용하고 재배열하는 방식도 확산되었다. 존 발데사리(John Baldessari)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 등은 평범한 기성사진을 새로운 맥락에 배치하여 기억과 이미지 제도를 질문했다(메트로폴리탄미술관, 「Art and Photography: The 1980s」).
사진의 가치는 더 이상 촬영기술만으로 판단할 수 없게 되었다.
8. 디지털·스마트폰 시대: 기술적 완벽함의 자동화
자동초점, 손떨림 보정, HDR, 야간모드, 인물모드, 자동 수평 보정, AI 후보정은 과거 사진가의 능력이었던 것을 기계의 기본 기능으로 만들었다.
동시에 SNS와 공모전 문화는 다른 규범을 강화했다.
① 작은 화면에서도 즉시 눈에 띄어야 한다.
② 색과 명암이 강해야 한다.
③ 한 장으로 빠르게 이해되어야 한다.
④ 익숙하면서도 약간 새로워야 한다.
⑤ 공유하고 감탄하기 쉬워야 한다.
따라서 오늘날 ‘잘 찍은 사진’은 한편으로는 매우 쉬워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플랫폼이 선호하는 획일적 이미지에 가까워졌다. 기술적으로 실패하지 않는 사진이 넘쳐나면서 기술적 완벽함 자체의 예술적 가치는 오히려 약해졌다.
[3] ‘잘 찍은 사진’에 숨어 있는 가치관
통상적인 평가 기준은 단순한 기술 조언처럼 보이지만 다음과 같은 세계관을 포함한다.
1. 세계에는 분명한 중심이 있어야 한다
“주제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평가는 사진 속 세계가 중심과 주변으로 정리되어야 한다는 요구이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그렇게 명료하게 조직되어 있지 않다.
2. 불필요한 것은 제거되어야 한다
깨끗한 배경과 간결한 구도는 세계를 통제 가능한 질서로 바꾼다. 프레임 안의 잡동사니, 우연한 침입, 겹침은 실패로 처리된다. 하지만 바로 그 불필요한 것들이 현실의 복잡성과 촬영자의 한계를 증언할 수 있다.
3. 사진가는 세계를 통제해야 한다
초점, 노출, 구도, 빛, 인물의 자세를 통제할수록 능숙한 사진가로 평가된다. 따라서 통제되지 않은 세계와 사진가의 당황, 지연, 실패는 감추어진다.
4. 사진은 보기 좋아야 한다
아름다운 빛, 조화로운 색, 안정된 구도는 관객에게 시각적 쾌감을 준다. 그러나 이 쾌감은 빈곤, 개발, 재난, 타인의 고통조차 소비하기 좋은 이미지로 만들 위험이 있다.
5. 사진은 빠르게 이해되어야 한다
명료한 중심과 즉각적인 이야기는 관객의 해석을 편하게 한다. 반대로 모호하고 지루하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사진은 실패로 간주된다. 이는 관객에게 사진을 오래 바라보도록 요구하지 않는 평가 방식이다.
6. 한 장 안에서 완결되어야 한다
공모전과 SNS는 독립된 한 장을 선호한다. 그러나 동시대 사진작업의 의미는 반복, 배열, 간격, 텍스트, 장소, 책과 전시 전체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4] 이번 작업에서 말하는 ‘못 찍기’의 정확한 의미
사진을 못 찍는 작업은 단순히 초점을 틀리고 수평을 기울이며 아무렇게나 셔터를 누르는 작업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진 규범을 모르는 상태이지 규범을 비판하는 작업은 아니다.
의도적인 못 찍기는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사진을 잘 찍지 못하는 행위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잘 찍었다’고 판단하게 만드는 규범을 드러내고 그 규범의 타당성을 시험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못 찍기는 세 단계로 이루어져야 한다.
① 어떤 기준을 거부하는지 특정한다.
② 그 기준을 일관되게 어긴다.
③ 그 어긋남이 대상과 작업의 질문에 연결되도록 한다.
예를 들어 초점을 흐리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 선명해야 하는가, 선명함이 무엇을 감추는가, 기억이나 시선의 실패를 선명한 사진으로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모순은 아닌가를 질문해야 한다.
또한 ‘못 찍은 듯 멋있는 사진’이라는 새로운 스타일을 만드는 데 머물러서도 안 된다. 거친 입자, 흔들림, 기울어진 수평선은 이미 로버트 프랭크, 윌리엄 클라인, 《프로보크》 이후 하나의 익숙한 미학이 되었다. 그것을 반복하면 기존의 ‘잘 찍음’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으로 못 찍어 보이는 사진’이라는 또 다른 규칙에 들어가게 된다.
이 작업의 진짜 대상은 사진 속 풍경이나 사람이 아니라 사진을 평가하는 우리의 습관이다. 결국 《사진 못 찍기》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사진이 정말 잘못 찍힌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사진을 판단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잘 길들여진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