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열공 초간보인 정미보 발간 경위
1727년 정미년에 발간한‘정미보’가 현존하는 최고의 족보이다. 丁未譜는 영조 3년 정미년(1727년) 발간된 족보로, '晉陽姜氏世譜'로 상편 하편으로 나눠 2권으로 발행되었다.
상편에는 △'上之三年丁未季冬下浣後孫崇祿大夫行議政府左參贊현 拜手謹識於白閣精舍' 라는 刊記가 있는 '序文' △진주건치연혁(晉州建置沿革) △은열공 연보△봉선홍경사갈기△고려사 열전 △제진영후(題眞影後) △족보범례 △유물유장기(遺物留藏記) △제기유상기(祭器留上記) 그리고 진양강씨세보 상편이 기록되어 있다. 상편에는 은열공 6세손 태자첨사 元鑑公세보가 실려 있다. 하편에는 寶文閣直學士元鑽公의 세보가실려있다.
말미에 진양강씨세보 別錄이 무려 7차례나 실려있다. 이때는 시대상으로 은열공파 후손들을 다 파악하기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추가로 별록을 많이 실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별록 다음에 祭儀笏記가 실려 있다. 이 홀기는 1021년 창건된 은열사 춘추향사 홀기로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홀기로 간략하고 예법에 맞는 것으로 생각된다.
1604년 경상도 관찰사 겸 순찰사인 강첨이 지은 '은열사 중수상량문'이 실려 있다. 또 '甲申九月一日重修時移安告由文'이 실려 있는데 아마도 1704년(숙종 30년) 은열사를 중수하면서 영정을 옮기고자 한 연유를 알리는 글인 듯 하다. 뒤에 환안고유문이 있다. 그 다음 춘추향 제물과 기생신 제물이 있다. 마지막으로 후손 信坤, 후손 載昌, 후손 德彦, 외예손 鶴城金聖運이 지은 발문과 후손 任坤이 지은 발문이 있다. 정미보 서문과 발문을 꼼꼼히 읽어보면 초간보 간행 경위를 잘 알 수 있다.
정미보 간행 경위는 1674년 백각공의 부친인 문정공 설봉 강백년(姜栢年)[1603~1681]이 평소 친분이 있던 강여호가 진주목사로 부임하자 진주 사람인 강국주 강유형 등에게 진주목사의 도움을 받아 은열공파 족보를 편찬하게 한다. 이때 족보 중간이란 기록으로 보아 정미보 이전에 족보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족보 편찬 중 강여호가 진주목사 직을 떠나게 되자 일이 중단이 되었고, 유형의 아들인 신곤이 이 일을 이어 1727년 정미보를 드디어 발간을 하게 된다.
문정공 강백년, 승지공 여호는 모두 학사공파이고, 국주 유형 신곤은 첨사공파이다. 그래서 정미보 상권에는 첨사공파 하권에는 학사공파 계통이 실리게 된 것이다. 결국 정미보는 당시 은열공파 후 학사공 후손들이 계획을 하고, 실제는 진주 우방사에서 첨사공파 후손들이 만든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정미보의 백각공이 지은 서문에
지난 갑인 연간에 승지공 여호가 진주목사로 있을때 우리 선고 문정공이 족보를 중수하고자 국주와 유형 종원 등에게 그 일을 맡겼는데 승지공이 진주목사직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완성하지 못해 지금까지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 이에 유형의 아들 신곤이 개연히 발분하여 여러 해 동안 은열사에 봉안해 두었던 옛 족보와 경향의 모든 자손들의 세계를 상고하고 또 국사와 야사를 수집하여 족보를 이루었다.
라는 구절을 참고해 보면, 정미보 발간에 관계가 있는 인물로는 승지공 여호, 백각 선고인 강백년, 국주, 유형과 신곤이다.
강백년(姜栢年)[1603~1681]은 은열공의 15세손으로 학사공파學士公派이다. 고조부는 가선대부嘉善大夫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문한文翰, 증조부는 증이조참판 린璘이다. 조부는 증영의정 운상雲祥이다. 부친은 증 좌의정 죽창 주이다. 자는 숙구叔久, 호는 설봉雪峰한계閒溪청월헌聽月軒이다. 1627년(인조 5)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정언正言장령掌令을 지내고, 1646년에 강빈옥사姜嬪獄事가 일어나자 부교리로서 강빈의 억울함을 상소하였다가 삭직 당했다. 이해에 문과중시에 장원하여 동부승지에 오르고, 이듬해 상소하여 전국에 걸쳐 향교를 부흥케 하였다.
1670년 도승지·이조참판을 역임한 뒤 현종이 승하하자 그 시책문을 지었고 예조판서·우참찬·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이르렀다. 관직재직중 청백하기로 이름이 높았으며 기로소에 들어갔다. 1681년(숙종 7)세상을 떠났다. 1690년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뒤에 청백리로 녹선錄選되었다. 온양의 정퇴서원靜退書院, 수안의 용계서원龍溪書院, 청주의 기암서원機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승지공 여호는 은열공 17세손으로 학사공파이다. 자는 계서啓敍호는 기재耆齋이다. 1620년생으로 1654년 문과에 급제 했다. 1682년 세상을 떠났다. 부친은 설渫 조부는 해로海老, 증조부는 부符고조부는 구상龜祥이다.
국주는 은열공 19세손으로 첨사공후 부위공파이다. 자는 여임汝任이며 묘소는 진주 서쪽 추동에 있다. 부친은 민敏, 조부는 사위士偉, 증조부는 응기應箕 고조부는 막대莫大5대조는 숙량 淑良, 6대조는 부위공 자성 自誠이다.
유형은 은열공 20세손으로 첨사공 후 부위공파이다. 자는 대숙大叔1642년(壬午仁祖20)생으로 1694년(甲戌肅宗20)세상을 떠났다.
신곤은 유형의 둘째아들로 1678년(戊午肅宗4)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형, 조부는 우문遇文, 증조부는 경서景瑞, 고조부는 사언士彦5대조는 응기應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