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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식의
'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
< 자전거 탄 소년 - The kid with bike
: Le gamin au velo >
- 생략의 ‘여백’이 주는 감동의 울림,
그 여운...
여기,
아빠에게 버림받은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11살 소년의 분노와 방황,
그리고, 그런 소년을 보듬는 한 여성의 서사
(敍事)를,
윤리적 실험극으로 담아낸 < 자전거 탄 소년 > 이
있지요.
영화는 설명할 법한 인물의 특별한 사연들을
빈자리로 남겨놓으며,
관객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인(匠人) 다르덴 형제의
솜씨로 정치(精緻)하게 그려집니다.
어린이는 그저 어른이 되는 게 아니겠지요.
절망적인 처지에 빠진 소년 시릴(토마 도레 분)...
엄마는 오래전에 어디론가 사라진지 오래됐고,
같이 살던 아빠(제레미 레니에 분)마저 아들을
보육원에 맡긴 후 도통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빠를 향한 그리움에 시릴은 매번 보육원을
탈출하지만,
아빠는 이미 오래전에 종적을 감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게다가 아빠는 시릴이 목숨처럼 아끼는 자전거
까지 팔아치운 채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릴은 아빠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못하지요.
아빠를 향한 그리움을 놓지 못하고 자꾸
엇나가기만 하는 시릴...
수소문하여 겨우겨우 찾아간 아빠에게서 돌아온
한마디는 "더 이상 연락을 취하지 말라" 였습니다.
감독은 그토록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 채,
세파에 끌려가는 숙명적 존재임을 드러내주는
'조수석' 에 주인공 시릴을 자리케 하지요.
아빠를 만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조수석의
시릴' 은 스스로 얼굴을 할퀴고 차창에 머리를
찧을 뿐입니다.
세상에 홀로 남은 소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죠.
영화는 소년 시릴의 절망으로부터 시작하지만,
관객은 그의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기를 애타게
기대합니다.
그럼에도, 감독 다르덴 형제는 희망을 안겨주는
변주에 결코 서두르지 않지요.
그들은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의 시릴을 가장
활기차게 품어내고 있습니다만...
해서, 영화는 보는 내내 관객들로 하여금 가슴을
졸이게 만들죠.
소년 시릴이 겪는 가혹한 운명은 안쓰럽습기만
합니다.
시릴은 계속해서 담을 넘지요.
아빠를 찾기 위해 아동위탁소의 담장을 넘고,
아빠가 일하는 레스토랑의 담을 넘으며,
또 자신의 자전거를 훔친 아이를 쫓아 컨테이너
박스 또한 넘습니다.
시릴은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좇기 위해 기존의
공간을 넘어서는 것이죠.
어딘가를 필사적으로 오르고 다급하게 넘어대는
시릴의 뒷모습에서 처절한 절박함까지
느껴집니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을 아빠에 대한 대책없는
그리움과 분노로 방황하는 어린 소년 시릴에게,
세상은 너무 야속하고도 위험하기 짝이 없지요.
도처에 폭력이 꿈틀대고, 뒷골목 불량 청소년들의
손길까지 다가옵니다.
이 메마른 이야기에 온기를 불어넣는 한 사람이
나타나지요.
시릴의 위탁모가 되는 사만다(세실 드 프랑스
분) 라는 여성입니다.
시릴은 도주의 과정에서 사만다와 우연히 만나게
되죠. 미용실을 운영하는 그녀는 엄마처럼
시릴을 돌봅니다.
절망의 늪에서 조금씩 건져올려지는 시릴...
몇번을 울어도 모자라는 고통의 정점에 있는데도
영화에서 소년의 눈물은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울어야 할 순간마다 시릴은 자전거에 올라타
한없이 페달을 밟지요.
질주는 분에(憤恚)어린 반항과 아픔이 뒤섞인
어린 영혼의 절규이고 울음인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살이의 고통과 희망을 아우르는 영화
< 자전거 탄 소년 > 은,
설명해야 할 법한 부분에 관해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아,
관객에게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다르덴 형제의
독특한 화법으로 충만하지요.
시릴은 아빠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믿지
못합니다.
아니 믿으려 하지 않는 게지요.
소년과 부모의 사연에 관한 묘사에서부터
영화는 명백히 압축의 여백을 남겨놓습니다.
아빠가 시릴을 보육원으로 떠나 보내고는
집마저 이사해 연락을 끊은 까닭이 뭔지,
엄마는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어디 있는지 등에
관해서 말이지요.
시릴이 아빠가 일하는 식당을 찾아갔을 때,
아빠는 시릴에게 “지금은 널 데려갈 수 없어,
돈을 모아야 해. 전화할게” 라고 말할 뿐입니다.
하지만 사만다에게 따로 이야기할 땐,
“저 아이 자체가 내게 스트레스여서 만나기
싫어요" 라며 차갑게 딱자르지요.
"시릴에겐 아빠가 필요해요"
사만다가 간절히 설득해보지만,
아빠는 어떻게 해서든 시릴을 내칠려고
안달할 뿐입니다
"제가 도저히 애를 볼 형편이 못돼요.
곧 아빠를 잊을 테니, 제발 좀 맡아줘요..."
사만다라는 여성의 사연도 당초 알수 없는 것들
투성이입니다.
그녀는 아무런 댓가도 없이 소년을 보살피지요.
소년의 사라진 자전거를 찾아내 주머니를 털어
구입해서는 그에게 선물까지 합니다.
위탁모가 되어 보살펴 주고, 소년이 저지른
잘못의 뒤처리를 하느라 적지 않은 돈을 대신
물어주지요.
이러한 사만다의 헌신적인 보살핌은 일반적인
연민이나 동정만으로 할 수 있는 일 같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걸 에둘러 보여 주는 건 시릴과 사만다의
첫 조우 장면이지요.
보육원을 무단 탈출했다가 다시 붙들리지
않으려고 병원 대기실을 질주하던 시릴...
아이는 그곳에서 사만다의 몸을 엉겁결에
꽉 붙잡습니다.
돌발 상황에서 사만다는 당황하는 대신
이렇게 말하지요.
“얘야, 잡아도 되는데 너무 세게 잡지는 마…”
소년 시릴과 헌신적인 사만다의 '관계와
그 맺어짐'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시릴은 자신에게 따뜻한 애정을 보내는 사만다
에게 ‘주말 엄마’가 되어달라고 먼저 제안하지요.
급기야, 사만다의 남자친구는 반항아같은
소년을 아무런 댓가 없이 보듬는 사만다와
다툰 끝에, 그녀 곁을 떠나가고 맙니다.
사만다는 연인과의 고통어린 이별도 감수하며
소년을 감싸안지요.
진정 예사롭지 않습니다.
시릴이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차 밖으로 뛰어내리려 할 때도,
아이를 꼭 붙들고 “괜찮아, 괜찮아…”라고
달래는 그녀 모습엔 특별히 남다른 게
있는 게지요.
시릴이 동네의 불량배들 꼬임에 빠져 사고를 쳐도
그녀는 끝까지 소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런 대목마다 마다에서 사만다에게선,
"나는 너와 같은 아이들을 잘 알아" 라는 듯한
속깊은 이해가 느껴지지요.
그러나, 다르덴 형제는 이 여성의 생각과
사연에 관해서도 이렇다할 설명을 해주진
않습니다.
감독의 미필적고의로 보이는 이 과감한 생략들은
세상에서 목도하는 여러 굴곡 많은 얘깃거리들을
떠올리게 하지요.
'소년의 아빠는 왜 그렇게 됐을까?’,
‘어쩌면 사만다의 아주 가까운 곳에 시릴과 같은
처지의 어린이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여, 영화가 마련해 놓은 절묘한 건너뜀과
비움의 미장센들은 사유를 펼치는 재미를 알게
해줍니다.
관객 스스로 끊임없이 채워가게 하는,
다르덴 형제의 미니멀한 화법이 더 큰 울림을
선사해주고 있는 것이죠.
영화가 결론으로 맺어질 무렵,
화면은 시릴이 자신의 어린이용 자전거에서
사만다의 어른용 자전거로 바꿔 타는 장면으로
바리아시옹되지요.
시릴의 삶에 큰 변화가 찾아온 순간을 보여주는
중요한 은유인 것입니다.
또한 시릴의 매정한 아버지, 또한 나무에서
시릴을 떨어뜨리게 만든 마을 소년의 아버지를
극명하게 대조적으로 보여주며,
마침내 천사같은 사만다를 눈에 확 띄게 하지요.
사만다는 아버지를 찾는 시릴의 여정에 늘 함께
하며, 시릴의 막무가내 행동을 모두 받아줍니다.
심지어 칼로 자신을 찌르려고 한들, 그녀의 맘은
결코 변하지 않지요.
외롭고 거칠었던 시릴은 그를 버린 세상을 한줄기
빛처럼 환하게 비춰주는, 마치 엄마같은 사만다를
껴안으며... 비로소 ‘용서’라는 말의 의미를 터득하게
됩니다.
드디어 어른으로 가는 길에 들어선 것이죠.
영화 < 자전거를 탄 소년> 은 다르덴 형제의
또 다른 작품 < 내일을 위한 시간 - Deux jours,
Une nuit : Two days, One night > 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의 삶 속 여정을 따라가며, 그에게 일어나는
세상의 부조리를 자못 현실적으로 보여줍니다.
"소년 시릴을 공동체가 과연 어떻게 보듬어야
할 것인가" 가,
그들이 < 자전거 탄 소년 > 을 통해 건네는
키워드라 할 수 있지요.
다르덴 형제는 연민과 책임이라는 주제를
분리해서 보지 않습니다.
사만다가 시릴을 책임져야 하는 이유는 아무것도
명시되지 않지요.
단 하나의 단순하고도 명확한 이유가 있긴 합니다만...
극 중 사만다가 시릴에게 얘기하듯이 말이죠.
"네가 도와달라 했잖아!"
바로 이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 에
사만다는 외면하지 않은 것입니다.
영화의 피날레,
마을 소년에게 쫓겨 도망치다 오른 나무에서
그만 떨어져 죽은 줄 알았던 시릴...
아무런 배경음악도 없이 카메라는,
툴툴 털고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떠나가는 소년,
시릴' 을 계속해서 무연스레 비추지요.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시릴은 그만의 방식으로 자신이 가진 순수함을
지켜갈 거라는 것을...
이처럼, '일종의 모호한 해피엔딩' 스타일(?) 의
열린 결말은,
소년 시릴의 미래에 관해 역시 많은 것을
여백으로 남겨놓고 있습니다.
어쩌면, 다르덴 형제는 다음과 같이 얘기하는지도
모르지요.
" 세상이란 그렇게 아름다운 곳만도 아니지만,
또 그렇게 절망적인 곳만도 아닙니다."
그렇게... 다르덴 형제는 < 자전거 탄 소년 > 을
통해 소년 시릴의 고뇌어린 감정을 섬세한 눈길로
어루만져주며,
지치고 버림받은 아이에게 따스한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만 음악을 넣고 있지요.
배경 음악은 딱 네 번, 간결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등장합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E플랫장조,
Op.73. ‘황제’ 중,
완서(緩徐) 악장인 2악장 아다지오의 사색적인
주제 선율이지요.
도입부에서 약음기를 낀 바이올린이 기도하듯
연주하는 경건한 우아함의 오케스트레이션
부분만 모호함의 반복으로 풀어지다,
네 번째 시퀀스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온화한
표정으로 이어받는, 피아노의 명징(明澄)스런
'PP' 울림과 어우러집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또 다른 사람의 사랑으로
치유된다" 했나요.
감독은 버려짐, 위로와 사랑이란 모든 절제된 감정을
다양한 상징과 은유에 섞어냈습니다.
표면을 보여주며 심연을 건드리는, 미니멀리즘의
정점에 자리한 < 더 차일드 - L'Enfan >...
이 성장 영화로 이미 제 61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바 있는 다르덴 형제는,
<자전거 탄 소년> 으로 제 64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지요.
비전문 배우를 고집하던 다르덴 형제였건만,
< 자전거 탄 소년 > 에선 '세실 드 프랑스' 같은
유명 여배우를 기용했고,
일체의 음악을 배제한 소리만을 채집했던 전작들과
달리 클래식 영화음악이 사용됐습니다.
황량한 풍경이 펼쳐지는 대신 초록이 우거진
여름 풍경이 싱그럽게 자리하지요.
< 자전거 탄 소년> 은 다르덴의 전작들에 비해,
한결 친절하며 따뜻한, 희망적인 톤으로 그려진
작품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하지만 음악을 비롯한 몇 가지 형식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과정을 과감히 생략하며, 특정 디테일을 연장해서
보여주는 감독 특유의 호흡과 인물의 현존을
사유하는 핸드 헬드 카메라,
그리고 냉혹한 현실에서 분투하는 인물을 보듬는
시선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지요.
객관적으로 팔짱을 낀 채 그저 무심히 관찰하는
눈길이 아닌, 연민과 근심, 염원을 담고 있는 골똘한
표정같은 아우라가 카메라에 담겨져 있습니다.
< 로나의 침묵 - Le silence de Lorna > 이 감독의
매너리즘을 의심케 만들었다면,
이 영화는 그들이 어떻게 그 섣부른 의혹을
유유히 통과해가는지 보여주지요.
자전거가 주는 속도감과 시릴 역 '토마 도레' 의
훌륭한 연기도 영화에 매력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피했던 모든 걸 조금씩 수정하면서
다르덴 형제들은 < 자전거 탄 소년 > 을 직조해
냈죠.
영화의 상당 부분을 잠식하는 이미지는 마치
'다르덴의 인장' 같은... 불안하게 차도를 달리는
'자전거 탄 소년'의 형상이지만,
이번엔 '천사 같은 여성'이 이 흔들림을 단단히
붙들어줍니다.
오죽하면 다르덴 형제가 “이건 현대의 동화다” 라고
했을까요.
늘 홀로 버려진 고아 같던 그들의 영화에 등장한
‘엄마’라는 희망적 존재...
아이러니하지만 지금껏 본 다르덴 형제의 가장
다른 모습으로, 칸국제영화제는 그들에게 심사위원
대상을 헌정했습니다.
- 李 忠 植 -
1.영화 < 자전거 탄 소년 > 예고편
https://youtu.be/oeB8-jRtpjE
한 소년이 전화 수화기에 고집스럽게 귀를 대고
있습니다.
옆에선 두 어른이 근심스럽게 아이를 내려다보며
'없는 번호라며 그만 전화를 끊으라' 이르지요.
하지만, 소년은 결번을 알리는 신호음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핸드 헬드 카메라는 앵글을 관심과 연민의
대상인 소년에게만 맞추지요.
잠시 뒤 소년은 보육원 선생님과 몸싸움을 벌인 뒤
운동장을 가로질러 도망쳐버립니다.
그리고 카메라가 소년의 뒤를 따라 흔들리기
시작하지요.
바로 익숙한 리듬, 다르덴 형제의 영화입니다.
"사회는 소년을 어떻게 품을 것인가?" 라는
다르덴 형제의 시선은,
< 자전거 탄 소년 > 을 통해 진정한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진중하게 조망하지요.
다르덴의 영화 속 인물들은 주로 생존문제 때문에
일상의 혈투를 벌입니다.
그리고 그 혈투의 한가운데에서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지요.
아마도 이 '자전거를 탄 소년' 은 처음부터 생존이
아닌, 가치를 향해 내달리는 거의 유일한 다르덴의
인물일 터...
바로 그 점이 < 자전거 탄 소년 > 속 '시릴' 의
슬픔과 절망, 또한 그 부활을 각별히 지켜보도록
만듭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불합리한 불이익을
과연 내가 용납할 수 있는가?" 라는 원천적 질문을
던지며,
인간에 대한 애정과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을
일상적이며 지극히 현실적인 톤으로 담아내는
다르덴 형제들...
그들은 타인의 삶에 귀기울이며 사회적 연대의
의미에 집중하는, 보편적이고 윤리적인 시선을
확고하게 견지하고 있지요.
다르덴 형제 감독은 플롯 상에 액자구성이나
플래시백 기법을 사용하지 않는 스타일로,
즉, 왜곡될 수 있는 기교를 배제하며 전체적인
구성을 뒤틀지 않고 찍는 철저한 미니멀리즘을
추구합니다.
일단 의제를 설정하면 정면 돌파하는 식으로,
'이야기의 힘'에 집중하는 동시에,
정교한 시나리오와 철저한 리허설로 완벽한
사실감을 이끌어 내고 있지요.
2.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E플랫장조 ,
Op.73. '황제'(Emperor)
- 제 2악장 아다지오(Adagio un poco mosso)
: 마우리치오 폴리니 피아노와
칼 뷤 지휘의 빈 필하모니커 협연
https://youtu.be/-XUtRAlzQxM
- 전 악장 연주
: 크리스티안 짐머만의 피아노와 레나드
번스타인 지휘의 빈 필하모니커 협연(1989)
- 이 충 식 -
첫댓글 칸 국제영화제가 사랑하는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 형제 감독...
이들은 칸 영화제에서 워낙 많은 상을
수상해서,
"칸 영화제는 다르덴 형제가 영화를
출품한 해와 출품하지 않은 해로 나뉠 수
있다" 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입니다.
< 로제타 >(1999) 와 < 더 차일드 >
(2005) 로 황금종려상을 2회 수상했고요,
< 로나의 침묵 >(2008) 으로 각본상을,
< 자전거 탄 소년 >(2011)으론
심사위원대상을 각각 받았습니다
영화 < 자전거 탄 소년 > 예고편
https://youtu.be/oeB8-jRtpjE
PLAY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E플랫장조,
Op.73 '황제(Emperor)' 중 2악장 아다지오
- 마우리치오 폴리니 피아노
칼 뵘 지휘 빈 필하모니커
https://youtu.be/-XUtRAlzQxM
PLAY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전악장
- 크리스티안 침머만 피아노
레오나드 번스타인 지휘 빈 필하모니커
https://youtu.be/uj8w0Sm7l-M
PLAY
< 자전거 탄 소년 > 엔 두개의 시선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시릴의 성장영화 과정에 놓여진 시선,
또 하나는 사회적 책임을 깨달은 사만다의
마음을 바라보는 시선이지요.
곧, 시릴이 사만다를 끌어당기는 방식으로
촬영된 것으로,
이는 다큐멘터리에서처럼 '시선'이야말로
다르덴 형제 작품의 중요한 핵심 요소라는 걸
일깨워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