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즈텍과 마야 그리고 콘돌이 넘나들던 잉카의 영봉을 찾아서(3)
[ 잉카 문명을 만나는 길, 페루 ]
11월 27일(일), <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를 찾아서 >
늦은 밤 리마에 도착하여 짧은 잠을 자는 둥 마는 둥하고 다음 날 꼭두새벽 리마 공항으로 향했다. 페루 수도 리마(RIMA)에서 잉카제국 수도였던 쿠스코(CUSCO)까지는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다. 쿠스코행 비행기가 한 시간 지연되어 국내선 대합실에서 서성거리며 기다렸다. 쿠스코는 잉카 말로 ‘ 배꼽, 중심, 태어난 곳 ’의 뜻을 가지고 있다.
페루는 사막기후, 산악기후, 밀림기후가 병존하는 특이한 나라다. 또한 남태평양에서 발생하여 기후 온난화와 기상 이변의 원인을 제공해주는 ‘엘니뇨(EL NINO 남자아이)’와 라니뇨‘(LA NINO 여자아이) 현상이 일어나는 지역이 바로 페루 태평양 해안지역이다.
잉카는 잉카제국의 황제를 ‘잉카’(INKA)라고 부른데서 유래하였다. 잉카문명은 철기시대를 맞이하지 않고 석기에서 청동기 시대에 머물러 있다. 잉카에는 바퀴 및 수레바퀴가 없다. 잉카문명은 언어는 있고 문자는 없다. 따라서 스페인 정복자들의 시각에서 서술한 역사적 기록에 의존하여 잉카제국의 문화 수준을 엿볼 수밖에 없다.
잉카의 길(EL CAMINO INCA), 잉카제국은 13세기~1532년까지 약 250-300년 정도 존속하였다. 시대는 중세시대이나 생활상은 고대인 생활상을 가진 문명이었다. 잉카인들도 특별한 제사를 지낼 때 인신공양을 하였다. 신체검사에 합격한 15세 미만의 소녀를 약물에 의한 체면 상태에서 심장을 도려내어 신전에 제물로 바쳤다.
쿠스코에 도착하여 스페인 식민시대 건축물인 산토도밍고 성당을 찾았다. 이곳은 원래 잉카제국의 신전이 있었던 곳인데 스페인 정복자들은 ‘태양의 궁전’을 철저히 허물고 그들의 신전인 성당을 건립하였다. 산토도밍고 성당에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잉카인들에게 가르쳐서 그린 성화들이 많다. 특이한 것은 십자고상의 예수님이 ‘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이다. 잉카인들은 숨은 그림을 그리듯 성화 속에 그들의 ‘태양 신’모습을 숨기듯이 그려 넣었다.
쿠스코 여행의 출발점은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이다. 아르마스는 ‘무기를 저장하고 배부하는 곳’을 나타내는 스페인 문화다. 스페인이 정복한 곳은 어느 곳이나 아르마스 광장이 중심이다. 잉카의 석축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삭사이와만 요새’에서 12각 석벽을 볼 수 있다. 페루는 지진이 많은 나라로 스페인과 잉카의 석축 기술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스페인 사람들이 지은 건물은 붕괴되었지만 잉카인들이 지은 건물은 끄떡없이 원상태로 잘 보존되었다.
안데스(Andes)는 ‘안데나스’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안데나스’(Andenas)는 계단식 밭을 뜻한다. 계단식 밭에는 옥수수와 감자를 심어 주식으로 삼았다. 깎아지른 산비탈에도 안데나스가 있다. 안데스 산맥은 해발 4000-5000m가 넘는 고산지로 나무가 전혀 없다. 그나마 분지에는 왕족과 귀족들의 밭이 있고 일반 백성들은 산비탈을 개간하여 계단식 밭을 일구었다.
쿠스코는 해발 3800m로 공기가 희박하여 고산병 증세 때문에 우리는 쿠스코에서 잘 수 없어 버스를 타고 해발 2800m인 ‘우루밤바’로 이동하여 머물렀다. 쿠스코는 공기부족으로 불완전 연소가 되어 자동차 배기가스 매우 심각하다.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코를 막고 역겨운 냄새로 골치를 먹었다.
11월 28일(월), < 마츄피츄를 향하여 >
마츄피츄를 가기 위하여 어제 밤과 오늘 아침 ‘비아그라’를 먹고 출발하였다. 비아그라 덕분인지 고산병 증세를 거의 느끼지 못하였다. 단지 조금 어지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츄피츄(MACHU PICHU)는 잉카제국의 잃어버린 도시, 공중 도시라고 부른다. 아침 일찍 우루밤바 호텔에서 버스를 타고 울란타이 탐보역으로 이동하였다. 울란타이 탐보역에서 단선인 협궤열차를 타고 약 2시간 정도 달려서 종착역인 아그스 칼틴티스에 도착, 다시 현지 전용버스를 갈아타고 아슬아슬한 계곡을 굽이굽이 지나서 마침내 마츄피츄 입구에 도착하였다.
교통수단을 갈아탈 때마다 여권과 승차권검사를 하고 마츄피츄 입구에서 최종적으로 다시 여권 검사를 하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마츄피츄 보호를 위해 하루 입장객수를 2500명으로 제한한 까닭에 사전 예약이 필수이며 검문이 매우 엄격하다.
버스를 타고 우루밤바에서 울란타이로 이동하며 보니 집 지붕 위 용마루에 황소 두 마리가 십자가 좌우에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잉카인들에게 황소는 복을 주는 동물로 전해져 스페인 교회와 잉카인들이 타협하여 내어 놓은 산물이다.
간혹 집 앞 대문에 빨간 봉지를 걸어놓은 막대가 보인다. 이 표시는 옥수수로 만든 전통 술을 판다는 뜻이다. 옥수수를 할머니들이 입으로 잘근잘근 씹다가 뱉어내어 모은 것을 발효시킨다. 하얀색 봉투를 내건 막대기는 음식을 판매한다는 표시이고, 파란색은 여자가 있는 집, 색싯집 이라는 표시로 여행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우루밤바(URUBAMBA)는 ‘성스러운 계곡’이라는 뜻으로 우루밤바강은 아마존강의 발원지다. 우루밤바 강을 끼고서 달리는 협궤열차에서 칼날 같이 높이 솟아 있는 안데스 영봉들을 바라볼 수 있다. 저 멀리 해발 5000m가 넘는 눈에 덮인 만년설이 보인다. 마치 끝없는 미지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는 듯 한 느낌이 든다. 매스컴에서 보았던 티벳지역 ‘차마고도’의 길과는 또 다른 느낌의 길이다. 영원한 삶을 찾아가는 길은 어머니 자궁속의 포근한 기억 속에 빠지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눈을 뜰 수 없는 강렬한 햇빛 아래 마츄피츄를 찾아가는 길손은 그저 아아하고 탄성만 지를 뿐이다.
단선 선로위의 ‘잉카레일’도 힘겨운 듯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숨차게 달리고 또 달린다.
마츄피츄는 ‘늙은 산봉우리’, 와이나피츄는 ‘젊은 산봉우리’라는 뜻이다. 마츄피츄 지역은 1911년 미국 예일대 출신 역사학자가 발견하였다. 발견 당시는 밀림 속에 푹 파묻혀 있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미처 찾아내지 못하여 오늘날 우리가 지금의 형태를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마츄피츄에 대하여 연구를 하였지만 현재까지 정확하게 건설 시기나 용도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
마츄피츄의 건립 시기에 대하여 잉카 9대 황제시절인 AD1400년 중반에 건립되었다는 학설과 기원전에 건립되었다는 설이 있다. 용도에 대해서도 잉카황제의 여름 별장이나 겨울 궁전 설과 쾌락을 추구하는 지역으로 젊은 여자들의 유곽지역이었다는 설과 종교적 중심지로 태양신의 성지라는 설도 있다. 즉 잉카제국의 수도인 쿠스코는 정치적 중심지로 마츄피츄는 종교적 중심지라는 주장이다. 상주인구를 추정하면 경작지 면적을 고려하려 최대 약 2000명 까지 600-800명 정도가 거주하기에 편리한 곳으로 보고 있다. 곡식으로는 옥수수, 감자, 코가, 티누아를 심었고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을 모아서 쓸 수 있도록 계단식 수로를 만들었다. 수로의 형태는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다.
이렇듯 해발 3000m에 기가 막힌 공중도시를 건설한 잉카인들이 기록이나 문자를 남기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사람이 죽으면 태양신이 있는 동쪽으로 콘돌처럼 영혼이 날아 올라가 언젠가는 다시 환생하여 예전에 살았던 쿠스코와 마츄피츄로 돌아온다는 환생 신앙. 이런 신앙이 문자를 만들고 기록을 남기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한 것인지 모른다. 후손에게 구전으로 가르친 모든 기술과 삶의 방식이 그 후손의 입을 통하여 다시 나에게 전해진다는 삶의 모델방식.
잉카제국의 마츄피츄는 인간의 것이 아니라 잉카 신의 것이다. 우리나라 깊은 산중 경치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세계, 히말라야 ‘샹그리아’계곡도 이런 모습일까?
신과 인간이 만나는 곳, ‘콘돌’이 유유히 넘나드는 안데스의 영봉을 ‘마음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도저히 실감할 수 없는 영험하고 신령한 곳이 바로 마츄피츄다. 마츄피츄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지 여부는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신의 뜻이라고 한다. 이곳을 방문했던 많은 사람들 중에는 급변하는 날씨로 구름이나 안개 속에 가려지거나 쏟아지는 비 때문에 마츄피츄를 보지 못한 사람들도 꽤 많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정말 운이 좋았다. 현지 가이드는 이런 농담을 했다. “전날 밤 부정한 일을 저지른 사람이 없었군요.” 마츄피츄를 떠나 숙소로 돌아올 때 버스 안에서 들었던 그 노래 소리, 80년대 독일 보컬그룹 ‘징기스칸’이 불렀던 ‘마츄피츄’와 팝송의 음유신인 ‘사이먼엔가펑클’이 불렀던 ‘엘 콜돌 파샤’가 귀속을 맴맴 돌면서 나를 붙잡는다.
11월 29일(화), < 리마를 향해서 >
아침 일찍 우루밤바를 떠나 전용버스를 타고 쿠스코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우루(URU)는 진흙 땅, 밤바(BAMBA)는 평원이라는 의미로 우루밤바(URUBAMBA)는 ‘진흙땅의 평원’이라는 뜻이다.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로 가는 길은 끝없는 대지를 지나가는 길이다. 넓은 평야 지대를 가로지르는 버스의 차창가로 만년설을 띠고 있는 5700m ‘베로니카’봉이 보이고 그 앞쪽에 해발 4000m가 넘는 산들도 보인다. 대평원은 해발 3800m가 넘는 고지다. 대평원에는 자그마한 양인 알파카(ALPACA)와 조금 큰 양인 라마(RAMA)가 여기저기서 유유자적한 모습으로 한가롭게 풀을 뜯으며 즐기고 있다. 포토존에서 사진 몇 장 찍으면서 양팔을 벌리고 멋진 포즈를 취하였다. 작은 땅 덩어리인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그림이 자연 속에 펼쳐진다. 정말로 축복 받은 땅이라는 생각뿐이다. 인간은 어떠한 자연조건에서도 생존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리마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리마 시내를 구경하였다. 이곳에서도 역시 아르마스 광장이 중심이다. 페루에서 가장 오래된 대성당을 구경하고 연인들의 프러포즈 장소로 인기가 많은 사랑의 공원을 찾았다. 사랑의 공원에는 허리를 굽히고 키스 하는 연인의 장면이 조각되어 있어 인상적이었다. 시내에는 고층건물과 수많은 고급 아파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리마시내 관광을 마치고 숙소인 ‘파라까스’까지 자동차로 약 3시간 30분간 고속도로를 달렸다. 고속도로의 대형버스 지정속도는 90km/h로 GPS를 이용하여 통과하는 차량의 속도를 감시한다. 이 고속도로는 남미 끝단인 아르헨티나 최남단에서 북미 알레스카까지 이어지는 도로인데 지구상에서 가장 긴 도로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
자동차 오른편에는 남태평양이 흐르고 왼쪽에는 끝없이 사막이 펼쳐졌다. 이 사막은 내가 알고 있던 서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이나 중국 고비사막과는 그 형태가 다르다. 이곳의 사막은 모래와 자갈 그리고 규소가 함유된 사막이다. 그런 연유로 일반 모래사막과는 달리 매우 단단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1년 내내 비가 오지 않는 사막기후 지대라서 모래가 단단한 상태이고 모래사막 위에 민초들이 집을 짓고 산다. 모래위의 집이라는 ‘사상누각’이라는 속담이 있지만 이곳에는 그 말이 해당되지 않는다. 집에는 비를 막는 창문이 없다. 그저 사람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형태만 갖추면 된다. 집을 지으면서 이 다음에 돈이 생기면 2층이나 3층을 올리겠다는 의사 표시로 철근이 삐죽삐죽 나와 있다. 미관상으로는 볼품없지만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주택 구조이다. 이런 모습을 실제로 보지 못하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한 형태로 현실에 적응하며 살고 있다.
11월 30일(수), < 파라까스(PARACAS) 관광 >
아침 일찍 호텔을 나와 모터보트를 타고 남태평양의 작은 ‘갈라파고스’라고 불리는 물개들의 천국 바예스타(BALLESTAS)섬을 찾았다. 물개 섬을 찾아 가는 도중에 모래 산에 그려진 거대한 알 수 없는 그림을 보았다. 마치 삼국지에 나오는 삼지창을 그린 것 같아보였다. 이 그림은 10km 밖에서도 보일 정도로 거대하다. 누가 어떤 이유로 그림을 그렸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한다. 스페인 정복자의 기록에 나오는 것으로 봐서 최소한 500년 이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그림이다.
물개 섬에는 물개, 펠리컨, 가마우지, 괭이 갈매기 등이 서식하고 있다. 우리나라 천수만이나 삽교천에서 군무를 펼치는 새떼의 모습을 TV에서 보았지만 두 눈으로 이렇게 많은 새들을 직접 보는 것은 정말 장관이다. 약 200백만 마리 새들의 보금자리이다. 새똥 냄새가 다시마 냄새같이 느껴져서 신기하였다. 차가운 남극해 해류가 흐르는 이곳은 험벌트 해류라고 불리며 바닷물의 온도가 매우 차갑다.
오후에 사막속의 오아시스가 있는 이카지역을 구경하였다. 이카(ICA)지역 모래사막은 길이가 60km나 된다. 모래사막에 올라 ‘부기투어’라고 하는 짚차 투어에 나섰다. 모래 언덕 위를 굉음을 내면서 달리는 짚차는 높이가 낮고 옆으로 조금 길다. 중동에서 미군이 사용하는 짚차를 연상하면 된다. 빠른 속도로 가파른 모래 언덕을 오르거나 내려갈 때는 짚차가 곧바로 뒤집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짚차는 전복되지 않고 잘 달린다. 모래의 구조가 탄탄하여 짚차가 전혀 빠지지 않고 신나게 달린다.
짚차에 타기 전에 완전군장을 하였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햇빛 차단제를 잔뜩 얼굴에 쳐 바르고 선글라스를 낀 다음 얼굴과 목 부위는 손수건으로 감쌌다. 눈만 내밀고 입에는 마스크를 썼다. 모래는 아주 미소한 상태로 매우 고운 입자라서 보이지 않게 옷 속으로 파고든다.
짚차 투어를 마치고 SAND BOARDER 타기를 하였다. 처음 연습 코스에서 적응을 한 다음 길이와 경사도에 따라서 1-3코스 까지 이어져 있다. 우리나라 겨울철 눈썰매장을 그려보면 될 것 같다. 사고 방지를 위해서 짚차 운전자가 시범을 보여주고 동작 교정을 해 준다. 조금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여성분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서 해 보니 기분이 아주 짜릿하였다.
파라까스 관광을 마치고 다시 고속도로를 달려 리마로 되돌아와 밤 비행기를 타고 브리질 리오데자네이로로 향했다. 리마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 사막지대 신기루 현상을 보았다. 도로위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막상 자동차가 그 지점에 도착하면 물안개는 없어지고 보이지 않는다. 그런 현상은 한 동안 지속되었다. 신기루를 쫓아가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욕심을 경계하는 자연의 오묘한 이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6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