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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신문기사입니다.
글로벌 경제 겨울 온다.”
세계 모든 국가의 부채를 합하면 247조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8경 원입니다.
수학의 발달로 - 28⨉10의 16승으로 쓰면 됩니다.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는, 평균 1억 5천만 킬로미터 입니다.
지구에서 북극성까지의 거리는, 너무 멀어서 킬로미터로 표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광년이란 단위를 사용하는데,
빛이 1년 동안 날아가는 거리를 말합니다.
빛은 1초에, 약 30만 킬로를 달려,
서울 부산을 333번 왕복하고,지구를 7바퀴 반을 돌고
태양까지 평균 8분 20초가 걸립니다.
지구에서 북극성까지는 약 430광년입니다
우리가 오늘밤 보는 북극성은, 430년 전에 떠난 빛입니다.
우주에 안드로메다 은하가 있습니다. 지구로부터 230만 광년 떨어져 있습니다.
우주의 끝은 137억 광년 떨어져 있는데, 지금도 팽창하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빛의 속도로 달리는 로켓을 타면, 137억 년 후에 우주의 끝에 도착하겠지만,
우주가 팽창하여, 더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삼위 하나님께서, 이 대우주를, 태양계를, 지구를, 지구의 온갖 생물을, 그리고 우리 인생을 창조하셨습니다.
(시 145:3)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을 - 결단코 측량할 수 없습니다.
석가모니는 도 • 진리 • 영원한 생명을 찾기 위하여,
오래 동안, 고행하며 명상하였고
마침내 득도(得道)하여 불(佛)이 되었답니다.
불(佛)이란! 각자(覺者) • 깨달은 자입니다.
불자들은 석가모니처럼
내가 도를 닦고, 내가 도를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고행을 하고, 내가 명상을 하고, 내가 공덕을 쌓고...
나의 수고와 노력으로, 해탈하여 열반에 이르려 합니다.
그러나,
(롬 3:20)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내가 고행을 하고, 내가 명상을 하고, 내가 공덕을 쌓고, 내가 율법을 지키고, 내가 의를 행하여서는 – 결단코,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 영광의 나라 • 천국 •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 하나님의 나라 • 영광의 나라 • 천국 •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얼만큼 사랑하십니까?
“이처럼 사랑하십니다.”
양 팔을 크게 벌리시고 “내가 너희를 이처럼 사랑한다.” 말씀하십니다.
저주의 십자가, 수치스러운 십자가, 형벌의 십자가, 죽음의 십자가에, 양 팔을 벌리시고, 못 박히셔서
“이처럼 사랑한단다.”
대신 저주를 받으시면서 “이처럼 사랑한단다.”
대신 형벌을 받으시면서 “이처럼 사랑한단다.”
대신 수치를 당하시면서 “이처럼 사랑한단다.”
대신 죽으시면서 “이처럼 사랑한단다.” 말씀하십니다.
기독교와 불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와의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기독교에는,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다른 종교에는, 주도권이 나에게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 (Χριστος)”는,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구원하십니다.
-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택하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 하나님께서 부르신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 복음의 말씀, 구원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 진리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으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게 하셨습니다.
- 의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때에, 우리의 죄가 깨끗이 씻어, 의롭게 하셨습니다.
- 양자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으로,
의롭게 된 우리를 하나님께서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으로
나의 믿음이 자라게 하십니다.
- 나와 동행하십니다. 나와 함께 하십니다. 나를 인도하십니다.
성삼위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나와 함께 영광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사실 것입니다.
이 시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 봅시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계산해 봅시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측량해 봅시다.
나를 향하신, 성삼위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 것인가를 깨달아 알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넓을까요?
우리가, 가장 많이 말하며 사는 것이, 사랑이지만, 우리의 사랑은 핑퐁 • 탁구와 같습니다.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넘겨주고, 둘을 받으면 둘을 넘겨주고
많이 받으면 많이 넘겨주고, 적게 받으면 적게 넘겨줍니다.
중소도시의 제일 큰 교회에서 목회하는 선배 목사님의 말입니다.
목회하는 지역에, 유지라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는 목사님이라 존경하지만,
어떤 이는 목사님인데 존경하지 않는답니다.
만났을 때에,
목사님을 존경하는 이들은, 깊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목사님을 존경하지 않는 이들은, 살짝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데
목사님도,
깊이 머리 숙여 인사하는 사람에게는 깊이 머리 숙여 인사하고,
까딹 인사하는 사람에게는 까딱 인사 한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입니다.
나에게 잘하는 사람에게는 나도 잘하고, 나에게 못하는 사람에게는 나도 못합니다.
나를 선대하는 사람에게는 나도 선대하고, 나에게 악하게 대하는 사람에게는 나도 악하게 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에게 잘하는 사람에게 잘하면서
나를 선대하는 사람에게 선대하면서
“나는 사랑의 사람입니다. 나는 사랑이 많은 사람입니다.” 말합니다.
예수님은, (마 5: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죄인도 이같이 한다!”
(롬 5:8) “우리가 죄인 • 원수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과 원수로 행하였지만 자신의 하나 뿐인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 주셨습니다.
인간의 땅에, 인간의 몸을 입으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원수인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몸을,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는
(사 1:18)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죄 씻음을 받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였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 생명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영광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해불탁수(海不濁水)란 말이 있습니다.
바다는! 아무리 더러운 물이라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요 6:37)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창녀는, 몸을 파는 더러운 여자입니다.
창녀가 헌금을 드려도, 더러운 돈이라고 받지 않았습니다.
세리는, 로마의 앞잡이요, 자기의 배를 채우기 위하여 자기 민족 동포를 팔아먹는 배신자입니다.
창녀와 세리는 죄인의 대명사입니다.
강도는, 다른 이의 재산과 생명을 빼앗는 악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창녀가, 하나님께 나와 회개할 때에, 내어 쫓지 아니하시고 맞아 주셨습니다.
더럽고 추한 죄를 모두 깨끗하게 씻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회개하고 은혜를 구하는, 십자가의 오른 편 강도의 죄를 다 씻어 주시고, 의롭게 하셔서
“오늘 밤, 의인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의의 나라 • 천국 • 낙원에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는!
우리가 우주의 넓이를 측량할 수 없지만, 이 우주보다도 더 넓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높을까요?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 끼리, 자주 술자리를 갖는데, 보통 “영원한 사랑과 우정을 위하여” - 건배합니다.
친구와 술을 좋아하는 한 분이 계셨습니다.
저녁 시간, 거의 매일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친구들 모두가, 호탕한 이 분에게 “분위기 메이커”라고 부르며, “이 분이 없으면 술맛이 안 난다.”말하며, 매일 술자리를 갖고, 사랑과 우정을 위하여 건배하였습니다.
매일 마시는 술 앞에 장사가 없습니다. 알콜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이때야 깨달았습니다.
“술친구는 친구가 아닙니다. ‘사랑과 우정을 위하여’ 외치며 부딪쳤던 수많은 건배는, 허공을 울리는 것이었습니다.”
늘 사랑과 우정을 말하였던 그 많은 친구들이, 아무도 찾아오지 않습니다.
남녀가 만나 서로 사랑을 하였습니다.
“너 없인 못산다.” 결혼을 하였지만, 얼마 있지 않아 “너 때문에 못살겠다.” 아우성을 칩니다.
이혼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OECD 국가 중 이혼률이 제일 높아졌습니다. 황혼 이혼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제일 크고 숭고한 사랑은,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구곡단장”이란 말이 있습니다.
한 사냥꾼 어린 새를 잡았는데, 어미 새가 슬피 울며 따라 옵니다. 어미 새가 죽었습니다.
배를 갈라 보았더니 창자가 9토막이 나 있었습니다.
세상의 부모들은! 자식에 대하여 “구곡단장”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식에게 헌신적입니다.
자식을 위하여 기꺼이 희생합니다.
이 어머님의 사랑을 알고,
“낳으시고 키우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 보다도 높은 것 같아” 노래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때가 되어서인지,
자식을 때려서, 굶겨서 죽이는 부모가 있고
자식을 심하게 학대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크고 숭고하고 위대한 부모의 사랑보다도 더 큽니다.
(사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낳은 어미가 자식을 버릴지라도, 나는 너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섬기지도 않고,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짐승과 버러지를 형상으로 만들어 하나님이라 섬기고 하나님의 섬긴다 하면서, 자기 배를 섬기고
하나님의 의를 세운다 하면서, 자기 의를 세우며 살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성부 하나님은 아들을 내어 주시고
성자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화목제물로 드리시고
성령 하나님은 믿고 영생 구원을 얻게 하시는데
(사 9:7)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우리가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것은!
우리가 오늘도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받아 누리며 사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열심 있는 사랑!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깊을까요?
추석이 가까워지고 벌초를 하는데,
정성스럽게 하는 부모님 산소의 벌초가 있고, 정성 없이 하는 처삼촌 산소의 벌초가 있습니다.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는 어떤 분이 형제들에게 전화를 합니다.
“번거롭게 벌초하러 내려오지 말아라. 내가 벌초는 다 해 놓을 테니, 추석에 내려오너라.”
이 분이, 부모님 산소의 벌초를 하고, 큰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의 벌초를 합니다.
덥고 힘이 들어 잠시 쉬는데, 처남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벌초를 하러 가야 하지만, 요사이 너무도 바빠서요!
벌초 하시는 김에, 저의 아버님과 작은 아버님 벌초도 부탁합니다.
추석에 내려가서, 한 턱 내겠습니다.”
“처남, 알았네. 추석날 봅세” 전화를 끊고
장인 어른 벌초를 하고, 처 작은 아버지 벌초를 하려다가, 벌초하던 낫을 휙 집어 던지며
“이것들이 나를 우습게보고, 처삼촌 벌초까지 나를 시켜!”
앉아서 씩씩 거리며, 그냥 집에 가려는데,
며칠 있으면 추석이고, 추석 때 처남도 보아야 합니다.
다시 낫을 들고, 벌초를 하는데 “설렁설렁, 대충대충” 합니다.
이래서 생긴 말이, “처삼촌 벌초하듯이”입니다.
전쟁 때에, 전쟁고아들을 돌보는 고아원이 세워졌는데, 모든 고아원의 시설이 비슷합니다.
그런데, 한 고아원의 아이들이, 다른 고아원의 아이들보다 더 건강하고, 더 명랑합니다.
왜 그럴까?” 연구를 하였습니다.
어느 날, 이 고아원에 미쳤다고 손가락질 당하는 한 여인이 찾아 왔습니다.
이 여인은, 전쟁 중 사랑하는 자녀를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정신이 나갔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미친 여자란 소리를 들었습니다.
고아원에 들어온 이 여인은, 모든 아이들을 자기 아이로 생각하였습니다.
자기 아이를 돌보듯이 정성으로 돌보았습니다.
씻기고, 먹이고, 안아주고, 놀아주고, 함께 하고
이 고아원의 아이들은, 다른 고아원에서 맛 볼 수 없는 사랑을 먹었습니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명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땅의 기름진 복 뿐 아니라,
하늘의 신령한 복으로 우리의 마음과 영혼까지 만져 주십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저 깊은 바다보다 더 깊습니다.
네째, 하나님의 사랑의 길이는 얼마나 길까요?
결혼식 때에
주례는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죽음이 둘 사이를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며, 함께 살기를 권면합니다.
70대 부부가 함께 사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80대 부부가 함께 사는 것은, 더욱 복된 일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함께 살 수는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먼저 보냈습니다.
야곱은, 아내 라헬을 먼저 보냈습니다.
우리는 외국인과 나그네 인생
잠간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
화살처럼 날아가고, 잠간 잠을 자는 것과 같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든지 이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그래서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성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지만,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의 주님, 생명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시고 하늘에 오르시기 전!
“(요 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가 너희를 위한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
내가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우리가 거할 영원한 거처에 대하여
계 21:3-)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영원까지 계시는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길이는?
백년? 천년? 만년? 아닙니다. 영원입니다.
어느 자매의 고백입니다.
중학교 3학년 때에, 한 아이가 전학을 왔습니다.
전에 있던 학교에서, 불량학생으로 퇴학을 당하기 직전에 전학을 온 것입니다.
늘 활발하였던 이 자매는, 전학을 온 그와 가까워졌습니다.
함께 몰려다니게 되었고, 남자 친구들과 어울리며,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본드도 흡입하였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시험을 앞두고 몰려다니는 친구들이, “되지도 않는 공부를 집어치우고, 집을 나가자!” 뜻을 모았습니다.
가출을 하기 위하여 짐을 꾸리는데
엄마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엄마! 자기를 위하여 늘 눈물로 기도하는 엄마!
엄마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도저히 가출을 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다 가출하였지만, 이 자매는 학교를 계속 다녔습니다.
몇 년이 흐른 뒤에, 이 자매는 미용사가 되어, 열심히 자기의 삶을 꾸려 가는데
그 때 가출한 친구들 가운데
하나는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아 입양 기관에 맡겼고,
하나는 부녀 보호소에 수용되었습니다.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엄마의 크신 사랑과 눈물의 기도 때문에
결코 가출을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우주 보다 넓고
하늘 보다 높고
바다 보다 깊고
영원한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앞에서
결코 하나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
결코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살 수 없습니다.
마음과 성품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몸과 마음과 영혼을 하나님께 드리고
나의 시간, 나의 재능, 나의 재물, 나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