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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lank slate: the modern denial of human nature』, Steven Pinker, Penguin books, 2002, 51~52쪽. (후주를 모두 생략했음)
THE
Evolution is central to the understanding of life, including human life. Like all living things, we are outcomes of natural selection; we got here because we inherited traits that allowed our ancestors to survive, find mates, and reproduce. This momentous fact explains our deepest strivings: why having a thankless child is sharper than a serpent’s tooth, why it is a truth universally acknowledged that a single man in possession of a good fortune must be in want of a wife, why we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but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Evolution is central to understanding ourselves because signs of design in human beings do not stop at the heart or the eye. For all its exquisite engineering, an eye is useless without a brain. Its output is not the meaningless patterns of a screen saver, but raw material for circuitry that computes a representation of the external world. That representation feeds other circuits that make sense of the world by imputing causes to events and placing them in categories that allow useful predictions. And that sense-making, in turn, works in the service of motives such as hunger, fear, love, curiosity, and the pursuit of status and esteem. As I mentioned, abilities that seem effortless to us—categorizing events, deducing cause and effect, and pursuing conflicting goals—are major challenges in designing an intelligent system, ones that robot designers strive, still unsuccessfully, to duplicate.
다시 한 번 이야기하겠다. 반드시 아래 단계들을 모두 거친 후 다음 쪽을 읽도록 하자.
1. 사전과 인터넷을 찾아보면서 원문을 정독한다.
2. 초벌 번역을 한다.
3. 원문을 덮어 놓고 번역문을 정독한다. 그리고 수정할 곳을 찾아 밑줄을 쳐 놓는다.
4. 원문과 번역문의 모든 문장을 하나하나 대조하면서 수정한다.
5. 다시 원문을 덮어 놓고 번역문을 정독한다. 그리고 수정할 곳을 찾아 밑줄을 쳐 놓는다.
6. 밑줄 쳐 놓은 문장만 원문과 대조하면서 수정한다.
『빈 서판: 인간은
본성을 타고나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생물학과 문화를 잇는 네 번째 다리는 마음의 계통 발생적 역사와 적응 기능을 연구하는 진화 심리학이다. 진화 심리학은 어떤 신비적 의미나 목적론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자연 세계에 널리 퍼진 공학적 성격의 의미에서, 마음의 설계 또는 목적을 이해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준다. 우리는 이러한 공학적 증거를 모든 곳에서—상이 맺히도록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눈에서, 혈액을 뿜도록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심장에서, 하늘을 날도록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날개에서—본다.
물론 다윈은 자연이 마치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착각을 자연 선택으로 설명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확실히 눈은 우연히 생겨났다고 보기에는 너무 훌륭하게 설계되어 있다. 엄청난 돌연변이가 만들어 내는 그 어떤 사마귀나 종양도 상이 맺히도록 완벽하게 설계된 수정체, 홍채, 망막, 눈물샘 등을 가질 정도로 운이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눈은 자신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창조한 어느 우주 설계자의 걸작도 아니다. 인간의 눈은 다른 동물들의 눈과 무서울 정도로 비슷하다. 그리고 뒤쪽에 배치된 듯 보이는 망막의 경우처럼 멸종된 조상의 재치 있는 흔적들을 가지고 있다. 현재의 기관들은 그 이전 조상들의 것보다 더 잘 작동하도록 설계된 복제품이다. 자연 선택은 우리가 아는 한 공학을 흉내낼 수 있는 유일한 물리적 과정이다. 훌륭한 성능이 존재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유일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진화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핵심 요인이다. 모든 생명체처럼 우리도 자연 선택의 산물이다. 우리는 생존과 짝짓기와 번식을 할 수 있는 특성들을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바로 이 중대한 사실이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에 자리잡은 갈등들을 설명해 준다.—왜 은혜를 모르는 자식을 두는 것이 독사의 이빨에 물리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지, 왜 재산께나 모은 독신 남성에게 아내가 필요하리라는 것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진리로 통하는지, 왜 우리는 그 좋은 밤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못하고 빛의 소멸에 분노, 또 분노하는지.
진화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에 핵심적이다. 인간에게서 발견되는 설계의 흔적은 심장이나 눈에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눈이 제아무리 뛰어난 공학적 산물이라 해도 뇌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눈이 만들어 내는 출력물은 화면 보호기처럼 무의미한 패턴들이 아니다. 그것은 외부 세계의 상을 연산하는 회로에 원료로 공급된다. 그 상이 여러 회로에 흘러들면, 그 회로들은 원인과 사건을 연결하고 그것들을 해당 범주에 포함시켜 유용한 예측을 만들어 냄으로써 이 세계를 파악한다. 그런 다음 그 파악 결과는 굶주림, 공포, 사랑, 호기심, 지위와 존경 추구 같은 동기에 봉사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에게는 쉬워 보이는 능력들—사건의 분류, 원인과 결과의 추론, 상충하는 목표의 추구—도 지적 체계를 설계하는(가령 로봇 설계자들이 복제하려고 하지만 아직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분야에서는 대단히 큰 과제이다.
<번역 검토>를
읽기 전에 원문과
그리고
Steven Pinker: THE FOURTH BRIDGE from biology to culture is evolutionary psychology, the study of the phylogenetic history and adaptive functions of the mind.
“from biology to culture”를 “생물학과 문화를 잇는”으로 번역했다. 원문에는 방향이 있다. 생물학에서 출발해서 문화로 간다. 번역문에서는 방향에 대한 그런 정보가 사라졌다. “생물학에서 문화로 이어지는”으로 번역하면 방향에 대한 정보까지 살릴 수 있다. 진화 심리학이 생물학 제국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생물학에서 출발하여 사회학이나 역사학과 같은 분야를 정복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면을 생각해 볼 때 방향에 대한 정보를 무시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adaptive functions”을 “적응 기능”이라고 번역했다. “적응적 기능”이 의미를 더 분명하게 전달한다.
그리고 “functions”는 복수형이다. “적응적 기능”이라고 번역할 것인가, 아니면 “적응적 기능들”이라고 번역할 것인가? 한국어에서는 영어에서처럼 복수형을 철저하게 지키지는 않는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이 경우에는 복수형을 살려서 “적응적 기능들”이라고 번역하고 싶다. 백지론(blank slate)은 마음의 한 가지 능력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그 능력은 사회화 능력이나 학습 능력 등으로 불린다. 반면 진화 심리학에서는 마음이 수 많은 부품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부품들 각각이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차이를 염두에 둔다면 복수형을 살려서 “기능들”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여기에서 복수형을 살릴 것인지 여부에 대해 판단하기 위해 백지론과 진화 심리학이 마음을 보는 관점이 어떻게 다른지를 고려했다. 더 잘 번역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를 깊이 이해해야 한다.
이 문장에서 “study”는
명사다. 명사형을 살려서 곧이곧대로 번역하면 “생물학에서 문화로
이어지는 네 번째 다리는 마음의 계통 발생적 역사와 적응적 기능들에 대한 연구인 진화 심리학이다.”가
된다.
Steven Pinker: It holds out the hope of understanding the design or purpose of the mind—not in some mystical or teleological sense, but in the sense of the simulacrum of engineering that pervades the natural world.
“design”과 “purpose”의 글자체가 강조되었는데
“simulacrum”의 뉘앙스를 온전히 살리지 못했다. “simulacrum of engineering”은 공학과 닮았지만 공학은 아닌 것을 뜻한다. 자연 선택의 “설계”는 인간의 공학과 닮기는 했지만 매우 다르다. 왜냐하면 공학의 주체인 인간은 지적 존재인 반면 자연 선택은 자동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Steven Pinker: We see these signs of engineering everywhere: in eyes that seem designed to form images, in hearts that seem designed to pump blood, in wings that seem designed to lift birds in flight.
원문의 대명사를 항상 글자 그대로 번역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생략해도 지장이 없다. 여기에서는 “we”를 생략하고 번역해도 상관 없어 보인다.
“sign”과 “증거”는 서로 의미가 많이 다르다. “징후”나 “흔적”이 더 적절하다.
“everywhere”를 영한 사전에서 찾아 보면 “어디나”, “도처에” 등을 찾아볼 수 있다. “모든 곳에서”보다는 “도처에서”, “어디에서나”가 더 자연스러운 표현인 것 같다.
원문의 “birds”라는 단어를 번역하지 않았다. 새도 하늘을 날지만 곤충도 하늘을 난다.
Steven Pinker: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자연 자체가 설계된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 아니라 자연 세계에 있는 생물들이 설계된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showed”를 “입증했다”로 번역했는데 의미가 너무 강하다. 그냥 글자 그대로 “보여 주었다”로 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원문은 수동태이다. 곧이곧대로 번역하자면 “자연 선택에 의해 설명될 수 있음”이 된다. 한국어에서는 수동태를 잘 안 쓴다. 따라서 수동태를 살려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그냥 능동태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Steven Pinker: Certainly an eye is too well engineered to have arisen by chance.
“engineer”과
“design”은 서로 다른 단어다. 웬만하면 서로 다른 단어는 서로 다른 단어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Steven Pinker: No wart or tumor or product of a big mutation could be lucky enough to have a lens, an iris, a retina, tear ducts, and so on, all perfectly arranged to form an image.
“a big mutation”은 “product”만 수식하는 것 같다. 사마귀나 종양은 보통 대(大) 돌연변이 때문에 생기지 않는다.
“arranged”를 “설계된”으로 번역했다. 이 경우에는 “배치된”과 같은 적절한 단어가 있다.
눈물샘(lachrymal gland)과 눈물관(淚管, nasolacrimal duct, tear duct)은 서로 다르다. 대세에 지장이 없더라도 늘 정밀하게 번역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http://en.wikipedia.org/wiki/Lacrimal_gland
http://en.wikipedia.org/wiki/Nasolacrimal_duct
Steven Pinker: Nor is the eye a masterpiece of engineering literally fashioned by a cosmic designer who created humans in his own image.
“of engineering”과 “literally fashioned”를 빼 먹었다. 정당한 이유가 없이 단어를 빼 먹고 번역하면 안 된다.
Steven Pinker: The human eye is uncannily similar to the eyes of other organisms and has quirky vestiges of extinct ancestors, such as a retina that appears to have been installed backwards.
“animal”과 “organism”은 엄연히 다른 말이다. 물론 이 문장에서는 “동물”이라고 번역해도 뜻은 통한다. 하지만 “유기체”라고 번역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원문 단어를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quirky”에 “기발한”이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재치 있는”으로 번역한 듯하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런 뜻이 아니다. 망막이 “제대로” 생겨먹은 오징어의 눈과는 달리 망막이 “거꾸로” 생겨 먹은 인간의 눈에는 맹점이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backwards”는 “뒤쪽에”가 아니라 “거꾸로”다.
“have”를 항상 “가지다”로 번역할 필요는 없다. “흔적들을 가지고 있다”보다는 “흔적들이 있다”가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한 문장을 둘로 쪼갰다. 나는 절대로 문장을 쪼개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순수주의자(?)는 아니다. 하지만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문장을 쪼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가독성에 심각한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문체도 번역해야 한다.
Steven Pinker: Today’s organs are replicas of organs in our ancestors whose design worked better than the alternatives, thereby enabling them to become our ancestors.
문장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이 문장은 이런 뜻이다. 신체 기관 중 하나인 심장의 예로 설명해 보겠다. 우리 조상들에게도 심장이 있었고 우리 조상들과 경쟁했지만 도태된 같은 종의 동물들(우리의 방계 조상들)에게도 심장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의 심장이 더 나았으며 그 덕분에 그들이 더 잘 번식해서 우리의 조상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조상들의 심장의 복제물이 오늘날의 우리의 심장이다.
여기서 “whose”는 “ancestors”가 아니라 “organs”를 받는다. “them”은 “ancestors”를 받는다.
“복제품” 하면 제품 또는 상품이 떠오른다. 기관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제품이 아니므로 “복제물”이 더 적절해 보인다.
이 문장은 뜻을 알아도 번역하기가 상당히 힘들다.
Steven Pinker: Natural selection is the only physical process we know of that can simulate engineering, because it is the only process in which how well something works can play a causal role in how it came to be.
이 문장의 경우에도 두 문장으로 쪼개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원문에 “can”이 있는데 그냥 “작동하는”으로 번역했다. “작용할 수 있는”이 더 엄밀한 번역이다.
“존재”라는 단어는 “how it came to be”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Steven Pinker: Evolution is central to the understanding of life, including human life.
“central”을 “필요한 핵심 요인이다”라고 번역했다. 그냥 “중심적이다”라고 해도 될 듯하다.
Steven Pinker: Like all living things, we are outcomes of natural selection; we got here because we inherited traits that allowed our ancestors to survive, find mates, and reproduce.
“짝짓기”는 성교 또는 결혼을 암시한다. 짝을 찾는 것과 짝짓기를 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원문에는 “allowed our ancestors”라고 되어 있다. 이 부분을 잘 살리지 못했다.
Steven Pinker: This momentous fact explains our deepest strivings: why having a thankless child is sharper than a serpent’s tooth, why it is a truth universally acknowledged that a single man in possession of a good fortune must be in want of a wife, why we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but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striving”은 무언가를 위해 애쓰는 것을 말한다. “갈등”이라는 번역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내면의 갈등은 두 가지 욕망이 충돌을 일으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암시한다. 아주 적절한 번역어는 나도 못 찾았다.
“알다”는 “acknowledge”의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지 못한다. “동의하다” 또는 “인정하다”가 더 적절하다.
이 문장에 나오는 구절들이 심상치 않다. 특히 마지막 구절인 “we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but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는 무슨 뜻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이런 경우에는 문학 작품을 인용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이럴 때에는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아야 한다. 구글(http://www.google.co.kr)에서 검색해 보니 쉽게 찾을 수 있다. 스스로 찾아 보자.
그리고 한국인이 알기 어려운 인용문인 경우에는 해설 각주를 삽입하는 것이 좋다.
Steven Pinker: Evolution is central to understanding ourselves because signs of design in human beings do not stop at the heart or the eye.
이 문장은 둘로 나누지 않아도 될 듯하다.
Steven Pinker: For all its exquisite engineering, an eye is useless without a brain.
Steven Pinker: Its output is not the meaningless patterns of a screen saver, but raw material for circuitry that computes a representation of the external world.
“representation”은 전문 용어이며 보통 “표상”으로 번역한다.
이 문장은 둘로 나누지 않아도 될 듯하다.
Steven Pinker: That representation feeds other circuits that make sense of the world by imputing causes to events and placing them in categories that allow useful predictions.
“other circuits”을 “여러 회로”라고 번역했는데 “다른 회로들”로 번역하지 않은 이유가 없어 보인다. 정당한 이유가 없다면 원문의 “other”도 번역해 주어야 한다.
“원인과 사건을 연결하고 그것들을 해당 범주에 포함시켜 유용한 예측을 만들어 냄으로써”는 애매하다. “(원인과 사건을 연결하고) (그것들을 해당 범주에 포함시켜 유용한 예측을 만들어 냄으로써)”로 해석할 수도 있고 “(원인과 사건을 연결하고 그것들을 해당 범주에 포함시켜) (유용한 예측을 만들어 냄으로써)”로 해석할 수도 있다. 문맥을 통해 두 해석 중 하나를 쉽게 고를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런 애매한 표현을 피해야 한다. “원인과 사건을 연결함으로써 그리고 그것들을 해당 범주에 포함시켜 유용한 예측을 만들어 냄으로써”라고 쓰면 애매하지 않다.
Steven Pinker: And that sense-making, in turn, works in the service of motives such as hunger, fear, love, curiosity, and the pursuit of status and esteem.
여기에서 “hunger”는 “굶주림”보다는 “배고픔”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굶주림은 아주 오랫동안 먹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여기에서는 그냥 배가 고프다는 뜻이지 심한 기근 상태를 뜻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굶주림보다는 배고픔이 동기와 더 잘 연결된다. 굶주림은 탈진이나 죽음이 연상되는 단어이지만 배고픔은 “먹고 싶다”는 욕망이 연상되는 단어다.
Steven Pinker: As I mentioned, abilities that seem effortless to us—categorizing events, deducing cause and effect, and pursuing conflicting goals—are major challenges in designing an intelligent system, ones that robot designers strive, still unsuccessfully, to duplicate.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deduction(연역)”, “induction(귀납)”, “inference(추론)”를 구분하여 번역하는 것이 좋다.
한국어에서는 “—”을 잘 쓰지 않는다. “—”을 쓰지 않고 번역할 방법이 없는지 궁리해 보아야 한다.
원문에는 없는 괄호를 삽입했다. 괄호 없이 번역할 방법이 없는지 궁리해 보아야 한다.
생물학에서 문화로 이어지는 네 번째 다리는 마음의 계통발생적 역사와 적응적 기능들을 연구하는 진화 심리학이다. 진화 심리학은 마음의 설계 또는 목적—어떤 신비주의적이거나 목적론적인 의미가 아니라 자연 세계에 공학과 비슷한 것들이 널리 퍼져 있다는 의미로 설계와 목적이라는 단어를 썼다—을 이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이런 공학의 징후들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상을 형성하도록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눈에서, 피를 펌프질하도록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심장에서, 하늘을 날 때 새를 들어올리도록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날개에서.
물론 다윈은 자연 세계에 설계가 있는 것만 같아 보이는 것을 자연 선택으로 설명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분명히 눈은 우연히 생겨났다고 보기에는 너무 잘 설계되어(engineered) 있다. 어떤 사마귀도 종양도 대(大) 돌연변이(big mutation)의 산물도 수정체, 홍채, 망막, 눈물관 등—이 모든 것들은 상을 형성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배치되어 있다—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운이 좋을 수는 없었다. 눈은 자신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창조한 우주 설계자(cosmic designer)가 진짜로(literally, 글자 그대로) 만들어낸 공학의 걸작도 아니다. 인간의 눈은 다른 유기체들의 눈과 기분 나쁠 정도로 비슷하며, 거꾸로 설치된 것 같아 보이는 망막과 같은, 멸종된 조상들의 괴상한 흔적들이 있다. 우리 조상들이 우리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기관의 설계(design, 구조)가 다른 대안들보다 더 나았기 때문이며, 오늘날의 기관은 그런 우리 조상들의 기관의 복제물이다. 자연 선택은 공학을 흉내 낼 수 있는, 우리가 아는 유일한 물리적 과정인데 그 이유는 어떤 것이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가 그것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원인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과정이 바로 자연 선택이기 때문이다.
진화는 인간을 포함한 생명에 대한 이해에 중심적이다. 모든 생명체처럼 우리도 자연 선택의 산물이다. 우리 조상들이 생존하고, 짝을 찾고, 번식할 수 있도록 도와준 형질들을 물려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 중대한 사실은 아주 뿌리 깊은 우리의 열망들(our deepest strivings)을 설명한다: 왜 배은망덕한 자식을 두는 것이 뱀의 이빨보다 더 날카로운지를, 왜 상당한 재산이 있는 독신 남자는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진리가 보편적으로 인정받는지를, 왜 우리가 저 좋은 밤으로 얌전히 들어가지 않고 꺼져가는 빛에 분노하고 분노하는지를.
진화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에 중심적인데 그 이유는 인간에게 있어 설계의 징후가 심장이나 눈에만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훌륭한 공학(engineering, 설계)에도 불구하고 뇌가 없다면 눈은 쓸모가 없다. 눈의 출력 값은 화면 보호기와 같은 무의미한 패턴이 아니며 외부 세계에 대한 표상을 계산하는 회로를 위한 원료이다. 사건의 원인을 찾아냄으로써 그리고 유용한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범주에 사건을 위치시킴으로써 세계를 파악하는 다른 회로들에 그 표상이 제공된다. 그리고 그런 파악이 이번에는 배고픔, 공포, 사랑, 호기심, 지위 추구 및 존경 추구와 같은 동기들을 위해 쓰인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건들을 범주로 나누고, 원인과 결과를 연역하고, 상충하는 목적들을 추구하는 것과 같이 우리에게는 힘들일 필요가 없어 보이는 능력들이 지적 체계의 설계에서는 중대한 도전 과제이며 로봇 설계자들이 똑같이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분노하고 분노하는지를”에 붙이는 각주 -----------------------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리어 왕(King Lear)』에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다. 리어 왕의 말이다:
How sharper than a serpent’s tooth it is
To have a thankless child!
배은망덕한 자식을 두는 것이
뱀의 이빨보다 얼마나 더 날카로운가!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에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다:
It is a truth, universally acknowledged, that a single man in possession of a large fortune must be in want of a wife.
큰 재산이 있는 독신 남자는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진리는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딜런 토마스(Dylan Thomas)의 <저 좋은 밤으로 얌전히 들어가지 말라(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라는 시에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다: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Old age should burn and rave at close of day;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저 좋은 밤으로 얌전히 들어가지 말라.
노년에는 날이 지는 것을 두고 저주하고 고함쳐야 한다.
꺼져가는 빛에 분노하고 분노하라.
자식이 잘 되어야, 배우자가 있어야, 자신이 죽지 않아야 잘 번식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이 구절들을 인용한 듯하다. --- 옮긴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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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번역을 마쳤으면 이전에 한 번역과 꼼꼼히 대조해 보자. 어떤 부분을 왜 그리고 어떻게 이전과는 다르게 번역했는지 따져 보자.
다시 한 번 강조하겠다. 먼저 스스로 아주 열심히 번역해 본 이후에 자신의 번역이 난도질 당하면서 얼굴이 빨개질 때 번역 실력이 가장 빠르게 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