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 사해 / 마싸다 요새
이집트와 이스라엘 국경인 타바(Taba)는 씬 광야(바란광야)를 지나 시나이 반도 동쪽
아카바만의 누웨바에서 해안을 따라 북으로 75km 지점이다. 이곳까지는 긴 사막과 돌산으로 이어진 길이었는데 이스라엘이 가까워질수록 푸른 수목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종려나무 숲 (버스 안에서 찍음)
이스라엘 입국은 까다롭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왔기에 어떤 상황도 감수할 각오를 했었다.
검색은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되긴 했으나 시간이 꽤 지체되었다.
국경을 통과해서 이스라엘 지역에 들어오니 대형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셔틀버스 구간 정도로 생각해서 조금만 가면 우리가 머무를 숙소가 있으려니 생각했는데
두 시간 가량이 소요되었다.
도로변 왼쪽에 '소돔' 팻말이 붙어 있었지만 그냥 지나쳐 오게 되어 좀 아쉬웠다.
숙소는 우리의 신분으로는 좀 과-한 곳이어서 잠시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건물 뒤쪽이 사해 백사장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이
우리를 더욱 황홀하게 해주었다.
구름이 낀 날씨이긴 했지만 막 저녁 노을이 지는 시간이어서
하늘과 수평선이 어우러진 풍경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우리 몇몇은 베란다에 나와서 감탄의 환성을 지르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렸다.
" 주여, 영광과 찬미를... 주여, 영광과 찬미를 .... 영원히 받으소서 !"
해질녘 사해 - 태양이 구름 속으로 ...
사해
다음날 아침,
비가 부슬부슬 내리긴 했지만 일찌감치 일어나 사해에 발을 담그면서
천진한 어린이들 마냥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혀에 살짝 갖다 대어 보았더니 소금의 농도가 상당히 짙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물은 마치 순한 기름처럼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물밑은 맑고 투명하여 형형색색의 조약돌과 모래알이 예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사해에 발을 담그고...
사해는 이스라엘과 요르단에 걸쳐 있는데 동서 길이 15km, 남북 길이 80km,
최대 폭 17km, 최대수심 397m로 평균 수면 보다 400m 나 아래에 있는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염분 함유량이 다른 바닷물의 10배에 가까운 35%나 되기에 생물이 살 수 없어
'죽음의 바다'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인체에 유익한 미네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세계 방방곡곡에서
건강을 치유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또한 염화칼슘, 포타시움, 마그네슘, 나트륨, 유황, 브로마인 등
수많은 광물질들이 사해 성분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여기에서 추출된 여러 성분들로 다양한 제품이 생산되어 주변의 상점 어디에서나
질 좋은 소금, 미용비누, 핸드크림, 발크림, 로션, 진흙팩 등을 판매하였다.
죽음의 바다로 일컬어지던 사해는 엄청난 보물이 잠재되어 있는 '보물창고'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이다.
마싸다
아침식사를 한 후 마싸다 요새를 향해 출발했는데 버스를 탈 때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계속 내렸다. 우기(雨期)가 지난 시기에 내리는 비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축복의 비라서 좋아한다는데, 순례를 하는 우리에게는 우산을 들어야 했고 비옷을 입어야 했기에 좀 번거로웠다.
마싸다 정상까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갔는데 깍아지른 듯한 모양새와는 달리
정상에는 넓은 평지였고 이곳저곳에 유적지가 남아 있었다.
마싸다 모형
마싸다 정상을 왕래하는 케이블카 (비가 내리는 상태여서 뿌옇게 보인다)
천연 요새라 불리우는 마싸다는 이스라엘의 역사적 유적지이다. 사해 해면에서 약 410m의 높이에 있고 정상의 마당 길이는 600여m, 너비는 420m인 평지를 이루고 있다.
이곳은 AD 1C 유다인들이 로마에 대항했던 유대 전쟁 최후의 격전지로 전해 왔으며,
20세기 후반 발굴 작업이 시작되면서 그 실체가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AD 66년 로마에 대항하는 1차 유다인 반란이 일어났고, 70년 로마는 예루살렘을 함락시킨다.
이때 유다 열혈당원 960명이 이곳으로 피신하여 2년 이상 저항하다가
수비벽이 무너지고 로마군의 침략이 확실해지자 로마군의 포로로 잡히느니
차라리 자유인으로 죽을 것을 결심하고 자결을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가장들은 아내와 자식 등 자기 가족을 모두 죽인 다음, 남자들만 한 자리에 모여
열명을 제비뽑아 이들이 나머지 사람들을 죽이게 하고,
다시 한명을 뽑아 9명을 죽인 다음 자신은 자결했다는 비극의 현장이다.
로마군들은 험한 지형 때문에 쉽사리 이들을 공격할 수 없었다.
3년 가까이 포위작전을 펼치며 승리를 꿈꾸어 왔으나,
960명의 주검의 현장을 목격한 후 허탈감에 빠져 망연자실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에 살아남은 노인과 어린이 등 7명이 생존하여 전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로마군들이 이들을 사면초가로 포위하기 위해
요새 둘레에 벽을 허물고 구렁을 메꾸어 토담을 쌓았던 흔적이 보존되어 있었다.
이곳에 살다가 죽음을 택한 유다 열혈당원들은
그들이 굶어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먹다 남은 음식을
고스란히 한 곳에 모아 두었다고 한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끝까지 항거하면서 이곳에 살았던 열혈당원들은
가파른 지역에 위치해 있어 여러모로 생활의 불편함을 겪었을 법도 한 대
투철한 민족정신이 이런 모든 상황을 극복하게 해주었던 것 같았다.
그들은 야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저버리지 않고 회당을 지어 정기적으로 예식을 거행하였다.
요새 부근에는 강이나 개울, 저수시설이 없었기에 물저장고를 지어 비가 내릴 때
이 비를 모아서 식수와 여러 용도로 사용하였다는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말을 사육하여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면서 말똥은 땔감으로 사용하였다니
그들이 지녔던 삶의 지혜를 과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회당 안팎- 뒤쪽 벽면의 검은선 아래는 원상태이고 위쪽은 복원시킨 부분이다.
오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BC 100년경 요나단이 가파른 산을 이용하여 요새를 만들었다.
헤로데는 BC 43년 아버지 안티파텔이 암살된 후 유다왕이 되기 전까지
이곳을 자신과 가족의 은신처로 사용했다.
그후 왕으로 등극하여 BC 35년에 기존 건물을 더 증축하여 호화스런 궁전을 지었다.
이때 화려한 궁전으로 사용되었던 건물 벽면과 바닥에는 모자잌들이 남아 있었다.
또한 그 당시 화덕에 불을 지펴 온기가 돌게 만들어 욕실로 사용했다는 터에는
짤막한 돌기둥이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었는데
열을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마싸다의 역사적 사실은 오늘날 이스라엘 군인과 학생들에게
애국정신을 기리고 배우게 하는 곳이다.
정상 마당의 여러 유적들
무기로 사용되었다는 돌무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