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초 홍명희의 ‘林巨正’

[애앤]

책모임의 좋은 책 읽기…최은숙/정산중학교 교사

벽초 홍명희의 ‘林巨正’

[953호] 2012년 05월 21일 (월) 11:09:58

청양신문 기자 webmaster@cynews.co.kr

‘林巨正(임꺽정)’과 같은 소설이 있다는 것은 내 생의 복이다. 며칠 전부터 벽초 선생의 ‘임꺽정’에 손이 가서 먼지를 털어가며 읽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임꺽정’은 1985년에 발행된 초판본이다. 학생 때 대학서점에서 1권 봉단편을 읽다가 9권 한 질을 외상으로 샀다. 각권 3300원씩 2만9700원, 주인아주머니께 약속한대로 돈이 생길 때마다 세 번에 나누어 갚았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 있다니, 책장이 넘어가는 게 아까울 지경이었다.
책을 다시 읽으면서 내 앞으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실감을 했다. 이제 안경 없이는 깨알 같은 옛 활자를 읽기 힘들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글자가 잘 안 보이는 대신 학생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문장이 보이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임꺽정이 스승 갖바치 대사를 따라 백두산 허항녕에 갔다가 만난 아내 운총이가 등장하는 장면 같은 것인데

‘운총이는 사람이 끔찍이 총명하여 배워 못하는 일이 없건마는 길들지 아니한 생마와 같아서 애를 석일 줄 모르는 까닭에 바느질만은 비각 중의 큰 비각이라 버선구멍 하나를 잘 막아 신지 못하였다. 덕순이가 아랫방으로 내려오는 길에 “너의 아내는 체면이니 염량이니를 모르는 알잠 사람이로구나. 네가 아내를 잘 얻었다.” 하고 꺽정이를 돌아보니 꺽정이가 웃으며 “전에는 참말로 사슴이나 다름이 없더니 지금은 좀 사람의 물이 든 모양이요.” 하고 말하였다.’

‘길들지 아니한 생마와 같은’, ‘알잠 사람’이란 말이 눈에 들어왔다. 운총이는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고 악착스런 탐관오리들을 피해 백두산에 들어간 아비, 어미 덕에 백두산에서 태어나고 사냥을 하며 자란 아이이니 체면이니 사리분별이니 그런 관계의 장치를 알 리가 없는 사람이다. 덕순이는 눈이 밝아 운총이의 생기를 알아본다. 꺽정이가 운총이를 아내로 삼은 것은 그에게도 같은 눈이 있다는 뜻이겠다. 사람이 어느 시점에서부터 가지고 태어난 생기를 잃는 것인지, 아마도 사람의 말을 알아들으면서부터 상실이 시작되고 유치원, 학교 같은 데를 들어가면서 돌이킬 수 없어지는 것 아닐까 짐작해본다.

연산군, 인종, 명종 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드라마, ‘임꺽정’을 읽는 방향이 여러 가지일 텐데 나는 학생시절에 문예창작을 강의해주신 선생님의 영향으로 생불 갖바치의 시각에 관심을 가졌다. 선생님은 벽초 홍명희 선생이 이념적인 민족해방을 넘어서서 인간해방으로서의 민족해방을 바라보는 사람이었다고 말씀하셨다. 계급이 나뉘는 세상의 틀에서 백정과 같은 상민은 물론이고 썩은 양반 역시 구제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걸 생각하게 하셨다. 훗날 생불이라 칭송받는 백정 출신 갖바치 도사를 비롯해서 주인공 임꺽정, 운총이, 황천왕동이, 박유복, 이봉학, 배돌석, 어린애를 때려죽이는 쇠도리깨도적 곽오주에 이르기까지 ‘임꺽정’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말과 걸음을 따라가노라면 따스한 빛 한 줄기가 마음속에 스며들어오는 것 같다.

그것은 작가 홍명희의 인간에 대한 연민과 민족에 대한 인내력, 인간적인 성실성, 민족에 대한 자존심 같은 것이 등장인물들을 통해 표현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을 통해 세상 전체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해보고 그 속에서 내 삶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엊그제 오랜만에 무주 덕유산 자락에 터를 잡은 선생님을 만나 고흥까지 동행했다. 옛적 보부상들이 다니던 길로 가자는 선생님의 제안으로 고개를 오르내리는 국도로 차를 몰았다. 갖바치 도사와 같이 품격 높은 인물을 어떻게 창조해냈을까, 감탄했더니 선생님이 웃으시며  “홍명희와 같은 작가는 이미 역사니, 철학이니 세상사는 이치를 꿰뚫고 있고 모든 자료가 몸속에 익어 있어서 감옥 안이고 밖이고 상관없이 붓을 들면 좍좍 써내려갈 수 있는 경지이니 인터넷 자료를 뒤지는 요즘 작가들과는 다르다”고 하셨다.

선생님과 진안, 장수, 구례, 순천, 벌교를 거쳐 고흥까지 구불구불 천천히 여행하면서 갖바치 도사가 가졌던 인간의 삶 전체에 대한 구원의 눈, 구원의 방편으로 백정 임꺽정을 지목했던 까닭, 임꺽정이 품은 한이 정당하고 폭넓게 풀려나갈 길을 그가 타고난 몫만큼 열어준 스승 갖바치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야말로 독서여행이 된 셈이다.

[애앤]

미쳐 들어와보지 못해 벽초 홍명희의 ‘林巨正’ 어제 이야기 들을 기회를 놓쳤네요. 늘 맘은 먹지만 모처럼 만나서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실가닥을 잡은 느낌이랄까? 늘 샘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같이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이렇게 좋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가끔씩 울컥할 정도로 좋아요
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과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예요
나도 기회가 되면 벽초 홍명의의 임꺽정을 다시 읽고 싶네요 샘의 글을 읽으니 .....
좋은날 되세요 ~~~

[소하]

선생님이 데려가주신 동네 웬지 친근한 곳이었어요. 옛날 자취방의 기억이 나는 밥집 맛있었습니다. 저에게도 편안하고 좋은 시간이었어요. 다음주에 이기자 선생님과 시간 한 번 잡을게요

[이기자]

창피하지만 임꺽정 제대로 못 읽어봤는데 이번에 꼭 읽어보고 싶네요 언제 날 잡아서 점심 먹으러 갑시다 다들 부지런한 에너자이져들이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