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집안일에 남녀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습니다. 방송을 보면 요리하는 하는 남자가 많아졌고, 육아를 도맡아 하는 남자도 늘고 있지요. 집안일을 가지고 남녀를 구분하는 건 시대에 뒤처지는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집은 그렇지 않습니다.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지요. 제가 하는 많지 않은 일 중에서 세 가지를 고르면 아침상 차리기, 음식물쓰레기 버리기, 어항 청소하기입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 따져보진 않았지만 어느 새 불문율이 되었지요.
먼저 아침상 차리기는 맞벌이할 때부터 시작된 일이니 역사가 꽤 깁니다. 아내가 명예퇴직한 후로는 아침 당번은 단골이 되었지요. 밥은 쿠쿠가 해주니 국과 찌개를 끊이는 게 주된 일입니다. 거기다 설거지까지 원스톱입니다. 국과 찌개는 냉장고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제일 상에 자주 올리는 건 된장찌개입니다. 아침에 국이 있어야 밥 먹는 맛이 나기 때문이지요. 간혹 바쁘면 건너뛰기도 하지만 선발 출전이 많습니다. 식사 후 과일 깎기는 고정 레퍼토리입니다.
음식물쓰레기 버리는 일도 예외 없이 제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매일 또는 이틀에 한 번씩 1층에 있는 음식쓰레기통에 들릅니다. 좋고 나쁘고, 깨끗하고 더럽고, 라는 관념이 덜한 저에게 알맞은 일입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간혹 음식쓰레기통에 비닐이 봉지째 들어가 있으면 조금 혈압이 오르긴 하지만요.
마지막은 어항 청소입니다. 어항 청소는 한 달에 한 번 하는 월례 행사입니다. 이 일이야말로 가족 중 누구도 건들지 못하는 저의 유일한 작업이지요. 가족 중 누군가가 아침상을 차리거나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어항 청소만큼은 온전히 제 몫입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바쁘고, 어른들은 냄새나는 걸 싫어하는지라 제 몫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나마 어항이 크지 않은 게 다행이지요.
어항에는 구피가 열 마리 가량 삽니다. 열 마리 가량이라고 한 건 정확한 숫자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셀 때마다 다릅니다. 죽어나가는 녀석이 심심찮게 일어납니다. 우선 새끼를 낳으면 어미는 비실비실대다가 죽습니다. 흔한 일입니다. 또 전날까지도 쌩쌩하던 녀석도 무슨 영문인지 아침이면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공 수초에 걸려 죽은 녀석들은 한참 뒤에나 발견되곤 합니다.
어항 청소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 전날 수돗물을 받아놓고, 공기주입기 전원을 끈 뒤에 구피를 옮겨 놓아야 합니다. 어항 속 모래를 뒤집어 부유물을 퍼서 버리고 건져낸 인공수초와 자갈은 싹싹 문질러 닦습니다. 공기주입기는 분해하여 안쪽 스펀지를 꺼내고 구석구석 이물질을 제거합니다. 물 나오는 대롱은 흐르는 물에 씼고 벽에다 소리나게 탁탁 쳐서 물이끼를 없앱니다. 전 과정을 모두 마치면 30~40분은 족히 걸리지요.
한 번은 열 마리 넘게 자라던 구피가 다 죽고 딱 두 마리만 남은 적이 있었습니다. 한 놈 두 놈 연이어 죽더니 딱 두 마리만 남은 것이지요. 열대어 파는 곳에서 물어보니 청소를 자주 하지 않아서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아뿔싸. 결국 어항 청소를 제때 하지 않았던 제 책임이 컷던 겁니다.
다시는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겠노라 마음먹고 구피 다섯 마리를 새로 샀습니다. 어항에 넣기 전에 청소를 깨끗이 했습니다. 그리고 핸드폰 일정에 어항 청소의 날을 넣었지요.더 이상 구피의 죽음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요. 구피가 자연적으로 죽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제 직무유기일 테니까요.
요 며칠 새 어항을 보니 벽에 이끼가 낀 게 보입니다. 청소할 때가 왔다는 표시입니다. 덜컥 겁이 났습니다. 녀석들이 사는 환경이 나빠졌다는 뜻이니까요. 다른 건 몰라도 구피가 살아갈 환경을 만들어주는 건 제 일입니다. 부디 죽지 마라. 내일은 어항 청소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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