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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八十二回 殺子胥夫差爭歃 納蒯瞶子路結纓
제82회: 오자서를 죽여 부차는 삽혈을 다투고, 괴예를 받아들여 자로가 갖끈을 매고 죽다.
話說,周敬王三十六年春,越王句踐使大夫諸稽郢帥兵三千,助吳攻齊。吳王夫差遂徵九郡之兵,大舉伐齊。預遣人建別館於句曲,遍植秋梧,號曰梧宮。使西施移居避暑,俟勝齊回日,即於梧宮過夏方歸。吳兵將發,子胥又諫曰:「越在,我心腹之病也﹔若齊,特疥癩耳。今王興十萬之師,行糧千里,以爭疥癩之患,而忘大毒之在腹心,臣恐齊未必勝,而越禍已至也。」夫差怒曰:「孤發兵有期,老賊故出不祥之語,阻撓大計,當得何罪?」意欲殺之。伯嚭密奏曰:「此前王之老臣,不可加誅。王不若遣之往齊約戰,假手齊人。」
한편, 주경왕 36년 봄에 월왕 구천은 대부 제계영(諸稽郢)을 시켜 군사 3천 명을 거느리고 오나라를 도와 제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오왕 부차가 곧 아홉 군의 군사를 징발하여 대규모로 제나라를 쳤다. 미리 사람을 보내어 구곡(句曲)에다 별관을 짓고 두루 오동나무를 심게 하여 이름을 오궁(梧宮)이라고 불렀다. 서시로 하여금 거처를 옮겨 피서하게 하고, 제나라를 이기고 돌아올 날을 기다리게 하여, 곧 오궁에서 여름을 보내고 돌아오려고 했다. 오나라 군사가 장차 출발하려는데, 오자서가 또 간하기를, “월나라는 우리 뱃속의 병이고, 제나라는 부스럼일 뿐입니다. 지금 왕께서 10만 군사를 일으켰으니, 군량을 천 리나 운송하여 부스럼과 싸우면서, 뱃속에 있는 큰 병을 잊었습니다. 신은 제나라를 이기지 못하는 것보다 월나라의 재앙이 이미 이른 것이 두렵습니다.” 했다. 부차가 성을 내어 말하기를, “내가 군사를 출발시키려는데, 늙은 도적이 일부러 불길한 말을 하여 큰 계획을 막고 흔들려 하니, 마땅히 무슨 죄로 다스려야 할까?” 하고 그를 죽이려고 했다. 백비가 몰래 아뢰기를, “그는 선왕의 늙은 신하이니, 죽일 수는 없습니다. 왕께서는 그를 제나라에 보내어 싸울 약속을 잡게 하셔서 제나라 사람의 손을 빌려 그를 죽이십시오.” 했다.
夫差曰:「太宰之計甚善。」乃為書數齊伐魯慢吳之罪,命子胥往見齊君,冀其激怒而殺子胥也。子胥料吳必亡,乃私攜其子伍封同行,至臨淄,致吳王之命。齊簡公大怒,欲殺子胥,鮑息諫曰:「子胥乃吳之忠臣,屢諫不入,已成水火。今遣來齊,欲齊殺之,以自免其謗。宜縱之使歸,令其忠佞自相攻擊,而夫差受其惡名矣。」簡公乃厚待子胥,報以戰期,定於春末。子胥原與鮑牧相識,故鮑息諫齊侯勿殺子胥也。鮑息私叩吳事,子胥垂淚不言,但引其子伍封,使拜鮑息為兄,寄居於鮑氏,今後只稱王孫封,勿用伍姓。鮑息嘆曰:「子胥將以諫死,故預謀存祀於齊耳。」不說子胥父子分離之苦。
부차가 말하기를, “태재의 계책이 아주 좋소.” 하고, 곧 편지를 써서 제나라가 노나라를 쳐서 오나라를 업신여기는 죄를 나열하고, 오자서에게 명하여 제나라 군주를 가서 만나보게 하여, 그가 격노하여 오자서를 죽이기를 기대했다. 오자서는 오나라가 틀림없이 망할 것을 짐작하고, 이에 그 아들 오봉(伍封)을 데리고 함께 길을 떠났다. 임치에 도착하여 오왕의 선전포고를 바쳤다. 제간공이 크게 성을 내어 오자서를 죽이려 했으나, 포식(鮑息)이 간하기를, “오자서는 오나라의 충신입니다. 여러 번 간해도 들어주지 않아 물과 불처럼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를 제나라로 보낸 것은 제나라로 하여금 그를 죽이게 하여 스스로 그 비방을 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그를 놓아주어 귀국시켜서 충신과 간신이 서로 공격하게 하여 부차가 그 악명을 뒤집어써야 할 것입니다.” 했다. 제간공이 오자서를 후하게 대접하고 전쟁 기일을 알려서 봄날 끝으로 정했다. 오자서가 원래 포목(鮑牧)과 서로 알고 지냈기 때문에 포식이 제간공을 간하여 오자서를 죽이지 말라고 한 것이었다. 포식이 몰래 오나라 일을 물어보니 오자서는 눈물을 흘리며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그 아들 오봉을 이끌어서 포식에게 절하여 형으로 삼게 하고, 포씨의 집에 몸 붙여 살게 했다. 그날로부터 단지 왕손봉(王孫封)이라고 칭하고 오(伍)성을 쓰지 않도록 했다. 포식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오자서가 장차 충간하다가 죽으려고, 미리 제나라에서 제사를 보존하고자 하는구나.” 하고, 오자서 부자의 헤어지는 아픔을 말하지 않았다.
再說,吳王夫差,擇日於西門出軍,過姑蘇臺午膳,膳畢,忽然睡去,得其異夢。既覺,心中恍惚,乃召伯嚭告曰:「寡人晝寢片時,所夢甚多。夢入章明宮,見兩釜炊而不熟﹔又有黑犬二隻,一嗥南,一嗥北﹔又有鋼鍬二把,插於宮牆之上﹔又流水湯湯,流於殿堂﹔後房非鼓非鐘,聲若鍛工﹔前園別無他植,橫生梧桐。太宰為寡人占其吉凶!」伯嚭稽首稱賀曰:「美哉!大王之夢,應在興師伐齊矣。臣聞:章明者,破敵成功,聲朗朗也﹔兩釜炊而不熟者,大王德盛,氣有餘也﹔兩犬嗥南嗥北者,四夷賓服,朝諸侯也﹔兩鍬插宮牆者,農工盡力,田夫耕也﹔流水入殿堂者,鄰國貢獻,財貨充也﹔後房聲若鍛工者,宮女悅樂,聲相諧也﹔前園橫生梧桐者,桐作琴瑟,音調和也。大王此行,美不可言。」
한편, 오왕 부차는 택일하여 서문에서 군사를 출발시켜 고소대를 지나며 점심을 먹었다. 식사가 끝나자 갑자기 잠이 들어 이상한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깨어나 마음이 멍해져서 즉시 백비를 불러 말하기를, “과인이 잠시 낮잠을 자다가 많은 꿈을 꾸었소. 꿈에서 장명궁(章明宮)에 들어가니 가마솥 두 개에 불을 때는데 익지 않았소. 또 검은 개 두 마리가 있는데 한 마리는 남쪽을 향해 짖고 한 마리는 북쪽을 향해 짖었소. 또 쇠로 만든 삽 두 자루가 궁궐의 담장에 꽂혀 있었고, 또 흐르는 물이 출렁출렁 궁궐 전당에 흘렀소. 뒷방에는 북도 아니고 종도 아닌 것이 쇠를 단련하는 듯한 소리를 냈소. 앞동산에 다른 나무들은 없고 오직 오동나무만이 뒤엉켜 무성했소. 태재는 나를 위해 그 길흉을 점쳐보시오.” 했다. 백비가 머리를 조아리며 축하하여 말하기를, “아름답습니다. 대왕의 꿈은 군사를 일으켜서 제나라에 원정하는 것이 감응한 것입니다. 신은 듣기에, 장명(章明)이라는 말은 곧 적을 파하여 공을 이루고 소리가 명랑한 것을 말하고, 두 개의 가마솥에 불을 때도 익지 않는 것은 대왕의 덕이 성하여 기운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두 마리 개가 남북을 향하여 짖는 것은 사방의 오랑캐들이 손님으로 복종하여 제후에게 조빙한다는 뜻입니다. 궁궐 담장에 삽이 두 개 꽂힌 것은 농부와 장인이 힘을 다하고 농부가 밭을 간다는 것이고, 물이 전당 안으로 흘러드는 것은 이웃 나라가 조공을 바쳐 재화가 충만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뒷방에서 쇠를 단련하는 듯한 소리가 나는 것은 궁녀들이 기쁘고 즐거워서 소리가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앞동산에 우거진 오동나무는 오동으로 거문고와 비파를 만드니 소리가 조화로운 것입니다. 대왕의 이번 출병은 길하기가 말할 수 없습니다.” 했다.
夫差雖喜其諛,而心中終未快然。復告於王孫駱,駱對曰:「臣愚昧,不能通微。城西陽山,有一異士,喚做公孫聖,此人多見博聞,大王心上狐疑,何不召而決之?」夫差曰:「子即為我召來。」駱承命,馳車往迎公孫聖。聖聞其故,伏地涕泣。其妻從旁笑曰:「子性太鄙,希見人主,卒聞宣召,涕淚如雨。」聖仰天長嘆曰:「悲哉!非汝所知。吾曾自推壽數,盡於今日。今將與汝永別,是以悲耳。」駱催促登車,遂相與馳至姑蘇之臺。夫差召而見之,告以所夢之詳。
부차가 비록 그 아첨하는 말에 즐거웠지만, 마음속은 끝내 석연치 않았다. 다시 왕손락에게 이야기를 하니, 왕손락이 대답하기를,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그 미묘한 뜻을 알 수 없습니다. 성의 서쪽 양산(陽山)에 특이한 선비가 있는데, 공손성(公孫聖)이라고 부릅니다. 이 사람은 많이 보고 널리 들어서 대왕의 마음속 의심나는 것을 알 것입니다. 어찌 불러서 해결하지 않습니까?” 했다. 부차가 말하기를, “그대가 나를 위해 그를 불러오시오.” 하니, 왕손락이 명령을 받들어 수레를 몰아 공손성을 맞이하러 갔다. 공손성이 그 연고를 듣더니 땅에 엎드려 울었다. 그의 처가 곁에서 웃으며 말하기를, “당신은 성격이 참으로 고루합니다. 군주 뵙기를 바라더니 마침내 부름을 받자 눈물을 비같이 흘립니다.” 하니, 공손성이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하며 말하기를, “슬프구나! 당신이 알 바는 아니오. 나는 일찍이 스스로 내 수명을 헤아려 보았는데, 오늘이 끝나는 날이오. 지금 그대와 영원히 이별하니 그래서 슬퍼하는 것이오.” 했다. 왕손락이 수레에 오르기를 재촉하여 마침내 함께 고소대에 도착했다. 부차가 불러 보고 자기의 꿈을 상세하게 이야기했다.
公孫聖曰:「臣知言而必死,然雖死不敢不言。怪哉!大王之夢,應在興師伐齊也。臣聞:章者,戰不勝,走章皇也﹔明者,去昭昭,就冥冥也。兩釜炊而不熟者,大王敗走,不火食也。黑犬嗥南嗥北者,黑為陰類,走陰方也。兩鍬插宮牆者,越兵入吳,掘社稷也。流水入殿堂者,波濤漂沒,後宮空也。後房聲若鍛工者,宮女為俘,長嘆息也。前園橫生梧桐者,桐作冥器,待殉葬也。願大王罷伐齊之師,更遣太宰嚭解冠肉袒,稽首謝罪於句踐,則國可安而身可保矣。」伯嚭從旁奏曰:「草野匹夫,妖言肆毀,合加誅戮!」
공손성이 말하기를, “신이 말을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을 압니다. 그러나 비록 죽더라도 감히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괴상합니다! 대왕의 꿈은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정벌하는 일에 감응한 것입니다. 신이 듣기로, 장(章)이라는 것은 싸워서 이기지 못하여 장황(章皇 ; 창황)히 달아난다는 말이고 명(明)이란 밝은 데서 어두운 곳으로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두 개의 가마솥에 불을 때도 익지 않음은 대왕께서 패하여 달아나다가 익은 밥을 먹지 못한다는 말이고, 검은 개가 남쪽과 북쪽을 향하여 짖는 것은 흑(黑)은 어두운 것이니 어두운 곳으로 달아난다는 뜻입니다. 궁궐의 답장에 두 개의 삽이 꽂힌 것은 월나라의 병사들이 오나라에 쳐들어와 사직을 판다는 뜻이며, 물이 흘러 전당에 들어오는 것은 파도가 쳐서 후궁이 비게 된다는 뜻입니다. 뒷방에서 단련하는 듯한 소리는 궁녀들이 모두 포로가 되어 탄식하는 소리이며, 앞동산에 우거진 오동나무는 오동나무로 순장할 기물을 만드니 순장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제나라를 정벌하려는 군대를 거두시고, 다시 태재 백비의 관과 웃통을 벗기고 구천에게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면 나라를 편안히 하고 몸을 보전할 수 있습니다.” 했다. 백비가 옆에서 아뢰기를, “초야의 필부가 함부로 요사스런 말을 하니, 죽여야 합당합니다.” 했다.
公孫聖睜目大罵曰:「太宰居高官,食重祿,不思盡忠報主,專事諂諛,他日越兵滅吳,太宰獨能保其首領乎?」夫差大怒曰:「野人無識,一味亂言,不誅,必然惑眾!」顧力士石番:「可取鐵鎚擊殺此賊!」聖乃仰天大呼曰:「皇天,皇天!知我之冤。忠而獲罪,身死無辜,死後不願葬埋,願撇我在陽山之下,後作影響,以報大王也。」夫差已擊殺聖,使人投其屍於陽山之下,數之曰:「豺狼食汝肉,野火燒汝骨,風揚汝骸,形銷影滅,何能為聲響哉!」伯嚭捧觴趨進曰:「賀大王,妖孽已滅,願進一觴,兵便可發矣。」史臣有詩云:「妖夢先機已兆凶,驕君尚戀伐齊功﹔吳庭多少文和武,誰似公孫肯盡忠!」
공손성이 눈을 부릅뜨고 크게 꾸짖기를, “태재는 높은 벼슬자리와 많은 봉록을 받으면서 충성을 다해 주군에 보답할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아첨만을 일삼으니, 훗날 월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와 오나라를 멸망시킬 때 태재만 홀로 그 머리를 보전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했다. 부차가 대로하여 말하기를, “초야의 무식한 놈이 함부로 어지러운 말을 하니 죽이지 않으면 반드시 민심을 어지럽힐 것이다!” 하고, 장사 석번(石番)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철퇴로 저 도적놈을 쳐서 죽여라!” 했다. 공손성이 하늘을 우러러 큰소리로 부르짖기를, “하늘이여, 하늘이여! 나의 원통함을 아십니까? 충성스러운 말을 했으나 죄를 얻어 무고하게 몸이 죽게 되었습니다. 내가 죽은 다음에 땅에 묻지 말고 양산 밑에 던져 놓기 바라오. 내가 나중에 그림자라도 되어 대왕에게 알리겠소.” 했다. 부차가 이미 공손성을 격살하게 한 후에 사람을 시켜 그 시체를 가져가 양산 밑에다 던져 버리게 했으나 헤아려 보고 말하기를, “늑대와 이리가 너의 고기를 먹고, 들불이 너의 뼈를 태우고, 바람이 네 해골을 날려 형체도 그림자도 없게 될 텐데 네가 어찌 능히 소리를 내어 울려서 알리겠느냐!” 했다. 백비가 술잔을 받들어 올리며 말하기를, “대왕께 축하의 말을 드립니다. 요사스러운 자는 이미 죽었으니 원컨대 술을 한 잔 드시고 군사를 출발시키지요.” 했다. 사관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요사스러운 꿈속에서 먼저 흉조가 나타났건만, 교만한 임금은 오히려 제나라 정벌의 공을 탐하는구나! 오나라 조정에 지략과 무예를 갖춘 자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공손성만큼 충성을 다했는가.” 했다.
夫差自將中軍,太宰嚭為副,胥門巢將上軍,王子姑曹將下軍,興師十萬,同越兵三千,浩浩蕩蕩,望山東一路進發。先遣人約會魯哀公合兵攻齊。子胥於中途復命,稱病先歸,不肯從師。卻說,齊將國書,屯兵汶上,聞吳魯連兵來伐,聚集諸將商議迎敵。忽報:「陳相國遣其弟陳逆來到。」國書同諸將迎入中軍,叩問:「子行此來何意?」陳逆曰:「吳兵長驅,已過嬴博,國家安危,在於呼吸。相國恐諸君不肯用力,遣小將至此督戰。今日之事,有進無退,有死無生,軍中只許鳴鼓,不許鳴金。」諸將皆曰:「吾等誓決一死敵!」國書傳令,拔寨都起,往迎吳軍。
부차는 스스로 중군을 거느리고, 태재 백비를 부장으로, 서문소(胥門巢)를 상군 대장으로, 왕자 고조(姑曹)를 하군 대장으로 삼아, 10만 군사를 일으켜 월나라 군사 3천 명과 함께 호호탕탕히 산동의 제나라를 향해 진격했다. 먼저 노애공에게 사람을 보내 군사를 합하여 제나라를 공격하기로 약속했다. 오자서가 중도에서 부차를 만나 복명하고,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먼저 오나라로 돌아가서 군사를 따라가지 않았다. 한편, 제나라 대장 국서(國書)는 문수(汶水) 가에 주둔하다가, 오나라와 노나라가 군사를 합쳐서 제나라를 공격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장수를 모아 적군을 막을 계책을 상의했다. 갑자기 보고하기를, “진항(陳恒) 상국께서 그의 동생 진역(陳逆)을 보내왔습니다.” 했다. 국서(國書)가 여러 장수와 함께 진역(陳逆)을 중군으로 맞아들여서 묻기를, “그대는 여기에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하니, 진역이 말하기를, “오나라 군사들이 거침없이 쳐들어와서 이미 영(嬴)과 박(博)을 지났으니 국가의 안위가 경각에 달려 있소. 상국께서 여러분들이 적군을 막는 데 힘을 다하지 않을까 걱정하여 소장을 여기에 보내어 독려하도록 하셨소. 지금 우리의 각오는 진격은 있지만 후퇴는 없고, 죽음은 있지만 살아남는 것은 없소. 군중에 다만 북을 쳐 진격하는 것은 허락하지만, 징을 쳐 후퇴하는 것은 허락할 수 없소,” 하니, 여러 장수가 모두 말하기를, “우리는 맹세코 목숨을 걸고 적과 싸우겠소.” 했다. 국서가 명령을 전하여 진영을 거두어 모두 일어나서 오나라 군사를 맞이하러 갔다.
至於艾陵,吳將胥門巢上軍先到。國書問:「誰人敢衝頭陣?」公孫揮欣然願往,率領本部車馬,疾驅而出。胥門巢急忙迎敵,兩下交鋒,約三十餘合,不分勝敗。國書一股銳氣,按納不住,自引中軍夾攻。軍中鼓聲如雷,胥門巢不能支,大敗而走。國書勝了一陣,意氣愈壯,令軍士臨陣,各帶長繩一條,曰:「吳俗斷髮,當以繩貫其首。」一軍若狂,以為吳兵旦暮可掃也。胥門巢引敗兵來見吳王,吳王大怒,欲斬巢以狥。巢奏曰:「臣初至不知虛實,是以偶挫﹔若再戰不勝,甘伏軍法!」伯嚭亦力為勸解。夫差叱退,以大將展如代領其軍。
제나라 군사가 애릉(艾陵)에 도착하니, 오나라 장수 서문소(胥門巢)의 상군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국서(國書)가 장수들에게 묻기를, “누가 용감하게 출진하여 부딪쳐 보겠는가?” 하니, 공손휘(公孫揮)가 흔연히 가기를 원하여 휘하의 전차를 거느리고 내달려 나갔다. 서문소가 급히 적을 맞이하여 두 장수가 교전하여 약 30여 합을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국서가 한 줄기 예기(銳氣)를 억누르지 못하여 스스로 중군을 이끌고 협공했다. 군중의 북소리가 우레와 같이 일어나자 서문소가 견디지 못하고 크게 패하여 달아났다. 국서가 한바탕 이겨서 기세가 등등해져 군사들에게 명령하기를, 긴 밧줄을 한 개씩 구하여 지니게 하고 말하기를, “오나라 풍속은 머리털을 자르니, 마땅히 밧줄로 그들의 목을 꿰어야 한다.” 했다. 제나라 군사들이 마치 미친 듯하여 오나라의 군사들을 금방 쓸어버릴 듯하였다. 서문소가 패잔병들을 이끌고 돌아가 오왕을 뵈니, 오왕이 크게 노하여 서문소를 베어 조리를 돌리려고 했다. 서문소가 아뢰기를, “신이 처음 도착하여 적군의 허실을 몰라서 우연히 군사를 꺾이게 되었습니다. 만일 다시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달게 군법을 받겠습니다!” 했다. 백비가 또한 힘써 권하여 풀렸다. 부차가 꾸짖어 물리치고, 대장 전여(展如)를 시켜 서문소 대신 상군을 거느리게 했다.
適魯將叔孫州仇引兵來會,夫差賜以劍甲各一具,使為嚮導,離艾陵五里下寨。國書使人下戰書,吳王批下:「來日決戰」。次早,兩下各排陣勢,夫差命叔孫州仇打第一陣,展如打第二陣,王子姑曹打第三陣。使胥門巢率越兵三千,往來誘敵。自與伯嚭引大軍屯於高阜,相機救援。留越將諸稽郢於身旁觀戰。卻說,齊軍列陣方完,陳逆令諸將各具含玉,曰:「死即入殮!」公孫夏公孫揮使軍中皆歌送葬之詞,誓曰:「生還者,不為烈丈夫也!」國書曰:「諸君以必死自勵,何患不勝乎?」
그때 마침 노나라의 장수 숙손주구(叔孫州仇)가 군사를 이끌고 와서 오나라의 군사와 합쳤다. 부차가 숙손주구에게 칼과 갑옷 한 벌을 하사하고, 향도를 맡겨 애릉에서 5리 떨어진 곳에 진영을 세우게 했다. 국서가 사자를 시켜 전투요청서를 써서 보내니, 오왕이 비답하기를, “내일 결전하자.”라고 했다. 다음 날 아침, 두 나라 군사들은 각각 전투대형을 갖추었다. 부차가 숙손주구에게 적의 제1진을 치게 하고, 전여에게 적의 제2진을 치게 하며, 왕자 고조에게 적의 제3진을 치게 했다. 서문소를 시켜 월나라 군사 3천 명을 거느리고 왕래하며 적을 유인하게 했다. 부차는 백비와 함께 대군을 이끌고 높은 언덕에 진을 치고 기회를 보아 돕도록 했다. 월나라 장수 제계영은 자기 곁에 머물게 하여 싸움을 관전토록 했다. 한편 제나라 진영에서도 전투대형을 갖추자 진역(陳逆)이 여러 장수에게 모두 입에 구슬을 물라고 명령하면서 말하기를, “싸우다 죽으면 (구슬을 물었으니) 염한 거와 같소!” 했다. 공손하와 공손휘는 군사들에게 모두 장송곡을 부르게 하며 맹세하기를, “살아 돌아오는 자는 열렬한 장부가 아니다!” 하니, 국서가 말하기를, “여러분들이 필사의 각오로 스스로 독려하니 어찌 이기지 못할 것을 걱정하겠는가?” 했다.
兩陣對圓,胥門巢先來搦戰。國書謂公孫揮曰:「此汝手中敗將,可便擒之。」公孫揮奮戟而出,胥門巢便走,叔孫州仇引兵接住公孫揮廝殺。胥門巢復身又來,國書恐其夾攻,再使公孫夏出車。胥門巢又走,公孫夏追之,吳陣上大將展如,引兵便接住公孫夏廝殺。胥門巢又回車幫戰,惱得齊將高無平宗樓性起,一齊出陣,王子姑曹挺身獨戰二將,全無懼怯。兩軍各自奮力,殺傷相抵。國書見吳兵不退,親自執枹鳴鼓,悉起大軍,前來助戰。吳王在高阜處看得親切,見齊兵十分奮勇,吳兵漸漸失了便宜,乃命伯嚭引兵一萬,先去接應。
양쪽 군사들이 전투대형을 마치자 서문소가 먼저 달려 나와 싸움을 걸었다. 국서가 공손휘에게 말하기를, “저자는 너에게 패한 장수다. 금방 잡을 수 있겠다.” 하니, 공손휘가 극을 휘두르며 달려 나갔다. 서문소는 곧 달아나고, 숙손주구가 군사를 이끌고 공손휘와 맞붙어 싸웠다. 서문소가 몸을 돌려 다시 돌아오니, 국서는 그가 협공할까 걱정하여 다시 공손하를 시켜 출격하게 했다. 서문소가 다시 달아나자, 공손하가 그를 뒤쫓았다. 오나라의 진영에서는 상군 대장 전여가 군사를 이끌고 문득 공손하의 앞을 막아 무찔렀다. 서문소가 다시 전차를 돌려 전여를 도왔다. 제나라 장수 고무평(高无平)과 종루(宗褸)가 보고 분노를 참을 수 없어서 일제히 출진하자 오나라의 왕자 고조(姑曹)가 앞장서서 나아가 홀로 두 장수를 상대하면서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양쪽의 군사들이 각자 있는 힘을 다하여 서로 찌르고 죽여서 서로 맞비겼다. 국서가 오나라 군사들이 물러서지 않는 것을 보고, 친히 북채를 잡아 북을 울려서 대군을 모두 일으켜서 앞으로 나아가 싸움을 도우려 했다. 오왕 부차가 높은 언덕에 앉아서 친히 전세를 살피다가, 제나라의 군사들이 십분 용기를 내어 싸우자 오나라의 군사들이 점점 밀리는 것을 보고, 즉시 백비에게 1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먼저 가서 싸움을 도우라고 명했다.
國書見吳兵又至,正欲分軍迎敵,忽聞金聲大震,鉦鐸皆鳴。齊人只道吳兵欲退,不防吳王夫差自引精兵三萬,分為三股,反以鳴金為號,從刺斜裏直衝齊陣,將齊兵隔絕三處。展如姑曹等,聞吳王親自臨陣,勇氣百倍,殺得齊軍七零八落。展如就陣上擒了公孫夏,胥門巢刺殺公孫揮於車中,夫差親射宗樓,中之。閭邱明謂國書曰:「齊兵將盡矣!元帥可微服遁去,再作道理。」國書嘆曰:「吾以十萬強兵,敗於吳人之手,何面目還朝?」乃解甲沖入吳軍,為亂軍所殺。閭邱明伏於草中,亦被魯將州仇搜獲。
국서는 오나라 군사가 다시 달려 나오는 것을 보고 군사를 나누어 적을 막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징 소리가 크게 울리고 방울 소리도 울렸다. 제나라 군사들은 다만 오나라 군사들이 퇴각하려는 것인 줄 알았으나, 뜻밖에 오왕 부차가 친히 정예군 3만을 이끌고, 세 부대로 나누어 도리어 징을 공격 신호로 하여, 측면에서 바로 제나라 진영을 무찔러서 제나라 군대를 세 도막으로 잘랐다. 전여, 고조 등은 오왕이 친히 대군을 이끌고 싸움에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용기백배하여 제나라 군사의 십중 칠팔을 죽였다. 전여는 제나라 진영에서 공손하를 사로잡고, 서문소는 전차에 타고 있던 공손휘를 창으로 찔러 죽였다. 부차도 친히 활을 쏘아 종루를 명중시켰다. 여구명(閭邱明)이 국서에게 말하기를, “제나라 군사들은 거의 전멸했습니다. 원수께서는 미복으로 갈아입고 달아났다가 다시 계책을 세워야 합니다.” 하니, 국서가 탄식하기를, “내가 10만 명의 강한 군대를 모두 오나라 군사들의 손에 죽게 했는데 무슨 면목으로 조정에 돌아가겠는가?” 하고, 즉시 갑옷을 벗어버리고 오나라 군사들 속으로 뛰어들어가 난군 속에서 죽었다. 여구명은 풀 속에 숨어 있다가 역시 노나라 장수 숙손주구에게 붙잡혔다.
夫差大勝齊師,諸將獻功,共斬上將國書公孫揮二人,生擒公孫夏閭邱明二人,即斬首訖,只單走了高無平陳逆二人,其他擒斬不計其數,革車八百乘,盡為吳所有,無得免者。夫差謂諸稽郢曰:「子觀吳兵強勇,視越何如?」郢稽首曰:「吳兵之強,天下莫當,何論弱越!」夫差大悅,重賞越兵,使諸稽郢先回報捷。齊簡公大驚,與陳恒闞止商議,遣使大貢金幣,謝罪請和。夫差主張齊魯復修兄弟之好,各無侵害,二國俱聽命受盟。夫差乃歌凱而回。史臣有詩曰:「艾陵白骨壘如山,盡道吳王奏凱還。壯氣一時吞宇宙!隱憂誰想伏吳關?」
부차가 제나라 군사를 크게 이기고 여러 장수는 그들의 전공을 고했다. 아울러 제나라의 상장 국서와 공손휘 두 사람의 목을 베고, 생포한 공손하와 여구명 두 사람을 즉시 참수했다. 다만 고무평과 진역 두 사람만 달아났을 뿐이다. 그밖에 생포되어 참수당한 자는 셀 수 없이 많았고, 죽음을 면한 자는 없었다. 가죽 전차 800대는 모두 오나라의 소유가 되었다. 부차가 제계영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오나라 병사들의 강하고 용맹함을 보니, 월나라의 병사들과 비교해 어떠한가?” 하니, 제계영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오나라 병사들의 강함은 천하가 당하지 못할 것인데, 어찌 약한 월나라와 논하겠습니까?” 했다. 부차가 크게 기뻐하여, 월나라 군사에게 많은 상을 주고, 제계영에게 먼저 돌아가 승리를 보고하게 했다. 제간공이 크게 놀라서 진환과 감지를 불러 상의한 후에 사자를 보내 많은 황금과 비단을 공물로 바치고 죄를 빌며 강화를 청하였다. 부차는 제나라와 노 나라가 형제지국으로 수호하여 서로 공격하여 해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를 주장하니, 두 나라는 모두 명령을 받들어 회맹을 받아들였다. 부차가 이에 개선가를 부르며 회군했다. 사관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애릉에 백골이 산처럼 쌓였는데, 사람들은 모두가 오왕이 개선했다고 하더라. 장한 기개는 한때 우주라도 삼킬 듯했지만, 숨겨진 근심이 오나라 관문에 잠복해 있을 줄 누가 알았으리오?” 했다.
夫差回至句曲新宮,見西施謂曰:「寡人使美人居此者,取相見之速耳。」西施拜賀且謝。時值新秋,桐陰正茂,諒風吹至,夫差與西施登臺飲酒甚樂。至夜深,忽聞有眾小兒和歌之聲,夫差聽之。歌曰:「桐葉冷,吳王醒未醒?梧葉秋,吳王愁更愁!」夫差惡之,使人拘群兒至宮,問:「此歌誰人所教?」群兒曰:「有一緋衣童子,不知何來,教我為歌,今不知何往矣。」夫差怒曰:「寡人天之所生,神之所使,有何愁哉?」欲誅眾小兒。西施力勸乃止。伯嚭進曰:「春至而萬物喜,秋至而萬物悲,此天道也。大王悲喜與天同道,何所慮乎?」夫差乃悅。
부차가 구곡(句曲)의 새 궁궐로 돌아와서 서시를 보고 말하기를, “과인이 그대를 이곳에 와서 머물도록 한 것은, 빨리 그대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했다. 서시가 절하고 부차의 승전을 축하했다. 그때 마침 초가을이라 오동나무의 녹음이 우거지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부차가 서시와 함께 누대에 올라 술을 마시며 즐기다가 밤이 깊었다. 갑자기 여러 어린아이가 노래를 함께 부르는 것을 부차가 듣게 되었다. 노래에 이르기를, “오동잎은 차가운데, 오왕은 술을 깨었나 깨지 않았나? 오동잎은 가을인데, 오왕은 근심하고 또 근심하네!”라고 했다. 부차가 그것을 미워하여 사람을 시켜 어린아이들을 잡아 궁으로 데리고 오게 하였다. 어린아이들에게 묻기를, “이 노래를 누가 가르쳐 주었느냐?” 하니, 아이들이 말하기를,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어떤 붉은 옷을 입은 동자가 우리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했다. 부차가 성을 내어 말하기를, “과인은 하늘이 태어나게 했으며 신이 부리는 대로 하는데 어찌 근심에 있다고 하느냐?” 하고, 어린아이들을 죽이려고 하자 서시가 힘써 말려서 그만두었다. 백비가 나와 말하기를, “봄이 오면 만물은 기뻐하며, 겨울이 오면 만물이 슬퍼함은 하늘의 이치입니다. 대왕께서는 슬퍼하고 기뻐함을 하늘의 이치와 함께하는데, 근심할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니, 부차가 이에 기뻐했다.
在梧宮三日,即起駕還吳。吳王升殿,百官迎賀。子胥亦到,獨無一言。夫差乃讓之曰:「子諫寡人不當伐齊,今得勝而回,子獨無功,寧不自羞?」子胥攘臂大怒,釋劍而對曰:「天之將亡人國,先逢其小喜,而後授之以大憂。勝齊不過小喜也,臣恐大憂之即至也。」夫差慍曰:「久不見相國,耳邊頗覺清淨,今又來絮聒耶?」乃掩耳瞑目,坐於殿上。頃間,忽睜眼直視久之,大叫:「怪事!」群臣問曰:「王何所見?」夫差曰:「吾見四人相背而倚,須臾四分而走,又見殿下兩人相對,北向人殺南向人。諸卿曾見之否?」群臣皆曰:「不見。」
오왕 부차는 오궁(梧宮)에서 3일을 지낸 다음 곧 어가를 움직여 오나라로 돌아왔다. 오왕이 전당에 오르자 백관이 축하를 드렸다. 오자서 역시 왔지만 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차가 이에 오자서를 비난하며 말하기를, “경은 과인에게 제나라를 정벌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간했지만, 오늘 이기고 돌아왔소. 그대 홀로 공을 세우지 못했으니 어찌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겠소?” 오자서가 소매를 걷어부치고 대로하여 칼을 풀어놓고 대답하기를, “하늘이 장차 사람이나 나라를 망하게 할 때에는 먼저 조그만 기쁨을 주고, 다음에 큰 근심을 줍니다. 제나라에게 이긴 일은 조그만 기쁨에 불과합니다. 신은 커다란 근심이 곧 이를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하니, 부차가 성을 내어 말하기를, “오랫동안 상국을 보지 않아 귀가 자못 맑고 깨끗하더니 이제 다시 와서 성가시게 할 것이오?” 하고 곧 귀를 가리고 눈을 감으며 옥좌에 앉았다. 조금 있다가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한참을 똑바로 보며 크게 소리 지르기를, “괴이한 일이로다!” 했다. 여러 신하가 묻기를, “대왕께서 무엇을 보셨습니까?” 하니, 부차가 말하기를, “내가 보니, 네 사람이 서로 등을 기대고 앉아 있다가 잠깐 사이에 사방으로 달아나 버렸다. 그리고 다시 전각 아래에 서 두 사람이 서로 싸우더니 북쪽을 향한 사람이 남쪽을 향한 사람을 죽였다. 여러분들도 그것을 보았는가?” 했다. 여러 신하가 모두 말하기를, “저희는 보지 못했습니다.” 했다.
子胥奏曰:「四人相背而走,四方離散之象也。北向人殺南向人,為下賊上,臣弒君。王不知儆省,必有身弒國亡之禍。」夫差怒曰:「汝言太不祥,孤所惡聞!」伯嚭曰:「四方離散,奔走吳庭﹔吳國霸王,將有代周之事,此亦下賊其上,臣犯其君也。」夫差曰:「太宰之言,足啟心胸。相國耄矣,有不足採。」過數日,越王句踐率群臣親至吳邦來朝,并賀戰勝﹔吳庭諸臣,俱有饋賂。伯嚭曰:「此奔走吳庭之應也。」吳王置酒於文臺之上,越王侍坐,諸大夫皆侍立於側。
오자서가 아뢰기를, “네 사람이 서로 등을 대고 있다가 달아난 것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질 조짐이며 북쪽을 향하고 있던 사람이 남쪽을 향하고 있는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범한다는 뜻이니 신하가 임금을 죽인다는 징조입니다. 왕께서 경계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몸은 죽고 나라는 망하는 화를 입을 것입니다.” 하니, 부차가 노하여 말하기를, “그대의 말은 너무 불길하다. 나는 그 말을 듣기 싫다!” 했다. 백비가 말하기를,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은 오나라 궁정으로 달려온다는 뜻이니, 오나라가 패왕이 되어 장차 주나라를 대신하게 됨을 말합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또한 아래가 위를 범했으니 신하가 군주를 범한 것입니다.” 하니, 부차가 말하기를, “태재의 말이 족히 나의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 주는구려! 상국은 늙어서 그 말을 채택하기에 부족하오.” 했다. 며칠이 지나자, 월왕 구천이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친히 오나라에 조회하러 와서 아울러 승전을 축하했다. 그리고 오나라 궁정의 여러 신하에게 모두 뇌물을 바쳤다. 백비가 말하기를, “이것이 바로 오나라 궁정으로 달려온다는 감응입니다.” 했다. 오왕이 문대에 술자리를 마련하니 구천이 부차를 모셔 앉고, 여러 대부는 모두 그 곁에 시립했다.
夫差曰:「寡人聞之:『君不忘有功之臣,父不沒有力之子。』今太宰嚭為寡人治兵有功,吾將賞為上卿﹔越王孝事寡人,始終不倦,吾將再增其國,以酬助伐之功﹔於眾大夫之意如何?」群臣皆曰:「大王賞功酬勞,此霸王之事也。」於是子胥伏地涕泣曰:「嗚呼哀哉!忠臣掩口,讒夫在側,邪說諛辭,以曲為直。養亂畜奸,將滅吳國,廟社為墟,殿生荊棘。」夫差大怒曰:「老賊多詐,為吳妖孽,乃欲專權擅威,傾覆吾國,寡人以前王之故,不忍加誅,今退自謀,無勞再見!」子胥曰:「老臣若不忠不信,不得為前王之臣。譬如龍逄逢桀,比干逢紂,臣雖見誅,君亦隨滅,臣與王永辭,不復見矣。」遂趨出。吳王怒猶未息。
부차가 말하기를, “과인이 듣기에, ‘임금은 공이 있는 신하를 잊지 않고, 아버지는 힘쓴 아들을 잊지 않는다.’라고 했다. 오늘 태재 백비는 과인을 위해 군사를 훈련한 공이 있으니 내가 장차 그를 상경으로 삼고자 한다. 월왕 구천은 과인을 효도로써 받들며 시종일관 게으르지 않았으니 내가 장차 그 나라의 영토를 더하여 정벌을 도운 공을 보답하고자 하는데 여러 대부의 의견은 어떻소?” 하니, 여러 신하가 모두 말하기를, “대왕께서 공이 있는 자에게 상을 주고 노력한 자에게 보답하고자 하니, 이것은 패왕의 일입니다.” 했다. 이에 오자서가 땅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아, 슬프구나! 충신의 입을 막고 아첨꾼을 옆에 두어 요사스럽고 아첨하는 말로 굽은 것을 바르다 하고, 어지러운 것을 기르고 간사함을 축적하니, 장차 오나라가 멸망하여 종묘사직은 폐허가 되고 궁전에는 가시덤불만 우거질 것이로다.” 했다. 부차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늙은 도적이 속이는 게 많아, 오나라에 요사스러운 말을 퍼뜨리고 정사를 독차지하여 멋대로 위세를 부려서 내 나라를 전복시키려고 하니, 과인이 선왕의 연고로 차마 죽이지 못했으나, 오늘부터는 물러나 스스로 네 갈 길을 찾아서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 했다. 오자서가 말하기를, “노신이 만약 충성하지 않고 신의가 없었다면 선왕의 신하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저는 용방(龍逄)이 걸왕(桀王)을 만난 것과 같고, 비간(比干)이 주왕(紂王)을 만난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신이 비록 죽임을 당하더라도 주군도 역시 따라서 멸망할 것이니, 신은 대왕과 영원히 이별하여 다시 보지 못할 것입니다.” 하고, 마침내 서둘러 나갔다. 오왕은 화가 오히려 식지 않았다.
伯嚭曰:「臣聞子胥使齊,以其子託於齊臣鮑氏,有叛吳之心,王其察之!」夫差乃使人賜子胥以「屬鏤」之劍。子胥接劍在手,嘆曰:「王欲吾自裁也!」乃徒跣下階,立於中庭,仰天大呼曰:「天乎,天乎!昔先王不欲立汝,賴吾力爭,汝得嗣位。吾為汝破楚敗越,威加諸侯。今汝不用吾言,反賜我死!我今日死,明日越兵至,掘汝社稷矣。」乃謂家人曰:「吾死後,可抉吾之目,懸於東門,以觀越兵之入吳也!」言訖,自刎其喉而絕。使者取劍還報,述其臨終之囑。夫差往視其屍,數之曰:「胥,汝一死之後,尚何知哉?」乃自斷其頭,置於盤門城樓之上﹔取其屍,盛以鴟夷之器,使人載去,投於江中,謂曰:「日月炙汝骨,魚鱉食汝肉,汝骨變形灰,復何所見!」
백비가 말하기를, “신이 들으니, 오자서가 제나라에 사자로 갔을 때 그의 아들을 제나라 신하인 포씨에게 맡겼다고 하니, 오나라를 배반할 마음을 품은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살펴보십시오.” 했다. 부차가 즉시 사람을 보내어 오자서에게 촉루검(屬鏤劍)을 주었다. 오자서가 그 칼을 손에 쥐고 탄식하기를, “왕이 나를 자결하라고 하는구나!” 하고, 이에 맨발로 계단을 내려가 뜰 가운데 서서 하늘을 우러러 크게 부르짖기를, “하늘이여! 하늘이여! 옛날 선왕께서 부차 너를 세우지 않으려 했을 때 내가 힘써 다투어서 너를 군주로 세웠다. 내가 너를 위하여 초나라를 깨뜨리고 월나라를 패퇴시켜 제후들에게 위세를 떨쳤다. 지금 네가 나의 말을 듣지 않고 도리어 나에게 죽음을 내리는구나! 내가 오늘 비록 죽으면 내일 월나라 군사가 이르러 너의 사직을 파헤칠 것이다.” 하고 곧 집안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은 후에 내 눈을 뽑아서 동문에 걸어 놓아라. 월나라 군사들이 오나라로 쳐들어오는 것을 보겠다.” 했다. 말이 끝나자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사자가 촉루검을 가지고 부차에게 돌아와 보고하고 오자서가 죽을 때 한 말을 전했다. 부차가 가서 그 시체를 보고 다가가서 말하기를, “자서야! 네가 죽은 뒤에 무엇을 알겠느냐?” 하고, 직접 자서의 머리를 잘라서 남쪽 반문(盤門) 성루 위에 걸어 두도록 했다. 그의 시체는 술 담는 말가죽 자루에 넣어 사람을 시켜 수레에 싣고 가서 강물 가운데 던져 버리게 했다. 그리고 말하기를, “해와 달이 너의 뼈를 굽고, 고기와 자라가 너의 살을 먹으며, 너의 뼈는 재로 변할 텐데, 다시 무엇을 보겠는가!” 했다.
屍入江中,隨流揚波,依潮來往,蕩激崩岸。土人懼,乃私撈取,埋之於吳山。後世因改稱胥山,今山有子胥廟。隴西居士有古風一篇云:「將軍自幼稱英武,磊落雄才越千古﹔一旦蒙讒殺父兄,襄流誓濟吞荊楚。貫弓亡命欲何之?滎陽睢水空棲遲﹔昭關鎖鑰愁無翼,鬢毛一夜成霜絲。浣女沉溪漁丈死,簫聲吹入吳人耳﹔魚腸作合定君臣,復為強兵進孫子。五戰長驅據楚宮,君王含淚逃雲中﹔掘墓鞭屍吐宿恨,精誠貫日生長虹。英雄再振匡吳業,夫椒一戰棲強越﹔釜中魚鱉宰夫手,縱虎歸山還自嚙。姑蘇臺上西施笑,讒臣稱賀忠臣弔﹔可憐兩世輔吳功,到頭翻把屬鏤報!鴟夷激起錢塘潮,朝朝暮暮如呼號﹔吳越興衰成往事,忠魂千古恨難消!」
시체가 강물 가운데 들어가자 물결에 따라 떠내려가다 격랑에 휩쓸려 왕래하여 강변을 때려 무너뜨렸다. 토인들이 두려워하여 몰래 시체를 끌어올려 오산(吳山)에 묻었다. 후세에 그로 인해 서산(胥山)으로 바꾸어 불렀다. 지금도 서산에 오자서의 사당이 있다. 농서거사(隴西居士)가 고풍시 한 편을 지어 이르기를, “장군은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용맹하였으며, 씩씩한 영웅의 기상은 천고에 빼어났더라. 하루아침에 참소를 입어 부형이 살해되니, 강을 건너며 초나라를 망하게 하겠다고 맹세했다. 활을 둘러메고 도망치던 망명객은 어디로 향했는가? 형양(滎陽)과 수수(睢水)에서 헛되이 지체하였네. 소관(昭關)의 빗장을 넘을 때 날개가 없음을 걱정하다가, 귀밑털이 하룻밤 사이에 하얀 서리로 변했다. 빨래하던 여인과 어부를 물에 빠져 죽게 했으며, 피리를 불어 오나라 사람의 귀에 들어갔도다. 어장검으로 군신의 자리를 정하게 하고, 다시 강병을 기르기 위해 손자를 천거했다. 다섯 번의 싸움 끝에 초나라 궁성을 점령하고, 초나라 왕은 눈물을 흘리며 운중으로 달아났다. 평왕의 묘를 파서 시체에 매질하여 묵은 한을 풀고, 정성이 해를 꿰어 긴 무지개를 만들었다. 영웅은 다시 오나라의 기업을 바로 세우고, 부초에서의 일전으로 강한 월나라를 굴복시켰다. 가마솥 속의 고기요 자라가 된 월왕은 요리사 손에 들었다가, 호랑이를 산에 풀어주니 이빨을 갈았다. 고소대 위에는 서시의 웃음소리요, 참소하는 신하는 충신의 죽음을 축하하네. 가련하구나! 오나라의 두 임금을 섬겨 공을 세웠으나, 마침내 뒤집혀 촉루검으로 죽었구나. 말가죽에 싸인 시체의 격한 기운이 전당호 조수에 떠돌며, 아침과 저녁마다 슬피 외치며 통곡하는 듯하다. 오나라와 월나라의 흥망성쇠도 지나간 일이지만, 충신의 영혼은 천고의 한이 되어 풀지 못했으리라.” 했다.
夫差既殺子胥,乃進伯嚭為相國。欲增越之封地,句踐固辭乃止。於是句踐歸越,謀吳益急。夫差全不在念,章益驕恣。乃發卒數萬,築邗城,穿溝,東北通射陽湖,西北使江淮水合,北達於沂,西達於濟。太子友知吳王復欲與中國會盟,欲切諫,恐觸怒,思以諷諫感悟其父。清旦懷丸持彈,從後園而來,衣履俱濕,吳王怪而問之。友對曰:「孩兒適遊後園,聞秋蟬鳴於高樹,往而觀之,望見秋蟬趨風長鳴,自謂得所,不知螳螂超枝緣條,曳腰聳距,欲搏蟬而食之﹔螳螂一心只對秋蟬,不知黃雀徘徊綠陰,欲啄螳螂﹔黃雀一心只對螳螂,不知孩兒挾彈持弓,欲彈黃雀﹔孩兒一心只對黃雀,又不知旁有空坎,失足墮陷﹔以此衣履俱沾濕,為父王所笑。」
부차가 이미 오자서를 죽이고 곧 백비를 승진시켜 상국으로 삼았다. 월나라의 땅을 더해 주려 했으나 구천이 고사하여 그만두었다. 이에 구천이 월나라로 돌아가서 오나라를 도모할 생각이 더욱 급해졌다. 부차는 구천의 계획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마음이 더욱 교만 방자하게 되어 수만 명의 군사를 선발하여 한성(邗城)을 쌓고 운하를 파서 동북쪽으로 사양호(射陽湖)에 통하고, 서북쪽으로 장강과 회수(淮水)의 물을 합치고, 북쪽으로 기수(沂水)에 이르며 서쪽으로 제수(濟水)에 이르게 했다. 태자 우(友)는 오왕이 다시 중원의 나라들과 회맹하려는 것을 알고, 간절히 간하려고 했으나 부왕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서, 풍간하여 아버지를 깨닫게 하려고 생각했다. 맑게 갠 날 아침에 태자가 탄궁을 가지고 후원에서 나오는데 의복과 신발이 모두 젖어서 오왕이 괴이하여 물었다. 태자 우가 대답하기를, “제가 후원을 거닐고 있는데 가을 매미가 높은 나무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매미는 시원한 가을바람에 길게 울며 스스로 얻은 바가 있다고 생각하여 버마재비가 나뭇가지를 타고넘어 긴 허리를 뻗어 자기를 잡아먹으려는 것을 몰랐습니다. 버마재비는 오직 매미에 집착하여 참새가 녹음을 배회하며 버마재비를 쪼아먹으려는 줄을 모르고, 참새는 오직 버마재비에 집착하여 내가 탄궁을 가지고 참새를 쏘려는 것을 몰랐습니다. 나는 오직 참새만을 생각하여 옆에 구덩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발을 잘못 디뎌 구덩이 속으로 빠졌습니다. 그래서 옷과 신발이 모두 젖어 부왕의 웃음을 산 것입니다.” 했다.
吳王曰:「汝但貪前利,不顧後患,天下之愚,莫甚於此。」友對曰:「天下之愚,更有甚者。魯承周公之後,有孔子之教,不犯鄰國,齊無故謀伐之,以為遂有魯矣,不知吳悉境內之士,暴師千里而攻之。吳國大敗齊師,以為遂有齊矣,不知越王將選死士,出三江之口,入五湖之中,屠我吳國,滅我吳宮。天下之愚,莫甚於此!」吳王怒曰:「此伍員之唾餘,久已厭聞,汝復拾之,以撓我大計耶?再多言,非吾子也!」太子友悚然辭出。夫差乃使太子友同王子地,王孫彌庸守國,親帥國中精兵,由邗溝北上,會魯哀公於橐皋,會衛出公於發陽,遂約諸侯,大會於黃池,欲與晉爭盟主之位。
오왕 부차가 말하기를, “너는 단지 앞의 이익을 탐하여 뒤의 근심을 돌아보지 않았으니 천하에 어리석기가 이보다 심하지 않을 것이다.” 하니, 태자 우가 대답하기를, “천하에 어리석기가 더 심한 일이 있습니다. 노나라는 주공(周公)의 후예로서 공자의 가르침을 받아 이웃 나라들을 침범하지 않는데, 제나라가 까닭 없이 노나라를 정벌하여 그들의 소유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 오나라가 나라 안의 모든 군사를 이끌고 수천 리를 행군하여 제나라를 공격하리라는 사실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오나라도 제나라를 크게 파하고 제나라를 소유했다고 생각했으나 월왕이 결사대를 뽑아 거느리고 세 강의 어귀를 나와서 오호(五湖) 가운데로 들어와 우리 오나라를 도륙하고 궁정을 없앨 것을 알지 못하니, 천하의 어리석은 일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습니다!” 했다. 부차가 화를 내어 말하기를, “그 말은 오원이 나에게 귀가 아프도록 한 말인데, 네가 다시 거론하여 나의 큰 계책을 흔드느냐? 두 번 다시 여러 말을 하면 너는 네 아들이 아니다.” 하니, 태자 우가 머쓱해져서 물러났다. 부차가 즉시 태자 우에게 왕자 지(王子地)와 왕손 미용(彌庸)을 데리고 나라를 지키도록 명하고, 자기는 친히 오나라의 정예병들을 거느리고 한구(邗溝)를 거쳐 노애공과 탁고(橐皐)에서 만나고, 위출공과 발양(發陽)에서 만나 마침내 제후들과 약속하여 황지(黃池)에서 대회를 열어 진(晉)나라와 맹주의 자리를 다투려고 했다.
越王句踐聞吳王已出境,乃與范蠡計議,發習流二千人,俊士四萬,君子六千人,從海道通江以襲吳。前隊疇無餘先及吳郊,王孫彌庸出戰,不數合,王子地引兵夾攻,疇無餘馬蹶被擒。次日,句踐大軍齊到。太子友欲堅守,王孫彌庸曰:「越人畏吳之心尚在,且遠來疲敝,再勝之,必走。即不勝,守猶未晚。」太子友惑其言,乃使彌庸出師迎敵,友繼其後。句踐親立於行陣,督兵交戰。陣方合,范蠡泄庸兩翼呼噪而至,勢如風雨。吳兵精勇慣戰者,俱隨吳王出征,其國中皆未教之卒,那越國是數年訓練就的精兵,弓弩劍戟,十分勁利,又范蠡泄庸俱是宿將,怎能抵當,吳兵大敗。
월왕 구천은 오왕이 이미 국경 밖으로 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이에 범려와 상의하여 수군 2천 명, 정예병 4만 명, 귀족 자제 근위군 6천 명을 이끌고 바닷길에서부터 장강을 통하여 오나라를 습격했다. 선봉 주무여(疇無餘)가 먼저 오나라 도성 교외에 이르자 오나라의 왕손 미용(彌庸)이 출전하여 몇 합 싸우지 않아서 왕자 지(王子地)가 군사를 이끌고 협공했다. 주무여는 말이 넘어져서 사로잡혔다. 다음날 월왕 구천의 대군이 일제히 도착하여, 태자 우가 굳게 지키려 했으나 왕손 미용이 말하기를, “월나라 사람은 오나라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직 있습니다. 또한 먼 길을 와서 지쳤기 때문에 우리가 다시 이기면 틀림없이 그들은 달아날 것입니다. 이기지 못하면 그때 지켜도 늦지 않습니다.” 했다. 태자 우는 그 말이 그럴듯하다고 여겨 즉시 미용을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적군을 맞이하게 하고 자신은 그 뒤를 따랐다. 월왕 구천이 친히 진영 앞으로 나와 싸움을 독려했다. 범려와 설용(泄庸)의 두 진영의 군사들이 시끄럽게 고함지르며 마치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기세로 달려와 바야흐로 구천의 본진과 합류했다. 오나라의 용감하고 싸움에 능한 정예병들은 모두 오왕 부차를 따라 원정길에 나가고 도성 안에는 모두 싸움에 익숙하지 않은 병졸뿐이었다. 저 월나라 군사들은 몇 년간 훈련한 정예병들이고, 활과 쇠뇌, 칼과 창은 하나같이 굳세고 예리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범려와 설용은 모두 싸움에 익숙한 장수들이라 어찌 저당할 수 있겠는가. 오나라 군이 크게 패했다.
王孫彌庸為泄庸所殺。太子友陷於越軍,衝突不出,身中數箭,恐被執辱,自刎而亡。越兵直造城下,王子地把城門牢閉,率民夫上城把守,一面使人往吳王處告急。句踐乃留水軍屯於太湖,陸營屯於胥閶之間,使范蠡焚姑蘇之臺,火彌月不息,其餘皇大舟,悉徙於湖中。吳兵不敢復出。再說,吳王夫差與魯衛二君,同至黃池,使人請晉定公赴會,晉定公不敢不至。夫差使王孫駱與晉上卿趙鞅議載書名次之先後。趙鞅曰:「晉世主夏盟,又何讓焉?」王孫駱曰:「晉祖叔虞,乃成王之弟,吳祖太伯,乃武王之伯祖,尊卑隔絕數輩。況晉雖主盟,會宋會虢,已出楚下,今乃欲踞吳之上乎?」於是彼此爭論,連日不決。
왕손 미용은 설용에게 죽임을 당했다. 태자 우는 월나라 군사의 포위에 둘러싸여 좌충우돌했으나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몸에는 몇 발의 화살을 맞아서 사로잡혀 치욕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목을 찔러서 죽었다. 월나라 군사들이 성 밑에까지 쇄도했다. 왕자 지는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성안의 백성들을 거느리고 성에 올라 지키면서 한편으로 사람을 오왕의 처소에 보내 위급함을 알렸다. 구천은 수군을 태호에 주둔케 하고, 육지의 진영은 오나라 도성의 서문(胥門)과 창문(閶門) 사이에 세워서 범려를 시켜 고소대를 불태우게 하니, 불은 한 달이 지나도록 꺼지지 않았다. 여황(餘皇)이라는 큰 배들은 모두 호수 가운데로 옮겼다. 오나라 군사들은 감히 성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한편, 오왕 부차는 노나라 군주와 위나라 군주와 함께 황지에 도착하여, 사자를 보내 진정공(晉定公)을 회맹에 참석하라고 청했다. 진정공은 감히 오지 않을 수 없었다. 부차가 왕손락을 시켜 진(晉)나라 상경 조앙(趙鞅)과 의논하여 회맹의 맹세문에 이름을 올리는 순서를 정하게 했다. 조앙이 말하기를, “진(晉)나라는 대대로 중원의 회맹을 주관했는데 어찌 양보하겠소?” 하니, 왕손락이 말하기를, “진(晉)나라 시조는 당숙우(唐叔虞)로 곧 주성왕(周成王)의 동생이고 오나라의 시조는 태백(太伯)이라 곧 무왕의 큰할아버지가 되오. 높고 낮음이 몇 대나 까마득하고, 더구나 진(晉)나라가 회맹을 주관했다고 하나, 송나라나 괵나라에서 회맹했을 때에는 이미 초나라 아래에 내쳐졌으니 지금에 와서 오나라 위에 버티고 있겠다는 것이오?” 했다. 이에 피차 논쟁하느라고 여러 날 결론이 나지 않았다.
忽王子地密報至,言:「越兵入吳,殺太子,焚姑蘇臺,見今圍城,勢甚危急。」夫差大驚。伯嚭拔劍砍殺使者,夫差問曰:「爾殺使人何意?」伯嚭曰:「事之虛實,尚未可知,留使者洩漏其語,齊晉將乘危生事,大王安得晏然而歸乎?」夫差曰:「爾言是也。然吳晉爭長未定,又有此報,孤將不會而歸乎?抑會而先晉乎?」王孫駱進曰:「二者俱不可。不會而歸,人將窺我之急,若會而先晉,我之行止,將聽命於晉﹔必求主會,方保無虞。」夫差曰:「欲主會,計將安出?」王孫駱密奏曰:「事在危急,請王鳴鼓挑戰,以奪晉人之氣。」
갑자기 왕자 지(地)가 밀사를 보내 보고하기를, “월나라 군사들이 오나라로 쳐들어와서 태자를 죽이고 고소대를 불태웠습니다. 지금 도성을 포위하여 사태가 매우 위급합니다.” 했다. 부차가 크게 놀랐다. 백비가 칼을 뽑아 밀사를 죽였다. 부차가 묻기를, “그대는 무슨 뜻으로 사자를 죽였는가?” 하니, 백미가 말하기를, “일의 거짓과 진실을 아직 알 수 없는데, 사자를 살려 두어 그 말이 누설된다면 제나라와 진(晉)나라가 장차 우리의 위급한 상황을 틈타 일을 일으키면 대왕께서는 어떻게 편안히 귀국하겠습니까?” 했다. 부차가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옳소! 그러나 우리 오나라와 진(晉)나라가 맹주를 다투는 것이 정해지지 않았는데, 또 이러한 보고가 있으니 내가 장차 회맹을 그만두고 돌아가야 하겠소? 아니면 회맹을 계속하여 진(晉)나라에 앞서야 하겠소?” 하니, 왕손락이 나와 말하기를, “두 가지 다 불가합니다. 회맹을 그만두고 돌아간다면 사람들이 장차 우리의 위급함을 엿볼 것이고, 만약 회맹을 계속하여 진(晉)나라에 앞서려고 하다가 우리가 행동을 그치면 장차 진(晉)나라의 명령을 들어야 합니다. 반드시 회맹의 맹주가 되어야만 비로소 걱정이 없어질 것입니다.” 했다. 부차가 말하기를, “회맹의 맹주가 되려면 계책이 어떠하여야 하겠소?” 하니, 왕손락이 몰래 아뢰기를, “일이 매우 급하게 되었으니 왕께서는 북을 울려 싸움을 걸어서 진(晉)나라 사람의 기운을 빼앗아야 합니다.” 했다.
夫差曰:「善。」是夜出令,中夜士皆飽食秣馬,銜枚疾驅,去晉軍纔一里,結為方陳。百人為一行,一行建一大旗,百二十行為一面。中軍皆白輿,白旗,白甲,白羽之矰,望之如白茅吐秀,吳王親自仗鉞,秉素旌,中陣而立。左軍面左,亦百二十行。皆赤輿,赤旗,丹甲,朱羽之矰,一望若火,太宰嚭主之。右軍面右,亦百二十行。皆黑輿,黑旗,玄甲,烏羽之矰,一望如墨,王孫駱主之。帶甲之士,共三萬六千人。黎明陣定,吳王親執枹鳴鼓,軍中萬鼓皆鳴,鐘聲鐸聲,丁寧錞于,一時齊扣。三軍譁吟,響震天地。
부차가 말하기를, “좋은 생각이오.” 했다. 그날 밤 명령을 내려 한밤중에 군사와 말들을 모두 배불리 먹인 후에 함매(銜枚)를 물리고 질풍같이 몰아서진(晉)나라 군사들과 일리쯤 떨어진 곳에 방진을 쳤다. 백 명을 한 행(行)으로 하고 한 행마다 큰 깃발을 하나 세우고, 120행을 한 면(面)으로 했다. 중군은 흰 전차, 흰 깃발, 흰 갑옷, 흰 깃 달린 화살로 바라보면 마치 하얀 띠 풀이 핀 것 같았다. 오왕 부차가 친히 도끼를 들고, 흰 깃발을 잡고 진영 한가운데에 섰다. 좌군은 왼쪽에 섰는데 역시 120행이었다. 모두 붉은 전차, 붉은 깃발, 붉은 갑옷, 붉은 깃 달린 화살로 한번 보면 마치 불길이 타오르는 것 같았고, 태재 백비가 지휘했다. 우군은 오른쪽에 섰는데, 역시 120행으로 모두 검은 전차, 검은 깃발, 검은 갑옷, 검은 깃 달린 화살로 한번 보면 마치 먹 같았고, 왕손락이 지휘했다. 무장병이 모두 3만 6천 명이었다. 새벽에 진이 정해지자 오왕 부차가 친히 북채를 쥐고 북을 울리니 군중에서 만 개의 북이 일제히 울리고, 종소리, 방울 소리, 꽹과리와 쇠 동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한꺼번에 일어났다. 삼군이 지르는 함성이 천지를 진동했다.
晉軍大駭,不知其故,乃使大夫董褐至吳軍請命。夫差親對曰:「周王有旨,命寡人主盟中夏,以縫諸姬之闕。今晉君逆命爭長,遷延不決,寡人恐煩使者往來,親聽命於藩籬之外,從與不從,決於此日!」董褐還報晉侯,魯衛二君皆在坐。董褐私謂趙鞅曰:「臣觀吳王口強而色慘,中心似有大憂,或者越人入其國都乎?若不許其先,必逞其毒於我﹔然而不可徒讓也,必使之去王號以為名。」趙鞅言於晉侯,使董褐再入吳軍,致晉侯之命曰:「君以王命宣布於諸侯,寡君敢不敬奉!然上國以伯肇封,而號曰吳王,謂周室何?君若去王號而稱公,惟君所命。」
진(晉)나라 군사들이 그 까닭을 몰라서 매우 놀랐다. 이에 대부 동갈(董褐)을 오군 진영에 보내 무슨 까닭인지를 알아보게 했다. 부차가 직접 대답하기를, “주왕(周王)께서 유지(諭旨)를 내려 나에게 중화의 맹주가 되어 제후국들의 잘못을 바로잡으라는 명을 내렸소. 지금 진(晉)나라 군주가 천자의 명을 거역하고 맹주의 자리를 다투어 시간을 끌며 결정하지 못하게 하니, 과인이 번거로이 천자의 사자가 왕래함을 걱정하여 왕성의 울타리 밖에서 직접 왕명을 받들고자 하니 따를 것인지 따르지 않을 것인지 오늘 결정을 해야겠소.” 했다. 동갈이 돌아와 진정공(晉定公)에게 보고하니, 노나라와 위나라의 군주도 모두 앉아 있었다. 동갈이 가만히 조앙에게 말하기를, “제가 보건대 오왕은 입으로는 강하게 말하나 그 기색은 근심스러웠습니다. 마음속에 아마 큰 걱정거리가 있는 듯했습니다. 혹시 월나라가 그 도읍에 쳐들어왔을까요? 만약에 우리가 오왕에게 맹주의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면 필시 그 독을 우리에게 쓸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양보하지 말고 반드시 왕호는 버리게 하여 명분을 삼으십시오.” 했다. 조앙이 진정공에게 말하여, 동갈을 다시 오나라 진영으로 보내어 진정공의 명을 전하게 하고 말하기를, “군주께서 왕명으로 제후들에게 선포하려 하는데 저희 군주께서 감히 받들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상국은 백작으로 처음 봉해졌는데 오왕이라고 호칭한다면 주왕실과는 어떻게 구별하겠습니까? 군주께서 만약 왕호를 버리고 공(公)이라고 칭한다면 저희 군주는 명을 따를 것입니다.” 했다.
夫差以其言為正,乃歛兵就幕,與諸侯相見,稱吳公,先歃。晉侯次之,魯衛以次受歃。會畢,即班師從江淮水路而回。於途中連得告急之報,軍士已知家國被襲,心膽俱碎,又且遠行疲敝,皆無鬥志。吳王猶率眾與越相持,吳軍大敗。夫差懼,謂伯嚭曰:「子言越必不叛,故聽子而歸越王。今日之事,子當為我請成於越。不然,子胥『屬鏤』之劍猶在,當以屬子!」伯嚭乃造越軍,稽首於越王,求赦吳罪,其犒軍之禮,悉如越之昔日。范蠡曰:「吳尚未可滅也,姑許成,以為太宰之惠。吳自今亦不振矣。」句踐乃許吳成,班師而歸。(此周敬王三十八年事也。)
부차는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여 군사들을 거두어 군막으로 돌아가서 제후들과 서로 만나 자신의 칭호를 오공이라고 하고, 회맹의 의식에서 먼저 삽혈을 했다. 진정공이 그다음이 되고, 노나라와 위나라 군자가 그다음에 삽혈을 했다. 회맹이 끝나자 부차는 즉시 군사를 거두어 강수와 회수의 수로를 따라 돌아갔다. 돌아가는 도중에 연이어 위급하다는 보고를 받아서 군사들도 이미 자기들의 도성이 습격을 당한 것을 알고, 마음과 쓸개가 모두 찢어졌다. 또한 멀리 원정하여 몸과 마음이 지쳐 모두 싸울 뜻이 없었다. 오왕이 오히려 군사를 거느리고 월나라 군사와 버티다가 오나라 군사가 크게 패했다. 부차가 두려워하며 백비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월나라는 결코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그대의 말을 듣고 월왕을 돌려보냈소. 오늘의 일은 그대가 마땅히 나를 위해 월나라에 화의를 청해 이루어야 하오. 그러지 못한다면 오자서의 촉루검이 아직 여기에 있으니 마땅히 이 칼을 그대에게 줄 것이오.” 했다. 백비가 즉시 월나라 진영으로 가서 월왕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오나라의 죄를 용서해 주기를 청하고, 그 군사를 호궤하는 예절도 옛날 월나라와 같이 했다. 범려가 말하기를, “오나라는 아직 멸할 때가 아닙니다. 잠시 화의를 허락하여 태재에게 은혜를 베푸십시오. 오나라는 이제부터 떨치지 못할 것입니다.” 하니, 구천이 이에 오나라와 화의를 허락하고 군사를 거두어 돌아갔다. (이것은 주경왕 38년의 일이었다.)
明年,魯哀公狩於大野,叔孫氏家臣鉏商獲一獸,麕身牛尾,其角有肉,怪而殺之,以問孔子。孔子觀之曰:「此麟也!」視其角,赤紱猶在,識其為顏母昔日所繫,嘆曰:「吾道其終窮矣!」使弟子取而埋之。今鉅野故城東十里有土臺,廣輪四十餘步,俗呼為獲麟堆,即麟葬處。孔子援琴作歌曰:「明王作兮麟鳳遊,今非其時欲何求?麟兮麟兮我心憂!」於是取《魯史》,自魯隱公元年,至哀公獲麟之歲,其二百四十二年之事,筆削而成《春秋》,與《易》、《詩》、《書》、《禮》、《樂》,號為「六經」。
다음 해, 노애공(魯哀公)은 대야(大野)에 사냥을 나갔다. 사냥에 따라간 숙손씨의 가신 서상(鉏商)이 짐승 한 마리를 잡았는데, 몸은 노루와 같고 꼬리는 소와 같았으며, 뿔에는 살이 있었다. 서상이 괴이하게 여기고 그 짐승을죽였다. 공자에게 물으니, 공자가 그 짐승을 살펴보고 말하기를, “이것은 기린(麒麟)이오.” 했다. 공자가 기린의 뿔을 보니 붉은 끈이 여전히 매어져 있었는데, 모친 안징재가 옛날(공자를 낳았을 때)에 매어놓았던 끈임을 알았다. 공자가 탄식하기를, “나의 도는 마침내 끝났구나!” 하고, 제자들을 시켜 기린을 묻어 주었다. 지금도 산동성 거야현(巨野縣) 동쪽 10리에 흙으로 쌓은 둔덕이 있는데 넓이가 40여 보로 민간에서 획린퇴(獲麟堆)라고 부른다. 이곳이 바로 기린을 묻은 곳이다. 공자가 거문고를 타면서 노래를 지어 부르기를, “밝은 임금이 일어남이여, 기린과 봉황이 노니는구나. 지금은 그때가 아니니 무엇을 구하겠는가? 기린이여! 기린이여! 내 마음이 괴롭구나!” 했다. 이에 <노사(魯史)>를 취하여 노은공(魯隱公) 원년에서부터 기린을 잡던 해인 노애공(魯哀公) 14년까지 242년 동안의 일을 더 쓰거나 지워서 <춘추(春秋)>를 완성했다. 그리고 <주역(周易)>, <시경(詩經)>, <서경(書經)>, <예기(禮記)>, <악기(樂記)>와 더불어 육경(六經)이라고 불렀다.
是年,齊右相陳恒知吳為越所破,外無強敵,內無強家,單單只礙一闞止,乃使其族人陳逆陳豹等,攻殺闞止,齊簡公出奔,陳恒追而弒之,盡滅闞氏之黨。立簡公弟驁,是為平公。陳恒獨相。孔子聞齊變,齋三日,沐浴而朝哀公,請兵伐齊,討陳恒弒君之罪。哀公使告三家,孔子曰:「臣知有魯君,不知有三家。」陳恒亦懼諸侯之討,乃悉歸魯衛之侵地,北結好於晉之四卿,南行聘於吳越。復修陳桓子之政,散財輸粟,以贍貧乏,國人悅服。乃漸除鮑、晏、高、國諸家,及公族子姓,而割國之大半,為己封邑。又選國中女子,長七尺以上者,納於後房,不下百人,縱其賓客出入不禁,生男子七十餘人,欲以自強其宗。齊都邑大夫宰,莫非陳氏。此是後話。
이 해에 제나라 우상 진항은 오나라가 월나라에게 패한 것을 알고, 밖으로는 강적이 없고, 안에는 강한 집안이 없었지만 다만 감지(闞止) 한 사람만이 진씨들의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진항이 친족인 진역(陳逆), 진표(陳豹)등을 시켜 감지를 공격하여 살해했다. 제간공(齊簡公)은 달아났으나 진항이 추격하여 잡아 죽이고 감씨의 무리를 모두 죽였다. 진항이 제간공의 동생 오(驁)를 세우니, 이가 제평공(齊平公)이다. 진항이 홀로 재상이 되었다. 공자가 제나라에서 변란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3일 동안 목욕재계한 후에 노애공을 찾아가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쳐서 진항이 군주를 죽인 죄를 물으라고 청했다. 노애공이 세 집안에 고하게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신은 노나라 군주가 있음을 알 뿐이지, 세 집안이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했다. 진항도 역시 제후의 토벌을 두려워하여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빼앗은 땅을 모두 돌려주고, 북쪽으로는 진(晉)나라의 네 집안에 뇌물을 바쳤으며, 남쪽으로는 오나라와 월나라에 수호 사절을 보냈다. 다시 진항은 진환자(陳桓子 ; 陳完)의 정치를 본받아 재물과 곡식을 나눠주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다. 제나라 백성들이 기뻐하며 복종했다. 이에 점차 포씨(鮑氏), 안씨(晏氏), 고씨(高氏), 국씨(國氏) 등 여러 집안 및 공족 자손들을 제거하고, 나라의 태반을 잘라서 자기의 봉읍으로 삼았다, 또 나라 안의 여인들을 선발하여 키가 7척 이상인 사람은 뒷방으로 들였는데 적어도 백여 명이었고, 빈객의 출입을 금하지 않아서 사내아이를 낳은 것이 7십여 명이었다. 이것은 진씨의 종족들을 번성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제나라의 모든 대부와 지방관리들은 진씨가 아닌 사람이 없었다. 이것은 뒷날의 이야기다.
再說,衛世子蒯瞶在戚,其子出公輒率國人拒之,大夫高柴諫不聽。蒯瞶之姊,嫁於大夫孔圉,生子曰孔悝,嗣為大夫,事出公,執衛政。孔氏小臣曰渾良夫,身長而貌美,孔圉卒,良夫通於孔姬。孔姬使渾良夫往戚,問候其弟蒯瞶。蒯瞶握其手言曰:「子能使我入國為君,使子服冕乘軒,三死無與。」渾良夫歸,言於孔姬。孔姬使良夫以婦人之服,往迎蒯瞶。昏夜,良夫與蒯瞶同為婦裝,勇士石乞孟黶為御,乘溫車,詭稱婢妾,溷入城中,匿於孔姬之室。孔姬曰:「國家之事,皆在吾兒掌握,今飲於公宮,俟其歸,當以威劫之,事乃有濟耳。」
한편, 위나라 세자 괴외(蒯聵)는 척(戚) 땅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 아들 출공(出公) 첩(輒)이 나라 사람들을 거느리고 괴외의 귀국을 막고 있었다. 대부 고시(高柴)가 부자의 의리로 간했지만 위출공은 듣지 않았다. 괴외의 누나가 대부 공어(孔圉)에게 시집가서 아들을 낳아 공회(孔悝)라고 불렀다. 공회는 공어의 뒤를 이어 대부가 되어 출공을 모시면서 위나라의 정사를 맡았다. 공씨의 가신 중에 혼량부(渾良夫)라는 사람이 키가 크고 용모가 준수했는데, 공어가 죽자 혼량부는 과부가 된 공희와 정을 통했다. 공희가 혼량부를 척 땅으로 보내어 그녀의 동생인 괴외를 문안하게 했다. 괴외는 혼량부의 손을 붙잡고 말하기를, “그대가 능히 나를 입국하게 하여 군위에 오르게 한다면 나는 그대에게 면복(정복)을 입히고 어가에 같이 타며 세 번 죽을죄를 지어도 간여하지 않겠다.”라고 했다. 혼량부가 돌아와서 공희에게 괴외의 말을 전하니, 공희가 혼량부에게 부인의 복장을 입혀 척으로 가서 괴외를 모셔 오게 했다. 밤이 깊어서 혼량부와 괴외가 함께 부인의 옷을 입고 용사 석걸(石乞)과 맹염(孟黶)이 모는, 누워서 타는 수레를 타고 비첩이라고 둘러대고 성안으로 잠입하여 공희의 집에 숨었다. 공희가 말하기를, “나라의 일은 모두 내 아들 회가 장악하고 있다. 지금 회는 궁궐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위세로 협박하면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했다.
使石乞、孟黶、渾良夫皆被甲懷劍以俟,伏蒯瞶於臺上。須臾,孔悝自朝帶醉而回,孔姬召而問曰:「父母之族,孰為至親?」悝曰:「父則伯叔,母則舅氏而已。」孔姬曰:「汝既知舅氏為母至親,何故不納吾弟?」孔悝曰:「廢子立孫,此先君遺命,悝不敢違也。」遂起身如廁。孔姬使石乞孟黶候於廁外,俟悝出廁,左右幫定,曰:「太子相召。」不由分說,擁之上臺,來見蒯瞶。孔姬已先在側,喝曰:「太子在此,孔悝如何不拜!」悝只得下拜。孔姬曰:「汝今日肯從舅氏否?」悝曰:「惟命。」孔姬乃殺豭,使蒯瞶與悝歃血定盟。
공희가 석걸, 맹염, 혼량부 등에게 명하여 갑옷을 입고 칼을 품고 기다리게 하고, 괴외는 누대 위에 엎드리게 했다. 잠시 후에 공회(孔悝)가 조정에서 술에 취하여 돌아왔다. 공희(孔姬)가 불러서 묻기를, “부모의 종족 중에 누가 누가 가장 친하냐?” 하니, 공회(孔悝)가 말하기를, “아버지 쪽은 백부와 숙부이고 어머니 쪽은 외숙부입니다.” 했다. 공희(孔姬)가 말하기를, “너는 이미 외숙이 모계의 가장 친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 무엇 때문에 내 동생을 들이지 않느냐?” 하니, 공회(孔悝)가 말하기를, “아들을 폐하고 손자를 세운 것은 선군의 유명(遺命)이었습니다. 제가 감히 어길 수가 없습니다.” 하고 곧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 공희(孔姬)가 석걸과 맹염을 시켜 화장실 밖에서 살피고 있다가 공회(孔悝)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을 기다려서 좌우에서 붙잡아 데리고 와서 앉히고 말하기를, “태자께서 불렀습니다.” 하고 말할 틈을 주지 않고 호위하여 누대 위로 오르게 하여 괴외를 뵙게 했다. 공희(孔姬)가 먼저 괴외 옆에 있다가 소리치기를, “태자께서 여기 계시니 너는 어찌하여 절하지 않느냐?” 했다. 공회(孔悝)가 어쩌지 못하고 절을 했다. 공희(孔姬)가 말하기를, “너는 오늘부터 외숙부의 명을 따르겠는가?” 하니, 공회(孔悝)가 말하기를, “명을 따르겠습니다.” 했다. 공희(孔姬)가 즉시 수퇘지를 잡아 괴외와 공회(孔悝)로 하여금 입술에 피를 바르고 맹세하게 했다.
孔姬留石乞孟黶守悝於臺上,而以悝命召聚家甲,使渾良夫帥之襲公宮。出公輒醉而欲寢,聞亂,使左右往召孔悝。左右曰:「為亂者,正孔悝也!」輒大驚,即時取寶器,駕輕車,出奔魯國。群臣不願附蒯瞶者,皆四散逃竄。仲子路為孔悝家臣,時在城外,聞孔悝被劫,將入城來救。遇大夫高柴自城中出,曰:「門已閉矣!政不在子,不必與其難也。」子路曰:「由已食孔氏這祿,敢坐視乎?」遂疾趨及門,門果閉矣。守門者公孫敢謂子路曰:「君已出奔,子何入為?」子路曰:「吾惡夫食人之祿,而避其難者,是以來也。」
공희(孔姬)가 석걸과 맹염을 누대 위에 머물러 공회(孔悝)를 지키라고 하고,공회(孔悝)의 명이라며 가병을 모아, 혼량부를 시켜 가병을 거느리고 궁궐을 습격하도록 했다. 출공(出公) 첩(輒)이 술에 취해서 자려고 하다가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좌우를 시켜 공회(孔悝)를 불러오게 했다. 좌우의 시종이 말하기를, “난을 일으킨 자가 바로 공회입니다.” 했다. 출공 첩이 크게 놀라 즉시 보배를 챙겨서 가벼운 수레를 타고 노나라로 달아났다. 괴외를 모시고 싶지 않은 여러 신하는 모두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그때 자가 자로(子路)인 중유(仲由)는 공회(孔悝)의 가신이었는데, 성 밖에 있다가 공회가 위협을 당해 감금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 성안으로 들어가 공회를 구하려고 했다. 마침 성안에서 나오던 대부 고시(高柴)를 만나게 되었다. 고시가 말하기를, “성문은 이미 폐쇄되었네! 그대는 정사와 상관없으니 이 난리에 간여하지 말게.” 했다. 자로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공씨의 녹봉을 먹었는데 감히 앉아서 보고만 있겠는가?” 하고, 마침내 성문으로 달려갔으나 성문은 과연 닫혀 있었다. 수문장 공손감(公孫敢)이 자로에게 말하기를, “주군께서는 이미 달아나셨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성안으로 들어오려 하는가?” 하니, 자로가 말하기를, “나는 남의 녹봉만 받아먹다가 난리에는 도망가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이렇게 왔소.” 했다.
適有人自內而出,子路乘門開,遂入城,逕至臺下,大呼曰:「仲由在此,孔大夫可下臺矣!」孔悝不敢應。子路欲取火焚臺。蒯瞶懼,使石乞孟黶二人持戈下臺,來敵子路。子路仗劍來迎。怎奈乞黶雙戟並舉,攢刺子路,又砍斷其冠纓。子路身負重傷,將死,曰:「禮,君子死不免冠。」乃整結其冠纓而死。孔悝奉蒯瞶即位,是為莊公。立次子疾為太子,以渾良夫為卿。時孔子在衛,聞蒯瞶之亂,謂眾弟子曰:「柴也其歸乎!由也其死乎!」弟子問其故,孔子曰:「高柴知大義,必能自全﹔由好勇輕生,昧於取裁,其死必矣。」
그때 마침 어떤 사람이 성문 안에서 나왔으므로 자로가 문이 열린 틈을 타서 마침내 성안으로 들어가 곧바로 공회의 집 누대 아래에 이르렀다. 자로가 큰소리로 외치기를, “여기 자로가 있습니다. 공대부는 누대 아래로 내려오십시오!” 했으나, 공회는 응할 수가 없었다. 자로가 불을 붙여 누대를 태우려고 하자 괴외가 두려워하여 석걸과 맹염 두 사람을 시켜 극을 들고 누대를 내려가게 했다. 두 사람이 자로를 상대하니 자로가 칼을 들고 맞이했다. 어찌하랴, 석걸과 맹염이 쌍극을 들고 함께 달려들어 자로를 찌르고, 또 그의 갓끈을 끊어 버렸다. 자로가 몸에 중상을 입고 곧 숨이 넘어가면서 말하기를, “군자는 죽을지언정 관을 벗지 않는 것이 예의다.” 하고, 즉시 갓끈을 바로 매고 죽었다. 공회가 괴외를 받들어 위나라 군주로 즉위시켰다. 이가 위장공(衛莊公)이다. 차자 질(疾)을 세워 태자로 삼고, 혼량부를 경으로 삼았다. 그때 공자가 위나라에 있었는데 괴외(蒯聵)의 난을 듣고 여러 제자에게 말하기를, “고시는 돌아오겠지만, 중유(자로)는 죽을 것이다!” 했다. 제자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공자가 말하기를, “고시는 대의를 아는 사람이니 반드시 스스로 보전하겠지만, 중유는 용기를 좋아하고 목숨을 가볍게 여기니 사리 분별에 어두워서 그는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 했다.
說猶未了,高柴果然奔歸,師弟相見,且悲且喜。衛之使者接踵而至,見孔子曰:「寡君新立,敬慕夫子,敢獻奇味。」孔子再拜而受,啟視則肉醢。孔子遽命覆之。謂使者曰:「得非吾弟子仲由之肉乎?」使者驚曰:「然也。夫子何以知之?」孔子曰:「非此,衛君必不以見頒也。」遂命弟子埋其醢,痛哭曰:「某嘗恐由不得其死,今果然矣!」使者辭去。未幾,孔子遂得疾不起,年七十有三歲。(時周敬王四十一年,夏四月己丑也。)
공자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고시가 과연 달려 돌아와서 스승과 제자가 서로 만나, 한편으로 (중유의 죽음을) 슬퍼하고. 한편으로 (고시의 생환을) 기뻐했다. 위나라 사자가 뒤따라와서 공자를 뵙고 말하기를, “저희 군주께서 새로 즉위하여 선생을 경모하고 있습니다. 감히 별미를 바치겠습니다.” 했다, 공자가 두 번 절하고 받아서 열어보니 고기로 담근 젓갈이었다. 공자가 급히 덮으라고 명했다. 사자에게 말하기를, “이것은 나의 제자 중유(仲由)의 시체로 담근 것이 아닙니까?” 하니, 사자가 놀라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선생께서는 그것을 어찌 아십니까?” 했다, 공자가 말하기를, “그것이 아니라면 위나라 군주가 저에게 보내줄 것이 없지요.” 하고, 곧 제자들에게 명하여 그 육젓을 땅에 묻게 하고, 통곡하며 말하기를, “나는 일찍이 중유가 명대로 살지 못할까 걱정했는데 지금 과연 그리 되었구나!” 했다. 사자는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얼마 있지 않아서 공자도 마침내 병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죽으니, 나이가 73세였다. (그때가 주경왕(周敬王) 41년(기원전 479년) 여름 4월 기축(己丑)일이었다.)
史臣有贊云:「尼丘誕聖,闕里生德﹔七十升堂,四方取則。行誅兩觀,攝相夾谷﹔嘆鳳遽衰,泣麟何促。九流仰鏡,萬古欽躅!」弟子營葬於北阜之曲,冢大一頃,鳥雀不敢棲止其樹。累朝封大成至聖文宣王。今改為大成至聖先師,天下俱立文廟,春秋二祭,子孫世襲為衍聖公不絕。不在話下。再說,衛莊公蒯瞶疑孔悝為出公輒之黨,醉以酒而逐之,孔悝奔宋。莊公為府藏俱空,召渾良夫計議:「用何計策,可復得寶器?」渾良夫密奏曰:「亡君亦君之子也,何不召之?」
사관이 찬양하여 이르기를, “니구산에서 성인이 탄생하여, 궐리에서 덕을 쌓으셨다. 나이 칠십에 높은 경지에 올라, 사방에서 법칙을 취했다, 덕과 형벌을 양쪽으로 보고, 협곡에서 상국의 일을 처리했다. 봉황이 빨리 늙어 버림을 한탄했고, 기린이 이유 없이 나타남을 슬퍼하였다. 천하의 종파가 우러러 거울로 삼고, 만고에 존경을 받는 자취로다.” 했다. 제자들이 곡부의 북쪽의 아늑한 땅에 공자를 안장했다. 무덤 크기는 그 넓이가 일경(一頃 ; 3천 평)이었고 새들도 무덤 주위의 나무에 둥지를 틀지 않았으며 누대의 왕조에서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이라는 봉호를 바쳤다. 지금은 다시 ‘대성지성선사(大成至聖先師)’라고 바꾸어 부르고 있다. 온 나라에 문묘(文廟)를 세우고 봄과 가을에 두 번 제사를 지내며, 그 자손들은 대대로 연성공(衍聖公)을 세습하여 대가 끊어지지 않고 있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편, 위장공 괴외(蒯聵)는 공회가 출공 첩(輒)의 무리라고 의심하여 술을 먹여 취하게 한 후 그를 쫓아냈다. 공회는 송나라로 달아났다. 위장공은 텅 빈 창고를 보고 혼량부를 불러 대책을 의논하기를, “어떤 계책을 써야 첩이 가지고 간 보물들을 되찾아 올 수 있겠소?” 하니, 혼량부가 몰래 아뢰기를, “도망간 군주도 역시 주군의 자식이 아닙니까? 어찌하여 부르지 않습니까?” 했다.
不知莊公曾召出公否,且看下回分解。
위장공이 출공을 부를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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