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81)
겨울나무로 우는 바람의 소리
잎이 다 떨어지기 전
몸속 남아 있는 수분마저 빼낸다
물기가 남아 있는
겨울나무는 속살이 얼어 터져
찢어지고 꺾이고
부러지기 때문이다
마른 가지 끝에
매달린 봄눈,
꽃눈을 물고 있다
겨울나무로 견디는 시간이다
봄꽃의 꽃눈을 품고 있는
겨울나무처럼
제 살을 찢으며 우는 사람이 있다
마른 가지 사이를 지나는
겨울바람으로 우는 울음이
봄을 부르는 소리다
절망이 깊을수록
봄을 향하는 간절함도 깊어진다
겨울나무로 우는 바람의 소리로
우는 사람이 있다
간절히 봄을 기다리는 사람
겨울나무로 우는 바람 소리
봄을 간절히 부르는 소리다
- 조선남(1966- ), 『겨울나무로 우는 바람의 소리』, 삶창,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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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행복한가?”(「그대 행복한가?」 부분) 불쑥 치고 들어오는 물음에서 급기야 저는 울컥했습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걸었던 수운 최제우 선생과 동학 농민군과 동학의 김개남의 순례길에서 부르는 길노래를 넘어, 마을 목수로 살아오면서 겪었던 나무와 나무로 만들어진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넘어, 전태일과 전태일들의 삶을 말하는 외침을 넘어서까지 잘 넘어오던 마음은 앞의 물음에서 울컥했다가, “89년 노동자 파업으로 구속되었던/나를 면회 온/ 아버지,/그래 잘했다/… 하셨는데” 아버지를 따라 노동운동에 뛰어든 딸을 “김해 서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면회하면서 시인은 아버지처럼 “나는 딸 앞에서 잘했다고 말해줄 수 없었”다는, “아빠인 나는/그냥 아프기만 했”다는 고백에 그만 울먹였습니다. 시인은 딸에게 “잘했다고” 말해줄 수 없었다지만, 어쩌면 시인의 아버지도 앞에서는 “그래 잘했다” 했지만 돌아서서는 눈물을 훔쳤을 겁니다. (이상「나는 아버지처럼 할 수 없었습니다」부분) 1989년 제1회 전태일문학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조선남 시인은 지난해 10월에 제가 이 자리에서 한강의 시와 함께 소개한 전태일의 옛집을 복원하는 데 앞장선 마을 목수이자, 노동운동가이자, 제가 보기에는 인권활동가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 시집인 이 시집을 발간하고 전태일의 옛집 복원하는 일을 끝낸 뒤 시인의 발걸음은 경남 합천으로 향했습니다. 합천은 원폭 피해자와 원폭 피해자의 질곡을 그대로 받아 안고 사는 후손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동네라는 것, 다들 아시지요. 정초正初 첫 번째 시산책으로 한 편의 시가 아닌 『겨울나무로 우는 바람의 소리』 이 한 권의 시집을 소개합니다. 시인은 첫 장의 ‘시인의 말’에서 “누가 보기나 한데?” “책을 내지 말까” “망설여지기도” 했다는데 저는 되려 이 시집을 발간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겨울나무가 “잎이 다 떨어지기 전/몸속 남아 있는 수분마저 빼내”는 건 “물기가 남아 있는/겨울나무는 속살이 얼어 터져/찢어지고 꺾이고/부러지기 때문이”라는 것은 저도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고, 글에 인용한 적도 있지만, 관념에 불과한 제 말과는 달리 나무를 다루는 목수의 목소리로 듣는 이야기는 훨씬 더 감정의 진폭이 크게 다가옵니다. 이 시집에 실린 시는 전부 시인이 몸소 겪은 체험에서 우러나왔습니다. 하니 허투루 읽히는 시는 하나도 없습니다. 겨울나무에서 시인이 본 “절망이 깊을수록” “간절함도 깊어진다”는 겨울나무의 “봄을 향하는” 마음을 매우 절실하게 공감하며 사는 날들의 연속입니다. 설 명절, 서로 얼굴 붉히는 일 없이 화기애애하게 보내는 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문득 합니다. 을사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25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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