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감, 단과(丹果), 枾, persimmon;
이원기
작년에도 올해도 연이어 수년 동안 대한민국은 감 풍년(豊年)이었다.
수확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그냥 감나무에 달아 버려두자니 더 더욱 못할 짓이고, 그래서 재배하시는 분들 얼굴은 바로 그 노란 감색이다. 풍년은 풍년인데 따고, 가려내고, 포장하고, 내다 파는데 드는 인건비가 너무 높아, 이때는 입이 귀에 걸려야 할 텐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지난 가을부터 지금까지 10번 이상 약치고 비료주고 가지치고 감 꽃 솎아내며 고생한 그 그림이 무정하게도 파노라마 되어 눈앞을 스친다.
그야말로 애지중지 돌보고 가꾼 결과가 이 모양이니 감 과수원 쪽으론 고개를 돌리는 건 물론 오줌조차도 누기 싫다고들 했다.
약 오르게 시리 올해 감들은 또 왜 그렇게 탐스럽게 많이도 달려서 가지조차 늘어져 못쓰게 하는지? 감이야 굵고 달고 때깔 좋게 그것도 많이많이 열게 해준 죄? 밖엔 더 없는데,.. 어떻든 썩 마음 편치 않다.
수년전부턴 좀 외지고 깊은 산속 작은 과수원 감나무들은 아무도 손 대지 않아 혼자자라 혼자 익어 떨어지는 형편이다.
올여름 무더위에 햇볕에 화상입어 상품성을 잃고 많이 못쓰게들 되었다는 기사가 TV에 뜨는걸 보며 내심으론 반갑기 까지 했다고 한다. 수년전부터 해마다 풍년이다 보니 감 값은 오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바닥만 맴돌고 있는 형편이니 안 된 일이긴 하나 여름 햇살과 햇볕에 감 피해가 많이 나면 그나마 피해를 받지 않은 과수원은 제값이라도 받지 않을까 해서다.
학명으로 감은 Diospyrus Kaki thunb라 표기하는데 dios란 신(神)을 의미하고 pyros는 곡물이란 뜻이니 “과일의 신, 또는 신의 과일”이다. Kaki는 프랑스어, 일어? 한자는 어의(語意)로 柿 또는 柹로도 적는다.
감나무는 중국, 한국, 일본에만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찾아보니 맛은 별로지만 베트남과 터키에도 비슷한 감이란 게 있다고 적혀있다.
서양 선교사가 자기나라로 돌아가 “동양의 작은 반도에는 주먹만 한 샛노란 황금색 과일이 나무에 주렁주렁 열리는데 그걸 따서 먹으면 그 맛이란 이른바 죽여준다.” 이렇게 표현 했단다. 그런 신비한 과일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 할 수 있을까? 하고 융비색목인(隆鼻色目人)들이 열심히 찾아낸 그게 바로 감이었다는 것이다.
아마 그래서 학명이 Diospyrus 즉 “과일의 신” 또는 “신의 과일”로 붙여진 게 아닌가?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감은 단감(sweet persimmon)과 떫은 감(an astrigent persimmon)으로 나누고 재래종(在來種)(고종시, 단성시, 사곡시)과 도입종(導入種)(단감; 선사환, 부유, 차랑. 떫은감; 횡야, 평핵무, 부사.)로도 나눈다. 딱딱한 정도와 모양 색깔로 연시(軟柹), 홍시(紅柿), 반시(盤枾), 건시(乾柿)로 나누기도 한다.
예천 고종시, 의령 사곡시, 경산 고산의 반시, 고령의 수시, 남원의 흑시 등은 지역별로도 나누는데 실제 지리적 표시제(地理的標示制)로 대한민국에 등록(登錄)된 감은 진영단감, 하동군 악양과 영암의 대봉감, 상주, 산청, 함양, 영동의 곶감, 청도 반시로 네 개뿐이다.
연시(軟柹)와 홍시(紅柿)는 별 다를 게 없지만 홍시가 감나무에 달린 채 붉게 익어 물든 것과는 달리 연시는 일단 따서 숙성시킨 홍시다. 반시란 감 모양이 동그랗고 납작한 감을 말하고 건시는 곶감을 그렇게 부르는데 볕에 말린 걸 색깔에 따라 백시(白枾) 황시(黃枾)라 하고 불에 말린 걸 오시(熬枾)라 한다.
건시를 꼬챙이에 끼지 않고 압편(壓片)한 걸 준시(蹲柹)라 부른다. 수시(水柿)는 당분을 포함한 수분 량이 다른 감보다 더 많은 감을 그렇게 부르고 흑시(黑柹)란 문자 그대로 감의 속살이 검은 감이다. 곶감특화품종으로 영동 상주 감단지에 곶감 및 연시전용 둥시 라는 감이 있는데 먹시 또는 먹감으로 불리기도 하고 작은 감 껍질표면에 검은 색 무늬 같은 게 생겨있는 감이다.
감이 커서 홍시에 특화(特化)한 품종(品種)인 하지아, 하초감이라 일컫는 대봉감이 따로 있다.
침시(沈柿) 또는 침감은 떫은맛을 없애기 위해 탈삽과정(脫澁過程)으로 소금물이나 빈 술통에 담가 떫은맛을 줄인 감을 말하는데 서부경남에서는 이것을 김치감이라 부르기도 한다.
다소 이른 6월에 수확하는 조홍(早紅)이라는 감도 있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크기가 작거나 꿩, 까치에게 쪼여서 상품가치가 없는 감을 팥쥐라 그러는데 창원에서는 파지라 부른다. 왜 콩쥐팥쥐의 팥쥐로 부르는지는 음미(吟味)해볼 만하다.
감과 같은 종(種)이지만 속(屬)이 다른 고욤이란 땡감이 있다. 감나무는 접붙이기로 번식(繁殖)시키는데 감을 씨로 심으면 열매가 작아지므로 접붙일 때 생태(生態)에 강(强)한 고욤을 대목(臺木)으로 많이 사용(使用)한다.
결혼식(結婚式)후 폐백(幣帛)을 드릴 때 시부모가 요즘은 대추와 밤만 신부(新婦)의 금삼(錦衫)에 던져주지만 원래(原來)는 감도 함께 던져 주었다고 한다.
이 세상(世上)에서 꽃이 피는 대로 열매를 맺는 과일은 대추밖에 없으므로 대추처럼 자손(子孫)을 많이 보라고 던져주며 밤은 일단 심으면 밤나무로 자라서 성목(成木)이 다 되어도 처음 밤나무 싹을 틔웠던 그 알밤이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으므로 조상(祖上)을 잊지 말라는 의미(意味)로 신부에게 던져준다. 감은 반드시 접붙이기를 해야 건강(健康)하고 크고 맛있는 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식(子息)을 낳으면 보다 나은 교육환경(敎育環境)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이유(理由)에서다.
조선왕조(朝鮮王朝)제 20대 경종임금은 후사(後事)도 보지 못하고 일찍 돌아가셨다.
그런데 그다음 21대 임금이 되신 영조 임금(왕이 되기 전 연잉군(延礽君)시절)이 경종에게 게(蟹)와 감을 먹여 돌아가셨다는 야사(野史)가 있다. 진위(眞僞)는 알 길 없지만 게의 어떤 성분(成分)과 감의 어느 성분 중 일부가 서로 합해지면 인체(人體)에 해(害)를 끼치는 독성물질(毒性物質)을 만드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심신(心身)이 허약(虛弱)한 경종에게 감은 아마도 변비(便秘)에 소화불량(消化不良)을 초래(招來)할 수도 있기에 그런 일화(逸話)가 생겼을는지도 모른다.
비록 품종(品種)은 다르지만 단감과 떫은 감에 들어있는 탄닌이 감 맛을 떫게 하고 변비(便秘)를 일으키는 주범(主犯)으로 작용한다.
단감은 본래(本來)부터 탄닌 량이 적기도 하지만 감이 익어 가면 탄닌이 산화(酸化)되어 절대량(絶對量)이 줄어들어 떫은맛이 사라진다. 떫은 감은 탄닌 량이 매우 높으나 숙성(熟成)하면서 작은 탄닌 분자(分子)들이 축합(縮合)되어 고분자형태(高分子形態)로 변한다,
사람 혀의 미뢰(味蕾)는 고분자형태의 탄닌은 맛으로 인지(認知)하지 못하므로 탄닌 함량(含量)의 변화는 없지만 떫게 느끼지를 못한다. 단감은 탄닌량이 줄어들어 단맛이 나지만 떫은 감은 탄닌이 고분자로 되면서 우리가 느끼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단맛이 나게 되므로 떫은 감의 홍시(紅柿)는 떫진 않지만 탄닌량이 많아 변비를 일으키게 된다.
잘 익은 단감은 탄닌 량이 실제 적어져서 변비를 일으키지 않지만 떫은 감은 홍시가 되어서 아주 달아도 탄닌 량이 적어지지 않아 변비를 일으킨다는 말이다. 비타민 A, C의 함량이 많은 과일들 가운데 감이 단연 으뜸이다.
특히 비타민C는 오렌지나 귤의 수 십 배, 채소 중 비타민C가 가장 많다는 당근의 5배 이상이다.
20g짜리 감 하나면 사람의 하루치 비타민C를 얻을 수 있을 정도다. 방목(放牧)된 승마(乘馬)용 말을 붙잡아 고삐나 안장(鞍裝)을 채우려면 먹이로서 유도(誘導)하는데 그때 사용(使用)하는 먹이가 당근이다. 당근대신 감을 이용(利用)하면 더 쉽게 말을 데려 올 수 있다. 말(馬)은 비타민C에 아주 예민(銳敏)하게 반응(反應)하므로 홍당무보다 감에 비타민 C가 더 많이 들어있다는 걸 냄새로 알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무엇이든 량(量)과 질(質)이 많아지면 천(賤)해진다.
그 달콤한 맛도 일단 천(賤)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형편없는 맛으로 변해버리는 게 간사(奸詐)한 사람의 혀(舌)다.
쌀 한 톨 아까워하던 우리가 그리해서 쌀이 그렇게 되었고 이젠 감이 그렇게 되고 있는 중이다.
감 말랭이로, 감 술로 여러 가지 변형된 상품들을 만들고는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力不足)인데 획기적인 대체상품의 출현을 기대해 본다. 많아지면 감을 좋아하는 나야 좋다 그러나 그것도 잠간, 슬프게도 이대로 가면 감 재배는 해마다 아마 많이 줄어들 것이다.
신의 과일이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수모(受侮)를 당해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