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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북에 이충성 선수가 우리학교 꼬마 축구선수들과 관련한 이야기가 올라와 있어서
아침 내내 댓글 하나하나까지 다 읽어보고 참 좋은 내용 같아서 이렇게 올려봅니다.
요런 이야기로 책까지 준비하는 것을 제가 방해하는 것 같지만
혼자서 보기는 좀 아까워서 눈치 좀 보면서도 올려봅니다. 양해 바랍니다.
함께 차근차근 읽어보시죠. 번역이 서툴러서 중간중간 의미 전달이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만 그런 부분은 건너뛰어주세요.
먼저 이충성 선수를 제대로 알아볼려고 잠깐 검색해봤는데 가장 먼저 나오는 어떤 축구 카페에 이충성 선수에 대한 글이올라와 있어서 올립니다.
제대로 된 내용인지는 저도 검증하기 어려워서 같이 잘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 어느 축구 카페에서의 이충성 선수 내용을 빌립니다 -------------------
이충성 (李忠成, 리 타다나리)
재일교포 4세 출신으로, 2006년까지 한국인. 이후, 2007년 일본으로 귀화
182cm, 72kg. 공격수.
현 잉글랜드 사우스햄튼 소속.
이충성은 재일교포 3세 이철태 씨의 아들로,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아시다시피, 재일교포에 대한 일본 내에서의 모종의 차별은 굉장히 심한 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충성은 초등학교를 민족학교에서 졸업했지만, 축구를 위해 중학교 진학은 일본의 학교로 결정합니다.
- 특히 초등학교 때부터 나와 어울리던 친구들은 일본학교로 진학한 나를 ‘민족의 반역자’라고 손가락질하며 따돌렸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어린 시절의 친구들은 모두 내 곁을 떠났다.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선택한 길. 친구들에게서 극심한 왕따, 차별이 뒤따를지도 모르는 상황.
그럼에도 여전히 이름은 '이충성', 국적은 한국이었습니다.
<이충성의 어릴적 자필>
그런 고통스런 편견 속에서도, 아버지 이철태 씨는 이충성이 한국인이라는 긍지를 잊지 않도록 지속해서 노력합니다.
- “유치원 때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한일전이 열리면 한국을 응원하러 데리고 다니곤 했다."
그런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듯, 밟아본 적도 없는 한국 땅이 자신의 조국이라는 확고한 생각으로
한국의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2004년, 대한민국의 U-19 국가대표 자격으로 한국의 부름을 받습니다.
<이하 이야기에 대한 여러 설들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하, 이충성 선수 본인의 발언을 토대로 작성합니다.>
<꿈에 그리던 대한민국의 유니폼을 입은 이충성>
그러나 훈련 도중, 문득 뒤에서 동료들이 수근대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은데, 단어의 뜻을 몰라 아버지께 무슨 의미냐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반쪽바리가 무슨 뜻이냐고..
"일본에서 받아왔던 무시는 한국에서 멸시로 변했다."
- 나는 내 자신이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국 땅을 밟아 본 적도 없고, 한국인과의 교류도 많지 않았고, 일본에서 태어난 이충성의 입장에서는 타국과 다름없었던 한국.
하지만, 그 타국을 이충성은 '나의 조국'으로 생각하고, 모진 차별을 견뎌가며 한국인으로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충성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당신이 이충성이었다면, 받았을 충격이 짐작이 가시나요?
그 한마디에 느껴졌을 조국에 대한 배신감. 더구나 안타깝게도 재일에 대한 차별은 한국 역시 만연합니다.
이충성은 조국에 버려졌다는 생각에, 도망치듯 일본으로 가, 1년 뒤 귀화합니다.
그리고, 대표팀으로 발탁됩니다.
<아시안컵 결승에서 연장전 발리슛으로 결승골을 터트리는 이충성>
할아버지의 선산에 찾아갑니다. '죄송합니다. 충성이를 귀화시킵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며 아버지는 목놓아 웁니다.
그렇게 한국인임을 강조했음에도, 한국인으로서 살아오며 이충성이 일본에서 당해왔고, 당해오고 있는 차별과
모국에서 조차 배척당하는 상황에서 부모님과 함께 내린 이 결정은 최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박지성에게 인사하는 이충성>
그럼에도 이충성은 아직도 자신에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습니다.
(리 타다나리도 李忠成(이충성)을 그저 일본식으로 읽을 뿐입니다.)
일본 국적이지만, 일본인에게 극심한 질타 감수하고서 한국을 옹호하는 발언을 자주하고 있습니다.
"박지성, 차범근과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
"한국이 일본보다 잘 한다."
"한국과 일본이 만나면 한국이 이길 수 밖에 없다. 한국인의 정신력이 일본인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조국은 일본-한국 둘 다이다."
"한국을 존경하고 경의를 바친 다음에, 한 명의 축구선수 '이충성'으로서의 시합을 희망한다."
<이충성의 마킹은 Lee, 이적 전 산프레체 히로시마 팀에서는 Chunson(충성) 입니다.>
나는 한 번도 나라라는 것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내 핏줄과 정체성만큼은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싶다.
나는 지금 한국인이 아니다. 일본인이다. 그러나 내 심장과 몸속에 들어가 있는 피는 완전한 한국인이다.
나는 한국의 피를 가진 이충성으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 네이트(스포츠온) 뉴스기사 발췌
여러 공신력 있는 언론 및 방송, 이충성 선수의 인터뷰 내용 등을 토대로 작성해봤습니다.
(참고, 이충성 선수 '반쪽바리'를 들었다는 것에 대한 한국의 반박 자료도 몇몇 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적은 의도는, 그저 '일본인'이기 때문에 까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이충성'으로서 살아온 그의 인생, 그리고 느꼈을 고통들을 한 번 쯤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입니다.
분명히 한국인의 피가 흐르며, 아직까지도 한국을 많이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많은 회원이 재일교포들이 느꼈을 상처나, 그 사람의 삶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 없이
그냥 '원숭이 꺼져'등의 수준 낮은 이야기가 보이고 있습니다.
이충성 선수는 분명 지금 일본인입니다.
하지만, 여타 질나쁜 일본인들과 똑같이 취급해야 할 인물인지는 여러분이 잘 판단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래는 오늘 페이스 북에 올려 놓아주신 내용입니다 --------------------------------
마침내 방금 전까지 존경하는 J 현(친구분 성함입니다)과 츠루하시의 가게에서 한잔 하고 있었는데, 막 마시기 시작한 때에 J 현에게 들은 이충성 이야기에 느닷없이 눈물샘이 풀려버리는 상당히 힘든 일이 생겼습니다. <절대 울었던 것은 아닙니다요 ㅎㅎ>
그 전제로 되는 이야기를 우선 잠깐 해설하자면 우리학교(소학교)에서는 매년 여름 3일간 우리학교만의 축구 전국대회를 엽니다만 오사카 J 그린의 운동장 여러 면을 몽땅 빌려서 여는 큰 대회인 것입니다. 통칭 꼬마축구중앙대회.
여기서 우승한 학교는 팀에서 평양을 방문, 조선의 초등학교와 시합을 하고, 교류를 넓히는 것이 매년 의례 행사로 되어 있습니다.
J 현의 아이도 2011년 꼬마축구에서 우승하고 팀에서 평양을 방문 했을 때, 일본-조선전으로 와 있었던 재일조선인 J 리거의 조선대표 정대세와 안영학도 합숙하는 데에 방문해 주어서 아이들이 크게 기뻐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담날에는 일본대표로서 평양에 와 있던 이 충성까지도 아이들의 합숙에 방문하고 일본 대표 선수들이 타고 있는 이동용 버스에 우리학교 아이들을 줄지어 데리고 가서, 당시 대표선수들에게 [이 아이들, 나의 후배야...!]라고 우리학교 아이들을 소개했다라고 합니다.
일본 대표 선수들은 아이들을 크게 환영하여 주고, 한사람 한사람 악수해주어서 아이들은 완전 흥분 !.
J 현의 아이도 집에 돌아와서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그 이야기를 반복했었다고 합니다.
일본 대표인 이 충성 선수
솔직히, 일본인에게도 동포에게도 여러 가지 것을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아픔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학교 아이들을 [나의 후배!]라고 동료에게 소개하는 마음가짐에 나는 눈물이 나온다.
이제부터라도 분발하기 바란다요.
마음 속에서 응원하고 있습니다.
ついさっきまで尊敬するJヒョンと
鶴橋の柳屋で飲んでたのですが
飲みのしょっぱなにJヒョンに聞いた
忠成の話でいきなり涙腺がゆるんでしまい
えらい大変なことになりました。
※決して泣きじゃくったわけではありません(笑)
その前提となる話をまず少し解説しますと
ウリハッキョ(小学校)では毎年夏の3日間
ウリハッキョだけのサッカー全国大会を開く
のですが、大阪のJグリーンのピッチを何面も
借りきって開く大きな大会なのです。
通称 コマチュック中央大会。
ここで優勝した学校は、チームで平壌を訪れ
朝鮮の小学生たちと試合をし、交流を深める
のが毎年の恒例となっています。
Jヒョンの息子さんが2011年のコマチュックで
優勝し、チームで平壌を訪れたとき、日朝戦で
来ていた当時の在日Jリーガーであり
朝鮮代表の鄭 大世や安 英学も宿舎を訪れてくれ
子どもたちは大喜びだったそうです。
そして、その翌日には日本代表として平壌に
来ていた李 忠成までもが子どもたちの宿舎を
訪ね、日本代表の選手たちが乗っている移動用の
バスに、ウリハッキョの子どもたちをぞろぞろ
引き連れていき、当時の代表選手たちに
「この子たち、俺の後輩なんだ!」と
ウリハッキョの子どもたちを紹介したというのです。
日本代表 李 忠成選手。
正直、日本人にも同胞にも色んなことを言う人がいます。
彼の辛さは想像にあまりある。
それでもなお、ウリハッキョの子どもたちを
「俺の後輩!」と同僚に紹介する心意気に
ぼくは泣けてくる。
これからもがんばってほしい。
心の底から応援しています。
요기 아래 내용은 댓글을 올려주신 분들의 이야기 입니다. 다양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꽤 오래 되었습니다만, 나는 아이들을 일본 공립학교에 조선이름으로 넣었습니다.
솔직히 이모저모 이야기 들었지만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
재일 코리안으로서 일본에서 조선이름으로 살아가고 싶다라고 원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도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축구 코치를 하면서 PTA 일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장남이 중학교에 올라갈 때 통명 (아마도 일본 이름이 아닌가 합니다)으로 다니고 싶다고 말을 꺼냈습니다.
가족이 여러 이야기를 하여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 때 당시 히로시마 산후렛츠에서 플레이하고 아시아 컵에서 결정골을 넣었던 이충성이 TV에 조선이름으로도 일본 대표로서 당당히 플레이할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긍지를 가질 수 있는가 어떤가이다.
장남은 동경하는 이충성이 그렇게 당당하게 TV에서 발언하고 있는 것에 관심가지면서, 나도 노력해보자라고 말했습니다. 울었지요 !!
무사히 입학하여 축구부에 들어가서, 충성이라고 하는 닉네임을 붙이고 기뻐했습니다.
그 장남도 벌써 어느듯 중학교 졸업입니다. (^-^)
충성... 고마워
또 히로시마로 돌아올게..(?)
ちょっと長くなりますが、私は 子供達を 公立の日本学校に本名で入れてます!
正直 色んなことを 言われますが 信念を持ってます!
在日コリアンとして 日本で 本名で生きて欲しい…と 願ってのことです!
私 自身も 子供が 通う小学校で サッカーのコーチを しながら PTAの役員もやったりしました!
ところが、長男が 中学に上がる時 通名で通いたいと 言い出しました!
家族で色々 話し合っても 聞きませんでした。
その時、当時 広島サンフレッチェで プレーし アジアカップで 決勝点を 決めた 李 忠成が テレビで 本名でも 日本代表として 堂々とプレーできる。大事なのは 誇りが 持てるか どうかだ!
長男は 憧れの 忠成が あんなに堂々と テレビで 発言していることに 感心しながら、俺も 頑張って見ると 言いました!
泣きました…!
無事に 入学して サッカー部に 入ると 忠成って ニックネーム つけられて 喜んでました!
その長男も もうすぐで 中学卒業です(^-^)v
忠成、本当に ありがとう!
また 広島に帰って来いよ♪
이전에도 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그가 일본대표의 동료선수에게 우리학교의 꼬마들을 소개하한 대목은 그는 결단코 조선민족이다라고 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없다라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以前にもこの話を聞きましたが、彼が日本代表の同僚選手にウリハッキョのコマたちを紹介したくだりは、彼は決して朝鮮民族だということを恥じてはいないんだと胸が熱くなりました。
전날 그가 가게에 왔습니다.
당장 아내에게 알려서 축구를 하고 있는 아이가 날라 왔습니다!
가게에서는 기본, 아버지의 방침으로서 누가오든지 사인과 사진을 촬영하지 않습니다만, 그 때만은 내가 의뢰해서 사진을 부탁했습니다.
그는 " 물론, 저야말로 기쁘죠 !" 라고 하면서, 아이에게 악수를 요청하고 우리말로 " 우리학교에서 축구하는가?" 라고 이야기 했었죠.
先日彼がお店に来ました。
すぐさま嫁に知らせるとサッカーをしている息子が飛んできました!
お店では基本、アボジの方針として誰がきてもサインや写真も撮りませんが、その時ばかりは私が頼んで写真をお願いしました。
彼は「勿論!こちらこそ喜んで!」
と、息子に握手を求めウリマルで「ウリハッキョでチュック ハヌンガ?」と。
사람의 사정, 나라의 사정, 사상의 차이, 여러 다양한 ~~, 전국에 있는 우리학교의 아이들은 후배이고, 사랑하는 존재야라고 생각한다. 좀 더 말하면 재일조선인의 자녀들은 모두 가족인 것 같은 존재. 이것이 " 피 "라고 말하는 것이겠죠. 충성씨도 그런 생각 아닐까?
人の事情、国の事情、思想の相違、諸々色んな理屈抜いて、全国にあるウリハッキョの子供達は後輩であり、愛しい存在やと思う。もっと言うと在日の子供達はみんな家族みたいな存在。これが「血」と言うのでしょうね。忠成氏もそんな思いじゃないかな・・・
읽고 눈물이 났습니다. 재일조선인분들이 어떤 생각으로 계실까.. 본듯한 느낌이 듭니다. 깊은 점은 알 수 없지만... 힘든 것이 많을테지요...
読んでて泣けました。在日の方達がどんな思いでいらっしゃるのか、垣間見た気がします。深いところはわかりませんが……。辛いことがたくさんあるのでしょうネ
일본 대표에 대한 견해를 고쳤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무엇 때문에 그가 일본 대표가 되었는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주 아쉽습니다.
日本代表に対する見方を改めます。ただ、残念なのは、何故彼が日本代表になったのかと言うことです。非常に残念です。
첨 뵙겠습니다.
나도 동감합니다. 충성씨의 살아가는 모습 존경합니다.
아이들의 교육은 어떤 의미 깊은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일본 학교인가 조선학교인가, 는 아니고 재일조선인의 뿌리를 알고 조선이름으로 삽니다. 우리들도 일본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는 것을 나타냅니다. 지역과 연관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연결된 유일하고 소중한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初めまして。
私も同感です????チュンソンの生き方尊敬してます。
息子さんの教育は、ある意味厳しい道選ばれたんですね。日本学校・朝鮮学校か、ではなく在日のルーツを知り本名で生きる。私たちも日本社会の一員として居ることを示す、地域と関わる。私が子どもにつなげる唯一の大切なことだと思ってます。
좋은 이야기.. 이것이 스포츠다, 정말로 인간이다.
그가 중계 아나운스로부터 "리 타다나리 (이충성을 일본어로 읽은 이름)"라고 불려진다. 위화감 있습니다. 들으면 일본 국적이라서 일본어 읽기이다 라는 것입니다. 국제감각이 의심스럽습니다. 라모스도 토우리오도 한자로 맞출 수가 있었지요. 어찌 가지고 말하면 카타가나라도 좋은거죠.
좀 방향이 바뀌어 버렸다해도, 늘 생각하고 있는 일로서 중요한 것이라서..(^-^;)
버스 속의 이야기, 왜 토픽으로서 보도되지 않을까나요...?
良い話や、これがスポーツやね、いや人間やわ!
彼が中継アナウンサーから【り ただなり】って呼ばれる。違和感あります。聞くと日本国籍やから日本語読みだそうです。
国際感覚疑いますね、ラモスもトゥーリオも漢字あててましたね。どうしてもって言うならカタカナでも良いじゃん!
ちょっと角度が変わってしまったけど、常々思っている事と重なったのでf^_^;)
バスの中の話、なぜトピックとして報道されないんだろう?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외국인등록법에서 생겨진 재일조선인의 틀이 초래한 결과이겠죠.
대를 이어서 전달되는 본관과 성씨, 그래서 고유의 이름, 어느 것도 소중히 계속 지키는 이름입니다. 또한 조선은 국적은 아니고 지역명이고, 무국적인거죠. 재일조선인의 약 80%는 한국에 본관을 두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식민지에서 해방되는 시점에서 거주의사의 확인과 동시에 [국적 선택의 자유]가 보상되어야 했습니다. 일본정부는 지금이라도 과거의 과오를 시정하여 법정비를 시급히 하시오.
サンフランシスコ講和条約と外国人登録法から生まれた「在日」の枠がもたらした結果でしょう。
代を継いで伝わる本貫と姓氏、そして固有の名、どれも大切に守り続ける姓名です。また「朝鮮」は国籍でなく地域名であり、無国籍扱いです。在日朝鮮人の約80%は韓国に本籍を置いてあるのも事実です。植民地から解放される時点で在住意思の確認と同時に「国籍選択の自由」漢字あててましたねが補償されるべきでした。日本政府は今からでも過去の過ちを是正して法整備を急ぐべきでしょう!
이것은 개인적인 견해입니다만, 프로 스포츠에 있어서, 개인의 국가관과 내셔날리즘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선수 자신은 자기의 베스트 퍼포먼스를 끌어 내어야만 하고, 자신을 평가하여 주는 클럽팀과 계약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와 계약을 맺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라의 대표로서 말하는 것은 평가의 덤같은 것....
그것에 국가 대표팀에 외국인이 있는 것은 선수만은 아닙니다요.
덧붙여서 축구 일본 대표의 외국인 감독은 몇 번째였죠?
일본인 선수로 예를 들면 나까다 히데토시라든가가 그런 플레이 스타일 아닐까요?(~-~)
これは個人的な見解ですが、プロスポーツにおいて、個人の国家観やナショナリズムは、あまり重要では無いと思います。
選手自身は、自己のベストパフォーマンスを引き出すべく、自分を評価してくれるクラブチームと契約をするのであって、国家と契約を交わす訳ではないからです。
国の代表と言うのは、評価のオマケみたいなもの…。
それに、国の代表チームに外国人がいるのは、選手ばかりでは無いですよね!
ちなみに、サッカー日本代表の外国人監督は何人目でしたっけね?
日本人選手で例えるなら、中田英寿なんかがそういうプレイスタイルではないでしょうか…。
(~_~)
※ 혹시 요기 올린 글이 이모저모 폐가 되는 부분이 있으면 말씀 바랍니다.
첫댓글 이충성 선수를 생각해보면서
혹시 저희 몽당연필에서 가능하다면 정대세 선수를 초빙해서 강연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봤습니다.
오히려 정대세 선수에게 폐가 되는 일이 될러나요?? 저 혼자서 함 생각해봤습니다.
정대세 선수를 국가보안법으로 고발하고, 또 그것을 조사하는 검찰의 기소 유지 방침이 사라진 세상이 와야 가능하겠지요!
반 웃고 반 눈물지으며 읽게되는 글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많은 귀화한 동포들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그 분들의 고통과 번민을 우리가 안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