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관李在寬194)
아! 슬프도다. 정신은 가을 물 맺힌 듯 맑고 자태는 봄 난초 같이 빼어나니 하늘에서 받음이
이미 우연이 아닌데, 재앙이 목가木稼195)를 얽고 문채가 화씨의 구슬에 잠기니 오당의 화가
또 이리도 갑작스러운가? 주고 빼앗는 이치는 참 알기 어렵고 굽혔다 펴는 운수는 따지기
어렵네.
생각해보니, 공의 참된 아름다움은 진실로 말속末俗에 드문 것이었네. 정순하고 온아한 자품은
과정을 독촉하지 않아도 성취함이 있었으며, 깨끗하고 방정한 행실은 평생토록 옥루屋漏196)에
부끄러움이 없었네. 편안하게 하고 계책을 주니197) 이미 대현께서 주신 넉넉함에서 나왔으며,
잘 잇고 잘 기술하니 아름다운 후손의 발휘함을 모두 보았네. 그 광채를 드러내지 않고 선조의
공렬을 더럽히지 않았으니, 시서詩書와 예禮를 배우는 세업世業과 효제孝悌 충신忠信하는 가풍家風이
있었네.
연원은 신라로 거슬러 오르는데 우리 노선생에 이르러 더욱 커졌으며, 벌열로 진양에서
호적을 올려 공과 같은 어진 후손에 미쳐 더욱 닦았네. 집에서는 효도하고 우애로우며 세상에서는
겸손하고 공손하니 한 때의 사람들이 다투어 흠모하였네. 사물을 접할 적에는 너그럽고 넉넉하며
일을 밝고 결단력 있게 처리하니, 중망을 모아서 칭송을 받았네. 그윽한 난은 골에 있어도
향기 뿜고 좋은 옥은 상자에 있어도 값을 기다리네.198) 아름다운 소문 대궐로 전해지니 예물을
재단하여 구원으로199) 내려주었으며, 아름다운 문장 알려지니 문채 나는 학서200)가 언덕에
이르렀네. 그러나 고상한 아취雅趣 벼슬길에 있지 않아 평소 뜻대로 매번 은둔을 결정하였으며,
가시나무 난봉鸞鳳이 머물 곳이 아니라 여겼지만 잠시 굽혀서 동읍桐邑201)을 다스렸네.
산림에선 본래대로 미록麋鹿202)을 짝하더니 이에 처음 지내던 고향으로 돌아와 연미천燕尾川
가의 귀형봉龜形峯에서 모든 생각을 버리고 세월을 보냈네. 오로지 한 골에서 곧음을 지키며
시렁 위의 경서로 참된 지취志趣를 부쳐 무젖고, 뜰 안의 소나무 국화로 늘그막을 즐기며 느긋하게
지냈네. 밖을 사모해 어찌 이 마음 더럽히리오. 안의 지조는 본분에 더욱 확고하였네.
인자仁者의 수壽함을 바야흐로 기약했는데, 어찌 선인善人이 떠날 줄 생각했겠는가? 천리는
기필할 수 있는가? 운수가 이미 변하였도다. 유년酉年에 꿈길로 들어가니 영원히 청운에서
만날 길 끊어졌으며, 학이 모는 수레203) 종적을 감추니 푸른 하늘로 쫓아가지 못하네. 어머님께서
아픔을 안고 서글퍼하며 백발로 이문에 기대어 계시고, 자식들204) 슬픔에 잠겨 수척하니205)
뛰어난 아이들206) 괴로움을 겪네. 길 가는 사람들도 눈물을 떨구는데, 하물며 지기知己의 마음으
로 친한 나이겠는가?
양가兩家의 두터운 정을 돌이켜보며 이제까지 삼세三世동안 변하지 않았네. 간과 폐를 드러내
어 마음을 서로 비추었고 도의 있는 이에게 나아가 연마하였네. 못난 내가 벗이 되어 강론하였
으니 거의 천리마 꼬리에 붙은 격207)이었네. 재목이 크게 차이 났으니 15살208)때부터였네.
노력209)을 다하여 따를 것을 생각했더니, 나를 멀리 버리지 않았네. 매번 벗210)으로 세 가지
이익211)을 입었으니 오직 공이 나의 스승이었네. 백년을 가리키며 기약했는데 어찌 하루아침에
영원한 이별을 하였나? 묘 자리212) 이미 잡아 발인發靷 날이 빨리 다가왔네. 마음의 향을 준비하니
피 눈물이 여러 줄기 흐르네. 말 맺지 못하여도 정은 한이 없으니 어찌 내 속 말을 다할까?
말 이미 다해도 뜻은 끝이 없으니, 바라건대 영령이여 이르소서.
194) 이재관(李在寬, 1620~1689) : 자는 휘언(徽彦), 호는 신와(新窩), 본관은 흥양(興陽)이다. 류진(柳袗)의
사위이니 무첨재선생과는 동서간이다.
195) 목가(木稼) : 목개(木介)의 별칭으로 극심한 추위로 나무에 얼어붙은 얼음인데, 전쟁이나 재앙이 일어날
조짐, 또는 현인군자가 죽을 조짐을 말한다. 송 나라 왕안석(王安石)이 지은 한기(韓琦)의 만사에 “나무
고드름에 고관이 떨었다는 말 들었는데, 산이 무너진 오늘 철인이 돌아갔네.[木稼曾聞達官怕 山頹今見
哲人萎]”에서 온 말이다.(石林詩話)
196) 옥루(屋漏) : 방(房)의 서북쪽 구석으로, 집 안에서 가장 깊숙하여 어두운 곳이다. 전하여 남이 보지
않는 곳을 말한다. “네가 집에 있을 때를 보더라도, 오히려 옥루에 부끄럽지 않네.[相在爾室 尙不愧于屋漏]”
에서 온 말이다.(詩經「大雅‧抑」)
197) 편안하게 …… 주니[貽燕貽謀] : ‘이연이모’는 후손에게 계책을 남겨주어 편안하게 해줌을 말한다.
“후손에게 계책을 남겨 주어 공경하는 아들을 편안하게 해주시네.[貽厥孫謀 以燕翼子]”에서 유래한
다.(詩經「大雅‧文王有聲」)
198) 좋은……기다리네: 자공(子貢)이 일찍이 공자(孔子)에게 묻기를 “아름다운 옥이 여기에 있는데 궤에
담아서 감춰 두시겠습니까? 아니면 좋은 값을 받고 팔아야겠습니까?[有美玉於斯 韞櫝而藏諸 求善價
而沽諸]”라고 하자, 공자께서 “팔겠다, 팔겠다. 그러나 나는 좋은 값을 기다리는 사람이다.[沽之哉沽之
哉 我待價者也]”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論語「子罕」) 이 제문에서는 무첨재선생께서 비록 은거하고
있었으나, 세상을 버린 것이 아니었음을 말한다.
199) 예물을 재단하여 구원으로: ‘전전(戔戔)’은 재단하여 나누는 것을 말하며, ‘속백(束帛)’은 묶어 둔 예물
을 말하며, ‘구원(丘園)’은 현자(賢者)의 은거지를 말한다. “구원에서 꾸밈이니, 묶어놓은 비단이 재단
되어 있듯이 하면 부끄러우나 끝내는 길하리라.[賁于丘園 束帛戔戔 吝 終吉]”에서 온 말이다.(周易
「賁卦」) 이 제문에서는 무첨재선생이 발탁되어 등용된 일을 말한다.
200) 학서(鶴書) : 은자(隱者)를 부르는 조서(詔書)를 말한다. 옛날에 조서(詔書)를 학두서체(鶴頭書體)로
썼기 때문에 일명 학두서(鶴頭書)라고도 한다. 공치규(孔稚圭)는 「북산이문(北山移文)」을 지어 주옹
(周顒)을 꾸짖으며 “우는 말이 골짜기에 들어오고 학두서가 산언덕을 넘어오자 맞이하러 달려가느라
정신이 없으며 뜻과 정신이 동요되고 말았다.[及其鳴騶入谷 鶴書赴隴 形馳魄散 志變神動]”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201) 동읍(桐邑) : 주137) 참조.
202) 미록(麋鹿) : 순록을 말한다. 은자가 은거하여 벗을 삼는 짐승으로 많이 언급되어지는 동물이다.
203) 학이 모는 수레[鶴馭] : 신선을 태운 학이 모는 수레를 말한다. 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한 대의
정령위(丁令威)의 고사에서 유래한다.(搜神後記) 이 제문에서는 무첨재선생의 죽음을 미화하였다.
204) 자식들[風樹] : ‘풍수’는 세상을 떠난 부모를 생각하는 자식의 슬픈 마음을 말한다. 공자(孔子)가
길을 가는데 고어(皐魚)란 사람이 슬피 울고 있기에 까닭을 물었더니 답하였다.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여도 바람은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고 싶어도 어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夫樹欲靜而風不
止 子欲養而親不待]”에서 유래한다.(韓詩外傳)
205) 수척하니[欒欒] : ‘난란’은 상주(喪主)의 수척해진 모습을 말한다. “행여 흰 관을 쓴, 극인의 수척함을
보겠는가? 애태우며 노심초사하노라.[庶見素冠兮 棘人欒欒兮 勞心慱慱兮]”에서 온 말이다.(詩經
「檜風‧素冠」)
206) 뛰어난 아이들[白眉] : ‘백미’는 흰 눈썹으로 여러 형제 중에 뛰어난 사람을 말한다. “마량(馬良)의 자는
계상(季常)인데 오형제가 모두 명성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이르기를 ‘마씨 오형제 중에 흰 눈썹이
가장 어질다.’ 하였는데, 이는 마량의 눈썹 가운데에 흰 털이 있었기 때문이다.”에서 온 말이다.(三國志
「蜀志‧馬良傳」)
207) 천리마……격[附驥] : ‘부기’는 상대의 명성에 같이 하여 이름남을 말하니 자신에 대한 겸사로 사용하
였다. “안연이 비록 학문에 독실했다 하더라도 준마의 꼬리에 붙어서 행실이 더욱 드러났다.[顔淵雖篤
學 附驥尾而行益顯]”에서 온 말이다.(史記「伯夷列傳」)
208) 15살[舞象] : ‘무상’은 15세가 되면 무춤(武舞, 象)을 추게 됨을 말한다. “성동이 되면 상춤을 추고 활쏘기
와 말 타기를 배운다.[成童舞象 學射御]”에서 온 말이다.(禮記「內則」)
209) 노력[十駕] : ‘십가’는 “천리마가 한 번 뜀에 열 걸음 하지 못하고 노둔한 말이 십일을 가는데 공효는
멈추지 않음에 있다.[騏驥一躍 不能十步 駑馬十駕 功在不舍]”에서 온 말이다.(苟子「勸學」)
210) 벗[切偲] : ‘절시’는 절절시시(切切偲偲)의 줄임말로 강학하는 벗을 말한다. “붕우 간에는 간절하고
자상하게 권면하여야 한다.[朋友 切切偲偲]”에서 유래한다.(論語「子路」)
211) 세 가지 이익[三益] : ‘삼익’은 나의 개발에 도움을 주는 세 벗을 말한다. “유익한 벗이 세 가지가
있고, 해로운 벗이 세 가지가 있으니, 벗이 정직하며 벗이 신실하며 견문이 많으면 유익하다.[益者三友
損者三友 友直 友諒 友多聞 益矣]”에서 유래한다.(論語「季氏」)
212) 묘 자리[佳城] : ‘가성’은 훌륭한 묘 자리를 말한다. 한 나라 등공(滕公)이 죽었을 때 동도문(東都門)
밖에 장지를 구하여 공경(公卿)이 상여를 보내는데 말이 나가지 않고 슬피 울면서 엎드렸다. 그 자리를
파보니 “가성이 울울하니 3천 년 뒤에 밝은 해를 보리라. 아, 등공이여, 이곳에 묻히리라.[佳城鬱鬱
三千年後見白日 吁嗟滕公居此室]”라고 새겨진 돌을 구하여 드디어 여기에 장사 지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博物誌「異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