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밖으로 고개 내밀어 숨 쉬는 물고기, 진흙 파고들어 논두렁을 허물어 버리는
드렁허리
요즘 전국의 농촌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에요. 이때 유독 자주 보이는 물고기가 있어요. 온몸이 어두운 갈색이고 뱀처럼 긴 물고기, 바로 '드렁허리'<사진>입니다. 얼핏 보면 뱀장어를 닮았지만, 뱀장어랑은 전혀 관계가 없답니다. 진흙을 파고들어 가 논두렁을 허물어 버린다고 해서 '두렁헐이'라고 불리다가 '드렁허리'라는 이름으로 굳어졌대요. 지방마다 '드렁치' '드랭이' '웅어' '웅거지'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답니다.
드렁허리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동남아시아 등에도 살아요. 물이 거의 흐르지 않는, 진흙이 깔린 논이나 늪에 주로 살아요. 이런 곳에 살기 좋게 적응하다 보니 여느 물고기와는 다른 점이 적지 않아요. 우선 지느러미가 많이 퇴화해 아주 조금만 남아있고 몸에는 비늘이 없어요. 그 대신 끈끈한 점액질이 흘러나와 피부를 보호해줘요.
보통 물고기는 물속에서 아가미를 움직여 물속 산소를 몸속으로 들여보내 숨을 쉬어요. 그런데 드렁허리가 사는 논이나 늪은 물이 깊지 않고 산소가 부족한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드렁허리는 다른 물고기와는 다른 방법으로 숨을 쉰답니다. 바깥 공기를 들이마셔 창자로 숨을 쉬는데, 이 창자가 사람의 폐 역할을 하는 거지요. 드렁허리는 물고기이지만 물 밖에서 공기로 호흡해요. 이런 호흡법 덕에 드렁허리는 산소가 부족한 곳에서도 버틸 수 있어요. 비가 와서 땅이 젖을 땐 뭍으로 나와 몸을 꿈틀거려 다른 늪이나 논두렁으로 움직일 수도 있답니다.
드렁허리는 태어날 땐 모두 암컷이에요. 그런데 도중에 수컷으로 바뀌는 성전환을 해요. 세 살쯤 되면 암컷과 수컷의 생식 기관을 모두 가진 암수한몸(자웅동체)으로 바뀌기 시작해요. 그러다 네 살쯤 되어 몸길이가 40㎝ 정도까지 자라면 대부분 수컷으로 바뀌어요.
드렁허리는 부성애가 강해요. 요즘은 드렁허리의 산란 철이기도 한데 암컷이 진흙을 파고들어 가 한 번에 200~1000개가량의 알을 낳으면, 수컷은 부화한 새끼가 스스로 먹이를 먹을 수 있을 때까지 정성껏 돌봐요.
드렁허리는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는 민물고기지만 도시화가 진행되고 농약을 많이 뿌리면서 한동안 찾아보기 어려웠대요. 그러다 농약을 쓰지 않는 친환경 농법이 많이 보급되면서 다시 볼 수 있게 됐어요. 그래서 깨끗한 생태계를 상징하는 동물로도 알려지고 있어요. 그런데 농민들에겐 골칫거리이기도 해요. 진흙 속에 구멍을 파서 파고드는 습성 때문에 논둑이 무너지는 일이 종종 발생하거든요. 그래서 모내기 철을 앞두고 드렁허리 방지막을 설치하는 곳도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