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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rteenth Sunday in Ordinary Time (July 7, 2013)
Reading 1: Is 66:10-14c
Thus says the LORD: Rejoice with Jerusalem and be glad because of her, all you who love her; exult, exult with her, all you who were mourning over her! Oh, that you may suck fully of the milk of her comfort, that you may nurse with delight at her abundant breasts! For thus says the LORD: Lo, I will spread prosperity over Jerusalem like a river, and the wealth of the nations like an overflowing torrent. As nurslings, you shall be carried in her arms, and fondled in her lap; as a mother comforts her child, so will I comfort you; in Jerusalem you shall find your comfort. When you see this, your heart shall rejoice and your bodies flourish like the grass; the LORD's power shall be known to his servants.
연중 제14주일 (2013년 7월 7일 일요일)
제1독서: 이사야서 66,10-14ㄷ
10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이들아, 모두 그와 함께 기뻐하고, 그를 두고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 때문에 애도하던 이들아, 모두 그와 함께 크게 기뻐하여라. 11 너희가 그 위로의 품에서 젖을 빨아 배부르리라. 너희가 그 영광스러운 가슴에서 젖을 먹어 흡족해지리라. 12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예루살렘에 평화를 강물처럼 끌어들이리라. 민족들의 영화를 넘쳐흐르는 시내처럼 끌어들이리라. 너희는 젖을 빨고 팔에 안겨 다니며, 무릎 위에서 귀염을 받으리라. 13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라.” 14 이를 보고 너희 마음은 기뻐하고, 너희 뼈마디들은 새 풀처럼 싱싱해지리라. 그리고 주님의 종들에게는 그분의 손길이 드러나리라.
Reading 2: Gal 6:14-18
Brothers and sisters: May I never boast except in the cross of our Lord Jesus Christ, through which the world has been crucified to me, and I to the world. For neither does circumcision mean anything, nor does uncircumcision, but only a new creation. Peace and mercy be to all who follow this rule and to the Israel of God. From now on, let no one make troubles for me; for I bear the marks of Jesus on my body.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be with your spirit, brothers and sisters. Amen.
제2독서: 갈라티아서 6,14-18
형제 여러분, 14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15 사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16 이 법칙을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평화와 자비가 내리기를 빕니다. 17 앞으로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나는 예수님의 낙인을 내 몸에 지니고 있습니다. 18 형제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여러분의 영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아멘.
Gospel: Lk 10:1-12, 17-20
At that time the Lord appointed seventy-two others whom he sent ahead of him in pairs to every town and place he intended to visit. He said to them, "The harvest is abundant but the laborers are few; so ask the master of the harvest to send out laborers for his harvest. Go on your way; behold, I am sending you like lambs among wolves. Carry no money bag, no sack, no sandals; and greet no one along the way. Into whatever house you enter, first say, 'Peace to this household.' If a peaceful person lives there, your peace will rest on him; but if not, it will return to you. Stay in the same house and eat and drink what is offered to you, for the laborer deserves his payment. Do not move about from one house to another. Whatever town you enter and they welcome you, eat what is set before you, cure the sick in it and say to them, 'The kingdom of God is at hand for you.' Whatever town you enter and they do not receive you, go out into the streets and say, 'The dust of your town that clings to our feet, even that we shake off against you.' Yet know this: the kingdom of God is at hand. I tell you, it will be more tolerable for Sodom on that day than for that town." The seventy-two returned rejoicing, and said, "Lord, even the demons are subject to us because of your name." Jesus said, "I have observed Satan fall like lightning from the sky. Behold, I have given you the power to 'tread upon serpents' and scorpions and upon the full force of the enemy and nothing will harm you. Nevertheless, do not rejoice because the spirits are subject to you, but rejoice because your names are written in heaven."
복음: 루카복음 10,1-12.17-20
그때에 1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10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길에 나가 말하여라. 11 ‘여러분의 고을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까지 여러분에게 털어 버리고 갑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에는 소돔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17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19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20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Biblical Reflection for 14th Sunday in Ordinary Time C by Father Thomas Rosica, CSB
Jesus Prepares Witnesses to Himself and His Ministry
The theme of "peacefulness" appears in all three readings today, and there is a definite link between the first reading from Isaiah (66:10-14c) and the reading from the Gospel of Luke (10:1-12, 17-20). Isaiah's poetry celebrates the long-awaited return of Israel from exile and imagines their triumphant return to the nurturing arms of Jerusalem, the Holy City and Mother of all cities. There is certainly a parallel and a contradiction in today's Gospel. Both Isaiah's reading and the gospel speak of the rejoicing that characterizes the return of exiled Israel to Jerusalem and the return of the disciples after a successful mission. In Luke's Gospel, Jesus, like Israel, is also journeying toward Jerusalem, where he, too will be welcomed by the city -- but then rejected. It is in the holy city of Jerusalem that Jesus will inaugurate the new kingdom of God by his passion and death.
토마스 로시카 신부님의 연중 제14주일 성경묵상 (2013. 7. 7.)
예수님께서 자신과 자신의 사목활동을 증거 할 사람들을 준비시키심
“평화로움”의 주제가 오늘 3 독서에 모두 나오며 제1독서, 이사야서 66,10-14와 복음, 루카복음 10,1-12, 17-20은 서로 분명한 연관이 있다. 이사야의 시(詩)는 오랫동안 기다렸던 이스라엘의 유배에서의 복귀를 축하하고, 모든 도시의 어머니이며 성스러운 도시인 예루살렘의 포근한 품안으로 돌아오는 의기양양한 귀환을 그린다. 복음에는 분명 유사점도 있고 상반되는 점도 있다. 이사야서와 복음서 모두 귀환의 기쁨을 얘기하는데, 이사야는 유배생활로부터 예루살렘으로의 귀한을 말하고, 복음은 성공적인 선교후의 제자들의 귀환을 말한다. 루카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예루살렘으로 떠나신다. 예수님께서도 그 도시에서 환영을 받으시고, 곧 거부당하실 것이다. 그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수난과 죽음으로써 새로운 하느님 나라를 시작하실 것이다.
The mission of the seventy-two
Only the Gospel of Luke contains two episodes in which Jesus sends out his followers on a mission: the first (Luke 10:1-6) is based on the mission in Mark 6:6b-13 and recounts the sending out of the Twelve; here in Luke 10:1-12 a similar report based on Q becomes the sending out of seventy-two in this Gospel. The episode continues the theme of Jesus preparing witnesses to himself and his ministry. These witnesses include not only the Twelve but also the seventy-two who may represent the Christian mission in Luke's own day. The instructions given to the Twelve and to the seventy-two are similar and that what is said to the seventy-two in Luke 10:4 is directed to the Twelve in Luke 22:35. When Jesus orders his followers to carry no money bag (Luke 10:4) and greet no one along the way, he stresses the urgency of the mission and the single-mindedness required of missionaries. Attachment to material possessions should be avoided and even customary greetings should not distract from the fulfillment of the task.
72명의 전도
루카복음만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선교를 위해 보내시는 두 편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첫째(루카 10,1-6)는 마르코 6,6ㄴ-13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12제자를 보내시는 것을 설명하고 있고, 둘째인 오늘의 루카 10,1-12는 Q문헌에 근거한 비슷한 이야기인데, 72명의 제자들을 보내신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자신과 자신의 사목활동을 증거 할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주제를 다룬다. 이 증거자들은 12명뿐만 아니라, 루카 시대의 크리스천 선교를 대표할지모르는 72명도 있다. 12제자와 72제자에게 주신 지시 내용은 흡사하다. 루카 10,4에 72제자들에게 주신 지시는 루카 22,35의 12제자들에게도 주신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돈주머니를 지니지 말고(루카 10,4), 도중에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라고 지시하실 때, 예수님께서는 선교의 시급성과 선교사들의 단순한 마음가짐을 강조하신다. 물질적 소유에 집착하는 것은 피해야하고, 관습적인 인사까지도 사명의 완수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Evangelization and healing
Luke relates evangelization and healing in Jesus' commissioning of the Twelve. He summoned the disciples and sent them on mission to engage in ministries that would restore health and well-being to individuals, families and communities. Jesus also sent the seventy-two, our predecessors: "Whatever town you enter and they welcome you, eat what is set before you, cure the sick in it and say to them, 'The kingdom of God is at hand for you.'" In the sending of the seventy-two, Jesus confirms that through his disciples, and those who would come to believe in him through their word, his peace and the news that "the kingdom of God has come near to you" would be proclaimed to the world. At their joyful return, despite rejection, Jesus rejoices at their success in the submission of the evil spirits in his name: the message is never to cease, never to give up. And yet the call to repentance that is a part of the proclamation of the kingdom brings with it a severe judgment for those who hear it and reject it. As the kingdom of God is gradually being established, evil in all its forms is being defeated; the dominion of Satan over humanity is at an end.
복음화와 치유
12제자에 대한 예수님의 임무부여에 루카는 복음화와 치유를 얘기한다. 제자들을 부르시어 선교파견을 하시는데 개인, 가족, 공동체에게 건강과 복지를 회복하는 일을 하도록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우리의 전임자들인 72제자를 보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72제자의 파견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그들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통하여 그분의 평화와 “하느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소식을 세상에 선포할 것이라고 확인하신다. 거부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기쁨에 차 귀환한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도 기뻐하신다.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령들을 복종시킨 것을 기뻐하신다. 메시지는 절대 끊이지 않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선포의 일부인 회개를 요구하는 부르심에는 심판이 수반된다. 듣고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다. 하느님 나라가 서서히 세워지면서 모든 형태의 악은 무너질 것이고 사탄의 인류지배는 끝날 것이다.
Proclaiming the Word brings healing
For Jesus, healing is never just the healing of the body but also mind, heart and spirit. It is not just about making people physically better, but it is about hearts made whole, sins forgiven and a world healed. The very proclamation of the word is meant to heal and cannot be separated from care of neighbor. As we share meals with the stranger, as the seventy-two did, we naturally build relationships, which will lead us to a deeper concern for their health and well-being. As we let go of our self-interest and focus on the healing needs of others we will restore God's covenant with those who have been denied the opportunity for health. Healing has always been a significant concern and an ongoing activity of the Church. The relationship of reconciliation, healing and salvation are recurring themes in Luke. Jesus called his followers to repentance and to a transformation of their old attitudes and way of living into a radically new set of relationships and attitudes.
말씀의 선포가 치유를 가져온다
예수님께, 치유는 절대로 육체의 치유 뿐 만아니라 머리, 가슴, 영의 치유이다. 단지 육체적으로 좋아지는 것이 아니고 가슴이 온전하게 되고, 죄는 용서받고, 세상이 치유되는 것이다. 말씀의 선포는 바로 치유를 뜻하고, 이웃에 대한 배려와 분리될 수 없다. 72제자가 그랬듯이 우리가 낯선 사람과 음식을 나누면서 자연적으로 관계를 맺게 되고 그들의 건강과 복리를 깊이 염려하게 된다. 이기심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의 치유에 초점을 맞출 때 우리는 건강의 기회를 거부당한 그들께 하느님의 약속을 회복할 것이다. 치유는 항상 교회의 중요한 관심사였고 지속적인 활동이었다. 루카의 복음에서 화해, 치유, 구원의 관계는 반복되는 주제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회개하고, 그들의 오랜 태도와 삶의 방법을 근본적으로 새로운 관계와 태도로 바꾸라고 요구하셨다.
Rejoicing in the Holy Spirit
Commenting on today's Gospel, Pope John Paul II, in his masterful 1986 encyclical letter "Dominum et Vivificantem" (On the Holy Spirit in the Life of the Church and the World) wrote in #20: "Thus the evangelist Luke, who has already presented Jesus as 'full of the Holy Spirit' and 'led by the Spirit ... in the wilderness,' tells us that, after the return of the seventy-two disciples from the mission entrusted to them by the Master, while they were joyfully recounting the fruits of their labors, 'in that same hour (Jesus rejoiced in the Holy Spirit and said: "I thank you, Father, Lord of heaven and earth, that you have hidden these things from the wise and understanding and revealed them to babes; yea, Father, for such was your gracious will."' Jesus rejoices at the fatherhood of God: he rejoices because it has been given to him to reveal this fatherhood; he rejoices, finally, as at a particular outpouring of this divine fatherhood on the 'little ones.' And the evangelist describes all this as 'rejoicing in the Holy Spirit.'"
성령 안에 기뻐함
요한바오로 2세 교황님은 그의 훌륭한 회칙, "Dominum et Vivificantem" (교회와 세상의 삶에 있어서 성령에 관하여)의 #20에 오늘의 복음에 관해 이렇게 쓰셨다. “복음사가 루카는 전에도 예수님을 ‘성령으로 충만하신 분’으로 또 ‘성령의 인도로 사막에 가셨던 분’으로 제시한 바 있지만 이제는 우리에게 또 다른 사실을 전해 줍니다. 스승께서 자기들에게 맡기셨던 사명을 수행하고 돌아온 72명의 제자들이 자기네 활동의 성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기뻐하고 있을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충동으로 기쁨에 마음이 설레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지혜롭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신 뜻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 때문에 기쁨을 느끼셨습니다. 그분께서 기뻐 용약하신 것은 당신 스스로 하느님께서 아버지 되심을 계시할 수 있는 능력을 받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분께서 기뻐하신 것은, 마지막으로, 하느님께서 아버지이심이 특별히 ‘작은 사람들’, ‘어린이들’에게 잘 전달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복음사가는 이 모든 것을 ‘성령 안에서 기쁨에 마음이 설레는 일’로 묘사했습니다.”
Continuing our reflection on the Holy Lands
After the Council of Nicea in 325, Palestine began flourishing with Constantine's churches especially in the three most venerated places: the Holy Sepulcher and Calvary in Jerusalem, the traditional place of Christ's teaching on the Mount of Olives (so-called Basilica of Eleona) and the Nativity Grotto in Bethlehem. Some of the works were supervised by Helena herself. For the pilgrims journeying to Palestine in the 4th century, those sites constituted the core of their interests. Holy spots became so popular and desirable that one of the Christian traditions placed Jerusalem, specifically the hill of Golgotha, at the center of the world. This is clearly seen on many ancient maps of the Holy Land from this period. In 333 a Christian pilgrim from Bordeaux made the journey to Jerusalem by land. As a remembrance, but more likely for the benefit of future pilgrims, he compiled a detailed record of the stages and distances on the road both there and back in his important work called the Bordeaux Itinerary.
성지에 대한 묵상 계속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 이후에 팔레스티나는 많은 콘스탄틴의 교회로 번성하였다. 특별히 가장 많이 경배하는 세 곳 즉, 예루살렘의 거룩한 무덤과 갈바리, 올리브 산의 예수님의 가르침의 역사적인 장소 (소위 엘레오나 대성당), 그리고 베들레헴의 탄생동굴에 있는 콘스탄틴 교회들이다. 어떤 건물은 헬레나 왕비 자신이 직접 건설감독을 하였다. 4세기의 팔레스티나를 향한 순례자들에게 그 장소들은 그들 순례일정의 핵심이었다. 성지들은 아주 유명해지고, 모든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여, 크리스천 전승은 예루살렘 특히 골고타 언덕을 세계의 중심에 놓았다. 그것은 이 시기이후의 많은 성지 지도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333년에 보르도의 크리스천 순례자가 걸어서 예루살렘까지 여행했는데, 기념하기 위해서, 좀 더 정확히는 이후의 순례자를 위해서, 갈 때와 올 때의 길의 고도와 거리를 기록하였다. 그 중요한 작품을 보르도 여행기라고 한다.
Here in this city of Jerusalem
St. Cyril, bishop of Jerusalem (349 - 384 A.D.) had a unique privilege of presiding over the church in Jerusalem immediately after the completion of new buildings begun during Constantine's reign. Cyril is the envy of every bishop, pastor, chaplain, parish council, finance committee and pastoral minister! Imagine walking into a situation where everything is newly built and no fund drives or building campaigns are needed! Cyril preached magnificent sermons within feet of the actual places of Christ's death and resurrection. He said of Calvary, "Others only hear, but we both see and touch." Cyril wrote: "Here in this city of Jerusalem the Spirit was poured out on the church; here Christ was crucified; here you have before you many witnesses, the place itself of the Resurrection and towards the east on the Mount of Olives the place of the Ascension."
여기 이 예루살렘에서
예루살렘의 주교 성 치릴로(349-384)는 콘스탄틴 통치기간 중에 건축을 시작한 예루살렘 교회의 완공 직후에 그 교회를 맡는 특권을 가졌다. 치릴로는 모든 주교, 본당 주임신부, 지도신부, 본당협의회, 재정위원회, 본당신부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모든 것이 새로 지어지고, 모금이나 건축 모금이 필요 없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그리스도의 실제 죽음과 부활의 장소에서 몇 발자국 안에 있는 곳에서 치릴로는 훌륭한 강론을 하였다. 그는 갈바리를 “다른 사람들은 듣기만 하는데 우리는 직접 보고 만지는 곳”이라고 했고, “여기 예루살렘의 이 도시에, 성령께서 교회에 내려오셨습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셨고, 여기 여러분 앞에 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부활의 장소 자체가 있고, 동쪽으로는 올리브 산위에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곳이 있습니다”라고 썼다.
In the Diary of Egeria (or Etheria), written by a wealthy Spanish woman while making her pilgrimage to the Holy Land between 381-384 (the trip included also Sinai, Egypt, the Valley of Jordan and Transjordanian area), we read not only about her vivid impressions made by the impact of the biblical sites, but also a vivid observation of the liturgy celebrated in the shrines. With many details she describes the Sunday and weekday celebrations throughout the liturgical year, focusing especially on the Holy Week prayers in which she participated in Jerusalem. From Egeria's Itinerary we learn how she enjoyed the cordial reception of local Christians who met all her needs as a pilgrim, showing her biblical sites, conducting appropriate acts of worship in the spots, escorting her, giving hospitality and advice. Egeria's positive experiences might be very indicative of the experiences shared by most pilgrims at the end of the 4th century, and of pilgrims today who have the privilege of meeting the local peoples of the Holy Land.
381-384에 성지 (시나이, 이집트, 요르단 계곡, 요르단횡단지역을 포함한)를 순례한 스페인의 부자 여인이 쓴 에게리아의 일기(또는 에테리아의 일기)를 보면, 성경에 나오는 장소로부터 받은 그의 생생한 인상 뿐 만 아니라 성지에서 거행된 전례의 생생한 관찰이 있다. 그는 전체 전례력의 주일과 평일의 미사를, 특히 그녀가 예루살렘에서 함께한 성주간 기도를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에게리아의 순례일기에서 그녀가 얼마나 현지 크리스천들의 진심어린 환대를 즐겼는지 알 수 있다. 현지 크리스천들은 그녀의 순례자로서의 모든 편의를 제공하였다. 성경의 장소들을 보여주었고, 적절한 경배행위를 하였고, 그녀를 안내하였고, 친절하게 대했고 필요한 조언도 해주었다. 에게리아의 매우 긍정적인 체험은 4세기 후반의 거의 모든 순례자들의 경험을 가리키는지 모른다. 또한 성지의 현지 사람들을 만나는 특권을 가진 현대의 순례자들의 체험도 가리킬 것이다.
Those who settled in the Holy Land
Another pious practice linked to the pilgrimages was settling in the Holy Land. Some pilgrims explicitly decided to set out for the Biblical Land in order to live there, or during their sojourn made up their minds to remain there. Such is the case of St. Jerome and his women friends. After arriving in Palestine in 386 he established a community in Bethlehem. Jerome would exclaim in his writings: "Here, he was wrapped in swaddling clothes; here he was seen by shepherds, here he was pointed out by the star; here he was adored by the magi." Jerome later wrote to his friend Paula in Rome urging her to come and live in the Holy Land. He wrote: "The whole mystery of our faith is native to this country and this city." Nothing else in our Christian experience can make this claim. No matter how many centuries have passed, and no matter how far Christianity has spread, Christians are wedded to the land that gave birth to Christ and Christianity.
성지에 정착한 사람들
순례와 연결된 또 다른 독실한 행위는 성지에 정착하는 것이었다. 몇몇의 순례자들은 성지에 정착할 생각으로 순례를 떠났거나 그곳에 머무는 동안에 그곳에 남아 있기로 마음을 정했다. 성 예로니모와 그의 여성 친구들이 그런 경우이다. 386년에 팔레스티나에 도착한 후에 그는 베들레헴에 공동체를 세웠다. 예로니모는 그의 글에서 이렇게 썼다. “여기에 그분이 강보에 싸였습니다; 여기에서 목자들은 그분을 뵈었습니다; 여기에서 별들이 그분을 비추었고, 동방박사들이 그분께 경배하였습니다.” 예로니모는 후에 로마의 그의 친구 바올라에게 성지에 와서 살라고 간청하는 편지를 썼다. “우리 신앙의 모든 신비가 바로 이 나라 이 도시에서 탄생하였습니다.” 우리의 어떤 크리스천 체험도 이런 주장을 할 수 없다. 수많은 세월이 지나고, 그리스도교가 온 세상에 퍼진 것과 상관없이 크리스천들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교가 탄생한 그 땅과 단단히 결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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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ilian Father Thomas Rosica, chief executive officer of the Salt and Light Catholic Media Foundation and Television Network in Canada, is a consultor to the Pontifical Council for Social Communications.
토마스 로시카 신부님은 캐나다 소금과 빛 가톨릭 미디어 재단과 텔레비전 네트워크의 CEO이며, 바티칸 사회홍보 평의회 고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