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군의 천사(1004개 섬 이야기)
세계 | 1위 인도네시아 15,000개, 2위 필리핀 7,100개, 3위 일본 6,800개, 4위 한국 3,348개 |
한국 | 무인도 2,876, 유인도 472개 총 3,348개 |
거제도 | 무인도 63개, 유인도10개 총73개/ 여의도 면적의 138배 (401,600/2.9km) |
신안군 | 신안군에는 1004개의 섬이 있어 일면 '천사'라고 한다. 우리나라 전체의 약33%이다 |
보물섬부터 퍼플 섬까지 1004개 섬의 기적
‘12사도의 섬’으로 불리는 기점·소악도의 일몰 풍경은 그림같다.
한국의 마다가스카르 ‘신안’
우리나라에는 섬이 약 3300개 있다. 이 중 1596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인 다도해해상국립공원(전남 여수시·신안군·완도군·진도군·고흥군, 면적 2321.512㎢)에 속해 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한 섬 중 1004개(유·무인도 포함)는 신안군에 있다. 이 때문에 신안은 ‘1004의 섬’이라는 별칭이 있다.
신안은 국내 최대 규모의 갯벌과 전국 천일염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넓은 염전까지 갖춘 보석 같은 존재다. 한때 갯벌은 쓸모없는 땅이라고 여겨져 간척사업으로 메워버리곤 했다. 우리나라 갯벌의 연간 이산화탄소 흡수량은 30년생 소나무 7340만 그루가 흡수하는 양과 비슷하다. 지구의 산소 중 80% 이상은 바다와 갯벌이 만들어낸다고 한다.
우리나라 갯벌은 ▲캐나다 동부 해안 ▲미국 동부 해안 ▲유럽 북해 연안 ▲아마존강 유역과 더불어 세계 5대 갯벌로 통한다. 2009·2016년에는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됐고 202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신안 갯벌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했다.
증도의 태평염전은 우리나라 최대 천일염 생산단지다
보물섬, 증도
14세기 초 중국 푸젠성에서 신안을 거쳐 일본을 오가는 무역선이 서해에서 침몰했다. 이 배에는 청자와 백자, 칠기, 토기와 동전 등이 실려 있었다. 600년이 훨씬 지나 신안 앞바다 증도에서 한 어부의 그물에 유물들이 걸려들었다. 이후 본격적인 해저유물탐사가 시작됐다.
‘보물섬’ 증도에는 유물뿐만 아니라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숨어 있다. 태평염전이 있는 이 섬은 국내 천일염 생산량의 6%를 차지하는 최대 소금 생산지다. 국내에 단 하나뿐인 소금박물관이 있다. 돌로 벽을 만들어 올린 건물은 얼핏 보면 최근 현대식으로 지어진 것 같지만 예전 양식을 그대로 보존한 근대문화유산이다. 6·25전쟁 직후 태평염전이 만들어질 무렵 주변 산에서 가져온 돌을 이용해 벽체를 짓고 내부에는 나무 기둥을 세워 지은 유일한 석조 소금창고다.
태평염전은 전증도와 후증도 사이의 갯벌에 놓여 있다. 462만 8000㎡(140만 평)에 이르는 염전에서는 검게 그을린 염부들이 4~10월 소금을 만들어내느라 분주하다. ‘하늘 농사’라고도 하는 소금 농사를 위해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 땀 흘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숙연해지기 마련이다.
태평염전을 지나면 4㎞에 달하는 고운 백사장을 가진 우전해수욕장에 닿는다. 그 초입에 늘어선 야자나무와 파릇한 잔디는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해안 뒤쪽으로는 50여 년 전에 방풍림으로 조성한 울창한 소나무숲이 있어 운치를 더한다. 증도면사무소 뒤쪽의 산정봉에 오르면 우리나라 지도 모양을 닮은 솔숲을 볼 수 있다. 이 숲에는 거미줄처럼 얽힌 산책로가 6㎞나 이어져 파도소리를 들으며 은빛 모래밭의 저녁노을을 감상할 수도 있다.
우전해수욕장과 증동리 사이에는 나무로 만든 짱뚱어다리(470m)가 놓여 있다. 다리 위에 서면 유난히 짱뚱어가 많은 갯벌을 잘 볼 수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물이 들면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을 느낄 수 있고 물이 빠지면 게르마늄이 풍부한 세계 5대 갯벌의 진면목을 체험할 수도 있다. 증도는 소금처럼 우리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섬이다.
암태도와 자은도를 연결하는 은암대교를 건너면 자은도의 아이콘과 같은 벽화를 만나게 된다.
순례자의 섬, 기점·소악도
신안을 가장 신안답게 재탄생시킨 곳은 ‘12사도의 섬’, 기점·소악도다. 관광객은커녕 방문객조차도 드물었던 이 작은 섬에 2019년 예수의 12사도 이름을 딴 작은 예배당 열두 개가 지어졌다. 호기심에 섬을 찾았던 사람은 입소문을 냈고 이 섬은 태풍처럼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지금은 들어오는 배마다 트래킹을 즐기려는 사람으로 가득할 정도다.
크고 작은 섬 여섯 개(병풍도·대기점도·소기점도·소악도·진섬·딴섬)가 노두길(섬과 육지를 연결하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길)로 이어져 있다. 노두길은 밀물 때 바닷물에 잠기고 썰물 때 드러난다. 이 중 병풍도를 뺀 나머지 작은 다섯 개의 섬을 한데 묶어 기점·소악도라 부른다.
12개 예배당을 순서대로 걸으면 12㎞에 이른다. 이 길을 순례자의 길이라고 한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신안의 ‘섬티아고 순례길’이라고도 한다. 12개 작품은 예배당이라곤 하지만 특정 종교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든 쉬어가며 생각을 버리고 갈 수 있는 작은 쉼터이기 때문이다.
기점·소악도로 가는 배는 송공항에서 출발한다. 카페리는 40여 분 만에 대기점도 선착장에 들어선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산토리니 풍의 예배당은 바다까지 유려하게 늘어진 방파제 끄트머리에 그림처럼 앉아 있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예배당과 화장실 사이에 놓인 작은 종을 치면 아름다운 ‘섬티아고 순례길’이 시작된다. 도로는 폭이 좁아 차량 교행이 어렵다. 가능하면 차를 두고 가는 것이 좋다. 걷는 것에 자신이 없다면 섬에서 빌려주는 전기자전거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소악도·대기점도 선착장에서 빌려 탄 뒤 반납은 편한 곳에서 하면 된다.
대기점도 마을 안에 있는 4번 요한의 집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예배당 안에 밭을 향한 기다란 창은 작은 무덤 한 기를 보고 있는데 이 땅을 기증한 할아버지의 아내가 묻힌 곳이다. 아침저녁으로 예배당 주변을 청소하고 아내를 위한 기도를 하는 할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진다.
소기점도와 소악도를 잇는 노두길 중간에는 러시아 성 바실리 성당을 연상시키는 8번 마태오의 집이 홀로 바다를 지키고 있다. 신안의 특산물인 양파를 모티브로 건축됐다. 그 황홀한 매력은 해 질 무렵 더욱 아름답게 빛이 난다. 소악도와 딴섬 사이는 노두길이 아닌 모래해변으로 연결된다. 썰물 때만 해변이 드러난다.
마지막 배가 떠나고 나면 섬은 다시 고요함 속에 스며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한가로움에 시간은 느릿하고 평화롭게 흘러간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별들이 더욱 크고 환하게 반짝이는 섬의 밤, 뒷짐 지고 슬리퍼 질질 끌며 어슬렁거리다 보면 어느새 슬금슬금 뒤따라오는 고양이와 친구가 된다.
구멍가게 하나도 없는 기점·소악도는 불편하지만 오히려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더욱 행복해지는 섬이다. 자연이 매일 하루에 두 번씩 밀물과 썰물로 신비한 마술을 부리는 이곳의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면 바쁜 당일치기 여행에서는 느끼지 못한 감동을 얻을 수 있다.
민박객은 한 끼에 1만 원이면 푸짐한 식사를 받아볼 수 있다. 맛깔스럽고 정성스러운 반찬들 덕분에 밥 한 공기로는 부족하다. 새우장, 새우찜, 오징어초무침, 고등어구이, 된장찌개, 매운탕 등 이 섬에서 나는 싱싱한 재료로 반찬 10여 개가 상을 가득 채운다. 한 번 찾고 나면 두 번 세 번 또 찾고 싶어지는 신안 여행에서 섬의 매력을 한껏 느껴보자.
퍼플교는 안좌도의 명물이다. 두리도-박지도-반월도를 잇는 1.5㎞ 나무다리다
천재 미술가의 작품이 섬을 그리다
암태도,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 비금도, 도초도, 하의도, 장산도 등이 마름모꼴 형태를 이루고 있는 군도를 다이아몬드 제도라 부른다. 수화 김환기(1913~1974) 화백의 생가가 있는 안좌도는 팔금도, 암태도를 거쳐 자은도까지 다리를 통해 연결됐다. 남북으로 이어진 도로는 총길이만 30㎞가 넘는다. 섬에서 드라이브를 만끽할 수 있다.
압해도 송공항과 암태도를 연결하는 천사대교가 개통되기 전에는 배를 타야만 찾을 수 있던 곳이지만 지금은 10분이면 이 섬으로 들어올 수 있다. 다리를 건너 안좌면사무소 근처로 들어오면 단박에 이곳이 김환기 선생의 고향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벽에 그려진 그림들과 안좌도 선착장에 먼바다를 향해 낚싯대를 드리운 사슴 조각들에서 그의 천재성과 창의력은 서슴없이 뿜어져 나온다. 천천히 마을 곳곳에 만들어놓은 그의 작품 이미지를 구경하다 보면 섬마을이 아니라 야외 미술관 같은 느낌도 든다. 한국 미술품 중 최고 낙찰가인 132억 원을 기록한 그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안좌도에는 또 다른 명물인 퍼플(purple, 보라)교가 있다. 두리도, 박지도, 반월도를 잇는 1.5㎞ 나무다리다. 갯벌 위를 걷는 기분은 포근하면서도 특별하다. 천사의 다리라고 했지만 마을 집들과 다리를 모두 보라색으로 칠하면서 다리 이름도 퍼플교로 바꿨다.
팔금도에서 은암대교를 건너면 우리나라에서 12번째로 큰 섬인 자은도에 이른다. 아홉 개나 되는 해수욕장을 거느리고 있다. 이 중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분계해수욕장이다. 해안 길이는 1㎞에 불과하지만 모래와 펄이 섞여 단단한 덕분에 발이 빠지지 않는다.
해수욕장 앞으로는 소머리에 솟은 뿔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은 소뿔섬(우각도)이 특이한 모습으로 떠 있다. 뒤편으로는 해안선을 빼곡하게 채운 소나무 사이로 수림대 생태공원이 조성돼 있다. 나무는 수령이 200년 이상이다. 산책로를 걸으면 재미있는 전설을 가진 여인송이 눈길을 끈다. 여인의 몸매를 거꾸로 돌려놓은 듯한 모양이다.
둔장해수욕장 앞에는 2019년 개통한 ‘무한의 다리’가 설치돼 있다. 구리도-고도-할미도 3개의 작은 섬을 잇는 길이 1004m의 보행교다. ‘당신을 무한대로 사랑합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점·소악도 순례자길 중 8번 마테오의 집은 양파를 주제로 만들어졌다.
길이 470m인 증도 짱뚱어다리에선 짱뚱어가 많은 갯벌을 볼 수 있다
박동철 <여행이 즐거워지는 사진찍기> <대한민국 주말가족여행> <사진의 구도 구성> <슬로시티 걷기여행> <신께서 허락한 나만의 별> <베트남 사진여행> <가볼까 두근두근 문화유산 여행> 등 40년을 넘긴 작품 활동을 통해 많은 책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