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K-1 경기가 대단히 활성화 되고 있는 것을 볼 수있습니다. 일본에서
K-1은 이미 메이저 스포츠로 정착이 된 겄 같고 흥행의 규모도 웬만한 복싱경기 수준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K-1의 경기를 보면서 느낀 소감은 가라데 선수들이 좀 더 잘해 줬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링에서 글러브를 끼고 하는 낯선 환경에 적응 하는 것이 역시 어렵나 봅니다. 필리오 정도가 선전하고 있을 뿐 페이토자나 그... 불운의 가라데가 니콜라스 페타스는 결승 진출 한번 못해 봤으니까요.
문장규 관장의 표현대로 가라데와 K-1은 바이올린과 첼로 정도의 차이는 아니더라도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 기타의 차이는 되는 것 같군요. K-1을 보면서 또 한가지 소감은 네덜란드 선수의 강세입니다. 피터 아츠, 어니스트 후스트, 로이드 반담, 레미 본야스키, 블랑코 시카틱, 미르코 필로포비치(이 두선수는 국적은 크로아티아지만), 그리고 K-1은 아니지만 종합 격투기의 세미 슐츠, 길버트 아이블 등등....
K-1은 과거 10 년 간10 번의 파이널 챔피언을 배출했는데 이중 앤디 훅(96년)과 마크 헌터(01년)를 제외한 8 번을 이 선수들이 차지했으니까 K-1 은 네덜란드가 접수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지요. 왜 이렇게 네덜란드가 강할까요? 인구 불과 1500만의 조그만 나라가. 그 뿌리에는 극진이 있습니다.
1954년 방콕 룸피니에서 최영의 선생이 무에타이 복서 코브라를 KO시킨 일은 극진의 전설이지만 무에타이계에서는 타류 시합에서 최초로 패배한 치욕의 기억입니다. 그로부터 10년후 최영의 선생의 제자 구로사키 겐지가 후배 두 명과 라쟈담넨에서 3대3 시합을 갖게 됩니다.여기서 후배 둘은 이겼지만 정작 구로사키 본인이 KO패를 당하고 여기에 충격을 받은 그는 무에타이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가라데와 무에타이를 합친 새로운 무술을 창안합니다. 이게 킥복싱이라는 거죠.
방콕에서 돌아온 그는 동경 메지로가(街)에 메지로 도장을 개설하고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네덜란드 사람들이 무도 유학을 온 겁니다. 그중에 얀 플러스, 요한 보스등이 있었고 얀 플러스는 귀국 후 암스테르담에 일본과 같은 이름의 메지로 도장을 세웁니다. 메지로 소속의 선수로는 피터 아츠와 그 날아 무릎차기로 유명한 레미 본야스키가 있습니다.
요한 보스는 귀국 후 보스 체육관을 세우고 밀란 해밀튼 등과 함께 어니스트 후스트, 뵤른 브레기, 쯔요시등 걸출한 스타들을 배출하게 됩니다.
또 하나의 킥복싱 체육관으로는 차쿠리키 도장이 있습니다. 극진 출신의
톰 해링크스가 세운 것인데 붉은 색의 가라데 도복으로 유명하죠. K-1경기에 선수들 세컨드 봐 주는 머리를 뒤로 묶은 할아버지 그 분이 톰 해링스 관장입니다. 차쿠리키 라는 말은 착력(搾力) 즉 힘의 극한을 쥐어 짠다는 말의 일본어 발음입니다. 차쿠리키 소속의 선수로는 블랑코 시카틱, 피터 아츠(후에 메지로로 이적),로이드 반담, 하야시 노부키 등이 있습니다.
현재 메지로, 보스, 차쿠리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3대 명문 도장이 되었지만 그뿌리를 올라 가면 극진과 직 간접적으로 닿아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 현대 킥복싱의 아버지로 불리는 구로사키 겐지는 얼마 전 국제 무도회라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는 역시 극진 출신으로 종합 격투기의 세미 슐츠를 가르친 존 블루밍 (그전에 블루밍은 극진 탈퇴 후 극진 무도회의 수장이었음), 극진의 또다른 분파인 아시와라 가라데의 데이빗 융커가 동참했고 전세계 약 120개의 도장이 소속되어 있다는 군요.
비단 킥복싱 뿐만 아니라 가라데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는 단체도 계보를 추적하다 보면 반드시 극진이 나타 납니다. 대략 정리를 해 보면,
시도카이칸(士道會館)
74년 태국에서 무에타이 선수들을 연속으로 쓰러뜨린 극진의 호랑이로 불렸던 소에노 요시지가 설립한 극진의 분파. 그래플링 기술도 채택하고 있음.
신국제 공수연맹 (NEW IKO)
싸움 10단으로 불렸던 극진의 싸움꾼 아시와라 히데유키(1944-1995)가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극진에서 파문 당하고(1979년) 그 이듬해 이 단체를 설립함.
아시와라 가라데 인터내셔널
역시 아시와라 계열임.대표는 후세인 나커.
엔신카이칸(円心會館)
아시와라의 제자였던 니노미야 요코,75년 제1회 극진 세계대회 3위, 78년 전일본 대회 우승자였던 그 니노미야가 설립.
월드 오야마 가라데
최영의 선생의 직전제자로 미국 지부의 개척자 오야마 시게루(한국이름 조일삼)관장이 설립. 곰을 죽이고 안토니오 이노키와 싸운 윌리 윌리엄스((1979년 2회 세계대회 3위)가 조일삼의 제자임.
세이도카이칸(正道會館)
K-1 프로듀서로 유명한 이시이 카즈요시 관장이 설립.
소속 선수로는 87년 4회 극진 세계대회 결승전에서 문장규 관장에 져서 2위,91년 5회대회에서 프란시스코 필리오에게 예선에서 KO패 한 앤디 훅이 유명함. 앤디는 정도회로 이적, 96년 K-1 우승을 차지함. 그외 사타케 마사아키, 무사시, 호주의 샘 그레코(극진에서 이적), 아담 와트 등이 있음.
다이도쇼쿠(大道宿)
79년 극진 2회 대회에서 4위를 차지한 아즈마 다카하시가 설립한 독특한 캐릭터의 분파. 투명한 창이 달린 안면 보호구와 얇은 장갑을 끼고 안면 가격과 그래플링을 적극적으로 채택함. 북두기 대회라는 자체 대회를 개최하고 있음.
이외에 무수한 분파들이 존재합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극진을 떠났을까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스타일에 대한 차이입니다. 극진은 언제나 지상 최강을 추구해 왔고 그것을 증명하려면 끝없이 타류와 겨루어 보는 것을 전제로 했습니다. (실천이 없으면 증명이 없고 증명이 없으면 신용이 없으며 신용이 없으면 존경 받을 수 없으니까.)
타류와 겨루고 나면 이기든 지든 자기 스타일에 대한 반성과 수정이 가해 지게 되고 이는 곧 새로운 스타일의 창안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하나의 무술은 타류와의 교류를 통해 진화하고 발전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런 교류에 개방적인 무술만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극진을 떠났고 수많은 분파가 생겨 났지만 그들은 극진에 대한 동류의식을 가지고 있고 극진을 마음의 본향으로 여기고 있으며 최영의 선생을 여전히 자기 스타일의 개조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 입식 격투계의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면 언제나 그 중심에 극진을 만날수 있는 것입니다.
ㅎㅎ 검은손길(블랙터치)이라.. ^^ 어떤 회원님은 검은 건드림님 혹은 검은 찝쩍거림님.. --;; 이라고 하시더군요.. 블랙터치가 원래는 만화제목이죠.. 어설픈 플레이 보이 변기통이 등장하는.. 좀더 멋진 아뒤를 만들까 생각했는데.. 그때 당시는 이것밖에 생각이 안나더군요.. ㅡ.ㅡ;;
ㅋㅋㅋ 중국 4천년.. ^^;; (이상하게 그 만화 작가는 다른 무술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유독 중국무술에 대해서는 무지를 드러내더군요.. 중국무술 특유의 이미지가 곁들인 신비주의를 포장시켜 놨더군요.. (물론 바키란 만화 자체가 리얼리티가 떨어지지만.. ㅡㅡ;;)
아마 실제있었던 이런 부분들이 이타가키 작가선생이 바키 신심회와 돗포의 스토리라인을 만들어 가는데 작용되지 않았나 싶군요...그리고 바키에 나오는 카토였나..돗포에게 자주 혼나는..그 제자....바키에서 유독 실전을 추구하는 공수가의 이미지인데..왠지 아시하라 선생과 닮아있다는...저만의 생각이지만...ㅎㅎ
ㅎㅎㅎ 돗포님 산타룰로는 쌈코조차도 이기지 못한게 중국 산타선수들입니다. ㅋㅋ 극진관 선수들이 산타룰로 해서 졌다해도 이상할 건 없죠. 다리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하면서 판정 끌고가면 이기니까요. 무에타이한테도 그렇게 했었죠. 가라데 스타일의 선수들이 패했다면 경기 자체의 그림이 벌써 떠오르는데요?^^
하하하하...역시나 그렇군요, 입식타격을 하는 사람들 산타룰로는 중국땅에서 이기는 건 진짜 힘듭니다. 일단 다리붙잡고 늘어지면서 시간만 끌어도 중국 선수가 이긴게 되니, 얼굴이 떡이 되거나 말거나 승자는 중국사람이죠 ㅋㅋ 유도를 해도 다리잡고 개비기 하기 시작하면 난감할 겁니다 ㅋㅋ 프라이드룰이면 극진관이
이겼을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산타룰은 진짜 애매해서 다리 붙잡기를 하면서 질질 끄는 걸 쵸크나 암바등으로 끝장내는것도 금지되어 있고...외국인이 많이 때려도 몇 번 다리붙잡고 넘어뜨리면 중국선수들에게 더 점수를 많이 주니 도저히 이길 수가 없죠. 자기들끼리는 킥복싱 비슷하게 난타전을 하지만...
사실 개긴다기 보다는 아예 타격을 접고 다리 붙잡고 밀어붙이기나 넘기기만 한다고 보는게 맞죠 ^^ 글러브를 기본적으로 쓰니깐 눈찌르기 같은 건 다 금지입니다. 대충 킥복싱 룰에 다리 걸어넘기기가 더해진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무에타이 선수들은 실컷 때리고도 몇번 다리잡혀 걸려져 넘어지는 바람에 패했죠.
제가 개비기라는 표현을 해서 오해의 소지가 있을 듯 해서 정정해 둡니다 ^^;; 하여간 태국가서 박살났던 산타 선수들이 무에타이선수들을 불러들여서 명예 회복을 위해 사용한 극약처방이 타격은 포기하고 무조건 넘어뜨리기였거든요. 그라운드는 어차피 없으니까, 넘어뜨리기만 계속했죠.
앞으로는 산타도 계속 성장하고 좋은 선수들이 나올걸로 예상되지만 아직은, 실력으로 극진이나 무에타이와 싸울 레벨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역사도 짧고, 무엇보다 외국의 강자들에게 너무 애매한 룰에 의존해서 변칙 플레이를 하려는 경향이 짙구요, 거기다가 도박이 끼어서 승부조작도 자주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산타룰이었다 하더라도 전패에 2ko는 좀 충격적인데요.. 음.. 드디어 중국 4천년의 무술의 진가가 발휘되는건 아닌지... ㅡ.ㅡ;; 사실 이곳 카페에서나 격투기팬들에게 중국무술이 외면받는 이유가 신비주의적 이미지로 포장된 과거의 전통무술에 대한 반발심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사실 어릴적만 해도 대부분 중국무술이 최강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러한 환상이 깨지고 난뒤의 배신감이 중국무술에 대한 반감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사실 산타가 도입된것도 과거 무에타이와의 전적에서 쓰디쓴 완패를 당하고 이를 반성하는 계기로써 만들어졌지요
한때 전통 중국무술을 경원시했었던 중국 공산당까지 나서서 지원까지 했을 정도이니... 짱깨들 인구수도 많으니 잠재적인 저력은 무시할수 없을것 같습니다... 최근들어 중국무술계에서도 조금씩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고 과거처럼 투로에 집착하는 무술가들도 이제 점점 외면을 받는 추세이니..
꼭 그 경기만 보고 판단할수는 없는거죠...물론 전패라는 건 쉽게 납득이 안가지만...극진관의 이치가와지부장 같은 에이스들은 나가진 않었지만 웨이트제 우승자들이 무려3명이나 나갔었죠.중국도 만만치않게 년도별 산타챔피언과 준우승자를 동원했고...룰도 룰이지만...전패를 당한 경우가 쉽지만은 않은데...
그런 짱꼴라들의 특징이 중화사상에서 비롯된건지 아니면 전통적 유교적 관습에 의한 패밀리즘이 때문인건지... 어쨌든 중국무술이 아직까지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과거의 형식을 탈피한것은 분명 짱깨들의 만만디 근성에 비하면 혁명적이라고 볼수있겠지요.. ㅎㅎ 좀더 지켜봐야 될것 같습니다.. ^^
예전에 김재영선수가 중국 산타대회에서 우승한 일이 있는데, 그 당시만해도 산타 파이터들과 타 무술과의 교류가 없던 시절이라 다리잡고 늘어지기같은 얍삽이(?)에 의존한 플레이는 없었던 듯 합니다^^ 무에타이 파이터들에게 6개문파의 산타선수들이 무참하게 짓밟힌 이후에 그런 경기운영이 두드러지기 시작했죠.
무에타이보다 쿵후가 나쁜 무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글러브끼고 입식링에서 쿵후로 무에타이와 싸운다는 건 자살행위에 가깝죠. 글러브전에서의 타격에 대한 확실한 체계와 선수들의 이해가 가장 필요할 듯 합니다. 솔직히 k-1서울에 등장한 장칭준같은 산타챔피언이 킥복서나 낙무아이에비해 얼마나 수준이
룰 자체를 이해못하면 경기를 바라보는 시각이 오해를 불러 일으키지요. 보통 태권도룰에 익숙한 한국사람이 극진가라데 시합같은 데미지 위주의 룰을 처음보면 사기라는 말이 나오죠.(실제 한국에서 열린 시합에서 어떤 태권도 사범이 저사람이 더 공격많이 했는데 졌넹. 하고 말하더군요
룰을 무시했다기 보단...마음에 안든거죠.단발성 펀치를 날리고 클린치 상태에서 자빠뜨리려 해도 그게 잘 넘어갑니까..그럼 자연 시간은 길어지고 심판은 떼어내느라 정신없고...지루한 경기속에 중국무술의 특색은 잊은체 정체성 없는 경기를 하니 보는 사람입장에서 경기를 하는 사람입장에서도 답답한거죠.
첫댓글 어...검은손길님 드디어...자료 감사드립니다.
검은손길 ㅡㅡ;;
총괄본부장님 유난히 검은손길에 반응을 하시는군요...혹시 소시적 어떤 나쁜기억이라도...
ㅎㅎ 검은손길(블랙터치)이라.. ^^ 어떤 회원님은 검은 건드림님 혹은 검은 찝쩍거림님.. --;; 이라고 하시더군요.. 블랙터치가 원래는 만화제목이죠.. 어설픈 플레이 보이 변기통이 등장하는.. 좀더 멋진 아뒤를 만들까 생각했는데.. 그때 당시는 이것밖에 생각이 안나더군요.. ㅡ.ㅡ;;
음...멋있다
평소에도 참 알고 싶었던 부분인데 덕분에 좋은 글 읽었습니다...감사^^
네..어렸을때 체육관사범의 검은손길에 부모님이 발끈하셨던 적이 있었죠 ..
블랙터치님 좋은글 자주 올려주시네요..극진의 핵심분파들이 잘 설명된 것 같습니다.그런데 이거...오로치돗포 버전으로 한번 올려보면 안되겠습니까?저만 알고있을려다가 ㅋㅋㅋ잘난체 좀 하고싶어지네요 ㅎㅎ오로치돗포판 극진의 분파들...
ㅎㅎㅎㅎㅎ 오로치돗포 버전.. 극진회가 심신회가 되겠군요.. ^^
"검은 손길"님께서 드디어~ 햐~ 이거 점점 흥미진진해 지는데~
한마 바키나 오로치 카스미가 언제 등장하나 그거 기다리고 있습니다.(오로치 카스미의 팬입니다 ㅋㅋㅋ) 탄바 분시치라는 분은 이미 등장했던데 ㅋㅋㅋ
사실 아랑전은 바키보단 별 재미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는 있습니다만 ㅋㅋㅋ
아 그 짱꼴라 팬페이지도 있더군요 일본 사이트 중에.... 그 이름은 '중국 4000년' 입니다 ㅡ.ㅜ;; 중국무술 광신도들의 놀이터더군요. 만화에서나마 힘을 쓰는게 자랑스러운지...
ㅋㅋㅋ 중국 4천년.. ^^;; (이상하게 그 만화 작가는 다른 무술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유독 중국무술에 대해서는 무지를 드러내더군요.. 중국무술 특유의 이미지가 곁들인 신비주의를 포장시켜 놨더군요.. (물론 바키란 만화 자체가 리얼리티가 떨어지지만.. ㅡㅡ;;)
그리고 저의 경우 아쉽게도 아랑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제 주변의 만화가게와 책방을 뒤져봐도 그 책이 없더군요.. ㅠ.ㅠ
아하하, 솔직히 말해 저는 아랑전을 한번에 세권이상 못봤습니다. 졸려서 ㅡ.ㅜ 안보셔도 될 듯 합니다 ㅋㅋㅋ
아마 실제있었던 이런 부분들이 이타가키 작가선생이 바키 신심회와 돗포의 스토리라인을 만들어 가는데 작용되지 않았나 싶군요...그리고 바키에 나오는 카토였나..돗포에게 자주 혼나는..그 제자....바키에서 유독 실전을 추구하는 공수가의 이미지인데..왠지 아시하라 선생과 닮아있다는...저만의 생각이지만...ㅎㅎ
ㅎㅎㅎ 돗포님 산타룰로는 쌈코조차도 이기지 못한게 중국 산타선수들입니다. ㅋㅋ 극진관 선수들이 산타룰로 해서 졌다해도 이상할 건 없죠. 다리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하면서 판정 끌고가면 이기니까요. 무에타이한테도 그렇게 했었죠. 가라데 스타일의 선수들이 패했다면 경기 자체의 그림이 벌써 떠오르는데요?^^
그래서인지 태국사람들도 무에타이 선수들이 중국가서 몇번 패한 건 알지만 전혀 인정안하는 눈치더군요. 편파판정도 너무 심했고...그렇게 놀라실 일은 아닌 듯 합니다.
하하하하...역시나 그렇군요, 입식타격을 하는 사람들 산타룰로는 중국땅에서 이기는 건 진짜 힘듭니다. 일단 다리붙잡고 늘어지면서 시간만 끌어도 중국 선수가 이긴게 되니, 얼굴이 떡이 되거나 말거나 승자는 중국사람이죠 ㅋㅋ 유도를 해도 다리잡고 개비기 하기 시작하면 난감할 겁니다 ㅋㅋ 프라이드룰이면 극진관이
이겼을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산타룰은 진짜 애매해서 다리 붙잡기를 하면서 질질 끄는 걸 쵸크나 암바등으로 끝장내는것도 금지되어 있고...외국인이 많이 때려도 몇 번 다리붙잡고 넘어뜨리면 중국선수들에게 더 점수를 많이 주니 도저히 이길 수가 없죠. 자기들끼리는 킥복싱 비슷하게 난타전을 하지만...
오...다리잡고 개겨버려도 되는건가요,,??팔꿈치로 정수리를 찍거나 계구권으로 눈을 확 쑤시면..반칙인가....;;;아무튼 교쿠신칸의 특별사범으로 국제의권협회의 위원을 역임할 정도니..더욱더 중국무술과의 유대관계는 깊어질 것으로 보이는군요...가라데도복을 입고 참장하는 모습이라...뭐 나쁘진 않네요
사실 개긴다기 보다는 아예 타격을 접고 다리 붙잡고 밀어붙이기나 넘기기만 한다고 보는게 맞죠 ^^ 글러브를 기본적으로 쓰니깐 눈찌르기 같은 건 다 금지입니다. 대충 킥복싱 룰에 다리 걸어넘기기가 더해진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무에타이 선수들은 실컷 때리고도 몇번 다리잡혀 걸려져 넘어지는 바람에 패했죠.
제가 개비기라는 표현을 해서 오해의 소지가 있을 듯 해서 정정해 둡니다 ^^;; 하여간 태국가서 박살났던 산타 선수들이 무에타이선수들을 불러들여서 명예 회복을 위해 사용한 극약처방이 타격은 포기하고 무조건 넘어뜨리기였거든요. 그라운드는 어차피 없으니까, 넘어뜨리기만 계속했죠.
앞으로는 산타도 계속 성장하고 좋은 선수들이 나올걸로 예상되지만 아직은, 실력으로 극진이나 무에타이와 싸울 레벨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역사도 짧고, 무엇보다 외국의 강자들에게 너무 애매한 룰에 의존해서 변칙 플레이를 하려는 경향이 짙구요, 거기다가 도박이 끼어서 승부조작도 자주 있다고 합니다.
물론 실력으로 극진관 선수들이 패했다면 할말이 없습니다.(타격에 의한 ko라든지...) 그냥 제 생각이었습니다 ㅋㅋㅋ
오우, 2ko승이라 그것 대단하군요. 이제 중국도 힘을 쓰기 시작하는 것인가? 이거 다시봐야겠는데요?^^(그런데 설마 가즈미 같은 선수가 나간 건 아니겠죠?...하긴 이젠 극진관과도 별로 상관없는 가즈미 도장을 운영하고 있으니 그럴리는 없지만 ㅋ)
이야~~~~~~~~~~~~~골깨진다 님들때매
헉 .... 너무 전문적으로 꼬리말이 달리니 끼어 들수가......
그쵸? 잘못 끼어들었다간 뭔일 날것 같아서 그냥 보고만 있습네다..
에헤헤헤 씨익~^^
아무리 산타룰이었다 하더라도 전패에 2ko는 좀 충격적인데요.. 음.. 드디어 중국 4천년의 무술의 진가가 발휘되는건 아닌지... ㅡ.ㅡ;; 사실 이곳 카페에서나 격투기팬들에게 중국무술이 외면받는 이유가 신비주의적 이미지로 포장된 과거의 전통무술에 대한 반발심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사실 어릴적만 해도 대부분 중국무술이 최강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러한 환상이 깨지고 난뒤의 배신감이 중국무술에 대한 반감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사실 산타가 도입된것도 과거 무에타이와의 전적에서 쓰디쓴 완패를 당하고 이를 반성하는 계기로써 만들어졌지요
한때 전통 중국무술을 경원시했었던 중국 공산당까지 나서서 지원까지 했을 정도이니... 짱깨들 인구수도 많으니 잠재적인 저력은 무시할수 없을것 같습니다... 최근들어 중국무술계에서도 조금씩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고 과거처럼 투로에 집착하는 무술가들도 이제 점점 외면을 받는 추세이니..
꼭 그 경기만 보고 판단할수는 없는거죠...물론 전패라는 건 쉽게 납득이 안가지만...극진관의 이치가와지부장 같은 에이스들은 나가진 않었지만 웨이트제 우승자들이 무려3명이나 나갔었죠.중국도 만만치않게 년도별 산타챔피언과 준우승자를 동원했고...룰도 룰이지만...전패를 당한 경우가 쉽지만은 않은데...
과거와는 다른 뭔가를 보여주겠지요.. (물론 아직은 쉽게 속단하기에는 이르다고 판단하지만은요..) 그리고 여담이지만 가끔씩 답답한 부분이 뭔가 하면 중국내부에서도 이러한 개혁의 바람이 불고있고 형식적인 전통무술의 비효율성을 반성하는 분위기인데 반해
정작 우리나라의 일부 중국무술 매니아들은 전통무술의 심오한 무언가에 여전히 집착하는것을 보면서 조금 안타깝다는 느낌도 들곤 합니다.. (딴지일보에서도 지적된 부분이긴 하지만..)
타류시합 싫어해서 나가셨다는 분이지만 노초웅관장님은 과거에도 그렇고 타류와의 교류를 좋아하셨죠.시합까진 아니였지만 킥복싱도 경험했고 타류가라데 그리고 의권 태기권 고무도까지...이번 중국무술협회 주석과의 만남을 통해 극진관가라데의 중국진출도 꽤할테지만 분명 산타선수들에게 복수할려고 할거에요 ㅎㅎㅎ
ㅎㅎ 마쯔오쇼장님이 얘기하신 다리 잡고 '개비기(?)'가 갑자기 떠오르는군요.. 대충 어떤 그림인지 짐작이 갑니다만... 일단 룰의 차이도 그렇고 선수들의 상대적 기량도 어느정도 비교해봐야 겠지만 로야마 관장님이 이 일로 제법 맘이 상하실것 같군요.. ^^;;
그런 짱꼴라들의 특징이 중화사상에서 비롯된건지 아니면 전통적 유교적 관습에 의한 패밀리즘이 때문인건지... 어쨌든 중국무술이 아직까지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과거의 형식을 탈피한것은 분명 짱깨들의 만만디 근성에 비하면 혁명적이라고 볼수있겠지요.. ㅎㅎ 좀더 지켜봐야 될것 같습니다.. ^^
예전에 김재영선수가 중국 산타대회에서 우승한 일이 있는데, 그 당시만해도 산타 파이터들과 타 무술과의 교류가 없던 시절이라 다리잡고 늘어지기같은 얍삽이(?)에 의존한 플레이는 없었던 듯 합니다^^ 무에타이 파이터들에게 6개문파의 산타선수들이 무참하게 짓밟힌 이후에 그런 경기운영이 두드러지기 시작했죠.
무에타이보다 쿵후가 나쁜 무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글러브끼고 입식링에서 쿵후로 무에타이와 싸운다는 건 자살행위에 가깝죠. 글러브전에서의 타격에 대한 확실한 체계와 선수들의 이해가 가장 필요할 듯 합니다. 솔직히 k-1서울에 등장한 장칭준같은 산타챔피언이 킥복서나 낙무아이에비해 얼마나 수준이
떨어졌는지는 보신 분들은 다 아셨을 겁니다. 아케보노가 상대가 아니었다면 그 대회 참가한 누구와 싸웠다고 해도 졌을테죠.
겨루어 보는 것을 전제로 했습니다. (실천이 없으면 증명이 없고 증명이 없으면 신용이 없으며 신용이 없으면 존경 받을 수 없으니까!!!!!!
예전에 음양팔괘문 정민영선생께서 극진관 사범들도 참장공을 한다고 얘기를 했었는데 그게 노초웅사범이군요. 이런 걸 보면 극진관에 입문하고 싶지만 하는 거나 제대로 해야죠-_-
룰 자체를 이해못하면 경기를 바라보는 시각이 오해를 불러 일으키지요. 보통 태권도룰에 익숙한 한국사람이 극진가라데 시합같은 데미지 위주의 룰을 처음보면 사기라는 말이 나오죠.(실제 한국에서 열린 시합에서 어떤 태권도 사범이 저사람이 더 공격많이 했는데 졌넹. 하고 말하더군요
윗글에 보면 너무 산타룰에 대해 무시하는 경향이.... 그들 나름데로 머리 짜내서 만든 룰인데... 아무튼 산타룰로 도전했다니 좀 힘들긴 힘들었겠군요. 넘기면 몇점.. 타격들어가면 몇점.. 이런식의 포인트제에 극진룰은 최악이니까요
룰을 무시했다기 보단...마음에 안든거죠.단발성 펀치를 날리고 클린치 상태에서 자빠뜨리려 해도 그게 잘 넘어갑니까..그럼 자연 시간은 길어지고 심판은 떼어내느라 정신없고...지루한 경기속에 중국무술의 특색은 잊은체 정체성 없는 경기를 하니 보는 사람입장에서 경기를 하는 사람입장에서도 답답한거죠.
중국권법 특유의 낮은 자세에서 시작하는 것때문에 기본이 옆차기(?)로 견제.. 얼굴 폐인팅후 태클... 이런 패턴이.. 주로 대부분... 아무튼 좀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