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치를 한꺼번에 되돌아 보려니까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 제2탄을 준비했습니다. 2012. 7. 1. ~ 12. 31. 우리 가족의 사진 일기입니다.
[7월] 아들 생일, 어머니가 입원해 계신 요양병원에서 고마운 마음을 전해드렸습니다. 몇 달만에 웃는 모습을 봅니다. 제 아내가 항상 어머니를 잘 챙겨줍니다.
[7월] 하늘에서 본 내 일터와 주변 풍경입니다. 여름날 비온 뒤라 안개가 내려앉았네요.
[7월] 요양병원에 계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호흡을 잘 하지 못해 중환자실에 입원했습니다. 그 동안 잘 해드리지 못한 것이 죄송스러워, 다시는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잘못되진 않을까 걱정하고 안타까워 했는데 다행히 3일 만에 중환자실을 벗어나 원래 계시던 요양병원으로 다시 옮겨왔습니다.
{8월} 일광해수욕장에서 소방가족체험훈련 행사를 열었습니다. 우리 소방서가 생긴지 2년이 되는 날을 기념한 행사였죠.
이렇게 바다를 끼고 있고 해수욕장이 지천에 여러 개 있는데도 애들이랑 해수욕장에 한번 가보지 못했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탓이라 애써 변명하고 싶었습니다.
[8월] 여름이 다 가도 여행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여전히 병상에 계시고, 막내 누나도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이고 직장에서도 휴가 갈 여건이 되질 못해 여행책을 펼치놓고 어디로 떠날까 궁리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지요.
[8월] 면민체육대회가 열리는 운동장, 혹시나 약주 드시고 쓰러지는 분이 있을까해서 현지출동 구급 근무중 . . . .
[9월] 작년까지 살던 철마면 시골집에 작은놈이랑 가봤습니다. 고기와 막걸리를 사들고 주인 할아버지 할머니께 인사도 드렸습니다. 저 집에서 작은놈이 초등학교에 졸업할 때까지 살려고 했는데 주변 여건이 마땅치 않아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말았네요.
시골살이에서 가장 힘든 점는 지네가 많이 출몰한다는 사실입니다. 5월부터 나와서 10월까지 방과 부엌, 화장실, 신발장 가리지 않고 수시로 출몰해서 깜짝 놀라게 합니다. 세탁물에도 나오고 천장에서 떨어지고 신발 속에도 숨어있고 책상에 앉아있으면 발가락을 깨물고.... 나중에 지네를 잡은 기록을 달력에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2년 동안 200마리 정도를 잡고 보니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시골 탈출을 감행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죠.
[9월] 올 여름 장대비에 발코니에 놓아둔 책장이 젖어서 책장을 꺼내서 정리하다가 오랫동안 보지 않은 책들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그 중에 컴퓨터 잡지가 가득 있어 고민 끝에 버리기로 했습니다. 2001년부터 정기구독해서 100권 이상이나 봤던 책인데, 내 컴퓨터 지식을 키워줬던 책인데 버리기엔 아깝지만 늘어나는 아이들 공부책들 때문이라도 더 이상 방치(?)할 순 없었죠.
한쪽에 두고 한번쯤 참고로 볼 만한 책이지만 집이 좁고 책꽂이 공간이 모자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지요. 아까비... 아까비...
[9월] 1988년도에 군대를 제대한 후 처음으로 서울에서 동기들을 만났습니다. 따지고 보면 제대 이후 한 번 본 적이 있었지만 기억도 가물가물하니 24년 만에 만나는 것이나 다름 없는 날이었습니다. 남자들은 군대 3년 복무한 것을 평생 써먹는다고 하는데 우리 동기들은 35개월 짜리 대한민국 의무경찰 출신이라 오리지널 3년이라 할 수 있죠? 오랜만에 군대 시절 얘기를 맘껏 해 본 하루였습니다.
뒤늦게 한놈이 더 와서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풀어놓았습니다. 저 놈들이 있어서 제 군대생활은 더 풍성하고 행복했습니다.
[9월] 작은놈이 청렴글짓기에서 상을 타왔네요. 제 딸이지만 말은 참 잘하거든요. 말보다는 글로 잘 표현하죠. 장차 언니와 함께 만화가가 될거라고 하네요. 언니는 그림이 되고 자기는 글이 되니까 자매가 글그림으로 만화작품을 낼 수 있다고 하는데 . . . 글쎄요?
들고 있는 우산은 부상품입니다.
[9월] 쉰 세 살 우리 막내누나입니다. 마흔 아홉 살에 대장암 진단을 받고 4년째 투병중이죠. 11월 11일에 죽었으니 저 사진은 이 세상을 떠나기 한 달 반 전에 찍은 사진이네요. 죽는 날을 예감하면서도 먹을 것을 찾을 수 밖에 없는 저 마음을 과연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요?
[10월] 아이 엄마가 몇 달에 걸쳐 십자수를 완성했습니다. 돈나무와 동자승 세트로 멋진 작품이 탄생되었습니다. 지금은 액자를 만들어서 거실에 걸어두었습니다. 올해는 돈이 좀 들어올까요....?
[10월] 시골집 이웃에 사는 일가친척 아지매가 어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으로 찾아왔습니다. 50년 이상을 이웃으로 살아 온 친척이지요. 그 분도 다리 수술을 해서 불편한 몸이지만 너무 오랫동안 어머니를 볼 수가 없어서 찾아왔답니다. 저는 그날 어머니가 우시는 얼굴을 태어나서 처음 봤습니다.
[10월] 어머니가 요양병원 침대에서 식탁을 책상삼아 견출지에 글씨를 쓰고 있습니다. 자기 물건을 표시하려고 당신 이름을 손수 쓰시는 것이지요. 저렇게 정신 말짱하신 분이 다리에 힘이 없어 걸을 수 없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침상에 누워계셔야 하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얼마나 속이 탈까요? 얼마나 갑갑하고 답답하실까요?
[10월] 우리 부부의 결혼 14주년 기념일입니다.
여행도 못가고 좋은 곳에 가서 맛있는 것 먹지도 못하고 좋은 공연 하나 본 것도 없이 그냥 그렇게 보냈습니다. 부산자갈치축제에 가서 범선을 타고 부산 앞바다를 한바퀴 돌아본 것이 전부네요. 대신에 두 딸이 작은 선물과 예쁜 편지를 써서 주었습니다.
[10월] 한창 방영중인 TV드라마 <메이퀸>의 촬영지입니다. 울산 간절곶에 있죠. 저런 집에서 한번쯤 살아보고싶다고 누구나 작은 소망 한번 품고 갈 만큼 잘 꾸며진 세트장이 간절곶 해맞이공원에 있습니다.
[11월] 온가족이 경주월드 놀이공원에 다녀왔습니다.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단풍도 보고 싶었죠. 애들이 조금 컸다고 같이 다니러 하지 않아 오랜만에 4식구가 같이 움직였습니다. 놀이기구도 타고 보문호 주변 낙엽길을 산책하고 돌아온 늦가을날의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명색이 제2의 도시라는 부산에는 그 흔한 놀이공원도 동물원도 없어 경주나 대구나 대전으로 간답니다.
[11월] 마음이 다급했습니다. 바쁘고 복잡한 집안 일로 가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더 늦기 전에 홍단풍 한번 보려고 산사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하루 만에 울산 석남사와 양산 통도사 두 군데나 돌아다녔죠. 늦게나마 단풍놀이를 즐기느라 다리가 아픈 줄도 몰랐지만 가슴 한쪽 구석엔 멍이 생겨 마음만은 편치 않았습니다. 바로 병상에 있는 어머니와 죽음 직전에 있는 누나를 두고 우리는 즐기고 있기 때문이었지요.
[11월] 아 ! 슬프다.
슬프다. 슬프다. 누나가 죽었습니다. 대장암으로 투병한 지 4년만에 끝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누린 나이 이제 겨우 쉰 셋!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더 많이 남았는데 너무나 짧은 인생소풍을 끝내고 흙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누나, 나를 더 사랑해줬던 내 사랑하는 막내 누나 !!
근조화환에 제가 글을 적었습니다."편안한 길 가세요"
[11월] 포항 구룡포과메기축제에 다녀왔습니다. 아픈 마음도 달래고 심신이 지친 제 아내에게 생기를 돌려주고 싶어서 마음 내키는 날에 아내 손을 잡고 포항으로 달렸습니다. 그날이 마침 축제를 하는 날이더군요. 덕분에 축제에 참가하고 과메기덕장 체험도 했습니다. 강원도 인제나 평창에서 황태덕장을 봤는데 여기서 과메기덕장을 보게된 것입니다. 축제장에서 북쪽으로 더 달려 한반도 지도에서 호랑이 꼬리 지형에 해당된다는 호미곶에도 갔습니다. 풍경 사진에서 많이 보던 바다 속에 잠겨있는 그 큰 손을 봤습니다. 그런데 그 손은 오른손일까요? 왼손일까요?
돌아오는 길엔 과메기를 사가지고 와서 친구들을 초대해서 맛나게 먹었습니다.
[12월] 큰놈이 그리고 있는 장편만화 <견우와 직녀> 중의 한컷입니다. 한 5개월 동안 300장을 그렸는데 앞으로 100장은 더 그려야 완성될 것같다고 합니다. 겨울 방학 내에 완성된 작품을 보여주겠다고 눈만 뜨면 책상앞에 앉습니다. 연필을 잡으면 공부도 안하고 잠도 안자고 그려대기만 하지요. 저 열정을 보고 공부하라고 말해도 큰 소용이 없겠지요?
[12월] 애들이 이 만큼 컸어요.
해가 바뀌어 이제 큰놈은 중학 2학년, 작은놈은 초등 6학년이 됩니다
[12월] 올해의 하이라이트 !
윤기영, 심장을 살리다, 심장을 구하다, 심장을 소생시키다, 사람을 살리다!
지난 달에 구급 출동해서 심장이 멈춘 57세 남자 환자를 CPR하고 자동제세동기로 전기충격을 줘서 생명을 소생시킨 것이 인증되어 한 달이 지난 12월에 ♥하트세이버 인증서♥를 받았습니다. 심장이 멈췄던 그 환자는병원에 도착한지 2시간 만에 완전히 회복되었으니 이 또한 완벽한 응급처치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위의 그림을 한번 볼까요? 첫 번째 그래프는 우리 구급대가 도착했을 당시 환자 심장이 세동 상태(심장수축이 정상적으로 일어나지 못하고 부들부들 떠는 비정상적인 상태, 그대로 4분 동안 아무 처치도 하지 않으면 뇌손상이 시작되고 결국 사망할 수 있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세 번째 그래프는 전기충격을 1, 2차 실시했을 때 변화된 심전도 모습이고, 마지막 네 번째 그래프가 두 차례 제세동 처치로 수 분이 지난 후 정상적인 순환을 보이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구급대원의 힘 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아시는지요? 그 때 구급대원이 도착하기 전까지 현장에서 가슴압박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심폐소생술 교육을 몇 차례받아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이었죠. 제가 그 분을 추천해서 하트세이버 인증서를 같이 받았습니다.
[12월] 거제시추모의집에서 막내 누나 49재를 지냈습니다. 두 딸과 아들이 제상 앞에 앉았네요. 누나는 자식들에게 무엇을 남기고 갔을까요? 무엇을 가르쳐 주고 간 것일까요?
내 스마트폰 바탕화면에 있는 누나 사진을 49재를 지내기만 하면 지우리라 했는데 아직도 지우지 못했습니다.
참, 어머니는 아직 막내딸이 죽은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 언제 알려드려야 할까요? 어떻게 알려드릴 수 있을까요?
[2013년 1월 1일] 부산 광안대교 위로 새해 새 해가 떠오릅니다.
계사년 뱀의 해, 바로 제가 뱀띠입니다. 바로 저의 해라는 말씀이지요. 새해에는 욕심 조금만 내고 결심 조금만 하렵니다. 그리고 건강만큼은 야무지게 다져보리라 다짐합니다.
우리집 거실 소파에 네 식구가 나란히 앉았습니다.올해는 가족 사진을 찍은 날이 두 번 밖에 없어 지난 2월 큰 아이 졸업을 마치고 집에서 찍은 사진으로 모든 분께 인사드립니다.
저를 아는 모든 분들이 2013년에도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