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보면 택전리宅田里 유래
면 소재지 남쪽으로 5키로쯤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잇다. 옛날에 집을 지을 만큼의 터가 많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담배와 고추의 농사가 잘 된다. 본래 진보군 동면의 지역으로서 뙈기 밭이 많았는데 이로 말미암아 땍밭골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을 고칠 때 화매동의 일부를 따다가 합하여 택전리라 하여 석보면에 들게 했다.
[마을의 특징]
이 마을에는 옛부터 전해 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오는데 검소바위와 턱걸바위가 그 것이다. 택전의 남쪽에 있는 바위가 검소바위이다. 검소라는 큰 못이 있었는데 그 옆에 있는 바위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검소와 함께 바위를 신령한 것으로 섬겼다. 어느 해인가 하루는 여름 낮인데도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지더니 천둥과 벼락이 치고 바위가 없어져 버렸다. 그 뒤로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가 신이 되어 하늘로 올라 갔다고 믿게 되었으며 신령한 바위하는 뜻으로 검소 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우리말에 검은 신(神)이니 신령한 바위가 될 수밖에 없다. 한자로는 검소바위를 현암(玄岩)이라고 하는데 검은 것은 신의 빛깔이며 북쪽이요, 거북을 드러낼 때도 있다. 턱걸방우의 사연은 턱걸바위 마을의 내용으로 대신한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유래]
*땍밭골ㆍ땍박골ㆍ택전(宅田, 澤田)
소재지에서 남동쪽으로 5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원래는 진성현(眞城縣)에 속해 있었으나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석보면에 편입되었다. 이곳은 돌이 많고 밭이 넓지 못하여 작은 면적의 뙈기밭이 많았는데 여기에서 유래하여 마을 이름도 땍밭골ㆍ땍박골로 불렀으나 석보면에 편입하면서 택전으로 개칭되었다. 한편으로는 이 곳의 전답들이 오랜 옛날에는 모두 못터였다고 해서 택전으로 불리기도 한다는 것이다(김병의(62) 제보).짐작하건대 이 마을이 못터라고 함이 사실이라면 못터 혹은 못밭을 한자로 적는 과정에서 택전 혹은 땍밭골로 소리가 바뀌어 불리워졌을 가능성이 높다. 소리의 관계로 본다면 못터의 '터'와 택전의 '택'이 같은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한 마디로 터-택으로 이어지는바 못터가 중심을 이룬다.
*검소바우ㆍ현암(玄岩)
택전의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검소라는 큰 소가 있었는데, 그 소 옆에는 검소바우라는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검소와 함께 이 검소바우도 몹시 신령스럽게 여겨서 소중히 다루었으나, 어느 해 여름에 낮인데도 갑자기 사방이 캄캄해지고 천둥과 벼락이 치더니 그 바위가 없어져 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가 신(神)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것이라고 말했고 이 마을 이름을 그 신령스런 바위에서 따 와서 검소바우라고 불렀다 한다(김병의(62) 제보). 검소에서 검이라 함은 신(神)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검소는 신령할 수밖에 없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현암(玄岩)의 '현'으로서 뜻으로 보아 현-검의 걸림이 가능하기에 그러하다. 방위로 보면 거의가 북쪽 지향성이 강하다.
*민실ㆍ민실골ㆍ민곡(敏谷)
오래 전에는 이 마을을 노개나무골이라 불렀다 한다. 조선 명종 때 재령 이씨(載寧李氏)들이 이 곳에 묘를 쓰면서 이 곳을 민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다른 이야기로는 마을이 자리잡은 골짜기가 평평한 땅이라고 해서 민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심승락 (62) 제보). 민곡은 민실을 한자로 뒤친 꼴이며 민실은 골짜기의 모습이 평평하다는 뜻으로 봄이 옳을 것이다.
*솔두들ㆍ송구(松邱)
이 마을 주위의 경치가 아름답고 나무가 많아 수려한데, 특히 마을 주변에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고 하여 솔두들 즉 소나무 언덕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심승락(62) 제보). 솔두들을 한자로 뒤치면 송구가 되는데 이런 곳에는 솟대를 세우는 일이 종종 있다.
*수구내미
솔두들 북쪽에 위치한 이 마을은 논이 적고 밭이 많아서 밭농사로 수수를 많이 재배하여 수구내미라고 한다(심승락(62) 제보). 옥수수를 옥수구로 말하는 고장이 있듯이 수수도 수구로 말하는 지역이 있다. 이로 보아 수수 고장으로 봄은 그럴 듯하다.
*운수내미
솔두들 남동쪽에 있는 마을인데 운수내미라는 고개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임진왜란 때 한 피난민이 고개 마루에서 남으로 살러 갈 것이가, 북으로 살러 갈 것인가를 나뭇가지로 던져 점쳐 보았으므르 이 고개 마루를 운수내미로 불렀다 한다(권갑술(60) 제보).
*압평재
민실 남쪽의 마을로 옛날에는 한때 이 곳에서 아편을 재배했던 적이 있어서, 아편재ㆍ압평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심승락(62) 제보). 그러니까 아편에서 압평으로 바뀌어 굳어진 마을의 이름으로 보인다.
*초막골(草幕谷)
택굴방우에서 남쪽에 있는 마을로 이 마을의 지붕들은 볏짚으로 이은 것이 아니라 억새나 갈대 등으로 이은 초막이 많았다고 한다(심승락(62) 제보).
*턱걸바위ㆍ택굴방우
옛날 이 마을 뒷산에 호랑이가 턱을 걸고 죽은 바위가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뒷산에 호랑이 한 마리가 있었는데 이 호랑이가 아주 심술궂어서 마을에 내려와 농작물을 마구 망쳐 놓곤 해서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이 호랑이는 매일 아침 해가 뜰 무렵 밭을 한 바퀴 돌고는 밭 가운데를 이리저리 뛰어 다녀서 농가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마을 사람들은 참다 못하여 이름난 포수를 사서 호랑이를 잡기로 했다. 그래서 포수는 해가 뜰무렵에 밭둑에 있는 커다란 밤나무 뒤에 숨어서 호랑이를 기다렸다 잠시 뒤에 호랑이가 나타나 밭을 돌기 시작했는데 포수는 그 때 단 한 발로 호랑이를 쏘아 맞혔으나 총을 맞고 도망친 호랑이의 뒤를 밟아 가도 호랑이를 찾을 수는 없엇다. 몇 날을 헤매던 포수는 며칠 뒤 마을 뒤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 호랑이가 턱을 걸고 앞 발을 짚고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기쁨에 넘친 포수와 주민들은 이 바위를 턱걸바위ㆍ택굴방우라 하고 마을 이름도 이렇게 불렀다 한다(심승락(62) 제보). 옛말에는 거센소리가 아직까지 자리를 잡지 못하였으므로 턱걸-덕걸로 볼 가능성이 높다. 미루어 보건대 덕거리 바위가 줄어 들어 덕걸바위로, 덕걸바위가 다시 턱걸바위로 된게 아닌가 한다.
[참고문헌 : 영양군지]
※되집어 보는 영양말(사투리)※
돌메이, 꽉쭈, 천지빼까리, 돌빵구, 펑푸짐, 수꾸,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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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말캉 마실소개 /169) 석보면 택전리(宅田里)가 궁금니껴?
택전리(宅田里)는
본세 진성현(진보군) 동면땅 이었니더.
처음에는 쬐메한 밭 때기(뙈기)가 새빼따꼬
땍밭꼴이라 카다가
집 지을 만한 집터가 쌔밴는 데라꼬
택전(宅田) 이라꼬 켔니더.
1914년 행정구역 바낄때는
화매땅 일부를 쬐메 가와 택전이라카고
석보면에 속하게 된니더.
(땍밭골ㆍ땍박골ㆍ택전)
돌메이(돌맹이/돌삐)가 쌔밴는
쬐메한 뙈기밭들이 천지빼까리라꼬
땍밭골이라꼬 카다.
나중에 땍박꼴로 바까 불렀니더.
본세 진성현(진보군) 동면땅 이었찌만
1914년 행정구역 바낄때
땍밭골를 한자로 바까 택전(宅田)이라
카기꼬 했었꼬.
옛날에 여가 마카다 못(池)이었따꼬
택전(澤田)이라 켔따카기도 하니더.
(검소바우ㆍ현암)
택전 남쪼구에 검소라는 디게 큰 쏘가 있꼬
그 여불때기에는 검소방구라는
큰 돌빵구가 있었니더.
주민들 마카다는 큰 돌빵구를
신령스럽고 소중히 여기던 중.
어느날 꽉쭈에 천둥과 벼락을 치며
천지가 캄캄해지디 사라 졌뿌렌니더.
주민들은 이 방구가 신(神)이 되가
하늘로 올라간 거라 믿꼬
그때부터 이 돌빵구를 검소방구 혹은
현암(玄岩)이라 카게 된니더.
(민실ㆍ민곡)
옛날에 노개낭기 디게 많는데라꼬
노개나무꼴이라꼬 카다.
조선 명종때 재령이씨(載寧李氏)들이
묘를 쓸때 골짜기가 밋밋하고
펑푸짐 하다케가 민실이라꼬 켔니더.
민곡(敏谷)은 민실을 한자로 쓴거시더.
(솔두들ㆍ송구)
마실 근바에 언덕에는 소낭기 쌔배서
경치가 디게 아름답따꼬
솔두들이라꼬 카니더.
송구(松邱)는 솔두들을 한자로 쓴거시더.
(수꾸내미)
솔두들 북쪼구에 있는 마실로
논은 달부없꼬,
마카다 수꾸(수수)를 재배하는 데라꼬
수꾸내미라꼬 켔따 카기도하고
숯을 꼰는(굽는) 숯굴이 있는 너미(고개)라꼬
수꿩내미라 카다 수꾸내미라 켔따 카니더.
(운수내미)
솔두들 남동쪼구에 운수내미라는
고개가 있는데 그 아래쪼구에
있는 마실이시더.
임진왜란 때 피난민들이 이 고개서
남쪽 아니면 북쪽으로 갈 것인지를
나뭇가지를 던져 점을 쳤떤 데라꼬.
운수내미라꼬 카니더.
(아편재ㆍ압평재)
민실 남쪼구에 있는 마실로
옛날에 아편을 재배 했떤데라꼬
아편재 혹은 압평재라꼬 카기도 하고.
마실 앞이 평푸짐한 고개라꼬
아편재 혹은 압평재라 카기도 하니더.
압평은 아편에서 굳어진 거시더.
(초막골)
택굴방구 남쪼구에 있는 마실이시더.
과거에 지붕을 일때
억새 혹은 갈때를 사용했따꼬
초막꼴(草幕谷)이라 카니더.
(턱걸바위ㆍ택굴방우)
마실 뒤산에 호래이가
택(턱)을 걸고 죽은 방구가 있따 케가
택(턱)걸 방구라 카니더.